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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여자 대통령
박영만 지음 / 프리윌 / 2012년 9월
평점 :
항상 여성리더들에 대해서 궁금했다. 어떤 여자들은 한 가정의 아내로 평범하게 살아가고 아니면 가정도 못 꾸리고 더 평범하게 살아가고 어떤 여자들은 한 사회에서 많은 공헌들을 하고 살아 간다. 그래서 여성 리더들에 대한 스크랩도 많이 하고 여성리더들에 대한 책도 많이 읽었다. 대부분 강인하고 공부를 열심히 하고 의지가 굳다. 왕가리 마타이라고 아프리카 최초의 박사이고 최초의 장관인 왕가리 마타이 책은 너무 두껍고 재미가 없어서 중간에 읽다가 포기했다.
이 책은 짧게짧게 여러 나라와 여러 나라의 여자지도자를 소개하는 형식이라서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다.
어떤 잡지에서 읽은 글을 인용하면,,,,,
여자는 미묘하고 복잡하다. 1등만 아는 경주마들과 섞이기에는 섬세하고 편을 가르는 하이에나들과 섞이기엔 따뜻하다.
그러면서도 세상 꼭대기까지 오를 오기라는 대단한 힘도 있다. 세상엔 여자라서 여자만이 해낼 수 있는 일이 참 많다.
그 힘이 바로 핑크 파워이다. 핑크 씨앗을 리더십이라는 땅에 심고 네크워킹을 거름 삼아 키우면 어떤 바람에도 끄떡없는 통찰력이 꽃핀다.
이 책은 1970년대, 1980년대,1990년대,2000년대의 다양한 나라의 총리와 대통령을 소개해 주고 있다.
시리마보 반다라나이케는 스리랑카의 총리였다. 스리랑카는 인도의 남동쪽 인도양에 위치한 섬나라로 한때 인도와 함께 영국의 지배를 받았다. 국민은 여러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다. 종교도 다양해서 민족의 불화가 심했다. 스리랑카는 홍차 재배의 최적지라서 포르투갈이나 영국같은 열국의 침략을 받았다.
하지만 나중에는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한다.
이런 역사들을 보면 우리나라와도 비슷한 것 같다.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를 한 번도 침략하지 않았는데
한반도라는 대륙과 바다를 이어주는 요충지라서 항상 여러 열국의 침략를 받았다.
뒤에 나오는 나라들도 많은 침략과 독립을 반복한다.
시리마보 반다라나이케는 부유한 지주 집안 출신이다. 그녀는 옥스퍼드에서 공부를 했고 24살에 자신보다 25살 많은 솔로몬 반다라나이케와 결혼했다.
그 옛날인데도 공부를 많이 하고 그녀의 남편은 1956년 스리랑카의 총리가 되었다. 이 나라는 중국이나 일본 미국처럼 익숙한 나라가 아니라서 이름도 정말 생소하다.
1959년 그녀의 남편은 타밀족 정책에 불만을 품은 불교 승려에 의해 암살되자 그녀의 남편을 따르던 진보적 정치가들이 그녀의 정치 진출을 권했다. 스리랑카는 왕조사회였고 계급사회였지만 스리랑카자유당으로서는 그녀만큼 솔로몬 반다라나이케를 대신할 다른 대안을 찾지 못했다.
그녀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남편의 정치과업을 이어받아 1960년 스리랑카자유당의 총재가 되었다.
뒷 부분에 나오는 여자들도 보면 남편때문에 정치에 입문하는 사람들이 많다.
스리랑카 자유당은 스리랑카의 국민통일당과는 달리 민족주의적 성향이 강하고 사회주의를 지지했으면 서방세계와는 일정거리를 두는 중립외교를 표방했다.
반다라나이케는 선거유세에서 피살당한 총리의 업적을 언급하면 눈물을 흘리면서 자신이 총재로 있는 스리랑카자유당을 지지해줄 것을 호소해서 울보부인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눈물로 유세한 덕분에 국민들의 열렬한 지지를 얻었고 남편의 명성 덕분에 1960년 스리랑카자유당은 의회의 과반수를 차지했다.
그녀는 44세의 나이에 스리랑카 최초의 여성 총리이자 세계 최초의 여성 총리가 되었다.
1960년대 신흥 독립국인 스리랑카도 민주주의나 평등을 구현하기에는 계급과 족벌로 인해서 역부족이었다.
