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아이를 미국 명문대로 이끈 떡볶이 식탁
김지나 지음 / 드림셀러 / 202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가 아는 동네 이모는 자식과 며느리 사위가 전부 서울대라서 한가족 전부가 6명이 서울대이다. 저번 주에 큰이모가 돌아가셔서 엄마 가족이 전부 모였는데 모인 사람들을 보니까 서울대가 5명, 의사가 4명, 박사가 3명, 변호사, 판사, 장관이 1명이었다. 근데 형부, 사촌 오빠, 삼촌들인데 문제는 성품이 안 좋다. 성품이 안 좋고 말도 못되게 하니까 그런 타이틀이 전부 소용 없어 보인다. 이기적이고 기회주의자들 같고 그렇다. 성품도 좋으면서 타이틀이 좋은 방법이 없는지 이 책에서 알고 싶어서 읽었다.

저자 김지나는 미국 동부에서 활동하는 한국일보 칼럼니스트이자 브런치 작가, 2020년 미주 한국일보 수필부문 1등에 당선되며 문단에 등단했다. 이민자 부모로서 세 아이를 미국에서 키우는 동안 우울증, ADHD, 왕따 등 수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큰아이는 존스 홉킨스 의과대학을 거쳐 성형외과 의사로, 둘째는 버지니아대학원 로스쿨에 다니고 있고, 막내는 브라운대학교 재학생으로 성장했다.

《세 아이를 미국 명문대로 이끈 떡볶이 식탁》은 강요된 학습이나 조기 경쟁이 아닌, 가정 안에서 반복적으로 작동한 교육의 구조와 환경을 통해 아이들이 스스로 잠재력을 발견하고 자기 주도적으로 삶의 방향을 찾아갈 수 있었던 과정을 담은 책이다. 저자는 매주 일요일 가족이 함께 모여 떡볶이를 먹던 시간을 단순한 식사가 아닌, 낯선 땅에서 겪은 불안과 상처, 감정을 공유하며 다시 중심을 잡는 가정의 의식이자 교육의 장치로 설명한다.

그 식탁은 가족을 하나로 묶고 아이들이 어긋나지 않도록 붙잡아준 가장 중요한 기반이다. 떡볶이 한 그릇에 담긴 저자의 경험과 통찰은 아이 문제로 방향을 잃은 부모들에게 현실적이면서 적용 가능한 자녀교육의 이정표를 제시한다. 저자의 저서로는 《킴스 패밀리 인 아메리카》가 있다. 저자의 상상 속 미국은 꼬부랑말을 하는 외계인들의 세계로 치부되었다. 당시 외국 사람이라곤 거의 접해 보지 못한 게 저자의 현실이었다. 그런 판국에 남편은 미국이 아니라도 좋다며 남아프리카나 뉴질랜드 같은, 미국보다 더 익숙하지 않은 나라의 이민을 설득하기도 했다.



그러다 가게 된 미국 이민, 그 미지의 땅이 얼마나 뜨거울지, 얼마나 살얼음일지 상상조차 해보지 못했을 뿐더러 단 한번 여행조차 가본 적 없던 곳, 그것도 한인이 별로 살지 않는 미국 동부 끝자락에 터를 잡았다. 하지만 지금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 어디를 선택할 것인가 묻는다면, 백악관 근처 아주 작은 주인 이곳 메릴랜드를 택할 것이라고 확실히 말할 수 있다.

그럼에도 당시 이곳에 정착하기로 한 것은 거의 미친 짓이었음을 지금도 실감한다. 직항으로서는 가장 먼 14시간 (20년이 넘은 그때나 지금이나 비행시간이 똑같이 14시간이다) 이렇게 과학이 발전해도 그대로라니 신기할 따름이다. 이 걸리는 거리는 어린 아이들과 함께 버텨내고 공항에 도착했지만, 아뿔싸 저자는 두 아이 중 두 살배기 딸을 놓치고 말았다.

세상물정에 어리숙한 저자는 그저 짐 찾는 데만 열중한 나머지 아이가 어디론가 없어진 것도 몰랐다. 모든 것이 새롭기만 한 나라에서 너무나 가슴 철렁한 사건에 맞닥뜨린 것이다. 영어 한마디 못하는 조금만 동양 가족이 아이를 잃어버렸으니 얼마나 대경실색할 노릇인가? 그렇게 한참을 목이 터져라, 아이의 이름을 불러대고 있는데 멀리서 딸아이가 겁에 질린 모습으로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얼마나 다행이던지, 동생을 보자마자 일곱 살 난 아이의 언니가 먼저 울먹였다. 아이를 잃어버리고 되찾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민 왔을 때 그런 에피소드도 있었다. 존스홉킨스 프리메디를 영예롭게 졸업하고 큰 아이는 1년간의 갭이어(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대학에 진학하지 않았고 다양한 경험을 통해 진로를 탐색하거나 자신이 나아갈 방향을 찾는 기간)를 가졌다.

