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나라, 당찬 외교
안문석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5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난 집순이이고 방구석에만 있기는 하지만 이승만 책이나 정치, 법책들을 읽다보니까 애국심이 점점 생겨서 나라 걱정이 많이 생겼다. 이 책도 읽고 대한민국의 외교에 도움이 되는 얘기들이 있는지 알고 싶어서 읽고 싶었다. 저자 안문석은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요크대학교에서 정치학 석사, 영국 워릭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KBS통일부, 정치부, 국제부 기자를 거쳐 정치부 외교안보데스크를 지냈다.

2012년부터 전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동북아 국제관계, 북한의 대외관계, 미국 외교책, 세계외교사 등을 강의하고 있다. 북한 정치사, 한반도평화체제, 통일 외교 등에 연구도 깊이 하고 있다. 활발한 저술활동을 통해 『식탁 위의 외교』 『북한 민중사』 『북한 현대사 산책』 1-5권 『무정 평전』 『오기섭 평전』 『김정은 고민』 『외교의 거장들』 『글로벌 정치의 이해』등 다수의 저서를 펴냈다. “구성주의 이론과점에서 본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 등 한반도와 국제정치 관련 논문을 국내의 학술지에 지속적으로 발표하고 있다.

사람도 그렇지만 국가는 약하면 서럽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여 주권을 지키기 어렵다. 주권은 커녕 ‘국가 자율성도 흔들거린다. 강대국이 왼쪽을 지향하면 왼쪽으로, 오른쪽을 바라보면 오른쪽으로 가야 한다. 두말할 필요 없이 힘을 길러야 한다. 좀 작더라도 경제력과 군사력이 강하고, 문화적인 깊이가 있는 나라들은 그렇게 휘둘리지 않는다. 강대국들도 만만한 나라들만 쉽게 대한다.

뻗대고 버티고 말 많은 나라, 작은데도 가진 게 있는 나라는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가진 게 있으면서 배짱도 있는 나라는 오히려 경계한다. 가진 게 없으면서 뻗대면 깨부수려고 하고, 가진 게 있는데도 말 잘 듣는 나라는 만만하게 생각한다. 작은 나라들은 이 중 어떤 길을 갈지 노선을 정해야 한다. 그래서 일단 첨단 무기를 가지려 한다. 모든 나라가 그런 노력을 함에도 이를 이루는 나라는 많지 않다.

외교는 우리 일상생활과 직접 관계는 없는 듯하고 특별한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보여, 보통사람들이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분야이다. 하지만 외교는 우리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그래서 우리가 늘 관심을 가져야 하는 부문이다. 우리가 미국과 협상을 잘하면 우리나라 자동차 수출을 늘릴 수 있다. 그러면 우리의 일자리 늘어나고, 그만큼 우리 삶이 나아진다. 반대로 북한과 대화를 안 하고 대결 일변도로 가면, 한반도의 안보도가 낮아지고 우리 경제는 나빠지기 십상이다.

개념적으로는 외교를 이렇게 넓은 의미로 정의하는 것이 옳겠지만, 일상에서 쓰이는 외교라는 용어는 좁은 의미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좁은 의미의 외교는 ’나라와 나라 사이의 대화‘ 협상, 협력 등을 통해 서로 자신의 국가 이익을 실현해 나가는 과정’을 뜻한다. 정부와 정부 사이의 관계가 전통적으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만, 정부와 상대국의 공공기관이나 기업, 민간단체 등과의 관계도 외교의 주요 영역에 들어와 있다.



역사가 진행되면서 외교는 그 영역이나 행위자 측면에서 지속적으로 확대되는 길을 걷고 있고, 전문성도 강화해오고 있다. 외교는 그 영역뿐만 아니라 행위자도 확대해 나가고 있다. 그런가 하면 정부의 외교관은 전문 영역들을 가지고 전문성을 강화하면서 특정 분야의 협상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인다. 미국이나 중국, 일본, 유럽 등 지역별 전문가도 많아지는 추세이다.

사실 외교는 석기 시대부터 존재했다. 물론 그때의 외교에서는 좋은 전령이 이런저런 이슈들을 모두 다뤘다. 부족장은 기억력 좋은 전령을 보내 우렁찬 목소리로 자신의 생각을 전하도록 했다. 이러한 시대를 지나 외교관이 전문 직업으로 자리 잡게 된 시기는 나폴레옹 전쟁을 정리하는 빈회의가 종료되는 1815년 무렵부터이다. 당시 유럽 국가 대부분이 참석하는 대규모 회의가 1년 가까이 진행되었다. 회의 끝에 최종 의정서를 만들어내 유럽의 운영을 위한 규범에 합의하면서 외교가 국가 운영의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바탕위에서 오늘날 외교는 모든 국가에서 매우 중시하는 분야로 발전했다. 강대국은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서, 약소국은 강대국 중심의 세계 정치 속에서 자국의 생존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서 외교관을 더욱 중요하게 여기게 되었다. 외국과의 직접 교섭을 통해 국가 이익을 실현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직업 외교관은 당연히 그에 합당하는 높은 자질을 갖추어야 한다. 이와 관련해 니컬슨은 진실성과 정확성, 침착성, 인내심, 관용성, 겸양, 충성심을 직업 외교관이 갖추어야 할 일곱 가지 필수 조건으로 제시했다.

진실성은 늘 사실만을 말하고 거짓과 가식을 멀리하는 것을 뜻한다. 침착성은 자기 성과에 도취되지 않고 평정심을 잃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인내심은 상대국의 교섭에서 서두르지 않으면서 꾸준히 일을 추진해 나가는 것을 말한다. 관용성은 상대국의 실수나 과실도 본국의 국익을 크게 침해 하지 않는 한 너그럽게 봐주는 것을 뜻한다. 겸양은 허세를 부리거나 자신의 성과를 지침에 충실하고, 특히 본국의 국가 이익에 철저히 봉사하는 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자질을 두루 갖춘 외교관이 있을까? 찾기 쉽지 않을 것 같다.

