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기회를 위한 변론
왕미양 지음 / 세이코리아 / 202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도 변호사만 되고 싶고 이제는 법공부만 하고 싶다. 저자 왕미양 변호사는 한국여성 변호사회 회장. 1997년 제 39회 사법시험 합격 후 2000년에 제 29기로 사법연수원을 수료했다. 이후 우리나라의 여성 변호사 100명 조금 넘었던 당시부터 변호사로 법조계 활동을 시작했다. ‘법은 약자를 보호하는 최후의 보루’라는 신념 아래 변호사 활동 초기부터 성남여성의 전화 전문위원으로 무료 상담을 자원했다.

또한 고충처리위원회 전문상담위원, 법무부 인권옹호자문단 자문위원, 대한변호사협회와 서울지방변호사회 인권위원회 위원, 한국가정법률상담소 100인 변호사단 등 아동과 여성을 비롯해 사회적 약자의 인권 보호를 위한 다양한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2010년부터 서울중앙지방법원과 서울회생법원의 개인파산관재인으로 선임되어 13년 동안 2,400여 명의 사람들에게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새로운 기회를 열어주었다.

대한변호사협회 첫 번째 여성 사무총장, 서울지방변호사회 윤리이사 등을 지냈다. 가족들은 저자가 오지랖이 지나치다고 말하며 늘 불만을 표한다. 그래서그런지 2000년에 변호사로 법조계에 첫 발을 내디딘 후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고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을 경험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거창한 의미나 계획 없이 시작한 일도 나중에는 인생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기도 했다.

특히 파산자의 재산을 관리하기 위해 법원이 선임하는 파산관재인이라는 역할로 13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일을 했다. 성남여성의 전화 간판을 본 후 저자의 발로 찾아가 시작한 활동이 그 시작이었을지도 모른다. 무료 상담부터 다양한 활동으로 연결되면서 여성과 아동 등 우리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 가려져 있던 사회적 약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시골에서 나고 자라 지방대를 졸업한 여성변호사인 당시 법조계에서 찾아보기 힘든, 이른바 ‘3중 비주류’였다. 그랬기에 그들이 보였다고 한다. 저자 자신에게 그들을 볼 수 있는 눈이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변호사라는 직업은 때로는 차갑고 메마른 것처럼 보이지만, 오랜 시간 이 일을 하면서 확신하게 된 것은 법도 결국 사람을 위한 것이라는 점이다. 저자의 클라이언트인 최윤호 씨의 이야기는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실력 있는 댄서였던 그는 동료와 함께 그룹을 결성했다. “과거에는 연습실에서 새벽까지 춤을 익히고 노래를 부르며 열심히 했다.”고 한다.

최씨는 말 그대로 피가 나도록 연습했다. 첫 앨범을 내고 데뷔했을 때는 세상에서 다 가진 기분이 있었다. 그룹을 빠르게 인기를 얻었다. 대표곡들이 연달아 히트하며 각종 시상식에서 수상하는 등 성공 가도를 달렸다. 당시는 하루 종일 스케줄이 빽빽했다고 한다. 오전에는 라디오 프로그램 녹음, 오후에는 TV프로그램 출연, 저녁에는 콘서트나 행사 출연까지 쉴 틈이 없었다.

최씨는 이동하는 차 안에서 잠깐씩 눈을 붙여야 했고, 시간에 쫓기며 급하게 도시락을 먹는 게 일상이었다. “정말 바쁘게 살았다. 매니저가 스케줄표를 보여줄 때마다 놀랐다. ‘이걸 언제 다 소화해?’ 하면서, 하지만 그때는 그런 바쁨이 좋았다. 바쁘다는 건 사람들이 우리를 찾는다는 뜻이었으니까.”라고 생각했다. 인기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끓임없는 노력이 필요했다.

최씨는 새 앨범이 나올 때마다 몸매를 관리했고, 새로운 안무를 익히기 위해 연습실에서 밤을 지새웠다. 하지만 화려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최윤호 씨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룹에서 나와야 했다. 팬들의 큰 사랑이 감사했지만 감당하기 힘든 부담이기도 했고, 때로는 과도했던 스케줄이 몸과 마음을 힘들게 했던 것이다. 최씨는 “처음에는 일시적인 슬럼프라고 생각했다. 곧 다시 좋은 곡으로 돌아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 후로 그는 예상치 못했던 힘든 시기를 보내야 했다. 화려했던 과거는 마치 거짓말 같았고, 그를 기다리고 있는 건 막막한 현실이었다.

