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를 철학하다 - 삶은 어떻게 글이 되고, 글은 어떻게 철학이 되는가
이남훈 지음 / 지음미디어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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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이남훈은 삶은 어떻게 글이 되고, 글은 어떻게 철학이 되는가를 고민하고 평생 글 아닌 것으로 살아본 적 없는 작가이다. 저자는 한국외국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한 후 삶과 맞닿은 철학적 통찰을 전하는 글들을 집필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게 본 영화 글쓰기를 철학했다. 유수의 경영 현장에서 수많은 CEO와 직장인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성장에서 성공으로, 소통에서 리더십으로 향하는 사유를 전하는 칼럼니스트로 활동했다.

저서로는 인문 분야의 베스트셀러이자 출간 직후 러시아, 베트남, 태국, 대만의 출판사에 저작권이 수출된 『좋은 사람 되려다 차라리 쉬운 사람 되지 마라』 가 있으며, 고전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으로 쓴 『사랑받기보다 차라리 두려운 존재가 되라』, 『처신』, 『사자소통, 네 글자로 끝내라』, 『공피고아』(공저) 등이 있다. 저자의 책제목부터가 철학적인 깊이가 있는 것 같다.

글을 쓰려고 마음먹은 사람은 일단 자신이 얼마나 용감한 존재인지를 알아야 한다. 그저 자연스럽게 글쓰기의 길에 들어선든, 혹은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글을 쓰든, 세상의 모든 글에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반드시 용기가 전제된다. 당신이 ‘난 글을 쓰고는 있지만 별로 용기를 내진 않는데?’라고 생각해도 상황이 딜라지지는 않는다.

그런데 이 말을 뒤집어 보면, 글쓰기가 그만큼 힘든 일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우리는 밥을 먹거나 영화 한 편을 보기 위해 내면의 용기를 끌어 올리진 않는다. 반면 용기가 필요한 일은 반드시 힘들고, 고통이 수반된다. 특히 글쓰기에 필요한 용기는 단순히 심리적인 담대함에 그치지 않는다. 철학적으로는 자신의 존재 양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스스로 결단하는 차원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용기 중에서도 ‘품격 있는 용기’라고 할 수 있다.

매번 일상이 반복되는 ‘타임 루프’ 형식의 영화가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게 본 영화가 톰 크루즈가 주연한 《엣지 오브 투모로우》였다. 영화에서 주인공은 외계인과의 전투에서 죽고 살아나길 끓임없이 반복하면서, 또 다시 매번 같은 전투에 참여한다. 다시 살아나서 영원히 사는 삶은 어떨지 잘 모르겠다.



프랑스 철학자 미셀 푸코가 다루는 철학적 주제들은 기존의 철학과는 완전히 다른 것들이었다. 그의 철학 전반기에서는 과거처럼 존재나 본질을 다루기보다는 정신병, 감옥, 지식, 비정상 등을 다루면서 파격적인 통찰을 제시했다. 그 결과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사상가 중 한 사람이자 포스트모더니즘의 선두 주자가 되었다.

그런데 그의 모든 철학의 배경에는 바로 ‘지금이 시대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에 대한 관심이 있다. 미셀푸코하면 파놉티콘이 떠오른다. 글을 쓰려는 자는 그 자체로 이미 세상을 탐구하고 성찰하는 연구자이며 시대의 목격자이기도 하다. 세상을 연구해 나간다는 것이 꼭 고통스럽기만 한 작업은 결코 아니다. 모르는 것을 알게 되는 즐거움, 남들은 가지지 못했을 통찰의 기쁨 속에서 끓임 없이 사고의 지평을 넓힐 수 있다.

지식인의 역할은 자신의 시대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해하는 것이다. 글에 대한 이미지는 매우 다양하다. 누군가에게는 매우 친절한 안내이자 조언이기도 하고, 물론 문학적 쾌감을 안겨 주는 즐거움의 대상이기도 하다. 하지만 글에는 이렇게 온화하고 부드러운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글의 가장 강력하고 거친 모습은 바로 ‘폭로’의 기능을 수행을 수행할 때 드러난다.

조선 시대의 상소문은 탐관오리의 부패를 폭로했고, 임금의 폐부를 찌르는 날카로운 비판을 하기도 했다. 1898년 작가의 작가 에밀 졸라는 대통령에게 보내는 공개서한⎾나는 고발한다⌋를 통해서 당시 드레퓌스 사건의 진실을 폭로하기도 했다. 이후에도 글은 기사라는 형식으로 전 세계 곳곳의 언론사에서 폭로의 기능을 수행해 왔다.

