왕처럼 키워라 - 조선 왕실 500년 천재 교육의 비밀
백승헌 지음 / 이지북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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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처럼 키워라 reading

2016.09.11. 20:00 수정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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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들의 교육이 조기교육이고 엘리트교육이라는 얘기는 옛날부터 많이 들어서 실제로 어땠는지 궁금해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사도세자는 5살때 지금 말하면 서울대수준으로 공부를 시켰다고 하고 영조가 덜 공부를 시켰어도 미치지 않았을거라는 얘기를 들었다.

사도세자가 그림을 잘 그렸다고 하는데 그림을 잘 그리는 것도 영재라고 했다.

지금은 모솔이라서 애를 교육시키거나 조카를 교육시키는 일은 없지만 천재는 만들어 진다고 하니까 내 자신한테 적용을 하고 싶어서 읽게 되었다.

이 세상 부모들은 모두가 왕처럼 자식을 키우고 싶어 한다.

 왜냐면  자식이 왕이 되면 부모도 함께 대왕대비처럼 대우를 받을 수 있다.

또한 거기에 따른 부와 명예를 함께 느끼며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아직 나는 미혼이기때문에 결혼을 하면 백승현 선생님의 글처럼 아이에게 왕의 교육을 해보고 싶다.

우리 엄마도 우리 남매를 이렇게 키우기를 원했던 것 같다.

그런데 내 동생은 어릴적 부터 엄마의 스파르타 교육을 거부했고 나는 따르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데 시간이 가면서 아빠의  일들이 가정 경제를 흔들어 놓아서 어려워졌지만 엄마는 왕의 교육을 몸소 실천을 하셨다.

직접 책을 손에서 놓지 않고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하는 것을 보이는 엄마의 영향을 받아서 나는 엄마의 교육에 따르기로 했다.

가정 경제가 어려워질수록 자본없이 할 수 있는것은 공부 밖에 없었다.

 세종대왕의 창의력의 힘은 왕의 계승권에 상관하지 않고 자신의 창의력과 똑똑한 머리로 심신을 단련했기 때문이다.

 그는 정치적인 안정을 비롯한 치적 이외에도 한글을 창제하고 측우기를 비롯한 여러 과학적인 기계를 발명한 것으로 유명하다.

 오늘날에 와서도 세종대왕의 업적은 세계에 내어 놓아도 자랑스러운 일이다.

세종은 위로  양녕, 호령의 형이 있었다.

 세종은 11세에 충녕군, 15세에 충녕대군의로 진봉되었고 21세 되던 해에 세자로 책봉 되었다.

조선왕실의 세자는 보통 8세에 정해지는데 그는 21세가 될 때 까지 왕의 계승권과 관계 없이 치열한 심신을 단련하였다.

"충녕은 천성이 총명하고 민첩하여 학문을 좋아 하여 날씨가 추우나 더우나 밤이 새도록 글을 읽으므로, 태종은 그가 병이 날 것을 염려하여 밤에 글 읽는 것을 금시 하였다."

태종의 셋째 아들인 소년 충녕이 조선의 가장 뛰어난 왕으로 추앙 받는 세종대왕이 된 원동력이 궁금해서 책을 계속 읽게 되었다.

그의 천성은 하루 아침에 얻어진 것이 아니다.

많은 노력을 통해 두뇌를 발달 시켰으며 창의력을 길렀던 것이다.

 세종은 어린시절 부터 경서를 모두 100번씩 읽었고, 그래도 이해되지 않는 책은 최고 300번 까지 읽었다.

세종의 어린시절에 얽힌 일화는 수 없이 많다.

그는 끈기있게 노력하고 옳다고 판단되는 일은 반드시 실행했다.

세종같은 성군만 있다면 민주주의도 필요없고 법도 필요없고 자신의 모든 것을 맡기겠다는 엘리트가 있었다.

성종의 대범성은 형 월산군과 함께 할아버지를 모시고 궁중의 어느 마루에서 폭우가 쏟아지더니 곁에 있던 내시가 벼락을 맞아 죽었다.

그 때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가 혼미백신 하여 겁에 질려 야단을 했다.

그런데 어린 성종은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앓고 의연한 자세를 보였다.