하루아침에 모든 게 바뀌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는 수많은 사람들이 최씨를 알아보고 좋아하는 연예인이었는데 갑자기평범한 사람이 돼버린 것이다. 뭘 해야 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정말 막막했다고 한다. 교회의 부동산하는 언니가 있는데 언니가 집을 보러 가면 가장 못사는 동네에 가보면 과거에 잘 나가던 연예인들이 전부 다 살고 있었다고 한다.



파산관재인으로 일하면서 직접 현장 조사를 나서는 일은 극히 드물다. 채무자의 진술이 거짓임을 확신할 수 있을 때, 그리고 그 증거를 사진 등으로 확보해야 할 때만 움직이기 때문이다. 이번 두 건의 현장 조사는 거짓으로 의심했던 것들이 모두 확인된 경우다.

첫 번째 채무자 윤태호 씨는 분명히 “사업을 완전히 정리했다.

두 번째 채무자 정민수 씨는 무직이고 재산이 전혀 없다”라고 진술했다. 그런데 막상 현장에 가보니 윤태호 씨는 자신의 사업장에서 일하고 있었고, 정민수 씨는 “사장님”이라고 불리고 있었다. 사무실 의자에 앉아 두 사건 파일을 펼쳐놓고 바라보니 씁쓸한 웃음이 나왔다.

파산 절차라는 것이 채무자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는 제도인데, 정작 당사자들이 그 기회를 스스로 차버리고 있었다. 채권자 측으로 추가 자료를 받아 사실관계를 검토해보니 그들의 주장은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일말의 오류도 없어야 하기에 직접 확인해야만 했다. 윤태호 씨는 채권자 측으로부터 사업장을 운영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분명 정리했다고 했는데, 채권자 말이 맞았다.

예순이 넘어 파산을 신청한 정민수 씨는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된 주장을 했다. 나이가 많아 새로운 일터를 찾는 것도 힘들어 보이는 그를 보며 마음이 아팠다. 그런데 조사를 할수록 이상한 점들이 하나둘 발견되기 시작했다. 우선 그의 배우자와 자녀들 명의로 부동산이 여럿 있었다. 그것도 제법 값나가는 것들이었다. 처음엔 조사에서는 착오인가 했다.

정민수는 주민등록상 주소에 안 살고 있었다. 대답이 점점 모호해졌다. 무척 구체적으로 설명했던 처음 모습과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정민수 핸드폰 사용 내역을 제출해주길 원했다. 기지국 표시가 나오는 걸로, 거주지 확인을 위해 필요했다. 그런데 개인정보라서 좀 그런데,,,결국 그는 자료를 제출하지 않았다.

파산 선고 후 채권자가 주소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자 주소를 다른 곳으로 옮겼다. 그런데 바뀐 주소가 이상하게 낯이 익은 게 아닌가, 파일을 뒤져보니 자신의 현재 직장이라고 말했던 곳이었다. 그것에는 한 사업장이 자리하고 있었다. 기재된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그는 무직이 아니라 그곳 사장님이었다. 정민수의 모든 것은 전화를 통해 무직이 아니고 사장님이라는 게 확인됐다. 정민수 씨에게는 더 이상 거짓말하지 말라고 강하게 권했다. 면책 불허가 의견서를 작성하면서 무척 안타까웠다. 파산 제도는 감당할 수 없는 빚으로 인해 벼랑 끝에 선 것처럼 절체절명의 위기에 있는 사람들에게 다시 일어설 기회를 주는 제도다.

사회적으로는 한 사람이 경제적 사망 상태에서 벗어나 다시 생산적인 활동을 해 국가 경제에 이바지할 수 있게 해주는 의미 있는 제도이다. 이 기회를 받기 위해서 반드시 지켜야 할 중요한 조건이 하나 있다. 바로 진실이다. 솔직하게 모든 것을 털어놓고 진심으로 재기할 의지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그것이 전부다. 결국 두 사건 모두 결과는 같았다. 면책불허였다. 진실이 중요한데 요즘 법적인 문제를 보면 좋은 변호사를 사는 경제력이 중요한 것 같다. 범죄자들이 전부 높은 자리에 가 있어서 세상을 믿을 수가 없는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