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쓰냐고 묻는 그리스도인에게 - 신앙을 일깨우는 글의 힘
조명신 지음 / 샘솟는기쁨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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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도 매일 성경을 읽고 글을 쓰기는 하는데 엄마가 진짜 매일 글을 쓰고 시를 쓰신다. 아빠도 시를 쓰신다. 이 책을 보고 가족들이 어떻게 글을 써야 할지 배워야 할 것 같다. 저자 조명신은 청년 시절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난 이후 목회자의 길을 걸었다. 저자는, 오늘도 교회가 희망하는 복음에 능력이 있다고 믿는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지만 사람은 태도를 본다는 사실에 주목하며, 좋은 믿음과 좋은 태도가 함께 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저자는 장로회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서울 동신교회를 거쳐 현재 포항제일교회 공동체 목사로 있으며, 낮에는 사역에 헌신하고, 이른 새벽과 늦은 밤에는 글을 쓰고 있다. 하루하루 애정하는 글쓰기를 통해 믿음과 삶을 연결하고, ‘기도하는 문장’을 통해 독자를 만나는 오늘을 꿈꾼다.

저자는 세 아들의 아버지이자, 일상의 의미를 찾아 기록하는 에세이스트로서 10년 넘게 매주 에세이를 읽으며 마음에 와 닿는 문장을 모아 왔다. 그 문장들이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기록하며, 위에서 떨어지는 말이 아니라 옆에서 들려주는 말이 되길 희망한다. 저서는 《흔들려도, 다시, 오늘》 《태도, 믿음을 말한다》《성품이 좋은 사람》이 있으며, 《왜 쓰냐고 묻는 그리스도인에게》를 통해 글쓰기를 신앙의 실천으로 확장하고자 한다.

글쓰기는 결코 무거운 숙제도, 먼 미래에나 도달할 수 있는 아득한 목표점도 아니다. 특별한 재능을 타고난 소수에게만 열려 있는 좁은 문은 더더욱 아니다. 저자는 거창한 준비를 하느라 망설이는 대신, 지금 바로 펜을 들고 일상에서 글감을 찾아보라고 친절하게 권한다.

그 조언을 따라가다 보면 생각지도 못했던 귀한 보화가 이미 자신 안에, 그리고 자신이 지나온 평범한 경험들 가운데 숨겨져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 보화들은 그 자체로 부끄러워 꽁꽁 감추고 싶었던 일일수도 있고,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아픈 기억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한 흠집들조차 진지한 성찰과 마주할 때 아름다운 글감이 될 수 있음을 이 책은 생생하게 보여준다.



그렇게 발견한 아름다움은 종이 위에 적힌 글에만 머물지 않는다. 글을 쓰는 과정은 본인 자신에게 빛을 주어 자신의 고유함과 소중함을 깨닫게 해주며, 치유와 성장을 가져다준다. 무엇보다 글쓰기는 자꾸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혼자 걷는 길은 두렵고 외롭다. 정말 이 길이 맞을까? 이런 의심과도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주위에 같은 길을 가는 사람들이 많으면 그나마 덜 외롭다.

저자가 간혹 넌지시 글을 쓴다는 걸 알릴 때면 왜 그런 일에 시간을 낭비하느냐, 잠도 부족한 마당에 새벽부터 무슨 글쓰기냐는 말을 들었다. 한심하다는 눈빛은 글쓰기에 의심을 더했다. 그때마다 여기서 포기할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동안 믿음과 의심 사이에서 흔들렸다. 하마터면 정말로 그만둘 뻔했다. 그런데 용케 순간을 넘겼다.

하지만 그냥 다음 새벽에 또 책상앞에 묵묵히 앉았을 뿐이다. 저자는 그저 하루만 더 써보자는 마음으로 버텼다. 글을 쓰는 사람이 되기 전에, 먼저 새벽에 책상 앞에 앉는 사람이 되어 가고 있었다. 이제 글쓰기는 커피만큼 없으면 안 되는 것이 되었다. 문해력은 책을 읽고 파악하는 능력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어떤 이들은 먹고사는 것도 바빠 죽겠는데 책 읽을 시간이 어디 있냐고 말한다.