의대에 바로 진학하는 방법도 있지만 아이는 1년 동안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해보겠다고 선언했다. 어릴 때부터 선생님이 되는 게 꿈이었던 아이는 그중에서도 뉴욕 빈민가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어 했다. 저자는 아이의 의견을 존중해주었다.



대학에서 선생님이 되는 데 필수 과목을 이수하지 않으면 공립학교 선생님은 할 수 없다. 하지만 사립은 학교 재량껏 필요한 선생님을 구할 수 있다. 한국과는 다른 시스템이라 처음엔 저자도 의아해 했다. 사범대를 졸업하지 않고 공립학교 선생님이 된다는 게 한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미국은 학부 때 교직 과목 한 과목 정도만 이수하면 공립학교 선생님이 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한국에서는 일곱 살 아이가 혼자서 버스를 타고 학교에 다녀도 위험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 그런 때였다. 학교가 끝나고 길거리표 떡볶이를 친구들과 먹고 왔다고 말하면 ‘참 잘했어요’ 했으니 말이다. 미국에서 일곱 살짜리 아이가 혼자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갔다고 하면 아마 아동학대로 감옥에 가고도 남을 일이다. 문화의 다름이 이런 데서 삐져나온다.

한가한 일요일 오전이 지나면서 그날도 떡볶이를 먹으러 내려오라며 아이들을 불렀다. 여전히 잠들어 있는 둘째와 막내는 내려오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느림보들이지만 큰아이는 부르기도 전에 항상 준비하고 있던 아이처럼 웃으며 쪼르르 내려왔었다. 둘째와 막내는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연속으로 불러대니 아이가 힘없이 내려와 식탁 앞에 앉는 것이었다.

큰 아이가 10학년 그러니까 한국으로 치면 고등학교 1학년 때다. 평소엔 울음이 많은 아이가 아니었고 뭐든 혼자서 잘 해결하는 든든한 장녀였다. 그런 아이가 울면서 엄마에게 호소하는 모습을 보며 내심 당황스러웠다. 아이는 친한 친구와 싸움을 한 차례 한 이후 극심한 문자 폭탄에 시달리며 상처를 받고 있다고 했다.

그 아이는 학교 친구들에게 저자의 큰아이에 대해 나쁘게 말하며 욕을 한다고 했다. 심지어 학교 회장 선거 때도 저자의 딸을 찍으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말을 서슴지 않고 했다고 한다. 아이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기도 하고, 그런 말들은 사춘기 아이들이 겪는 이상 행동으로 치부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큰 아이의 그 일이 원만하게 해결된 중심에는 떡볶이의 힘이 있었다고 본다.

매주 함께 모여 떡볶이를 먹으면서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다 보면 식구 모두가 자신들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의견을 교환하면서 서로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었다. 그 전통은 큰아이의 일을 시작으로 둘째, 막내까지 자신의 이야기들이 수면 위로 올려져도 이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모든 게 잘 해결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는 계기가 되었다.

매주 반복된 ‘떡볶이 식탁’은 가족에게 훈계의 자리가 아닌 아이들이 다시 중심을 잡는 교육의 구조였다. 아이마다 다른 속도와 재능을 인정하고, 통제보다 신뢰를 선택한 부모의 태도는 아이들이 각자의 길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떡볶이 한 그릇에 담긴 따뜻한 위로와 명쾌한 교육 인사이트 공부보다 먼저 아이의 방향을 붙잡은 이민 가정교육의 시작점이자 세 아이를 미국 명문대로 이끈 한 가정의 반복된 선택, ‘떡볶이 식탁’ 성취보다, 균형을 우선한 큰 아이, 세계적인 의과대학인 존스 홉킨스 출신의 성형외과 의사,

같은 환경, 다른 접근이 필요했던 둘째아이, 미국 상위 로스쿨인 버지니아대학원 로스쿨 재학생 겸 모델, 과잉보호를 경계하며 키운 막내, 아이비리그의 브라운 대학 및 세계적인 미술대학 리즈디 재학생, 세 자녀가 거둔 눈부신 성취 뒤에는 강요된 학습이 아닌, 아이 안에 숨겨진 잠재력에 눈을 뜨게 만든 교육법, 그 중심이 바로 떡볶이라는 키워드가 숨겨져 있다.

매주 일요일 매콤달콤한 떡볶이를 앞에 두고 둘러앉아 낯선 땅에서 느꼈던 비애와 폭발하는 감정들을 가감 없이 공유했던 시간, 가족이 화합하고 단합하며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는 거룩한 의식의 장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계속 떡볶이라는 단어를 보니까 떡볶이가 먹고 싶어졌다. 내일은 떡볶이를 배달시켜 먹어야 할 것 같다. 저자는 아이들과 떡볶이를 먹으면서 나눈 얘기로 정서를 잘 가꿔줘서 미국에서 초엘리트로 키운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