글이 끝난 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피드백이야말로 제대로 된 고통의 시작이다. 완성된 글이 전문가, 출판사, 독자의 좋지 않은 평가를 받게 되면 그것은 마치 자신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처럼 느껴진다. 그러다 보면 피드백을 싫어하게 되고, 심지어는 이를 거부하는 경우도 생긴다.

하지만 우리는 피드백이 나쁘면 화가 나고, 좋으면 신난다는 차원, 혹은 더 나아가 피드백 자체가 필요 없다는 관점에서 벗어나 다른 차원으로 가야만 한다. 피드백과 비평이야말로 작가라는 존재를 완성하는 조건이며, 그로 인해서 진정한 작가로 거듭난다고 봐야 한다. 글쓰기는 타인과의 교류 속에서 자신을 완성해 나가는 성장의 철학이기도 하다.



철학이 있는 글쓰기와 그냥 글쓰기는 완전히 다르다. 사람들은 다양한 이유로 글을 쓴다. 누군가는 창작에 대한 열망이 있어서, 누군가는 자신의 전문적 지식으로 타인을 돕고 싶어서, 또 누군가는 자신을 치유하기 위해 글을 쓰기도 한다. 또 생계를 위해서 전업으로 글을 쓰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이러한 글쓰기에서 자신만의 철학이 일관되게 유지되고 있느냐는 그 과정과 결과를 완전히 바꿔 놓는 역할을 한다. 이미 확고한 철학을 가진 사람은 글을 쓰는 중간중간 길을 잃지 않으며 설사 잃었다고 하더라도 다시 제자리로 바르게 돌아올 수가 있다. 글쓰기의 철학이 특히 중요하고, 실전에서 매우 유용한 이유는 바로 ‘기준’이라는 것을 제시해 주기 때문이다.

글을 써 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느껴봤겠지만, 단단한 기준이 없다면 늘 혼란스럽고 괴로워진다. 세부적인 사항에 들어가면 때로는 ‘멘붕’상태에 이르게 되는 경우도 있다. 첫 문장은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마지막 문장은 어떻게 갈무리해야 하는지 까지도 마음에 걸린다.

어떤 면에서 이런 고통과 인내가 글쓰기에 도전하는 이유가 되기도 하고, 글을 완성했을 때의 환희를 증폭시키기도 한다. 결과가 아무리 만족스럽다고 해도 과정이 너무 힘들면 중간에 포기하게 되고, 재미를 찾지 못하면 끝까지 해내기가 힘든 법이다. 반면 그 힘든 과정이 조금이라도 수월해지면 글쓰기는 더욱 흥미진진하고 생산성 높은 작업이 된다.

바로 이것이 가능하게 하는 것이 글쓰기의 철학이다. 자신만의 기준이 생기기 때문에 속도와 기세가 더해지고 만족감도 향상된다. 더 나아가 글을 쓰는 시간은 그 누구의 방해도 없이 온전히 누리는 행복의 시간이 될 수 있다. 다만 철학이라고 하면 매우 복잡하거나 골치 아픈 것이라고 생각할 수는 있겠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

저자는 25년 동안 글만 쓰면서 살아왔다. 대학 시절에 해 본 신문 배달이라든가, 맥주집의 서빙 알바를 제외하고는, 이제까지 글쓰기가 아닌 다른 일을 통해서 돈을 벌어 본 적이 없다. 전업 작가에게는 주말이 딱히 특별한 의미가 없기에, 거의 매일매일 글과 함께 살아왔다고 볼 수 있다.

저자의 작품 『좋은 사람되려다 쉬운 사람 되지마라』의 출판저작권이 4개국에 수출됐다. 이런 일은 저자의 인생에서도 처음 있는 일이고, 국내 출판계에서도 흔한 일은 아니다. 이런 성과와 더불어 작가로서 저자의 일상의 모습은 매우 편안해 보일 수도 있다. 회사에 출근해서 상사의 눈치도 보지 않고 힘든 육체노동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저자의 책을 읽으면서 저자가 글을 정말 잘 쓰고 저자처럼 글을 써서 밥을 먹고 살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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