사람들은 책을 읽어도 바뀌는 건 없더라고 하소연하기도 한다. 신앙생활하느라 숨 돌릴 새도 없는데 어떻게 책까지 읽느냐는 사람들도 있다. 심지어 성경만 읽으면 되지 무슨 책까지 읽느냐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책을 읽는다고 지금 당장 눈에 뛸 만한 변화가 나타나는 건 아니다. 다만 책을 통해 얻고 깨달은 내용이 서서히 온몸에 스며들면 시간이 지날수록 크고 작은 변화가 나타난다.

처음에는 미미한 변화라 시시하게 여길 수 있다. 그렇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게 있다. 이전보다 문제를 바라보고 해석하는 능력이 업그레이드된다는 사실이다. ‘책을 통과하고 나온 몸은 이전의 몸이 아니다. 책속에 녹아 있는 다양한 사유를 관통한 몸이며 자신을 어제와 다른 곳으로 이끌고 갈 수 있는 몸이다.’

《책 쓰기는 애쓰기다》의 저자 유영만 교수의 말이다. 문해력은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과 다름없다. 진짜 문해력은 고득점이 아니라 문제 해결 능력으로 나타나야 한다. 문해력을 높이는 데 글쓰기만 한 게 없다. 글쓰기를 하려면 책을 가까이하게 되고, 소화한 내용만큼 글에도 그대로 반영되니 말이다.



문해력이 떨어지면 문맥과 상황 파악하는 데만 어려움을 겪는 게 아니다. IQ와 EQ까지 뒷걸음친다. 그러면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오히려 문제를 키우게 된다. 글쓰기는 떨어진 문해력을 들어 올리는 지렛대요, IQ와 EQ를 함께 끌어올리는 도르래와 같다. 이것이 책을 읽는 데만 그치지 않고 글쓰기를 하면 좋은 이유다.

글쓰기를 시작하기 전의 자신을 비교해 봐도 그 차이가 느껴진다. 저자는 한때는 글을 쓰는 작가는 따로 있다고 믿었다. 그런 부류의 사람은 자신과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고 여겼다. 그런데 어느 날 글을 쓰고 있었고, 어느 날에는 작가라고 불리게 되었다. 작가는 삶과 경험을 글로 나누는 사람이다. 더구나 목회자라면 한 단계 다른 영역이 있다.

글을 쓰는 사람을 넘어 말씀과 삶을 연결하는 성찰을 기록하고 깨달음을 나누어야 한다. 그러나 작가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되어 가는 사람이다. 저자 역시 그렇게 빚어진 사람이다. 저자도 누구의 글을 흉내 내려 하지 않았다. 글쓰기를 만만하게 시작한 덕분이었다. 만만하게 시작했지만 만만치 않은 날은 수없이 많았다.

저자는 그래도 멈추지 않았다. 매일 현관문을 나서서 걷다보면 어느새 근력이 생기듯, 글쓰기도 매일 조금씩 쓰다 보니 글력이 붙었다. 작은 조각 같은 글들이 모여 한 권의 책이 되어 있었다. 우리에게는 걷기처럼 그냥 쓰는 일만 남았다. 쓰다 멈춰도 크게 손해 보는 것도 없다. 인생을 망치는 부작용도 없다. 한 사람이 하나의 역사라고 했다. 우리 안에는 이미 엄청난 양의 이야기가 소장돼 있다.

우리는 걸어 다니는 도서관이다. 다만 꺼내서 펼쳐 읽지 않을 뿐이다. 책이 없어서 못 읽는 게 아니듯,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쓸 이야기가 없어서 못쓰는 게 아니다. 꺼내서 쓰지 않기 때문에 못 쓸 뿐이다. 직접 글을 쓰다 보니 달랐다. 나만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들이 수두룩했다. 개인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고 했다. 지극히 개인적인 글이 누군가를 웃게도 하고 울게도 한다는 걸, 저자도 글로 풀어내면서 확인하고 있다. 저자의 책을 읽으니까 하루에 글을 조금씩 써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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