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기와 끈기로 최고를 꿈꿔라 - 최연소 변호사 손빈희가 들려주는 희망 메시지
손빈희 지음 / 미다스북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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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빈희는 사실 전형적인 마이너스 인생이고, 마이너스 스팩이다.

우선 재혼가정 출신이다.

재혼가정이라는 말이 듣기 싫어 일기를 거짓말로 쓰기도 했고, 자신의 동생 정인이를 사촌 동생으로 만들어버릴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손빈희는 초등학교 때 동생들과 중국에 가서 몇 년 지낸 적이 있다.

부모님 입장에서는 미래를 내다본 야심찬 유학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손빈희로서는  재혼가정이라는 꼬리표를 벗어던지고 마음 편히 살 수 있는 도피처이기도 했다.

그런데 중국에서도 처음엔 바보 한국인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살았다.

그리고 그 '바보 한국인' 이라는 꼬리표를 떼어낼 즈음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게다가 손빈희는 검정고시 출신이다.

 그리고 이른바 일류학교라는 곳은 다니기는커녕 가본 적도 없는 지방대 출신이다.

그러니까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손빈희는 한마디로 미운 오리새끼였다.

그러나 그 모든 단점을 극복하고 손빈희는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대학교, 로스쿨에 들어가고, 이제는 변호사 시험에도 합격했다.

그것도 최연소로, 판사나 검사를 지원할 수도 있었겠지만 손빈희는 변호사를 선택했다.

 손빈희가 변호사를 선택한 이유는 두 가지다.

우선 첫째 이유는 선한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다.

손빈희의 인생의 가장 중요한 멘토이시기도 한 부모님은 그녀에게 무엇보다도 인성을 강조하셨고, 선한 사람이 되길 당부하셨다.

그녀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힘이 되는 방법을 찾고자 변호사를 선택한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보다 복잡해지고 글로벌화되는 국제 거래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이나 사회적 약자들이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서이다.

그 결과 택한 손빈희의 꿈이 국제 거래 전문 변호사다.

법조인의 길이라는 긴 시선으로 보면 이제 겨우 초입이지만 지금까지 손빈희는 온힘을 다해 전력질주하듯이 뛰어왔다.

 매년 2000명의로스쿨 입학생 중 50% 이상이 소위 말하는 '스카이'출신이고 80%는 '인서울 '대학 출신들이다.

그런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까지 지방대 출신의 손빈희가 걸어온 길은 험난하기만 했다.

상상을 해도 알 수 있는 얘기이다.

 사람들은 어린 나이에 대학에 입학해 로스쿨까지 졸업한 그녀를 엄청난 부잣집 딸일 것이라 생각한다.

 개천에서 용나는 시대는 지나갔으니, 운좋게 부자 아버지를 둔 은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이쯤으로 치부해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집은  부자와는 거리가 멀다.

중국에서 전 재산을 잃고 돌아와 그녀가 대학에 가기전까지 온 가족이 월세방에서 지내기도 했다.

검정고시에 최연소로 합격했단 기사가 쏟아지던 당시에도 사람들은 그녀를 영재로만 바라보았다. 한번 책을 쓰윽 훑어보면 모든 것을 외워버리는 영재로 생각했던 것이다.

아무리 천재라도 사실 그런 사람은 없다.

 

그녀를 만든 것의 오할은 오기 그리고 나머지 오할은 끈기라고 한다.

남들은 손빈희 집에 특변한 공부비법이나 자녀교육법이 있는 것처럼 생각한다.

만나는 사람마다 물어보고, 방송에서도 수도없이 질문들을 한다.

물론 그녀의 집에는 멘토이신 아빠와 엄마의 특별한 공부비법과 자녀교육법이 있다.

이 특별한 공부비법과 자녀교육법은 평범한 네 남매를 모두 전액장학생으로 만들었다.

'인성교육'과 '성실교육' 그리고 '집중교육'이다.

이 세 가지 교육을 배우고 실천하는 과정 속에서 이 세상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오기' 와 '끈기'를 배울 수 있었다.

그녀의 집의 대표적인 교육 비결로 '성실' 을 들 수 있다.

그리고 남다른 '자존심' 을 타고 났다.

이 둘이 빚어내 함께한 노력은 한 번도 그녀를 배신한 적이 없다.

우리 모두에게도 그 노력은 배신하지 않을 것이다.

성실은 열정을 부르고 자존심은 용기를 그녀에게 줬다.

마이너스에서 시작하여 두 배 열심히 노력하면 동등한 0에서 시작할 수 있을 것이고, 네 배 더 노력하면 언젠가는 플러스가 되는 날이 오리라는 희망의 다짐이 지금의 그녀를 만들 수 있었다.

