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 우리를 현혹하는 것들에 논리와 근거로 맞서는 힘
리처드 도킨스 외 30인 지음, 존 브록만 외 엮음, 김동광 옮김 / 포레스트북스 / 2025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세상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궁금한데 읽어보면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읽었다. 저자는 리처드 도킨스 외 30인이다. 저자들은 온갖 과학자들이 다 나온다. 이 책의 저자들은 세상 모든 물음에 과학이 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 책은 현대 과학의 거인들과 떠나는 지적 여정을 풀어 쓴 책이다. 훌륭한 요리사는 손질된 재료를 바탕으로 기가 막힌 요리를 선보인다. 접시에 놓인 예술 작품은 한식, 양식, 중식, 일식 등 자신의 주력 분야와 관련된 독창적인 개성이 잘 드러나 있다.

리처드 도킨스는 영국 사람이고 이기적 유전자나 확장된 표현형을 읽었는데 별로 기억나는 게 없는 것 같다. 옛날에는 옥스포드나 캠브리지 나온 사람을 보면 괜히 멋있다고 생각했는데 꼭 그런 것 같지도 않다. 여러 가지 요소가 복합적으로 전부 갖춰져야지 멋있는 것 같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여러 가지 지식들이 정말 사실인지, 혹시 잘못된 것은 아닐지 의문을 느껴 본 적이 있었을 것이다.

하늘에 뚫려 있는 작은 바늘 구멍 같은 행성들이 실제로 태양과 같은 거대한 공 모양을 하고 있고, 우리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져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리고 지구가 그런 행성들 중 하나인 태양의 주위를 도는, 그보다 훨씬 작은 구체라는 사실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우주 비행사들은 지구에서 충분히 멀리까지 여행할 수 있기 때문에 직접 자신들의 눈으로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육안으로 보기 어려워서 도구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저녁 무렵 나타나는 ‘개밥바라기’ 별은 밤하늘에서 반짝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망원경으로 관찰해 보면 그 별이 우리가 금성이라고 부르는 아름다운 행성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과학자들은 이 세계와 우주의 진실을 밝혀내는 전문가로 종종 형사와 비슷한 방식으로 일한다. 만약 그 가설이 정말 사실이라면, 어떤 과정을 거쳐서 그렇게 되었을까? 이것을 예측이라고 한다. 예측을 잘해야지 진짜 엘리트라고 했다.

만약 지구가 정말 둥글다면 우리는 누구든 같은 방향으로 계속 걸어가면 결국 자신이 처음 출발했던 위치로 돌아오게 될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다. 의사가 환자에게 홍역에 걸렸다고 진단할 때 환자 얼굴 한번 쳐다본다고 홍역을 직접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의사는 환자를 살펴본 후에 환자가 홍역에 걸렸을지 모른다는 가설을 세운다. 그리고 마음속에 이 여자아이 환자가 정말 홍역에 걸렸을까? 홍역에 걸렸을 때 나타나는 증상들과 일치하는지 살펴봐야 겠군이라고 생각하고 검사를 진행한다.

과학자들이 이 세계에 대해 연구하고 배워나갈 때 증거를 사용하는 방식은 날로 복잡하고 정교해지고 있다. 저자는 무언가를 믿게 해주는 좋은 증거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잘못된 믿음을 주는 좋지 않은 증거에 대한 이야기를 이쯤에서 그치고 잘못된 믿음을 주는 좋지 않은 증거들에 대해서 알려준다. 그런 좋지 않은 증거들은 ’전통‘, ’권위‘, ’계시‘이다. 전통에서 빚어지는 문제는 어떤 이야기가 아무리 오래되었다 해도 원래의 이야기가 옳거나 그릇될 수 있듯이, 오늘날에도 옳거나 그릇될 수 있다.

사실이 아닌 이야기를 지어내서 그 이야기가 수세기 동안 정해진다 한들 그 이야기는 자체가 사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 영국 국교회는 많은 종파 중 하나에 불과하다. 러시아 정교회, 로마 가톨릭, 감리교 등 여러 종파 가 있다. 그들은 저마다 다른 신앙을 가지고 있다. 유대교와 이슬람교는 더 다르다. 그리고 유대교와 이슬람교에도 여러 종파가 있다. 그런데 아주 사소한 신앙의 차이로 사람들은 전쟁을 벌이기도 한다.

