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빙’은 잘 지내는 것, 잘 살아 내는 것을 뜻한다. 저자가 건강저널에서 찾아낸 이 단어는 바쁘게 삶을 살아 내고 있던 저자를 어둑할 때까지 도서관 바닥에 앉아 있게 했다. 영어 단어 ‘웰빙’의 기원은 고대 그리스 철학적 단어 에우다이모으로 매기는 저자 안과 밖의 환경일 것이다. WHO는 1998년, 건강을 ‘육체적, 정신적, 영적 및 사회적으로 완전히 웰빙 하는 역동적 상태’ 라고 다시 정의 했다. 이는 단순히 질병이 없고 병약한 상태가 아닌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 정의에서 주목할 만한 큰 변화는 영적 웰빙이 추가된다.
사회적 웰빙이 외부 지향적 타인과 관계에 중점을 둔다면, 영적 웰빙은 내면 지향적이고 내적 성장과 자아실현을 건강의 중요 요소로 정의한다. 이는 단순히 질병이 없고 병약한 상태가 아닌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 정의에서 주목할 만한 큰 변화가 있다. 바로 영적 웰빙이 추가된 것이다. 건강의 시작은 바로 자신의 생명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참 건강은 생명으로 자신이 존재하고 이는 그 자체를 소중히 여기는 것이다. 이것을 매일 기억해 내고, 만족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가는 것이 삶의 웰빙이고 건강 그 자체다.
의학적으로 극복할 수 없는 질병이 있어 시한부의 삶을 살아도, 자기 삶의 마지막 호흡까지 자기를 존중하며 살아 내는 것도 웰빙이며 건강이다. 이제는 병이 있는 상태를 건강하지 않다고 정의하는 프레임에서 벗어날 때이다. 극복할 수 있는 질병이 찾아왔을 때도 다르지 않다. 이 아픔을 신호로 받아들이고, 스스로를 더 돌보는 기회로 만든다면 이 과정은 건강이 된다. 건강하지 않다는 것은 병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잃어 가고 자기 삶의 소중한 가치를 기억해 내지 못하는 상태이다.
건강은 한자로 살펴보면 눈에 보이는 물질적 성질이 튼튼한 상태가 건이고, 눈에 보이지 않는 비물질적 성질이 평안한 상태가 강이다. 즉, 몸과 마음의 건강이다. 건강하다는 것은 날마다 자기 스스로를 돌보며 참인 자신으로 잘 존재해 내는 것이다. 생명이 자기 안에 소속된 작은 가정에서부터 공동체로 이어진 이 사회에 한 줄기 빛이 된다면 그걸로 삶은 완전하다. ‘건강지속력’이란 아픔을 돌아보고 건강을 지속가능하게 만드는 힘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자기돌봄을 통해 건강지속력을 가꾸어 가는 행위이자 과정이다.
‘비건강상태’일 때는 쉽사리 질병에 노출된다. 물론 큰 질병을 앓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몸과 마음을 돌보지 않는 비건강상태일 때 그 삶은 자기를 잃어버리고, 자기가 주체가 되지 못하고 외부조건으로 자기를 평가하는 삶을 살게 될 확률이 커진다. 스트레스가 건강에 해롭다는 것은 상식이다. 우리가 가장 잘못 알고 있는 상식이기도 하다. 스트레스 안에 건강도 깃들여 있다. 스트레스를 마주하는 마음의 태도에 따라 스트레스 호르몬의 종류가 달라진다. 스트레스에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는가에 따라 몸을 해하는 호르몬이 생길 수도 있고, 몸을 살리는 호르몬이 생길 수도 있다.
스트레스가 나쁘다는 인식이 강했던 것은 코르티솔 호르몬 연구들 때문이다. 코르티솔 호르몬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대표적인 부정적 스트레스 호르몬이다. 그러나 사실 코르티솔 자체는 소중하다. 지속적인 과다분비가 문제이다. 스트레스 상황에서 뇌는 신속하게 예측하고 판단하기 위해 충분한 산소와 당분을 즉시 필요로 한다. 그래서 심장을 빠르고 힘차게 박동시켜야 한다. 이 역할을 코르티솔 호르몬이 해준다.
뇌의 명령을 받고 스트레스에 대응하기 위해 몸은 평소보다 빠르게 움직일 태세가 갖추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코르티솔은 뼈 가장 가까이 붙어 있는 깊은 근육들까지 긴장시키며 힘을 주게 한다. 스트레스 상황이 종료때까지는 에너지가 많이 필요하다. 그래서 코르티솔은 평상시 몸 전체 에너지를 반 이상을 사용하는 소화와 면역을 일시 억제한다. 모든 에너지를 스트레스 대응에 집중시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