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좋아하는 화가가 인상파화가인데 인상파 화가는 빛을 따라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의 부류이다.
이 책은 내가 좋아하는 인상파화가들도 많이 만나지만 그들이 그렸던 그림의 아름다운 장소들을 직접은 아니고 간접적으로 만날 수 있어서 황홀경을 경험했다.
인상파의 작품들을 크게 두 부류로 나눈다면 도시와 자연이다.
도시파는 인상파의 선구자인 마네를 비롯한 드가, 카유보트, 모리조 등이 대표적인 화가다.
이들은 한창 산업화가 진행되던 시대의 도시와 그 안에 존재하는 사람들을 즐겨 그렸다.
자연파는 인상파 풍경화의 대가인 모네를 필두로 그의 스승인 부댕과 용킨트, 동료인 피사로, 사슬레 등이다.
이들은 야외에서 자연 풍경과 여가 활동을 즐기는 사람들을 주로 화폭에 담았다.
그외의 사실주의 화가인 쿠트베와 신인상파인 쇠라, 시냐크와 후기 인상파인 고갱등이다.
도시를 주로 그린 마네와 드가 같은 화가들은 자연 풍경도 그리기도 해서 더욱 흥미롭다.
풍경화의 경우에 처음에는 영국의 화가 터너의 그림에서 기법을 배웠지만 프랑스에서 본격적으로 꽃을 피운다.
나중에는 영국 화가들이 거꾸로 받게 된다.
이 책에 나오는 장소들 중에는 특히 바닷가가 많다.
정말 멋있는 것 같다.
인상파는 빛이 물에 반사되어 만들어내는 모습에 관심이 많아 강가나 바닷가를 즐겨 찾았고 당대의 여가 활동이 주로 거기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림을 그리러 소풍을 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고흐는 그림을 그리러 나갈 때 비장한 각오로 나갔다는 얘기를 그의 일기에서 읽었다.
이 책은 인상파의 본거지인 프랑스의 자료들을 많이 참고했다.
인상파 화가들이 사랑한 마을 트루빌은 바닷가의 호젓한 분위기가 마음에 드는 곳이다.
분명 휴양지이지만 그리 번잡하지는 않다.
초기 인상파들인 외젠 부댕과 모네, 카미유피사로 등도 이분위기에 매된 것 같다.
이 책을 보고 그들과 같은 기분을 느낀다는 것만으로 마음이 들뜬다.
-너무나 멋진, 모래밭의 긴 나무 판자 산책로
트루빌의 해변은 19세기에 젊은 화가였던 샤를르 모쟁이 살롱전에 이 바닷가를 그린 작품을 전시하면서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 시작했다.
널빤지 깔린 산책로는 뜨겁게 달구어진 모래밭을 피하는데도 안성맞춤이다.
사진으로 직접 보니까 멋있고 와닿는 것 같다.
그림 속에서는 현재의 판자 산책로보다는 더 넓어 보인다.
판자 산책로의 오른쪽에는 호텔과 빌라가 보이고 그 위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다.
산책로위에 멋진 긴드레스를 차려입고 걸어가는 여인들이 있고 자세히 보면 그림자에는 푸른색이 들어갔다.
인상파 아카데미의 전통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들의 시각을 믿고 그림을 그린 것은 모네의 글에서도 나타난다.
그는 절친한 친구이자 후원자인 화가 바지유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신의 예술관을 이렇게 밝힌다. 친구에게 권하기를 "파리에서 보고 듣는것"에 얽매이지 말고 "내가 경험한 것에 대한 인상이기 때문에 어느 누구와도 닮지 않을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진" 작품을 만들라고 한다.
이런 모네의 생각은 인상주의에 호의적이었던 비평가들의 의견과도 일치한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과 달리 인상주의가 제1회 전시회에서 세상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 비판적인 의견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인상파 화가들에게는 개인의 내면에서 이끌어낸 시각의 진실성이 중요했던 것이다.
인상주의는 실물을 그리면서도 개인의 자유를 강조하는 것이다.
-해변의 파도와 햇빛, 그리고 사람들
아방가르드 화가들 외에는 거의 쓰지 않았던 정사각형 포맷은 관객의 주의를 그림의 평평한 표면과 인공적인 구도로 이끈다.
모네의 과감한 붓질과 힘찬 표면 처리는 정방형 포맷 특유의 그림 표면을 강조하는 효과가 있다. 모네의 2차원 예술인 회화의 전통적인 환영을 전복하기 위해 회화의 포맷과 물질적 자연주의의 긴장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모네가 트루빌에서 그린 작품들은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화가가 있으니 바로 외젠 부댕이다.
노르망디의 항구도시 르 아브르에서 어린시절을 보낸 모네는 같은 지역의 바닷가 마을 출신인 부댕에게서 야외 풍경화를 배웠다.
부댕은 "야외에서 풍경을 직접 보고 즉석에서 그리는 작품은 실내 작업실에서 그린 작품에는 없는 힘을 가지고 있다. "는 말을 남겼다.
모네뿐만 아니라 많은 인상파 화가들에게 부댕이 선구자가 된 셈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모네는모티프가 있는 야외에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것은 모네에게 하나의 발견과 베일이 찢어지는 순간 같았다고 한다.
모네는 자신의 눈이 드디어 열리고 진정한 자연을 이해하게 되었다고 했다.