총리가 된 시리마보 반다라나이케는 정치 실무를 자신의 가문의 사람들에게 맡겼다. 그녀의 족벌정치는 국민들의 신망을 잃었고
스리랑카자유당은 선거에서 참패했다. 그로 인해서 시리마보 반다라나이케도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정치상황을 분석해서 당을 이끌어가는 지도력을 발휘했다.
1970년 선거에서 사회주의 정당 연합체와 통일전선을 결성하여 총선 압승을 거두고 다시 총리가 되었다.
과거의 실패를 딛고 자신의 의견을 적극반영했다. 국명을 실론에서 스리랑카로 바꿨고 그녀의 가문의 사람들을 또 요직에 앉혔다.
주요 산업을 국유화하고 경기침체도 대응하지 못했다. 극좌파들은 정부정책에 반기를 들었다. 총선에서 또 참패를 했고 반다라나이케는 총리직에서 물러 났다.
이후 스리랑카공화국은 대통령중심제로 헌법을 개정하고 국명을 스리랑카 민주사회주의 공화국으로 개칭했다.
반다라이나는 정치적과오를 조사 당해 모든 정치적 권리를 박탈당하고 의회에서 쫓겨났다.
반다라나이케는 명예회복을 위해서 72세의 나이에 대통령 선거에 도전했지만 실패했다.
그녀의 둘째 딸 찬드라 쿠마룽가가 1994년 스리랑카 최초의 여성 대통령에 당선됨에 따라 그녀는 총리직에 임명되었다.
모녀가 한 나라의 대통령과 총리직을 맡는 드문 일이 일어 났다. 그녀는 딸을 도와 총리직을 무난히 수행하고 2000년 총리직에서 사퇴한지 2개월뒤 84세의 나이에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죽을 때까지 대외적으로 일을 했다니 대단하다.
그로 할렘 브룬틀란은 노르웨이의 총리였다. 노르웨이는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서쪽 부분과 얀마옌 섬, 스발바르 제도, 부베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국민 대부분은 게르만족인 노르웨이인,켈트족이다. 언어는 노르웨이어이고 루터교가 국교이지만 종교의 자유가 이루어진다.
미국이민으로 인해 미국의 이민자와 자국민의 인구가 비슷하다.
872년 헤럴드왕에 의해 노르웨이에 통일왕국이 세워지고 세력의 부흥을 맞이 했지만 덴마크나 스웨덴의 지배를 받기도 했다.
1905년 독립에 대한 움직임으로 노르웨이 왕가를 이루었지만 2차 세계대전중에는 독일의 지배를 받기도 했다.
외교면에서 노르웨이는 중립정책을 떠나 친 서방으로 전환하면서 북대서양조약기구 북유럽이사회 유럽공동체에 가입을 했다. 국토 인근에 석유와 천연가스가 많아서 경제가 엄청 발전했다.
노르웨이는 스웨덴과 덴마크와 더불어 세계 최고의 복지국가이다.
무료교육,의료혜택,실업수당,노후연금의 헤택을 주며 노동자는 세계에서 가장 적게 일하는 나라 중 하나이다.
정말 좋겠다. 세금을 70%를 낸다는 얘기도 들었는데 돈을 많이 버는 사람들은 손해를 본다는 생각을 할 것 같다.
노르웨이인들은 바이킹의 후손답게 진취적이고 개방적이라서 탐험가,극작가 헨리 입센, 호호 아줌마 작가, 뭉크, 팝그룹 아하들을 배출했다.
노르웨이는 사회민주주의 전통에 근거하여 남녀평등을 실현한 나라이다. 성 평등의 천국이다.
노르웨이의 여성 첫 총리 그로 하렘 브룬틀란은 남녀 성 평등을 위해 평생을 싸워 온 인물이다.
브룬틀란은 1939년 의사인 아버이의 4남매중 맏딸로 태어났다. UN 소속 재활의학 전문가로 세계를 돌아 다니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브룬틀란의 마음에 국제주의가 싹텄다.
그녀의 아버지는 노동부 장관을 지냈고 어머니도 노동당원으로 정치활동을 했다.
브룬틀란은 오슬로 대학에서 의학공부와 노동당서클에서 부회장직을 맡았다.
정치학과생인 아르네 올라브 브룬틀란과 대학교 3학년때 결혼을 했다.
미국으로 건너가서 하버드 대학에서 공중보건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아이들의 건강 문제와 의료서비스연구에 열정적으로 쏟은 것을
인정 받아서 환경부장관을 제의 받는다.
35살의 젊은 나이에 환경부장관이 되어서 성실히 장관직을 수행한다. 환경부장관을 사임하고 노동당 당수가 되어 41세에 노르웨이 첫 여성 총리이자 최연소 총리가 된다.
