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상수훈 언덕에서 말씀 듣기 - 삶의 자리를 바꾸는 예수의 말씀 13
권종렬 지음 / 샘솟는기쁨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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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 책은 하나님에 대해서 더 알게 되고 예수님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책이라고 해서 읽고 싶었다. 성경을 계속 통독을 하고 있는데 신앙 서적과 같이 있으면 더 시너지 효과가 있을 것 같다. 이 세상을 살때 하나님뜻대로 하나님이 원하시는대로 사는 게 최고인 것 같다. 저자는 권종렬이다. 저자는 다양한 만남을 통한 이끄심과 깊이 있는 독서를 통해 끓임없이 배우고 생각하고 갈망하는 구도이다.

저자는 지성과 영성과 품성이 균형 잡힌 신앙을 강조하며, 말씀과 성령의 조화, 가정과 직장과 교회의 상호작용, 지역과 세계를 향한 비전의 공유에 큰 관심을 두고 있으며, 현 세대와 미래 세대, 개인과 공동체를 아우르는 복음적 설교자일 뿐 아니라 한 영혼을 끝까지 사랑으로 돌보는 목자이다. 저자는 1993년 3월, 광명 한우리교회를 개척하여 30년이 지나도록 담임목사로 섬기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현장감과 현실감 있게 가르치고 선포하는 일에 전력하고 있다.

저자는 광명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총신대학교 신학과와 신학대학원에서 신학 수업을 했다. 저서로는 시편 23편을 중심으로 선한목자를 따르는 인생길을 나눈 『함께하심』과 은혜의 손길 아래 마음과 영혼을 돌보는 마음 치유서 『고장난 마음 정비소』 성경 이해를 돕는 베들레헴에서 욥바까지 인문 기행『이스라엘 땅에서 말씀 찾기』 가 있다.

건축가 유현준 교수는 도시를 인문적 시선으로 바라본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소돔’을 얘기한다. 소돔은 당시 황금처럼 취급되던 소금을 팔던 곳이다. 상업에 근거를 둔 경제 구조이나 땅이 필요 없고, 당연히 고밀화된 도시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인구 밀도가 낮은 시골에서 태어나 거기서만 계속 산다면 새로운 이성을 만날 기회도 적다.

성적인 자극이 덜하기 때문에 도시보다 성범죄율이 낮다. 하지만 상업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밀도가 높게 형성되었던 소돔은 성범죄율이 높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현대는 당시의 소돔보다 더 고밀화뒤 도시에 살고 있다. 지금의 서울이 성적 욕망이라는 면에서는 소돔보다 더 자극적인 도시일 것이다.



노아 홍수 이후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지면에 흩어져 살라고 명령하셨는데( 창 9:1), 농사를 짓던 시절에는 먹고살기 위해서 흩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농업이 아닌 상업으로 돈을 벌던 사람들은 밀도가 높은 도시를 형성하며 살게 되었다.

롯의 눈에 비친 소돔이 속한 요단 지역은 물이 넉넉해서 여호와 동산 같고 애굽 땅 같았다. 롯은 요단 온 지역을 택해 동쪽으로 떠났고,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에 머물렀다.

요단 지역의 도시에 머무르던 롯은 장막을 옮겨 소돔에까지 이르렀다. 소돔 사람은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다. (창 13:10~13). 여호와 앞을 떠나 에덴의 동쪽으로 간 가인의 불안함이 쌓아 올린 도시가 ‘에녹’이다. (창 4:16~17) 여호와를 대적하는 니므롯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에 쌓은 혼돈의 도시가 ‘바벨’이다. (창10:8~10, 11:2) 그리고 롯이 넉넉함을 따라 동쪽으로 떠나 선택한 욕망의 도시가 ‘소돔’이다.

롯은 소돔의 감추어진 죄악을 보지 못한 채 눈에 보이는 넉넉함에 끌려 그곳에 거주했다. 욕망을 따라 선택한 도시 소돔은 하나님의 심판을 견디지 못하고 멸망하고 말았다. 소돔의 죄는 자신의 두 딸을 집단 성폭행의 대상으로 내던지는 롯의 범죄적 행위를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손님을 환대한다면서 정작 어린 두 딸에 대한 인격 유린과 살인 행위를 서슴지 않는 모습이 가히 충격적이다.

