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는 산수가 아니라 수학이야, 변수도 있고, 상대가 모르는 미지수도 있어,” 처음 들었을 땐 문학적 표현처럼 느껴졌지만, 곱씹을수록 인간관계를 설명하는 데 이보다 더 정확한 말이 있을까 싶다. 내가 누군가와 다투거나 누군가에게 서운할 때, 종종 ‘왜 저 저 사람은 저렇게 행동했을까?’ 라고 생각한다.
그 질문 안에는 내가 옳고, 상대는 뭔가 잘못되었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사람의 상황이나 감정, 혹은 조직 내 압력 등을 이해하게 되면, 전혀 다른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우리는 흔히 인간관계를 2차원적으로 바라본다. 나와 너, 그둘 사이의 말과 표정, 오해와 기대, 하지만 갈등은 대부분 보이지 않는 벽 너머에 있는 제3의 축, ‘그’로부터 시작된다.
이때의 ‘그’는 사람일 수도 있고, 조직 구조일 수도 있고, 과거의 경험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한 팀장이 팀원에게 다짜고짜 업무 지시를 했다고 하자, 표면적으로는 ‘그 팀장이 예의가 없다.’라고 판단하기 쉽지만, 그 팀장에게 상사의 압박, 팀원과의 반복된 소통 실패, 혹은 개인적 스트레스가 작용하고 있을 수도 있다.
저자는 예민하다는 말을 들으면 저자 깊은 곳, 감정 발전소에서 부정적 감정이 바로 뿜어져 나왔다. 그 단어엔 유난스럽고 피곤하다는 뉘앙스가 담겨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저자의 예민함이 꼭 나쁘지만은 않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일종의 ‘정신 승리’라고 부르는 이가 있겠지만 솔직히 예민함은 꽤 쓸모 있는 구석이 있다.
사람들의 말투나 표정, 분위기 변화에 빠르게 반응하고 예민한 덕분에 회의 분위기를 읽거나 타인과의 긴장 상태를 조율할 수 있고, 고객이나 학습자의 숨은 니즈도 비교적 잘 포착할 수 있다. 저자는 갈등이 인간을 더욱 유능하게 만든다고 본다. 마키아벨리 지능 가설은 1988년 인류학자 리처드 바이른과 앤드류 휘든이 제시한 이론이다.
그들은 인간을 포함한 영장류의 고도 지능은 ‘사회적 삶의 복잡성’에 적응하기 위해 진화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즉, 누구보다 빨리 눈치채고, 미묘한 감정을 읽고, 유리한 사회적 위치를 확보하려는 본능이 인간의 뇌를 발달시켰다는 것이다. 이 모든 이론과 주장은 결국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우리는 관계의 동물이고, 경쟁과 갈등이라는 과제를 통해 인간다움과 성장을 배운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