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히는 용기, 살아남는 문장
최동열 지음 / 생각나눔(기획실크)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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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기술이라고 하는데 나같은 모솔은 사랑이 너무 궁금해서 이 책을 읽고 배우고 싶다. 저자 최동열은 대전에서 태어나 현재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며 교육현장에서 배움과 가르침의 가치를 탐구하고 있다. 『월간 신문예』에서 시로 등단하고, 『수필과 비평』에서 수필로 등단했다. 수상: 제 10회 하이데거 문학상 본상, 2024년 올해의 작가상 (대전문인협회)

저서로는 에세이집 : 『잊히는 용기, 살아남는 문장』

시집 :『바람이 속삭이는 말』 『통찰의 느낌표』 『미술관에 불을 끄지 말아요』등, 교육 도서 (공저) 『인권교육탐구』『사회과교육연구와 수업 탐구』등이 있다. 저자의 ‘잊히는 용기’는 ‘살아남는 문장’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리고 그 문장은 수많은 사람의 하루를 천천히 붙잡아 주고, 굳건하게 삶의 의미를 지탱하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모든 순간은 그 자체를 고유하고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책은 우리의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정면으로 나아가려는 용기, 그리고 그 안에서 한 줄기 희망을 찾아 성장해 가는 인간의 보편적인 여정을 진솔하게 그려내고 있다.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타인의 기대라는 시선 속에서 흔들리며 살아왔다. 수많은 순간이 어쩌면 침묵의 훈련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유년 시절, 학교에서 ‘조용하고 착한 아이’로 불리던 저자가 그랬다. 선생님의 눈빛과 친구들 앞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말하기 힘들었다. 남들에게 어떻게 보일지를 고민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중요해졌다. 타인의 시선을 피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당연한 삶의 방식처럼 여겨졌다. 자신의 목소리가 있어도 드러내지 못하고, 세상의 시선이 드리운 커튼 뒤로 숨어버리기 일쑤였다.

위대한 작가 버지니아 울프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타인의 시선이라는 거울 속에서는 온전한 자신을 발견할 수 없었다고 고백한다. 자신을 옥죄는 사회적 편견과 남성 중심적인 시선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녀는 더욱 깊이 자신을 탐구한다. 그리고 그 탐구의 결과로 ‘고백의 글쓰기’를 시작했다. 세상이 요구하는 틀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정의받는 생은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고통이었다.



그래서 울프는 오직 자신만의 글쓰기 공간에서 내면의 진실을 써 내려갔다. 그 순간이야말로 외부의 시선에 굴복하지 않고 오롯이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다. 그녀의 글들은 타인의 프레임을 부수고 자신만의 독창적인 자아를 구축하려는 용기 있는 시도였다. 물론, 타인의 시선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지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세상은 생각보다 남에게 큰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타인이 자신을 평가하고 있다고 느껴지는 순간 삶은 피곤할 뿐이다. 가족이라는 이름의 상처와 회복은 가까운 자리에 있을수록 우리는 더 멀어진다. 사랑하는 이름 앞에서 우리는 왜 상처를 받는가, 그러나, 다시 손을 내밀어야 하는 것도 결국은 그 이름, 가족이라는 것, 때문이다.

세상에서 태어나 처음 만났고, 살아오면서 지금도 가까이에 있는 가족의 의미에 대해서 말하고자 한다. 가족이라는 이름은 마땅히 친근하게 존재해야 하지만, 때로는 작은 오해가 되어 서로에게서 멀어지는 경우도 있다. 어느 겨울 아침, 창밖에 눈이 수북이 쌓인 날이었다. 병원 앞에 한 남성이 노모를 업은 채 서 있었다. 어머니가 심장 박동이 미약해서 급히 달려왔지만, 병원 문턱에서 그는 한없이 망설였다.

진료비를 감당할 길이 막막했기 때문이다. 그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조용히 도움을 청했고, 차가운 거리 위에서 몇 번이고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을 본 사람의 눈에 그 장면이 각인되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그를 두고 ‘안타깝다’라고 말했지만, 더 중요한 사실은 따로 있었다. 그는 어린 시절 집을 떠나 삼십 년 가까이 가족과 연락을 끓고 지낸 외아들이었다.

아버지의 폭력, 어머니에 대한 오해와 원망, 그 모든 긴 단절의 세월이 있었다. 그런데도 그날 그는 어머니를 업고 병원 앞에 섰다. 그에게 남은 마지막 이유는 단 하나, 바로 가족이라는 이름이었다. 이처럼 가족이라는 관계는 때로 긴 시간 침묵보다 더 무거운 용서를 요구한다. 그리고 그 용서는 오랜 기다림 끝에 상처가 채 사라지지 않은 채로 시작된다. 가족은 서로를 너무나 잘 안다고 착각한다.



지금 이 시대 가정은 예전과 같지 않다.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은 점점 무뎌지고, 대화는 메마른 인사말로 줄어든다. 최근의 일부 가족은 서로 필요적으로 함께 밥을 먹지 않는다. 그리고 가족의 온기가 사라졌다. 지금 이 책을 있는 독자인 나의 가정은 그렇지 않다. 가족이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엄마와 딸이 아주 좋은 친구다. 아빠 역시 딸과도 아주 좋은 친구다. 그리고 아빠와 딸, 엄마 셋이서 옷도 커플로 입을 때도 많다. 그래서인지 다른 사람들은 우리 가족을 질투하는 사람도 있다”.

소크라테스는 인간이 사회로 나아가기 전에, 가정에서 더 많은 것들을 배워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가족 간의 화합은 인생에 매우 중요한 가치라고 보았다. 이는 가정이 단순한 감정적 결합을 넘어 개인의 일생과 사회를 지탱하는 실용적이고도 필수적인 토대임을 암시한다. 그래서 결혼은 필수로 해야 한다고 본다. 기적은 기다림의 반대말이다. 기적은 버티는 자에게 주어진다.

말없이 자신의 몫을 감당한 사람에게 하늘은 어느 날 문을 연다. 우리는 누구도 대신 살아줄 수 없는 자신만의 길을 걷는다. 어린 시절에는 부모의 든든한 품이 있었고, 청년시절에는 친구의 열정적인 동행이 있었으며, 성인이 된 후에는 배우자나 동료의 따뜻한 지지가 곁에 존재한다. 그러나 내 삶에 무게 그 자체를 온전히 감당해줄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슬픔과 기쁨도 결국은 나 혼자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저자는 교사이자 시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매일 같은 시간에 눈을 뜨고 같은 길로 출근하며 같은 교실에서 수업한다. 겉으로 보기에 삶은 평범하게 흘러가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때로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은 날이 불현듯 찾아온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우리가 다시 일어서는 이유는 단순하다. 아직 삶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루를 잘 버텨내면 그것이 쌓여 든든한 내일이 된다.

그리고 내일들이 모여 결국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먼 길을 걸어온다. 기적은 화려하게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쓰러지지 않고 다시 이어서는 평범한 날들의 연속 속에서 조용히 피어난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미래를 견디게 하는 힘이며, 그것은 우리를 기어코 앞으로 데려갈 수 있을 것이다. 사랑이나 인생은 잘 버티는 사람에게 기적이 찾아오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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