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까도 잡지에서 여성문학상이란 것을 봤는데 부러웠다.
글을 쓸 수 있는 능력은 정말 부러운 것 같다.
'시작이 반' 이라는 속담도 있듯 한 번 해보겠다는 바람을 세웠다면 뒤이어 하는 실제 방법이란 쉽고 단순하다.
차분하게 자기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걸 글로 기록하면 된다.
이 얘기는 맞는 것 같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그냥 쓴다.
자기 내면에서 잔소리하는 검열관의 말도 무시하고 그냥 쓴다.
이처럼 쉬워서 굳이 따로 가르치거나 배울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이런 걸 자기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고 할 수 있겠다.
'귀를 기울인다' 는 단어가 추상적으로 들린다면 그에 대응하는 구체적인 몸의 행위로 '자기 속에서 흘러나오는 말을 글로쓴다' 고 다시 말해 볼 수도 있겠다.
우리엄마랑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박완서작가님은 경기도 개풍군 박적골에서 태어났다.
근대 문명의 혜택이 시골까지 미치지 못했던 그 시절, 세 살 때 아버지를 병으로 잃는다.
맹장염으로 추측되는 복통을 단순한 토사광란 정도로 대처하여 복막염으로까지 키웠던 것이다. 작가님의 어머니는 시골의 무지 때문에 남편이 죽었다고 생각했고, 아들과 딸 두 자식만은 도시로 데려가 근대 교육을 받게 하겠다고 결심한다.
우여곡절 끝에 서울로 온 그녀는 서대문 영천 산비탈의 빈궁한 동네에 정착하지만, 억척스런 어머니의 뒤바라지로 요즘으로 치면 강남8학군에 해당될 사대문안에 있는 매동초등학교에 들어간다.
원래 사는 동네의 학교를 놔두고 인왕산 고개까지 넘어가며 등교하는 일은 어린 그녀에겐 수줍음을 더하는 고통이었다.
그래도 오빠가 학업을 마치고 가정을 이룰 즈음엔 꽃다운 처녀로 자라나 서울대학에 입학한다. 입학한 지 한 달도 못되어 6.25사변이 터진다.
그녀는 이념이라면 몸서리를 치게 되고, 학업을 포기하고 오로지 처자식만 위할 가정적인 남자를 찾아 결혼하고 가정을 꾸린다.
아내와 엄마라는 전업주부의 역할에 빠져 조용히 살아가고자 한 것이다.
중년이 될 때까지는 생각한 대로 무탈하게 살아지는 듯했다.
박완서작가님은 40세의 나이로 여성동아 장편 공모에 당선되어 문단에 데뷔하셨다.
박완서작가님은 2011년 타계하실 때까지 한국 문학의 거목이라 칭송받을 정도로 선생님은 지속적이고도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셨으며 <휘청거리는 오후>, <그해 겨울은 따뚯했네>,<그대 아직 꿈꾸고 있는가>,등 수 많은 베스트셀러로 독자들의 사랑을 받기도 했다.
우리 엄마의 이야기로는 이모든 작품들이 TV에 드라마로 아주 유명했다고 하셨다.
박완서작가님은 자신의 호칭을 "난 작가라고 불리는 게 최고라고 생각해요.
소개할 때 작가누구, 하는 것 말고 뭐 더 다른 말이 붙을 필요가 있어요?" 그런 작가의 길로 들어서게 된 동기를 <엄마의 말뚝> 이란 소설에서는 위에서 인용한 것과 같은 말로 설명하셨는데, 강연회나 독자와의 대화 같은 자리에서도 소설을 쓰게 된 이유를 질문 받으면 같은 내용을 말씀하시곤 했다.
요약한다면 박완서작가님은 내면에서 아우성치고 있는 이야기들에게 목소리를 주고 싶어서 글을 쓰기 시작하셨다고 할 수 있다.
