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과 채찍을 받은 쥐, 그리고 채찍만 받은 쥐 모두 실험을 반복할수록 스트레스를 받아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실험 후 해부 결과 이 두 쥐는 모두 위궤양이 생긴 것으로 확인되었다. 당근의 효과조차 무색하게 만드는 무서운 채찍의 부작용이다. 이 실험을 통해 알 수 있듯이, 교육에 정말 효과적인 방식은 당근과 채찍이 아니다.
당근과 무시, 다시 말해 당근만 주는 방식이라는 점이다. 실패했을 때 전기 충격을 주거나 야단을 치는 것은 마치 퀴즈를 풀다 오답을 말했을 때 ‘삐, 틀렸습니다!’라는 선고를 듣는 것과 같다. 그저 틀렸다는 말만 할 뿐, 어떻게 수정해야 할지에 대한 실마리는 주지 않는다. 채찍은 전달하는 정보량이 너무 적다.
물론 스파르타식 교육처럼 혼을 내며 실력을 길러내는 방법도 실제로 존재하긴 한다. 그러나 찬찬히 생각해보면 그런 방식은 야단을 통해 깊은 애정을 표현하는, 일종의 넓은 의미에서의 당근이다. 단순히 혼내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성장의 실마리까지 함께 제시해주어야 한다. 그런 세심한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에 스파르타식 교육은 오히려 최상급 교육법에 속한다.
부모와 자식처럼 끈끈한 관계로 맺어진 경우라면 어느 정도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 외의 일반적인 인재 양성 상황에서는 ‘당근과 무시’전략을 더 적극적으로 추천한다.
독자는 칭찬을 잘하는 사람인가? 정말 자신 있는가? 평소 별 뜻없이 사용하는 칭찬의 말, 동료에게 “오늘 프레젠테이션 정말 좋았어”라고 말을 건네거나, 신경 써서 근사한 옷을 입은 사람에겐 “항상 패션 감각이 좋으시네요” 라며 짐짓 감탄해 보이기도 한다.
상대방을 기쁘게 하고 싶고, 더욱 깊은 동료애를 쌓고 싶다는 마음에 우리는 다양한 형용사를 구사해 어떻게든 상대방의 기분을 띄우려 애쓴다. 분명 칭찬을 받으면 누구나 기분이 좋다. 그것도 자신의 자존감의 핵심을 찌르는 말이라면 감동을 느끼기까지 한다. 독자들이 평소 쓰는 칭찬의 말, 그 말은 정말 상대방의 가려운 곳을 확실히 긁어주고 있는가? 감동으로 주고 있는가? 즉, 독자의 칭찬은 상대방에게 진짜 ‘정답’이 되고 있을까?
칭찬한다고 해서 다가 아니기 때문이다. 커뮤니케이션에서 칭찬은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이는 심리학적으로도 밝혀진 사실이다. 잘못된 칭찬은 득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상대방의 마음을 상하게 할 수도 있다. 진정한 칭찬은 그런 부정적인 결과를 낳지 않는다. 제대로 된 칭찬은 상대방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좋은 인상을 주며, 감사받는 유쾌한 감정으로 연결된다.
그러려면 현명하게 형용사를 선택해 말해야 한다. 조- 해리의 창은 자아가 어떤 구조로 이루어졌는지를 ‘창’에 비유해 설명한 심리학 이론이다. 자아란 개개인의 정체성을 의미한다. ‘조-해리’라는 명칭은 이 이론을 제창한 조지프 루프트와 해리 잉햄이라는 두 심리학자의 이름을 합친 것이다. 조지프 박사와 해리 박사는 인간의 하나의 자아로 살아가지 않고 4개의 자아를 동시에 지니고 갈아간다고 보았다.
①본인도 알고 타인도 아는 자아=이미 열린 창,
② 본인만 아는 자아=숨겨진 창,
③타인만 아는 자아=열릴 가능성이 있는 창
④ 아무도 모르는 자아=닫힌 창
심리 상담에서는 이 모든 창을 하나하나 분석하고 4개의 창을 모조리 두드려가면서 피상담자의 자아에 대해 진정으로 공감하려 한다.
다만 이러한 방식은 전문 지식을 가진 상담자가 카운슬링이라는 특수한 관계 안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자아의 창이 4개라는 것도 좀 어렵게 받아들여지고 백곰실험과 당근과 무시이론이 새로운 것 같다. 지금까지 당근과 채찍을 줘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당근만 주고 실패했을 때는 무시하고 모른 척하라는 얘기가 정말 새롭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