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왕비열전이 30권이 있어서 읽었는데 초딩때 읽어서 전혀 이해가 안 갔다. 거기서 가장 슬펐던 왕이 단종이었던 것 같다. 어른이 된 다음에 단종에 대해서 읽으면 어떨지 또 궁금해서 읽었다. 저자 강현규는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했으며 대학 졸업 후 30년간 줄곧 출판기획자의 길을 걸어왔다. 출판 현장에서 ‘고전 다시 읽기’ 라는 취지로 고전들을 원전의 가치를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흥미롭게 재구성해왔다.
저자가 엮은 책으로 『쇼펜하우어의 인생 수업』『괴테의 인생 수업』『몽테뉴의 수상록』『니체의 인생 수업』『에픽테토스의 인생을 바라노는 지혜』『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등이 있다.
최근에 역사 속 인물들을 현대적 관점에서 제조명하는 작업에 집중하고 있다. 신작 『단종과 함께한 사람들』에서는 감상적인 영웅 서사를 걷어내고, 다큐멘터리적 필치로 그들이 지키려 했던 의리의 실체를 생생하게 되살려 냈다.
저자는 문학적 인간의 품격을 복원하는 일에 매진중이다. 역사는 대개 승자의 기록이나 찬란하게 산화한 이름들의 서사로 남는다. 단종의 비극을 떠올릴 때 우리가 먼저 부르는 이름도 대개 ‘사육신’이다. 죽음으로 충절을 증명한 그들의 의리는 숭고하지만 첫 장을 그들로 열지 않기로 했다. 이 책이 붙잡고 싶은 것은 단판 승부의 절개가 아니라, 끝내 저버리지 않았던 ‘의리의 일상’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세조실록』의 건조한 기록 위에서 시작되었으나, 영월 일대에 전해오는 민초들의 전승과 시대를 건너온 이름 없는 이들의 기억을 바탕으로 재구성되었다. 역사는 승자의 문장으로 기록되지만, 의리는 민초들의 기억으로 전승된다.
실록이 침묵하는 자리에서 이 책은 말을 잇는다. 엄홍도가 강을 건넌 이유, 안신이 강가에서 유품을 품에 안고 기다린 밤, 금성대군이 가서 울타리 안에서도 놓지 않았던 것들, 이 장면들은 공식 기록에 없거나 단 한 줄로, 처리된 것들이다.
영화 〱왕과 사는 남자〉속 매화는 비극의 정점에서 스스로 목숨을 끓으며 관객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화면 속 그녀의 죽음은 단종의 고립을 완성하는 극적 장치일 뿐, 실존의 매화는 그 비장한 마침표를 거부한 인물이다. 영화적 상상력은 매화의 죽음을 의리의 끝으로 정의하나, 실제 민간 전승 속 매화에게 의리는 주군이 사라진 뒤 시작되는 지독한 일상 그 자체였다.
남양주와 영월, 그리고 동대문 밖 숭인동 일대에는 ‘매화’ 혹은 ‘시녀 권씨’라 불리는 여인의 이야기가 600년 넘게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정순왕후가 시장에 나갈 때마다 앞를 가로막는 무뢰배들을 호통쳐 물리쳤고, 모든 고된 일을 도맡았다. 매화의 헌신은 왕후를 의존적인 존재로 만든 것이 아니었다. 고립된 정업원 안에서 왕비가 인간의 품위를 지킬 수 있도록 외부의 위협을 몸으로 막아낸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