그 사람들은 자신들의 신앙에 대해 믿음을 가질 만한 타당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믿음은 예수가 살던 시대 6세기가 지난 후에야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처음에는 마치 ‘백설공주’ 이야기가 지어진 것처럼 단순히 하나의 이야기가 지어졌을 뿐이다. 전통이 오래될수록 사람들은 그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성경은 많은 증거와 증인들이 있다. 오래됐다고 무조건 믿는 건 아니다. 나도 성경을 하나님말씀으로 받아들이는데 엄청난 책을 읽고 대조하고 진실인지 확인이 되었을 때 받아들였다.



로마 가톨릭이 성모 마리아의 육신이 천국으로 올라갔다는 믿음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시기가 비교적 최근인 1950년이었다. 그 말은 1950년에 교황이 가톨릭 교도들에게 그 사실을 믿어야 한다고 말했다는 뜻이다. 진화론자들은 신앙을 안 믿을 것 같다. 난자처럼 작고 거의 활동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세포에서 어떻게 복잡한 사람이 태어날 수 있을까? 이 작은 세포를 인체의 모든 조직으로 바꾸어주는 장치들은 다 어디에 있을까? 유전물질인 유전자는 어떻게 이런 과정들을 제어할까? 이런 물음들은 생물학이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들 중 하나이다.

그리고 여기에 답변을 얻기 위해 이루어진 최근의 진전들은 무척이나 흥미롭다. 수정된 난자 세포는 무수한 세포들을 생성하고- 사람은 수십 개의 세포로 이루어져 있다. -그 세포들이 조직되어 눈, 코, 팔다리, 심장, 두뇌와 같은 구조가 된다. 그렇다면 그 구조들, 또는 최소한 그런 구조를 만드는 데 필요한 계획이 난자 속에서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초기 배아의 일부가 제거되면, 교란에도 불구하고 그 배아는 정상적으로 조절과 발생을 계속할 수 있다. 물리적인 메커니즘과 관계가 있다.

우리의 뇌는 처음에는 세포들로 이루어진 평평한 판이었다가 튜브형태로 말린다. 사람들은 다른 척추동물들과 구분시켜 주는 것은 세포와 종류라기보다 패턴형성과 그에 따른 공간적인 조직화의 차이이다. 그렇다면 배아에 들어 있는 세포들은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알까? 그 답은 부분적으로는 그들이 자신들의 위치를‘알고 있다’ 는 사실에 의존한다. 복잡한 배아 대신 단순한 국기를 생각하면 조금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프랑스 국기를 보면 여러 개의 세포들이 일렬로 늘어서고 있고, 각각의 세포들이 모두 푸른색, 붉은색, 흰색이 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가정한다. 그렇다면 어떤 메커니즘이 프랑스 국기의 패턴을- 다시 말해서 그 줄의 처음 3분의 1에 해당하는 세포들은 푸른색이 되고, 다음 3분의 1은 흰색, 나머지 3분의 1은 붉은색이 되도록 –발생시킬 수 있겠는가? 이것은 초기 배아가 직면하게 되는 문제와 그리 다르지 않다.

초기 단계에서 배아는 뼈, 근육, 내장, 피부 등으로 성장하게 될 여러 영역으로 나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문제의 해결책은 여러 가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가장 일반적이면서 흥미로운 방법은 모든 세포가 자신의 위치를 알게 하는 것이다. 또한 세포들은 자신들의 위치를 기록하고 기억할 필요가 있다. 곤충의 초기 발생 과정에 대한 여러 학자들의 연구는 매우 성공적이어서 초기 배아의 패턴을 결정짓는 데 관여하는 유전자들을 식별해내는 단계에까지 도달하고 있다.

곤충의 몸을 구성하는 서로 다른 부분들의 발생이 유전자들에 의해 제어되고, 그 유전자들은 저마다 특성을 가진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 유전자들은 호메오 유전자라 불린다. 이들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일어나면 파리의 더듬이와 다리의 위치가 바뀌는 식으로 몸의 일부가 다른 부분으로 뒤바뀌는 결과가 나타난다. 이것을 호메오시스 즉 상동이질형성이라고 한다. 호호메오박스 유전자들의 발현에서 초기 반응이 변화를 일으킨다. 그러나 가령 우리 손을 구성하는 다섯 개의 손가락이 복잡한 근육, 뼈, 힘줄에 배열에 대한 지시를 호메오박스 유전자와 그 신호로 어떻게 얻는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직도 밝혀내야 할 과제가 많이 남아 있다.