조금도 두려워 하는 기색이 없었고 언어와 행동이 평상시와 다름없었다.

성종은 태어난지 두 달도 채 못되어 부왕인 아버지 덕종을 잃었기에 할아버지 세조가 궁중에서 키웠다. 성종은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할아버지인 세조의 사랑을 받으며 자신의 재능을 한껏 다듬었다.

그래서 기예와 서화에 뛰어 났고 언행과 몸가짐이 단정하여 세조의 사랑을 한 몸에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성종의 대범성은 두되 발달 측면에서 보면, 깊은 사색과 적극적인 현실 적응력에서 나타난다.

 성종처럼 내면세계를 깊게 다듬었을 때 언행과 몸가짐이 바르게 나타난다.

영조의 결단력은 어린시절에 재기가 뛰어나 숙종의 사랑을 받았고 독서와 창작 활동에 관심이 많았다. 무수리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서자의 설움을 학구열의로 극복했던 것이다.

영조는 탕평책을 써서 실권중심의 정치체계에서 왕권을 강화하는 전기를 마련하고 노년에는 학식이 상당한 수준에 올라 학문이나, 국정운영, 인생 경험에서 노련한 대신들에게도 절대 뒤지지 않았다.

 정조의 의지력은 10세의 어린나이에 아버지인 사도세자의 비극적인 죽음을 경험했다.

사도세자는 당쟁에 희생되었다.

사도세자에 대한 영화나 드라마로 엄청 많이 만들어 졌다.

정조는 비극과 위험을 학문적인 열정으로 이겨냈다.

정조는 백일도 채 안되어 글자를 보면 혼자 방실방실 웃었고 이에 아버지인 사도세자가 친히 글을 써서 책을 만들어 주었다. 

어린 정조는 늘 책을 가지고 놀거나 읽는 시늉을 하고 아끼며 어루만져 책이 다 너덜거릴 정도였다.

정조는 성장하여 세손이 되자 '개유와'라는 도서실을 마련하여 경사와 관련한 모든 책을 섭렵했다.

정조의 강한 의지력은 어린시절 개인의 노력과 환경의 영향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정조는 어린 시절부터 학문에 대한 남다른 열정과 비극적인 상황을 이겨내는 꿋꿋한 정신력은 훗날 실력있는 인재를 등용하는 정치 풍토를 조성하는데 영향을 주었다.

 개혁적인 인사 정책과 개혁정치, 문화정치를 펴는 데도 원동력이 되었다.

 오늘날의 자녀 교육은 그저 비싼 학원과 고액 과외가 왕을 만드는 줄 안다.

내가 학교를 다닐 때도 한 과목에 150만원씩 과외를 한다고 애들이 자랑을 했었다.

그래도 못하면 외국으로 도피유학을 갔다.

 진정한 학문을 위해서 가는게 아니라 스카이가 안되면 비슷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 가는 것이다.

 내가 아는 동생도 한국에서 듣보잡 지잡대를 나왔는데 외국에 가서 학벌 세탁을 하고 한국에 와서 일류대에 외국인 자격으로 편입을 하고 외국계회사에서 억대연봉을 받는 것을 봤다.

 조선왕 27명중 4명만이 뛰어난 왕이다.

조기 교육을 똑같이 시켜도 본인 의지와 노력이 중요하다.

27명 모두가 다 왕실의 천재 교육을 받은 것은 아니다.

태조, 정종, 태종, 단종, 강화도령 철종,대원군 아들 고종, 재위 기관이 2년인 순종 그들은 제외이다.

환경이 인성과 재능을 지배하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같다.

환경적 영향은 좋고 나쁜 것으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다.

주어진 조건을 어떻게 받아 들이고 그 속에서 얼마나 자양분을 흡수 하느냐가 중요하다.

왕자들의 천재교육에서 환경의 영향을 분석해보면 매우 개연성이 높은 공통점이 있다.

천재교육을 받지 않은 왕이 통치할 때 나라는 어땠는지 궁금해서 계속 챙을 읽게 만든다.

 왕실에선 그 옛날에 총명탕을 먹이며 교육을 했다니 정말 놀랍다.

