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 김전일은 참 묘한 캐릭터다. 평소에는 덜렁거리고, 학교 성적은 바닥을 기고, 여자 친구 미유키에게 구박받기 일쑤다. 하지만 사건이 터지면 눈빛이 변한다. “할아버지의 명예를 걸고!”를 외치며 누구보다 예리하게 사건의 본질을 꿰뚫어는 다. 반면 그의 라이벌 아케치 경감은 어떤가, 도쿄대 법대를 수석 졸업하고, 영어와 펜싱 실력에 외모까지 완벽하다. 흔히 말하는 ‘엄친아’이자 엘리트의 표본이다.
대한민국 사회는 지독하게 ‘아케치 경감’같은 인재만을 원한다. 국영수사과 모든 과목에서 1등급을 받아야 하고, 좋은 대학을 나와야 하고, 흠잡을 데 없는 스펙을 갖춰야 기회를 준다. 전인 교육이라는 미명 아래, 모든 면에서 완벽한 육각형 인재가 되기를 강요한다. 사람들은 이 필터링에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친다. 명문대에 가고, 대기업에 입사해 치열한 경쟁을 뚫고 ‘부장’이라는 타이틀을 따낸다.
그들은 마침내 ‘아케치 경감’의 길을 걷는 듯 보인다. 하지만 그 끝은 과연 해피엔딩일까? 대한민국은 거대한 ‘설국열차’의 현실이다. 모두를 1등 칸에 가면 천국이 있을 것이라 믿으며 치열하게 경쟁한다. 더구나 세상은 변하고 있다. 바야흐로 AI 대전환의 시대다. 이제 매뉴얼이 있는 99%는 인공지능이 대체할 것이다.
정해진 레일 위를 달리는 열차 안의 규칙을 잘 따르는 모범생들은 오히려 설 자리를 잃게 될지도 모른다. 열차 안에서 남과 비교하며 전전긍긍하는 것보다, 내 안에 숨겨진 도유한 ‘달란트’를 발견하고 나만의 무기를 갈고닦아 야생에서 생존하는 것이 훨씬 더 가치 있고 행복한 삶일 수 있다. 하지만 저자는 묻고 싶다. 아케치가 되지 못하면 실패한 인생인가?
김전일이 학교 공부를 못한다고 해서, 그의 추리 능력까지 무시당해야 할까? 저자는 집안 형편이 어려워 일반계 대신 전자공고를 갔고, 대학은 서울에 있는 일류대가 아닌 추계예술대학교 영상시나리오과에 진학했다. 누군가의 저자의 이력을 보며 “그게 무슨 성공 코스냐”라고 비웃을지도 모른다. 서울의 주류 사회에서 보기에 여전히 변방 이방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없이 실패하고, 목표에 닿지 못해 상처받는다. 그러다 보니 40대가 되었다.
우리 각자에게는 분명 남들과 다른 나만의 무기가 있다. 그것을 발견하고 극대화하면서, 남과 비교하지 않고 자존감 있게 버텨 낸다면 기회는 반드시 온다고 믿는다. 모두가 아케치가 될 필요는 없다. 자신에게 숨겨진 김전일을 깨우면 된다. 그것만으로 우리는 충분히 잘 살 수 있다. 동화 ⟪꽃들에게 희망을⟫에는 인상적인 장면이 나온다.
수많은 애벌레가 서로를 짓밟으며 거대한 기둥을 기어오른다. 그 꼭대기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른채, 남들이 가니까 불안해서 따라가는 것이다. 하지만 막상 꼭대기에 도착해 보니 그곳엔 아무것도 없었다. 진정한 자유를 얻은 건, 기둥 오르기를 포기하고 고치(번데기)가 되어 인고의 시간을 견딘 후 ‘나비’가 된 애벌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