모네와 부댕은 하늘과 바다에 대한 열정을 공유하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게 되었다.
그들의 풍경에는 천막, 의자, 양산, 개들이 등장한다.
트루빌 해변은 부댕의 걸작 중의 하나이지만 그가 죽을때까지 서랍장에 처박혀 있었다.
휘슬러의 인상주의는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들과는 다르다.
그들은 대기속에 퍼져 있는 빛과 색조의 변화를 묘사하는 것에는 프랑스 인상주의자들보다 더욱 급진적이다.
인상주의는 형상의 기초라는 전통적인 데생을 배제하고 색채에서 직접 형상을 끌어냈다.
-습기를 머금은 바닷가의 희미한 빛
이 작품의 화가인 쇠라가 속한 신인상주의는 이전의 인상주의와의 단절을 내걸고 등장한 젊은 화가 조르쥬 쇠라와 폴 시낙이 주도한 예술사조다.
이들은 인상파가 직관에 의존하는 것을 비판하며 과학적인 방식의 회화를 주장했다.
이들이 선보다 색채로 형태를 나타내려고 하고 색조의 콘트라스트를 강조하는 점은 인상파와 동일하다.
인상파가 본능적인 직관에 따라 색조를 분해한 반면에 신인상파는 최대의 광휘성의 표현을 위해 색조를 의식적인 과학의 방법으로 분할한다고 했다.
그들은 작품 하나를 그리는데도 인상파보다 훨씬 오랜시간을 들일 수밖에 없었다.
쇠라가 이 바닷가에서 매혹된 것은 습기를 머금은 희미한 빛이었다.
이 빛은 파리 센 강의 풍경을 연상시켜서 그는 옹플뢰르에서 친구 시냑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썼다.
"내가 색채를 띤 레 장들레를 보게 된다면 나는 거기서 센 강을 봐,
푸른 하늘과 가장 강한 태양 아래서도 거의 회색 바다를 ."
신인상파는 모네를 비롯한 과거 인상파들의 모티프를 따라 하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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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트르타를 너무나 사랑했던 모네
에트르타의 거대한 바다는 모네가 재정적인 어려움에 빠져 캔버스와 물감을 제대로 구하지 못할 시기에 제작된 것이다.
그렇게 복잡하거나 거대한 작품도 아닌데 제작시기가 3년이나 걸린 것에서도 생활의 어려움이 짐작이 간다.
상인들에게 신용을 잃어 외상 거래도 못하고 물감 부족으로 작업을 중단하기까지 했다.
페캉은 마네에게도 특별한 의미가 있다.
자신의 제자이자 모델인 베르트 모리조와 남동생 외젠 마네가 페캉에서 만나 결혼까지 한 것이다.
마네가족과 모리조 가족은 페캉에서 같이 휴가를 보낸다.
-모네가 집 창문 너머로 보며 담아낸 풍경
<일본식 다라> 연작 이후에 모네는 연못을 떠나 집 앞의 꽃이 핀 정원으로 화면을 옮겨갔다.
<지르베니 화가의 집>과 <화가의 지르베니 정원> 등이 이때 그려진 작품들이다.
그림 속의 집은 현재와 거의 비슷하다.
어쩌면 과거보다 잘 꾸며진 것인지도 모른다.
집안으로 들어가면 먼저 작고 푸른 방이 나온다.
차와 향신료, 계란 등이 놓였던 소박한 공간이다.
모네가 1899년까지 작업을 했던 아틀리에가 나온다.
비록 모조품이지만 그의 많은 그림들이 캔버스 채로 벽에 걸려있다.
이곳에 모네와 두 번째 부인 오슈데 그리고 8명의 아이들이 살았다.
창문 넘어로 보는 풍경은 모네가 그린 정원의 모습 그대로다.
집앞에 있는 정원을 그린 그림 중에는 기하학적인 균형을 이루는 꽃 터널을 그린 것도 있다.
1902년까지 모네는 꽃 정원 작품을 8점 그렸다.
구부러진 길 위에 괴일 나무와 꽃을 묘사했다.
모네는 주로 집에서 정원 쪽을 향해 보면서 이 그림들을 그렸다.
-수련의 꽃과 잎이 물 위에 일렁이는 세계의 반영
모네의 생의 마지막이자 가장 널리 알려진 <수련>연작을보면 작품 수도 압도적으로 많고 의미가 있는 것들이다.
집 정원에 핀 수련들을 혁신적으로 그린 물의 풍경화들을 모아놓은 것이다.
모네는 <수련> 연작을 끝내고 말년이 되면 백내장으로 시력이 급격히 악화 되어 사물을 매우 흐릿하게만 인식할 수 있었다.
그래도 모네는 지금까지 많은 불행한 화가들보다는 행복 한것 같다.
화가로서 누릴 수 있는 것들을 모두 누렸기 때문이다.
이 책은 몇 년에 한 번 만날까말까하는 책이다.
가장 좋아하는 인상파화가들을 정말 많이 만나고 그들이 직접 그렸던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소들을 여행하는 기분이 든다.
나의 현실적인 꿈을 이루고 나면 이 책을 들고 책안에 나오는 장소들을 찾아가서 인상파화가들이 그린 그림들과 비교를 해보고 싶은 버킷리스트가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