총선에서 노동당이 패함으로써 총리직에서 물러나고 야당이 된 노동당의 총수가 되면서 브룬틀란은 여성 지도자에 대한 편견을 불식시켰다. 1986년 선거에서 노동당이 승리함으로써 그녀는 다시 총리직으로 복귀했다.
그녀는 시대가 여성을 부른다는 말과 함께 장관직 중 6명을 여성장관으로 임명했다.
그녀는 국내정치뿐만 아니라 세계환경문제에도 관심을 가졌다. 국제사회에서 많은 공감을 불러 일으켰지만 노르웨이에서는 밖으로만 나돈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 이후 노동당은 소수당이 되었고 그녀는 총리직을 또 물러났다. 그러다가 선거에서 다시 노동당이 집권해서 세 번째로 촐리가 되었다.
그 무렵 아들이 자살해서 많이 흔들렸지만 상처를 딛고 일어났다. 이런 모습을 보면 정말 강한 것 같다.
동계올림픽도 무사히 치르고 경제도 안정시켰다. 국내정치에서 은퇴를 하고 세계보건기구사무총장으로 임명되었다.
그녀는 인간의 복지와 건강, 자연환경의 유지,평화를 추구하는 국제 지도자로서 반기문 사무총장에 의해 UN기후변화 특사로 임명되었다.
참 대단한 것 같다. 나자신도 돌보기 힘든데 그녀는 얼마나 능력이 있길래 인류를 위해서 일할까,,,,,,,,
비올레타 차모르는 니카라과 대통령이었다. 니카라과는 나는 처음 들어본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여러나라와 역사에 대해서 아주 조금은 알게 되어서 흥미로웠다. 니카라과는 중앙아메리카에 위치한 화산과 호수의 나라이다. 종교는 가톨릭교를 믿고 언어는 스페인어를 쓴다. 니카라과는 10세기경 스페인이 식민지화를 했다. 1821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고 멕시코가 주도하는 중미연합에 가입하면서 1838년 완전히 독립했다. 20세기초 국가방위군 장관인 A.소모사 가르시아가 쿠데타로 친미세력을 업고 40여 년간 족벌 체제를 유지했다.
소모사는 부패한 정치를 했다. 반소모사 게릴라 활동이 일어났고 1984년 혁명정부에의해서 처음으로 총선거를 실시했다.
산디니스타민족해방전선의 지도자 다니엘 오르테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오르테는 토지를 국유화하고 농업조합을 설립하고 면역예방프로그램을 도입하여 소아마비를 없애고 문맹률도 낮췄다.
오르테는 쿠바정권의 지원을 받아서 미국과 심각한 갈등을 겪었다. 1990년 선거에서 암살당한 페드로 호아킨 차모로의 미망인 비올레타 차모르가 대통령에 당선이 되면서 오르테가의 좌익정부는 보수파 차모르 정부에게 정권을 넘겨줬다. 호아킨 차모르는 해방을 위한 민주 연합의 지도자였다.
비올레타 차모로는 1929년 부유한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났다. 미국에서 공부를 했지만 라 프렌사 편집장 페드로 호아킨 차모로와 결혼했다. 차모로는 4명의 대통령을 배출한 집안이다. 차모로는 언론으로 반소모사 목소리를 내면서 투옥이 된다 .그 과정에서 부부는 신앙심이 깊어진다. 소모사독재정권에 대항하고 투쟁하다가 차안에서 총탄세례로 암살을 당한다.
암살을 계기로 시민 혁명을 일으키고 소모사정권은 붕괴된다.
페드로의 미망인 비올레타 차모로는 남편의 뒤를 이어 라 프렌사 발행인, 국가재건위원회 위원으로 혁명정부에 참여했다. 비올레타는 모성과 종교로 애국심을 상징하는 인물이 되었다.
대선에서 비올레타 차모로는 나카라과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되었고 우파정부가 들어섰다.
미국의 정치자금으로 출범한 정부라서 야당 세력과 힘든 싸움을 해야 했다. 그녀가 집권하면서 교육수준이 낮아지고 인플레이션이 심해지고 공중보건환경도 악화되었다. 국가상황이 퇴보되었다.
그녀의 집권시기는 경제정책의 실패로 나라를 빈곤에 빠뜨렸고 전쟁으로 치닫던 나라에 안정을 가져오기도 했고 독재와 사회주의를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로 바꿨다는 평가를 받는다.