겉보기로는 전혀 다른 것처럼 거의 비슷한 유전자들을 사용하기까지 한다. 최근에 파리의 날개와 척추동물의 사지를 발생하게 하는 유전자와 신호패턴이 거의 유사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발생 과정에서 세포의 활동을 변경시키는 것은 유전자의 극히 미묘한 차이며 궁극적으로 그 작은 차이가 동물계의 그토록 큰 다양성을 빚어내는 것이다. 올바른 사유를 위해서는 지적 양식이 필요하다.

그런 양식이 필요한 주된 이유는 몇몇 결정적인 실수를 피하기 위함인데, 불행하게도 그런 실수는 상당한 해악을 미칠 만큼 폭넓게 확산되어 있다. 사고는 상대에게 적절한 도구를 사용할 것을 요구하며, 자신이 상대에게 이야기해 주고자 하는 도구는 그런 도구들 중에서도 가장 평범하고 모든 이론주장들 속에서 찾아 볼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런 도구가 있다는 사실조차 알아차리지 못한다.

도구를 사용하지 않으면 과학을 할 수 없다. 도구가 없이는 과학적인 문제든 아니든 모든 문제를 진정 중요한 의미에서 사고할 수조차 없다. 이 도구를 사용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이런 두 부류의 사람들이 서로 의사소통하는데 항상 어려움이 따르기 마련이다. 이 도구의 중요성을 설명하기 위해서, 단지 부분적으로만 가상적인 한 가지 예를 든다.

참조할 만한 정보에 전혀 접근할 수 없는 상황에서 사람들이 결정을 내리는 방식에 대해 생각해 본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이 자신들이 예측하는 결과가 그들이 원하는 것일 때 특정한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러한 두 가지 요인을 곱하면 사람들이 결정을 내릴 가능성을 예측할 수 있다.



이 원리는 아주 흥미로운 결과를 가져온다. 그 원리는 사람들이 다음과 같은 전혀 다른 두 가지 상황에서 어떤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똑같다’는 사실을 예측하기 때문이다. 그 상황이란 ⓐ일어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지만 그 결과가 매우 바람직할 때 ⓑ결과가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지만 실제로 일어날 가능성이 조금 더 높다고 생각될 때이다. 이것은 전체로 삼은 곱셈 개념이 낳은 결과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의 요인이 증가하면 다른 하나는 같은 비율로 감소한다. 결정과 그 불확정성에 대해 공식적으로 생각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원리’는 완전히 새롭다.

이론이 ‘다른 조건이 동일하다면’ 이라는 단서를 전제로 삼는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 다른 조건이 동일하다면 이라는 단서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또는 그것이 의미하는 단서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그것이 의미하는 지적 스타일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엉뚱한 비판을 퍼부을 수 있다. 과학에서 ‘증거‘ 만이 옳고 그름을 판정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만, 과학 이론이 ’사실 그대로‘ 일 수 있다. 우리를 당황스럽게 만들고, 설명할 수 없는 사실이 만족스러울 만큼 우아한 이론보다 더 큰 무게를 가지며, 바로 그 점이 종종 과학적 활동을 곤혹스럽게 만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적프로그램대로 생각하는 주된 이유, 그리고 서로 다른 요인들을 실제로부터 고립시키고 이상화시키는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과학을 계속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며, 과학은 이 세계에 대해 어느 다른 사고방식보다 많은 것을 설명해준다. 따라서 그것은 다른 분야보다 ‘뛰어난’ 것이 분명하다. 물론 ‘다른 조건이 동일하면’ 말이다.

과학적 원리는 추상을 만들어내는 데 비해 과학적 원리는 이러저러한 요인들이 고려되지 않는다. 과학적 원리는 엄격한 개념들을 구축하지만, 반과학적 원리는 그들의 진정한 다양성을 드러낸다는 구실로 그 개념들을 모호하게 만든다. 세상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밝히려는 게 과학인 것 같다. 과학은 계속 이론을 분명하게 만드는 과정인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