‘소돔의 죄는 동성애’라고 단선적으로 규정짓는 것은 성경에 대한 피상적 이해에 불과하다. 동성애는 물론 동성 성폭행을 넘어서 집단적인 성폭행이 용인되고 조장되는 음란의 욕망으로 가득한 도시가 소돔이다. 여기에 더해 상업 속에서도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도와주지 않았던 무정함과 교만함이 소돔의 큰 죄악이다. “간음하지 말라”는 십계명 7계명이다.

이 말씀은 고대 이스라엘 백성의 관점에서 살펴보면 현대 교회가 생각하는 ‘간음’ 과 미묘한 차이가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렇다면 구약성경의 관점에서 볼 때 누가 간음한 사람인가? 그것은 남의 아내와 성관계를 가진 사람이다. 구약 율법이 간음의 문제를 다룰 때면 상대방이 결혼이나 약혼한 상태인지를 중요하게 고려하는 것을 볼 수 있다.(레 20:10, 신 22:23~24) 이미 결혼한 남의 아내나 약혼한 여자와 신체적, 성적 관계를 갖지 말라는 의미로 해석되었던 것이다.

결혼에 대한 그 사람의 소유권을 침해하여 남의 결혼 관계를 깨뜨리는 일이므로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을 모든 음란한 행위를 넘어 음란한 마음의 문제로까지 확장했다. 간음을 소유권 침해의 문제가 아닌 다층적인 성적 관계의 문제로 본다. 예수님께서는 “간음하지 말라”라는 십계명의 7계명을 “네 이웃의 아내를 탐내지 말지니라”라는 10계명과 하나로 묶어서 이해하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것 자체가 이미 간음한 것이라고 말씀 하신다. 실제로 훔치지는 않고, 단지 훔치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는 범죄 요건이 충족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음욕을 품고 보는 것 자체가 간음한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여자의 외모나 차림새를 문제 삼지 않으시고 여자를 바라보는 남자의 음란한 마음 곧 탐욕적 욕망을 문제 삼으셨다.

예수님의 말씀은 성관계에 이르지 않았어도 음란한 눈으로 보는 것이 간음이고, 불건전한 신체 접촉을 갖는 것만으로도 간음이라는 의미이다. 왜냐하면 간음에 넘어지지 않고 순결하기 위해서는 마음에서 일어나는 탐욕적 욕망부터 다스려야 한다. 간음의 문제를 다룰 때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가 다윗이 저지른 권력형 성범죄사건이다. 부하 장군 아내를 탐한 것이다.

결국 모든 간음의 뿌리는 음란한 마음이다. 마음에 품은 탐욕적 욕망이 간음의 근원이다. 간음, 음행, 음란은 사회적, 문화적, 환경적 문제이기 이전에 마음의 문제이다.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마음의 문제이다. 결혼한 아내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유혹하는 손길을 거절하지 못하고 넘어가는 행위가 아주 큰 범죄 간음이다. 탐욕적 욕망으로부터 마음을 지켜야 한다.

마음을 지키지 못하면 결국 간음을 이길 수 없다. 중요한 것은 마음이다. 음욕을 품고 바라보게 하는 음란한 마음부터 다스려야 한다. 마음에 품은 음욕으로부터 비롯된 간음의 결과는 지옥에 던져지는 것이다. 그래서 간음으로 넘어지게 하는 눈을 빼어버리거나 손을 찍어 버리라고까지 말씀하셨다. 특히 현대 사회는 그 어느 시대보다 시각적인 문화가 발달된 사회다.

노골적으로 성적표현을 담은 영상물들이 여과 없이 우리 눈앞에 펼쳐진다. 음란한 영상물을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본 대로 해도 된다는 음란한 마음을 품게 한다. 그래서 음란물에 많이 노출되면 될수록 음란한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된다. 음란한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되면 될수록 음란한 행위에 빠질 가능성은 더 커진다. 그래서 예수님은 눈을 빼어버리고 손을 찍어 내버리라고까지 하신 것이다. 이 책을 보니까 더 조심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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