 총명탕은 과학적으로 두뇌 건강에 증명이 된 것이라고 한다.

 총명탕이 뇌의 건강을 책임 지는 것이고 조선 왕조 왕자들은 엄청나게 많은 시간을 투자 하여 심신을 단련했다고 한다.

 요즘의 부모들은 비싼 고액과외와 주입식으로 빨리 교육을 하니까  학문이나 심신단련이 아니고   대학과 직장에 들어 가기 위한 도구로만 교육을 이용한다.

  이런 잘못된 방법의 교육은 성공만 추구하니까 오늘날에 하늘바로밑에  있는 부장판사, 부장검사의 비리가 뉴스에 나온다.

제일 윤리도덕적인 기준이 높아야 할  위치의 사람들이 힘든 학문을 해서 다시 개천으로 쳐박히고 있다.

 왕자들은 경쟁도 없이 독단적인데도 그들은 치열하고 체계적으로 학문을 했고 유대인의 천재교육이나 현재의 영재교육과 비교가 안 될 정도의 수준이었다.

국가 정책적으로 미래의 지도자를 위해 수시로 대신회의를 열어 왕들의 천재교육을 하는 경우는 세계사에서 없을 정도로 대단했다고 한다.

태조는 왕족이 아니기 때문에 왕자 교육을 못받았고 아들 정종과 태종은 아버지 태조가 늦게 왕이 되었으니 왕자 교육을 받지 못했다.

후기 왕의 경우도 그랬다.

철종 강화도령 역시 시골 총각이다.

고종 역시 대궐 밖의 인물이고, 순종은 유일하게 고종의 강제 퇴위 되어 형식적인 왕으로 세워졌다.

천재교육의 실패한 왕도 있다.

 연산군, 중종, 명종 등 3명이 대표적이다.

천재교육에 성공한 비율 53.8%이라는 비율은 천재 교육의 놀라운 실효성을 입증할 수 있다.

천재 교육이 실패한 비율 23%는 그렇게 높은 비율은 아니다.

보통 이상인 왕은 효종, 현종, 숙종으로 나름대로 치적이 있다.

 조선의 왕자들은 최고의 석학 스승들이 동원 되었다.

세종을 가르친 이수의 경우는 생원시 1등으로 합격했고 문과에는 낙방했지만 교육자로서는 뛰어났다.왕자의 교육에서 절대로 빠뜨릴 수 없는 것은 시련과 고난을 극복하는 과정이다.

특히 세종, 세조, 성종, 영조, 정조등을 면밀히 분석해 보면 그들은 적장자가 아니었고, 왕이 될 가능성이 희박했다.

그러나 그들은 지독한 독서열을 불태웠고 확정적이지 않은 조건 속에서도 열심히 공부 했다.

세조가 학문을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 아버지인 세종은 자치통감을 주었다.

세조는 단종을 몰아 내고 비정한 폭력성을 지닌 왕이다. 

세조는 '천하에 좋은 책은 다 읽어다고 한다.'

유대인의 천재교육을 말해보면 미국의 인구 중에서 유대인의 비율은 2%이다.

그런데 하버드대학을 비롯한 미국의 명문대학 교수진의 약 30%가 유대인이다.

유대인들은 저마다 자신의 능력을 최대로 살려서 성공의 방법을 잘 알고 있다고 한다.

유대인의 유전자가 뛰어나게 타고나 머리가 우수하기 때문이 아니다.

 유대인 특유의 천재 교육을 받고 민족의식을 지니고 살아 가는 것을 배우며 가정이나 학교에서 두뇌의 기능을 충분히 발휘하는 방법을 배운다.

유대인의 육아법과 교육법에는 다른 민족과  구분되는 특별한 점이 있다.

독특한 조기교육을 시킨다.

유대인이 뛰어난 것은 선천적인 두뇌가 아니라  후천적으로 천재, 조기교육의 효과인 것이다. 

유대인의 천재교육 비결은 탈무드에 담겨있다.

창의력은 다소 엉뚱하고 당돌하고 새로움을 추구하는 빠른 두뇌회전력을 필요로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천재성에 후천설을 믿게 되었고 총명탕을 꼭 먹어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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