작가님의 작품 세계는 70.80년 중산층의 위선적인 풍속도나 여성 문제 등 다양하긴 하지만 6.25의 상흔이나 분단의 상처를 드러낸 소설도 적지 않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젊은 시절, 참혹했던 전쟁을 겪고, 육친의 죽음을 제대로 애도하지 못해 만들어진 마음의 상처가 중년이란 고비를 글쓰기로 나타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박완서 작가님의 사례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자기 이야기 쓰기의 필요성과 심리 치유 효과를 더 설명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이처럼 박완서라는 이름을 들을 때 사람들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중년이라는 고비에 새롭게 시작한 글쓰기'라는 키워드이다.
박완서작가님이 정말 좋은 것이 마흔이라는 나이는 여자로서의 모든게 끝났다는 인식이 있는데 그 분은 그 나이에 새로운 일과 꿈을 시작하신 것이다.
정말 멋있는 분이시다.

한 사람의 인생을 한 줄로 요약하면 지나치게 단순화될 위험도 있지만, 40세에 작가라는 새로운 길로 들어선 박완서 작가님의 인생을 상기하면서, 왜 하필 중년이고, 글쓰기인가 하는 문제를 짚어 보고자 한다.
이처럼 별다른 이견 없이 부모를 모방하면서 성장하다가, 신체가 어른의 모습으로 변하기 시작하는 사춘기가 되면 아이는 슬슬 부모로부터 떨어져 나와 홀로서려고 하게 된다.
이럴 때 맨 먼저 보이는 증상은 여태까지 자신이 맹목적으로 흉내 내온 행동과 사고방식을 맹렬하게 부정하는 것이다.
부모가 손잡으려 하면 슬며시 피하고, 방문을 걸어 잠그고, 말대꾸를 하는 등 밀쳐내는 식으로 은근히 거부하든, 간섭하지 말라고 내 뜻대로 살겠다고 명확하게 거부하든, 앞으로 자기는 부모의 세계에 속하지 않겠다고 주장하는 것인데, 그렇게 해서 부모로부터 떨어져 나온 다음이라야 독립된 자기 세계, 자기 독자성, 자기 개성을 만들어갈 수 있다.
그런 부정의 단계를 거친 다음에 비로소 긍정의 단계가 온다.
새로운 가치관, 인생관을 찾는 방황과 모색의 시간이다.
이처럼 부정과 긍정을 왔다갔다하면서 아이에서 어른으로, 독립적이고 개성을 가진 한 인격으로 성장한다.
예를 들어 사춘기의 이런저런 경험과 고민 끝에 내심 '세상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다. 이 약육강식의 세상에서 승리하는게 최고다.
최고의 만족은 다른 사람들을 내가 조종하는 데 있고 그러려면 부와 힘을 가져야 한다' 는 가치관을 갖게 되었다고 가정하자.
이처럼 사춘기에 만들어진 가치관은 그 이후 인생에서 결정적이다.
의식하든 하지 않든 누구나 사춘기의 경험과 고민 끝에 얻어진 가치관에 따라 그 이후 인생을 만들어 가게 된다.
사춘기가 개별적인 한 인간으로 홀로서기 위해, 부모의 부속물이 아닌 온전한 한몫 성인이 되기 위해 방황하고 고민하는 시기라고 한다면 중년기는 그렇게 해서 만들어 온 자신을 새롭게 쇄신해야 하는 시기이다.
몸이 그런 것처럼 마음도 변화하고 움직이는 에너지이다.
느끼고 생각한다는 건 마음이라는 에너지가 움직인다는 뜻이다.
중년이 되기 전까지 마음의 에너지는 주로 외부 세계에 쏠려 있다.
따라서 중년이라는 인생의 두 번째 변화기에는 마음의 소리를 귀담아 듣고, 심리 에너지가 흘러갈 새로운 길을 내야 한다.
요약하자면 중년이 되면 마음의 에너지의 영향을 외부에서 내부로 돌려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인생의 의미를 찾고 재정립해야만 한다.
자기이야기 쓰기---인간은 인간답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인 말은 강력한 마법을 갖고 있다.
' 말이 씨가 된다'. '말한 대로 되게 마련이다' 라는 속언은 말에는 힘(에너지)이 들어 있다는 뜻이다.
나아가 말은 눈으로 보이는 문자로 고정시킨 글은, 자신의 막연한 생각이나 느낌, 태도, 상상과 같은 것들을 시각적인 형태로 바꾸어 보여 주기 때문이다.
