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울프는 오직 자신만의 글쓰기 공간에서 내면의 진실을 써 내려갔다. 그 순간이야말로 외부의 시선에 굴복하지 않고 오롯이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다. 그녀의 글들은 타인의 프레임을 부수고 자신만의 독창적인 자아를 구축하려는 용기 있는 시도였다. 물론, 타인의 시선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지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세상은 생각보다 남에게 큰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타인이 자신을 평가하고 있다고 느껴지는 순간 삶은 피곤할 뿐이다. 가족이라는 이름의 상처와 회복은 가까운 자리에 있을수록 우리는 더 멀어진다. 사랑하는 이름 앞에서 우리는 왜 상처를 받는가, 그러나, 다시 손을 내밀어야 하는 것도 결국은 그 이름, 가족이라는 것, 때문이다.
세상에서 태어나 처음 만났고, 살아오면서 지금도 가까이에 있는 가족의 의미에 대해서 말하고자 한다. 가족이라는 이름은 마땅히 친근하게 존재해야 하지만, 때로는 작은 오해가 되어 서로에게서 멀어지는 경우도 있다. 어느 겨울 아침, 창밖에 눈이 수북이 쌓인 날이었다. 병원 앞에 한 남성이 노모를 업은 채 서 있었다. 어머니가 심장 박동이 미약해서 급히 달려왔지만, 병원 문턱에서 그는 한없이 망설였다.
진료비를 감당할 길이 막막했기 때문이다. 그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조용히 도움을 청했고, 차가운 거리 위에서 몇 번이고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을 본 사람의 눈에 그 장면이 각인되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그를 두고 ‘안타깝다’라고 말했지만, 더 중요한 사실은 따로 있었다. 그는 어린 시절 집을 떠나 삼십 년 가까이 가족과 연락을 끓고 지낸 외아들이었다.
아버지의 폭력, 어머니에 대한 오해와 원망, 그 모든 긴 단절의 세월이 있었다. 그런데도 그날 그는 어머니를 업고 병원 앞에 섰다. 그에게 남은 마지막 이유는 단 하나, 바로 가족이라는 이름이었다. 이처럼 가족이라는 관계는 때로 긴 시간 침묵보다 더 무거운 용서를 요구한다. 그리고 그 용서는 오랜 기다림 끝에 상처가 채 사라지지 않은 채로 시작된다. 가족은 서로를 너무나 잘 안다고 착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