 그러나 집요한 노력의 과정과는 달리 매 순간 그녀의 꿈은 소박하기만 했다.

그 소박한 꿈은  '국제 거래 전문 변호사'라는 가슴 뛰는 미래의 꿈이다. 

 

손빈희는 숨기고 싶었던 비밀이 있어서 거짓말 일기까지 썼던 과거가 있다.---'오늘 정인이한테서 황당한 이야기를 들었다. 7반 자기 친구가 그러는데 정인이가 내 사촌이 아니 부모님이 재혼해서 같이 살게 된 동생이라는 소문이 애들 사이에 퍼져 있다고 했다. 나는 화가 난 나머지 눈물까지 났다. 왜 그런 헛소문이 퍼진 건지 누가 그런 이야기를 했는지 너무 속상했다.' 아이들이 손빈희의 부모님이 재혼한 사람이라고 한다는 내용이 내용인 만큼 학교에서는 일이 일파만파로 커져갔다.

우선 일기를 본 그녀의 담임선생님은 그녀를 걱정하셨다.

그녀의 부모님도 그 거짓 일기를 알게 되셨다.

 사실 부모님이 재혼했다는 말은 정인이가 한 말이었는데, 그녀의 거짓말 일기 때문에 정인이만 거짓말쟁이가 되어버렸다.

어릴 때 그런 일을 겪으면 정말 상처가 될 것 같다.

어릴 때 애들은 성처가 되는 것도 정말 잘 놀리기 때문이다.


그녀를 나아가개 하는 힘은 가족---그녀의 부모님은 거짓 일기의 일을 놓고 여러번 의논을 하셨다.

아이들에게 재혼가정이라 놀림까지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정인이는 손빈희보다 더 큰 마음의 고통을 겪었을 것이다.

그녀는 우여곡절 끝에 결정된 중국 유학은 훗날 정인이와 그녀 사이를 더욱 견고히 만들어주었다.

중국에서의 생활은 서먹하던 그녀의 가족을 '진짜 가족'으로 만들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이런 모든 교육은 손빈희 아빠의 덕분이다.

그녀의 아빠는 중국어 선생님이 되셨다.

그녀의 아빠는 또 불시에 시험을 보기도 하셨는데 이' 불시 시험 때문에 꾀를 피운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다고 한다.

셋 중 하나라도 커트라인을 넘지 못하면 '말 타기'라는 채찍을 주셨다. 그녀의

동생  다빈이는 뒤늣게 머리가 트인 케이스다.

항상 다빈이 때문에 맛있는것도 먹지 못하고 벌을 서야 했던 그녀는 어느 날 폭발하고 말았다.

그 따지기 좋아하는 성격이 어디 갔겠는가.

그녀는 아빠 한테 동생이 못하는것 때문에 왜 자기도 까지벌을 받아야 하냐, 불공평하고 부당하다'고울면서 이야기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의 아빠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빈희야, 가족은 한 배를 탄거야, 특히 의지할 곳이 없는 우리 가족밖에 없는 중국에서는 오죽하겠니. 한배에 탔으면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는거야.라고 하셨다고 한다.

 그 이후 그녀에게는 동생들이나 타인을 배려하는 습관이 생겼다고 한다.

중국 학교를 다니던 그녀의 별명인  뻔과 싸는 중국말로 '뒷북치는애'. '멍청한애.'라는 뜻이었다. 중국에 와서 말 한마디 못하고 중국 애들한테 놀림이나 받고 있으니 빨리 한국에 돌아 가고 싶었다고 한다.

'중국 학교에 다니기만 하면 언젠가 저절로 중국어를 잘하겠지.'라고 생각한 그녀의 착각이었다. 중국의 어린이날 6월 1일 '아동절'이라고 한다.

중국에 유학 온 후 처음 맞는 행사라 그녀의 부모님도 설레는 것처럼 보였다고 한다.

그녀의 아빠는 캠코더까지 가지고 그녀를 찍으러 오셨는데 중국인 담임선생님이 대뜸 그녀의 아빠를 보고 화를 내는 것이었다.

도대체 아이들을 어떻게 공부를 시켰기에 학교에서 잠만 자냐고 했다.

그녀가 잘못한 것은 알았지만  그녀의 아빠와 선생님이 싸우는 모습을 보니 그녀도 속상했다고 한다.

다빈이 선생님 까지 같이 끼어들었다.

