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베트남은 여전히 사회주의 동지국가라는 입지를 갖고 있다. 베트남전 당시 북한은 베트남을 지원하기 위해 공군을 파병하기도 했다. 미국과는 과거 전쟁을 했지만 1995년 수교 이후로는 경제안보협력을 꾸준히 확대해오고 있다. 미국의 대 동남아 외교의 핵심 국가로 떠올랐다. 그래서 북한도 미국도 거부감 없고 오히려 긍정적인 인상을 갖고 있는 나라로 베트남이 선택된 것이다.
정치적으로는 중립을 지키면서도 경제적으로는 양측과 무역을 할 수 있는 길을 열어갔다. 차차 그런 길을 개척해 전쟁 통에 돈을 많이 벌었다. 전쟁은 당사국에 신음과 고통의 질곡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전쟁에 직접 개입하지 않는 주변국에는 구세주가 된다. 한국전쟁으로 일본은 제 2차 세계대전 패배가 남긴 사직위허를 벗어날 수 있었다. 베트남전쟁으로 현대, 한진 등 한국의 기업들이 큰 큰돈을 벌고, 덕분에 한국도 경제발전의 큰 변곡점을 맞을 수 있었다.
스웨덴도 이와 비슷한 전쟁의 시혜를 입었다. 제1차 세계대전의 당사국 독일, 오스트리아, 프랑스, 영국 등은 되도록 많은 물자를 확보해야 했다. 스웨덴은 이를 기회로 볼베어링, 펄프, 성냥 등을 대량으로 생산, 수출해 국부를 크게 늘리는 데 성공했다. 이러한 경제력의 확대는 이후 중립 노선을 지속하는 데 주요기반이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국제질서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국제연맹이 설립되자 스웨덴 은 여기에 가입했다.
미국의 우드로 윌슨 대통령이 주도해 설립한 국제기구이지만, 국제제연맹이 제공하는 집단 안보 체제에 참여하는 것이 스웨덴의 안보 확립에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었다. 3국 협상 측의 영국과 프랑스, 3국 동맹 측의 이탈리아 등이 초기 운영에 주요 역할을 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면도 스웨덴의 가입을 쉽게 해주었다. 스웨덴의 대응책은 국제연대를 안보 우려는 더 커지게 되었다. 스웨덴의 대응책은 국제연대를 통해 중립을 더 강화하는 것이다.
네델란드, 벨기에, 스위스 등과 더 긴밀한 협력 관계를 구축하면서 공동으로 중립노선을 지켜가는 정책을 펼쳤다. 지역에서 강대국이 나타나 세력을 더 확장할 때 작은 나라들은 이 강대국에 편승하기 쉽다. 거기에서 얻을 수 있는 안보적, 경제적 이익이 많기 때문이다. 그 강대국이 너무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다른 강대국과 손잡고 균형을 추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스웨덴을 스스로 지켜갈 수 있는 길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미국과 소련 사이에 나름의 살길을 찾아가는 주변국을 보면서 스웨덴도 가는 길을 정해야했다. 또 다시 중립의 길을 택했다.
미국과 서방이 만든 나토에도, 이에 대항해 1955년 소련과 동구가 구축한 바르샤조약기구에도 가입하지 않았다. 동서 냉전 사이 어느 하나에 가담해 경제성장과 안보를 구축하는 대신 스스로 경제발전과 방위산업 성장을 적극 추진했다. 그런데 좀 깊이 들어가 보면, 대외적인 중립 외교 표방과는 달리 친서방적인 측면이 존재했다. 나토와는 비밀스럽게 협력을 추진했다. 스웨덴 무기 사이에 호환성을 늘려 나가는 등의 협력을 해온 것이다.
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전신이면서, 서방국가들의 상호교역을 촉진하기 위해 1948년 창설된 유럽경제협력기구OEEC에 가입해 영국, 프랑스 등과 경제협력을 적극 추진했다. 1960년에는 영국, 노르웨이, 덴마크, 오스트리아, 스위스, 포르루갈 등과 유럽자유무역연합EFTA을 설립해 서로 무역장벽을 줄이고 경제협력을 진척시켜 나가기도 했다. 스웨덴을 보면서 우리나라도 어떤 노선을 걸어야 가장 이득이고 나라를 잘 지킬 수 있을지를 생각해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