대학에서 외교사를 가르치는 저자로서는 이런 고담중론을 들으면 우선 나쁜 사례들부터 떠오른다. 베트남은 우리와도 깊은 관계가 있다. 1960-1970년대 베트남전쟁 당시 우리가 미국 측으로 파병해 북베트남군과 싸웠다. 이런 악연을 극복하고 1992년 수교했다. 수교 직전 우리 외교부는 신경을 많이 썼다. 베트남전 당시 맞붙어 싸웠고, 한국군과 베트남 여성 사이에 태어난 라이따이한 문제가 상존하고 있어 우리 측에서는 베트남이 어떤 태도로 나올지 염려를 많이 했다.

우리 정부는 수교 전에 우호 관계를 조성하기 위해 원조(병원, 학교 등 건설)도 준비 했다. 우리 외교부와 협상을 시작한 베트남은 쿨했다. 비교적 최근의 일로 베트남하면 미국 대통령의 하노이 핵 담판이다. 결렬되긴 했지만 당시 한반도의 눈이 거기에 쏠렸었다. 그래서 선택되었던 것은 양국에 모두 좋은 인상을 주었기 때문이다.



북한에 베트남은 여전히 사회주의 동지국가라는 입지를 갖고 있다. 베트남전 당시 북한은 베트남을 지원하기 위해 공군을 파병하기도 했다. 미국과는 과거 전쟁을 했지만 1995년 수교 이후로는 경제안보협력을 꾸준히 확대해오고 있다. 미국의 대 동남아 외교의 핵심 국가로 떠올랐다. 그래서 북한도 미국도 거부감 없고 오히려 긍정적인 인상을 갖고 있는 나라로 베트남이 선택된 것이다.

정치적으로는 중립을 지키면서도 경제적으로는 양측과 무역을 할 수 있는 길을 열어갔다. 차차 그런 길을 개척해 전쟁 통에 돈을 많이 벌었다. 전쟁은 당사국에 신음과 고통의 질곡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전쟁에 직접 개입하지 않는 주변국에는 구세주가 된다. 한국전쟁으로 일본은 제 2차 세계대전 패배가 남긴 사직위허를 벗어날 수 있었다. 베트남전쟁으로 현대, 한진 등 한국의 기업들이 큰 큰돈을 벌고, 덕분에 한국도 경제발전의 큰 변곡점을 맞을 수 있었다.

스웨덴도 이와 비슷한 전쟁의 시혜를 입었다. 제1차 세계대전의 당사국 독일, 오스트리아, 프랑스, 영국 등은 되도록 많은 물자를 확보해야 했다. 스웨덴은 이를 기회로 볼베어링, 펄프, 성냥 등을 대량으로 생산, 수출해 국부를 크게 늘리는 데 성공했다. 이러한 경제력의 확대는 이후 중립 노선을 지속하는 데 주요기반이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국제질서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국제연맹이 설립되자 스웨덴 은 여기에 가입했다.

미국의 우드로 윌슨 대통령이 주도해 설립한 국제기구이지만, 국제제연맹이 제공하는 집단 안보 체제에 참여하는 것이 스웨덴의 안보 확립에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었다. 3국 협상 측의 영국과 프랑스, 3국 동맹 측의 이탈리아 등이 초기 운영에 주요 역할을 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면도 스웨덴의 가입을 쉽게 해주었다. 스웨덴의 대응책은 국제연대를 안보 우려는 더 커지게 되었다. 스웨덴의 대응책은 국제연대를 통해 중립을 더 강화하는 것이다.

네델란드, 벨기에, 스위스 등과 더 긴밀한 협력 관계를 구축하면서 공동으로 중립노선을 지켜가는 정책을 펼쳤다. 지역에서 강대국이 나타나 세력을 더 확장할 때 작은 나라들은 이 강대국에 편승하기 쉽다. 거기에서 얻을 수 있는 안보적, 경제적 이익이 많기 때문이다. 그 강대국이 너무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다른 강대국과 손잡고 균형을 추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스웨덴을 스스로 지켜갈 수 있는 길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미국과 소련 사이에 나름의 살길을 찾아가는 주변국을 보면서 스웨덴도 가는 길을 정해야했다. 또 다시 중립의 길을 택했다.

미국과 서방이 만든 나토에도, 이에 대항해 1955년 소련과 동구가 구축한 바르샤조약기구에도 가입하지 않았다. 동서 냉전 사이 어느 하나에 가담해 경제성장과 안보를 구축하는 대신 스스로 경제발전과 방위산업 성장을 적극 추진했다. 그런데 좀 깊이 들어가 보면, 대외적인 중립 외교 표방과는 달리 친서방적인 측면이 존재했다. 나토와는 비밀스럽게 협력을 추진했다. 스웨덴 무기 사이에 호환성을 늘려 나가는 등의 협력을 해온 것이다.

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전신이면서, 서방국가들의 상호교역을 촉진하기 위해 1948년 창설된 유럽경제협력기구OEEC에 가입해 영국, 프랑스 등과 경제협력을 적극 추진했다. 1960년에는 영국, 노르웨이, 덴마크, 오스트리아, 스위스, 포르루갈 등과 유럽자유무역연합EFTA을 설립해 서로 무역장벽을 줄이고 경제협력을 진척시켜 나가기도 했다. 스웨덴을 보면서 우리나라도 어떤 노선을 걸어야 가장 이득이고 나라를 잘 지킬 수 있을지를 생각해보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