그녀는 이 사건 이후, 중국어를 못하거나 한국인을 무시한 중국 친구들과 선생님에게 소위 말하는 본때를 보여주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그 후 수업시간마다 무기력했던 그녀는 엄청 적극적인 학생으로 변해 있었다.

손빈희 아빠의 단어 테스트와 중국 텔레비전의 도움 역시 빼놓을 수 없었다. 

 

뇌체조로 집중력을 높여야 한다.

---손빈희 형제들이 집중력 훈련을 했던 기간은 1년 정도 되었던 것 같다.

손빈희 형제들은 산만했다.

때문에 공부를 많이 하는 것보다 집중력을 키워주는게 시급해 보였다.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라는 말이다.

공부는 육체가 하는 것이 아니라 건강한 뇌가 하는 것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몇 달 전에 수업시간에 잠만 잔다고 그녀의 아빠와 선생님이 다투셨을 때에는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는데 , 지금 그녀의 기분은 하늘 끝까지 날아올랐다.

역시 끈기와 노력에는 모든 난관을 극복하는 힘이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녀는 더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

몇 달 후에 는 깜짝 놀랄 일이 벌어졌다.

손빈희가 반에서 1등을 한것이다.

당시는 경제적 어려움으로 그녀의 부모님은 한국으로 돌아가가시고, 그녀의 세 자매만 남아 중국에서 생활하고 있을 때였다.

비싼 국제전화는 가급적 사용하지 않고 살았다고 한다. 

그녀는 '엄마. 저 1등을 했어요.'하자 그녀의 엄마 아빠는 수화기 너머로 웃어시는 소리와 동시에 많이 기뻐 하셨다고 한다.

그녀는 1등을 하고 6학년 2반 반장도 되었다고 한다.          

최연소라는 타이틀을 버려얀 한다

---"빈희야, 로스쿨이 네가 원하는 국제 거래 전문 변호사가 되는 일에 더 적합할지도 몰라!" 그녀의 아빠는 막 생긴 로스쿨에 대하여 설명해주시며 손빈희를 설득하셨다.

 로스쿨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상태여서 그녀도 대학 졸업 후 막연히 사법고시를 볼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녀의 아빠는 어렸을 적 중국에서 국제 거래 전문 변호사가 되기 위한 교육을 하는 로스쿨이 그녀에게는 딱이라고 생각하셨던 것이다.

그녀는 학교라는 틀 안에서 체계적인 교육을 받고 싶었다.

또 어렸을 적 그녀의 어머니의 추천으로 본 <하바드대학의 공부벌레들> 때문에 로스쿨에 대한 환상도 있었다고 한다.

로스쿨을 준비할 때부터 그녀는 특성화에 관심을 가졌다.

그 중 그녀가 선택한 곳은 그녀 고향에 위치한 충북대학교와 국제 상거래를 특성화한 동아대학교였다고 한다.

집과 가깝고 지역 출신으로서 혜택이 많은 충북대학교 로스쿨과 국제 상거래를 특성화하여 외국법 전공 교수님들과 실무 출신 교수님들이 많은 동아대학교 로스쿨 중 어디에 가야 할지를 고민하게 된 것이다.

그녀는 부모님과 떨어져 고생을 하더라도 기업 거래가 특성화된 동아대학교 로스쿨을 가는것이 낫다는 판단을 하게 되었다.

사실 면접 당시 중국어법 전공을 하신 조동제 교수님께서 갑자기 유창한 중국어로 질문을 하시는데 얼마나 멋져 보이던지, 또 지금 그녀의 멘토이자 지도교수님 피터 교수님은 미국 로펌의 파트너까지 한 유명한 미국 변호사 셨다.

 "변호사가 되려고 로스쿨에 입학한 이상 최연소는 더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단다.

 최연소라는 타이틀이 나중에 너에게 오히려 방해가 될 수가 있어.

 이제부터는 나이를 떠나 정말 변호사처럼 생각하고 변호사처럼 행동해야 한다."

나이를 빼고 나면, 남들보다 특별히 뛰어나지 않은 머리를 제외하고 나면, 그녀에게 남은 무기는 오기와 끈기뿐이다고 한다.

이 두 무기는 로스쿨 시절 내내 그녀를 지탱해준 힘이고, 한 번도 실망시키지 않은 유일한 그녀의 장점이었다.

그녀는 3년 내내 피터 교수님의 이 말을 명심하고 단 한번도 나이를 무기로 삼지 않고 언니 오빠들과 동등한 입장에서공부하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그녀의 아빠가 존경하는 인물을 꼽으라면 주저없이 반총장님을 맨 먼저 꼽는다.

물론 빈희 아빠 뿐아니라 한국 전 국민이 존경하는 분이다.

