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그런 생각에 얼굴에 열이 확 오르며, 부끄러워졌다. 참고로 대화란, 교감하는 행위이다. 서로의 말에 경청하고, 그에 맞는 호응을 하며, 하나하나 탑을 쌓아가는 것이다. 그렇게 공들여 탑을 쌓은 서로는 ‘신뢰’라는 매개체를 형성한다. 단순히 말을 많이 한다고, 기계적으로 호응을 한다고, 한순간에 생기는 무언가가 아니라는 뜻이다. 말투의 힘은 비단 돈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고객을 만날 때도, 마음에 드는 이성을 만날 때도, 불특정 다수에게 자신을 알릴 때도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그 비밀을 알게 된 현재, 저자는 감사하게도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말투 전문가’로 인정받고 있다. 저자가 사용하는 말투를 배우기 위해, 돈을 지불하면서 강의를 의뢰하고, 또 저자가 쓰는 말투 하나로 인해 상품의 매출이 눈에 띄게 달라지기도 한다. 저자는 그래서 더더욱 말투에 신경 쓰고, 또 갈고 닦고 노력한다.
상황에 맞는 말투 하나만 사용해도 저자 인생이 달라지는 걸 직접 경험한 덕분이다. 어디에서나 돋보이는 말투, 스스로 자존감 올리는 말투, 편안하고 유익한 말투로. 자신의 이미지를 깎아 먹는 말투가 아니길 파악하면서, 조금 더 나은 말투로 바꾸어 가면서 자신의 오늘이 어제보다 조금 더 나아진다면, 저자는 그걸로 바랄게 없다. 주변을 둘러보면 친절한 내용이더라도 직선적으로 내리꽂는 듯이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그들에게 제아무리 나쁜 뜻이 없다고 해도,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기분이 나쁠 수 있다. “가령 밥 먹었어?”라는 짧은 한마디도 마치 야구선수가 직구를 던지듯 말한다면, 상당히 무미건조하게 들릴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나한테 화났나?’ 혹은 ‘형식적으로 묻는 거구나,’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반면, 동일한 문장을 곡선을 그리듯 말해본다. 어렵게 들린다면 첫단어 ‘밥’과 마지막의 ‘어’를 부드럽게 발음해본다. 같은 말이지만, 말투 하나로 전혀 다르게 전달된다는 걸 알 수 있다.
칭찬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특히 한국인은 칭찬에 약하다. 반면에 칭찬을 많이 해보지 않아서 효율적으로 하는 것을 잘 모른다. 좋은 칭찬을 하면, 상대방의 기분을 설레게 하는 동시에, 호감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인은 칭찬을 잘 못한다. 이유는 방법을 배운 적이 없으며, 그에 따라 칭찬을 해본 경험이 적기 때문이다. ‘칭찬은 그냥 하면 되지 방법이 따로 있다고?’라고 생각할 수 있다. 칭찬은 이렇듯 그 결과를 이루어낸 주인공을 직접적으로 언급해야 효율적으로 할 수 있다. 이 역시 습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