나는 대통령이 칭찬을 듣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어떤 사람이 돼도 욕만 들을 것이다.
헬렌 클라크는 뉴질랜드의 총리였다. 뉴질랜드는 남서태평양의 있는 섬나라이다. 국토에 비해 인구가 적은 편이고 유럽 백인과 마오리족, 폴리네시아인, 인도인, 소수 이민자로 구성되어 있다. 호주보다 더 남반구 가까이에 있는 나라이다. 뉴질랜드는 농업과 목축에 의존한다.
영국령 식민지가 되었다가 마오리족과 공존관계 설정을 통해 해결하고자 했고 1947년 독립을 했다.
정부형태는 영국식의원내각제이며 지방자치제도를 실시하지만 강력한 중앙집권국가이다.
뉴질랜드도 복지국가라서 고등학교까지 무상교욱이고 병이 나면 무료로 요양할 수 있다. 노인 연금,실업수당이 지급된다.
이런 것은 진짜 좋겠다. 헬렌 클라크는 1950년 농민인 아버지와 교사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하고 노동당에 입당해서 당청년위원회 의장을 지냈다.
베트남전 반대운동과 반인종분리활동을 하면서 정치에 눈을 떴다.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정치학 석박사를 받고 모교인 오클랜드대학에서 강사와 교수로 활동을 했다. 같은 대학교수인 피터 데이비스와 결혼을 했고 노동당 내각의 보건부장관, 환경보존부장을 지냈다.
총선에서 노동당이 국민당을 누르면서 뉴질랜드 37대 총리가 되었다.
헬렌 클라크는 경제 개혁과 관광 및 문화산업의 육성에 힘썼다. 두 차례 더 뉴질랜드 총리로 당선이 되었다.
일을 잘해야지 또 당선이 되는 것 같다.
날카로운 언변과 대범한 업무스타일, 일때문에 아이도 갖지 않아서 냉정하다는 인상을 준다. 그래도 자식을 낳아야 할 것 같은데,,,,,
이런 면 때문에 냉정한 목적지향주의자라고 불렸다.
강한 카리스마와 거친 기질로 독재자라고 불렸는데 아동학대를 막기 위해서 안티 스매킹법안을 발안할 때도 자신의 생각을 강하게 밀어 붙였다. 부모들이 자녀교육을 위해 가볍게 엉덩이를 떼리는 정도의 처벌도 금지되어 있다.
민주주의와 인권신장, 국제 평화 체제의 구축 등 많은 업적이 있지만 부동산 시장의 경색, 금융사들의 도산,높아진 실업률과 국내총생산도 감소로 헬렌 클라크의노동당 패배하면서 9년간 몸담은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퇴임 후 2009년 반기문 사무총장에 의해 유엔개발계획의 새 총재로 임명되었다.
모든 여성지도자들을 전부 다 소개하고 싶었지만 나의 능력이 닿지 않는 것 같다. 나에게 인상적이었던 몇몇 여성 지도자들만 소개를 했다.
여기에 나오는 여성들은 핑크파워를 지닌 여성들이다. 핑크파워는 쿨함이다. 마음을 써야 할 일과 흘려 보내도 될 일을 구분할 줄 안느 판단력이다. 나만 할 수 있는 것, 하기로 결정한 것을 중심으로 삼고 미친듯 파고 들면서 사사로움에 신경 쓰지 않는 통 큼이다.
아름다운 핑크파워는 야망이다. 막연한 꿈이 아닌 현실적 희망을 바라보는 야망, 좁은 시야가 아닌 저 멀리를 내다보는 통찰력의 근원이야말로 야망이다. 야망에서 스스로 신나 춤추는 나를 발견했을 때 핑크 파워는 더 크게 폭발한다.
폭발할 때 세계의 여자 대통령들에 나오는 여자들처럼 되는 것 같다.
유연성과 친화력을 지닌 여성의 힘,,,,,,여성 지도자들은 패션도 남다른 것 같다. 올브라이트는 그 날의 상태에 따라서 브롯치를 달았다고 한다. 콘돌리자 라이스나 힐러리도 패션감각이 뛰어 난 것 같다.(이 여성들은 책에는 나오지 않는다)상황에 맞는 스타일을 갖춘 것 같다.
핑크 파워는 언제 어디서나 아름답게 당당히 등을 펼 수 있는 자신감이다.
핑크 파워에 대한 많은 본보기를 볼 수 있는 책이었고 핑크파워에 대한 궁금증이 완전히 해소되지는 않았지만 재미있게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