반총장님의  공부법을  한마디로 말하면 '엉덩이 공부법'이라 할수 있다.

 빈희 아빠 황석호씨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교육했다.

엉덩이로 공부한다고? 좀 의아하기도 하지만 엉덩이 공부법은 별개 아니라고 한다.

일단 공부를 시작하면 좀처럼 엉덩이를 떼지않는 것일 뿐이지, 반총장님은 다른 사람이 보면 정말로 답답하다고 할 만큼 오로지 공부만 했다고 한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엉덩이를 떼지 않을 만큼 '끈기의 달인' 이셨던 것이다.

끈기는 사람을 위대하게 만든다

 이 말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다.

충청도 작은 마을의 한 소년이 세계의 리더가 될 수 있었던 방법은 '끈기'에 달려 있었던 것이다.

 

열등감을 떼고 자신감을 붙여라

---우리나라를 지배하는 것은 학연, 지연, 혈연이라고들 한다.

면접이든 그냥 사람과의 첫 만남이든 학벌은 그 사람을 보는 중요한 판단 기준이라고 한다.

실제로 검정고시 출신에 이렇다 할 학벌이랄게 없는 손빈희였지만 별다른 불이익은 받지 않고 살아온 터였다.

그녀는 '최연소'라는 꼬리표를 나름 실력으로 떼어가면서 홀로 만족하면서 살던 시절이었다.

노력하면 안 될게 없다는 생각이 확신으로 변해가던 시기이기도 했다.

그러나 학벌이라는 우리 사회의 보이지 않는 '꼬리표' 는 그녀가 모르는 사이에 그녀 등 뒤에 다가와 있었다.

어렵게 '로스쿨을 준비하는 모임'이라는 카페를 알아 가입을 해보니 전국에서 로스쿨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스터디를 많이하고 있었다.

여럿이 공부한다면 불안감도 적고 정보도 공유할 수 있겠지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나 벅찬 희망과는 달리 그 곳은 그녀가 처음으로 '학벌'이라는 난관을 만나게 되는 운명의 장소였다고 한다.

스터디 모집부터가 난관이었다.

대학 졸업 후 6개월 동안 토익 점수도 만들고 중국어 자격증도 따서 다른 사람에 비해 점수가 딱히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한다.

 처음에는 그녀가 왜 거절당하는지 이유를 잘 몰랐다고 한다.

나이가 어려서인지 하고 짐작할 뿐이었는데 직접 물어보니 그녀가 부산외대생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이도 실력도 아닌 '지방대생'이라는 꼬리표 때문에 스터디를 같이 할 수 없다니!

결국 그녀는 수십번의 거절과 우여곡절 끝에 그녀를 받아주는 스터디에 들어갔다고 한다.

그녀는  '지방대'라는 학벌 꼬리표까지 달고보니 역시나 매달릴 것은 '노력' 밖에 없었다고 생각했다. 

 

머리로 공부하지말고 체력으로 공부하라

----"빈희야 공부를 머리로 하낟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그건 아주 잘못 생각하는 거야.

정말 공부를 잘하고 싶으면 체력부터 길러야 해.

아빠는 네가 공부를 조금 못해도 좋지만 이렇게 약한 모습은 보기싫구나.

건강한 몸에서 건강한 정신이 뻗어 나오는 거야!"

 기숙사에서만 지내니까 걸을 기회가 통없나보지? 자주 틈내서 캠퍼스를 산책하거나 가벼운 달리기라도 하도록 해.

 공부를 잘하려면 체력이 먼저다."

라는 말을 그녀는  머릿속에 새겼다. 

그녀는  머리로 공부하지 말고 체력으로 공부하라고 한다.

 

강의실의 소크라테스와 만나다.

---손빈희 엄마는 학창시절 <하버드대학의 공부벌레들>이라는 미국 영화를 보면서 로스쿨에 대한 환상을 가지셨다고 한다.

 그래서 그녀가 로스쿨에 들어간 것을 누구보다 기뻐하셨고 매일같이 전화하여 로스쿨의 모습을 묻곤 하셨다고 한다.

한국 로스쿨도 미국 로스쿨을 기초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이러한 미국 로스쿨의 수업 방식을 취하는 몇몇 교수님들의 수업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학생들은 이러한 '소크라라테스식 '수업 방식을 낯설어 한다고 한다.


그녀의 책을 읽으면서 나도 빨리 로스쿨에 들어 가서 법공부를 깊이 하고 싶다는 열망이 더 커졌다.

난 우리집에서 가까운 로스쿨에 꼭 들어 가서 소크라테스식 수업을 하고만 싶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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