카타르시스적(자기정화)글쓰기---하고 싶은 이야기를 아무런 제약 없이 그냥 쓰는 것이다.
되도록 허름한 연습장 같은 노트를 준비해서 거기다 그냥 쓰면 된다.
보통의 기억과 상처의 기억은 질적으로 다르다고 한다.
고통스런 기억, 상처가 된 기억은 그에 관련된 느낌이나 감정이 기억에 잔뜩 달라붙어 있어 심리 에너지가 그 기억에 불필요하게 과다 집중되어 있는 상태이다.
때문에 이미 지나가 버려 존재하지 않는 지금도 과거의 그 기억은 그 사람을 괴롭히게 되고, 심하면 강렬한 불안감이나 강박적인 행동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그렇게 잘못,과다 집중된 심리 에너지를 글쓰기를 통해 풀어놓는게 카타르시스적 글 쓰기이다.

콤플렉스---이처럼 콤플렉스는 스스로의 의식적인 생각으로 조절되지 않는, 나도 모르게 나를 움직이는 무의식에 숨은 힘이라고 할 수 있다.
심하면 내 마음속에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있어 나를 조종하고 있는것 같기도 하다.
콤플렉스는 일상적으로 흔하게 쓰이는 말로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라고 하면 아들이 아버지에겐 반감을 느끼고 어머니를 친애하는 성향을 뜻하고, 키가 작아 콤플렉스를 느낀다든지 하는 말을 쉽게 내뱉기도 하며, 가난해서,머리가 나빠서, 스펙이 좋지 않아서 등등, 자신 모자란 점 때문에 주눅이 든다는 뜻으로도 '콤플렉스' 라는 말을 많이 쓰고 있다.
콤플레스는 때로 그 사람의 성취 동기를 높여 주기도 한다.
콤플렉스가 있기 때문에 그걸 커버하려고 갈고닦고 노력해서 높은 업적을 이루기도 하는 것이다. 하여 '위대한 콤플렉스' 라는 말이 생겼다.
나폴레옹은 키가 작은 데다, 코르기카라는 우리나라로 치면 진도쯤 되는 궁벽한 섬 출신이어서 파리 사교계에 등장했을 땐 촌뜨기라고 멸시를 받았다.
그런 자신의 콤플렉스를 넘어서려고 노력하다 보니 프랑스의 황제가 되고 유럽을 재패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뿐 아니라 역사적으로 커다란 업적을 남긴 사람들을 살펴보면 대붑분 한 가지 이상은 자신이 열등하다는 콤플렉스를 갖고 있어, 그걸 극복하려고 노력했던 경우가 많다.
아니마, 아니무수---확실한 건 아니지만 아니마, 아나무스는 타고난 천성에 더하여 반대쪽 부모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다고 한다.
내가 아는 친지는 사위가 네 명인데 요즘 와서 가만히 살펴보니 어쩜 그렇게 비슷비슷한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또 어떤 여성은 처녀 시절, 절대 아버지 같은 남자와 결혼하지 않겠다고 눈에 불을 켜고 고르고 골라서 결혼했는데, 이제와서 보니 남편과 친정아버지가 비슷하다고 말한다.
이런 게 다 아니마, 아니무스가 이성 부모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 진다는 증거가 아닌가 싶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 ---연습장을 내어놓고 떠오르는 말을 적는다.
쓰고 난 뒤 이게 아니라 다른 건데, 싶을 수도 있다.
그래도 일단 써놓은 단어를 중심으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라는 제목에 어울리는 글을 쓴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알려서 나의 특성을 드러낸다는 느낌이면 되니까 긴장하지 말고 좋아하는 이유까지 찬찬히 풀어서 쓰면 된다.
사연이나 상황을 그림 그리듯이 쓰면 더욱 좋다.

나도 이 책을 보고 나 자신을 위한 글쓰기를 조금씩하고 나를 찾아 가는 과정을 겪고 꿈을 포기하지 않고 도전을 쉬지 않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존경하는 박완서작가님처럼 나이가 들수록 성공하는 사람이 되어야 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