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기대처럼, 초강력 본드를 물처럼 느껴질 만큼 강하게 들러붙는다. 영적 기대에 짓눌리면 우리가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부족하다고 느끼거나, 진짜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불안해질 수도 있다. 이 모든 것이 심리적 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 자신에게 물어본다. 앞으로 영적∙종교적 삶이 어떤 모습이길 바라는가?
그 목표를 이루려면 무엇이 바뀌어야 하며, 이를 위해 어떤 도움이 필요한가? 예를 들어 삶에 영성이 더 필요하다고 느끼는가, 아니면 줄이고 싶은가? 생각하는 바를 적되, 서둘러 끝내려 하지 말아야 한다. 이 작업 역시 깊은 성찰이 필요하며 나중에 다시 해야 할 수도 있다. 다시 말하자면 심리 상담사나 가까운 친구와 이야기해보는 것도 좋다. 현실에서는 이런 일이 워낙 자주 일어나다 보니 일일이 맞서다가는 그 자체가 본업이 될지도 모른다.
주체가 여성일때는 어쩌다 화라도 내면 여성이라는 이유로 ‘성격이 더럽다.’ ‘지나치게 감정적이다.’ ‘예민하다.’ ‘태도에 문제가 있다.’ ‘팀워크가 없다’ 라와 같은 딱지가 붙는다. 다시 말해 ‘남자들은 원래 그러니까 너는 그냥 착하게 조용히 참아라’라는 뜻이다. 이런 기대가 늘 입을 다문다는 뜻은 아니다. 전혀, 그냥 드러누워서 죽은 척하겠다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아무리 좋게 봐줘도 무지했고 나쁘게 말하면 한참 선을 넘었다는 사실을 전혀 알리지 않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싸움은 골라 할 필요가 있다. 항상 편견과 차별을 겪는 집단이라면 어디서나 이런 문제를 겪는다. 우리가 마주치는 모든 편협함과 싸우기에는 시간과 에너지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2021년 한 연구에서 남성과 여성의 감정 변동에 뚜렷한 차이가 없었다.
이 연구 수석저자이자 심리학 조교수인 에이드리엔 벨츠는 이렇게 말했다. “경기 중 감정이 요동치는 남성은 ‘열정적’이라고 한다. 하지만 무슨 이유인지, 설령 강하게 자극받았더라도 여성의 감정이 변하면 ‘비이성적’이라고 간주한다.” 우리 둘 다 자기주장이 강하지만, 여성이다 보니 여성은 감정적이라는 허구를 믿는다. 남성이었다면 이런 걱정을 덜 했을지 몰라도 때로는 그릇된 인식과 씨름하지 않고 그냥 일만 하고 싶을 때가 있다.
여성은 매우 직설적이지만 부드럽게 전하려고 더 자주 미소 짓고 흥분하기보다는 계속 침착하려 애쓴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특히 이런 문제는 흑인 여성들에게 더 심각하다. 자기 의견을 말하면 자동으로 공격적이라고 인식되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은 단연 불공평하지만, 누군가의 편견에 말려들지 않고, 버티려면 이런 현실을 인지해야 한다.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기대를 하고 눈치를 보는데 그걸 하지 말라는게 이 책의 요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