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중의 신념에서 종교적 감정에 내재된 맹목적인 복종, 잔인한 편협성, 과격한 선전 활동에 대한 열망 등의 특징을 찾아 볼 수 있다. 군중이 환호하는 영웅은 군중에게 그야말로 신과도 같다. 15년 동안 나폴레옹도 그런 존재였다. 어떤 신도 그보다 열렬한 숭배자들은 거느려 본 적은 없었을 것이다. 종교적 신앙이나 정치적 이념의 창시자들은 모두 군중에게 이와 같은 광신적 감정을 심는 방법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목적을 이룰 수 있었다.
숭배와 순종에서 행복을 찾고, 우상을 위해 언제든 기꺼이 목숨까지 바치도록 만든다. 어떤 시대든 마찬가지였다. 프랑스 역사학자인 퓌스텔 드 툴랑주는 과거 로마의 속국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력을 동원해서가 아니라 종교적 경외심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라고 날카롭게 시작했다. “민중의 공분을 산 체제가 다섯 세기 동안이나 지속된 건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일이다. 로마 제국의 위대함을 상징하는 황제가 만장일치로 신처럼 숭배되었기 때문이다.
로마 제국의 가장 작은 촌락에서도 황제를 위한 제단이 있을 정도였다. 이러한 견해와 믿음을 결정하는 데에는 두 가지 요인이 작용한다. 바로 간접적인 요인과 직접적인 요인이다. 간접적인 요인은 군중에게 특정한 신념을 심어주면서 그 외의 다른 신념은 침투하지 못하도록 차단한다. 직접적인 요인은 긴 시간 동안 겹겹이 쌓아올려진 선행 작업을 기반으로 군중에게 강력한 확신을 불러일으킨다.
선행과정이 없을 땐 아무런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 역사적으로 중대한 사건들을 모두 살펴보면 이 두 가지 유형의 요인은 연쇄적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가장 인상적인 사건 중 하나인 프랑스 사건 중 하나인 대혁명의 간접적인 요인은 철학자들의 글, 귀족들의 폭정, 과학적 사고의 발달이었다. 이처럼 간접 요인으로 이미 뜨겁게 달궈져 있던 군중의 정신은 웅변기의 별거 아닌 개혁안조차 있던 군중의 정신의 저항 같은 직접적인 요인에 의해 쉽게 불타올랐다.
한편 간접적인 요인 중에는 군중의 모든 믿음과 견해의 바탕을 이루는 일반적인 요인들도 포함되어 있다. 그것은 바로 민족, 전통, 시간 , 제도 교육이다. 군중의 상상력에 대해 분석하면서 군중의 상상력이 특히 이미지에 강하게 자극을 받는다. 경구는 민중의 정신에 가장 거센 폭풍을 일으키고 또 잠재울 수도 있다. 단어의 힘은 단어에서 연상되는 이미지와 관계가 있을 뿐, 단어와 실제 의미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성과 논증은 특징 단어나 경구에 맞설 수 없다.
파리의 승합 마차 노동자들이 파업에 나섰을 때, 이를 주도한 지도자 두 명을 체포하는 것만으로 파업을 즉시 해산시킬 수 있었다. 결국 언제나 군중의 영혼을 지배하는 것은 ‘자유를 향한 욕망’ 이 아니라 ‘예속되고자 하는 욕구’다. 이처럼 군중은 복종하고자 하는갈망이 너무 강해서 스스로를 지도자라고 자처하는 인물에게 본능적으로 무릎을 꿇는다.
지도자는 상당히 명확하게 두 부류로 나뉜다. 첫 번째는 활력이 넘치고 강한 의지를 가졌으나 그 상태가 오래 지속되지는 않는 편이다. 두 번째는 강하면서도 집요한 의지를 가졌다. 두 번째 부류의 지도자가 첫 번째 부류보다 훨씬 드물다. 첫 번째 부류는 폭력적이지만 용맹하고 대담해서 주로 기습 공격을 진두지휘하거나 위험을 무릅쓴 채 군중을 인도하고, 이제 막 뽑은 신병을 영웅으로 만드는 데 탁월하다.
반면에 강한 의지를 오래도록 지속할 수 있는 두 번째 부류의 지도자들은 비록 겉으로 보기에 화려하진 않더라도 훨씬 더 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사도 바울, 무함마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프랑스 외교관 레셉스와 같이 종교를 창시하거나 위대한 업적을 남긴 진정한 선구자들이 이 부류에 속한다. 이러한 지도자들의 집요한 의지는 모두를 굴복시키고 마는 극히 드물고 강력한 힘이다.
강하고 지속적인 의지가 무엇을 해낼 수 있을지 아직 제대로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강하고 지속적인 의지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여준 가장 최근의 인물은 세계를 둘로 가르는 데 성공한 레셉스다. 그는 위대한 통치자들이 3천 년 동안이나 헛되이 시도만 하고 실패했던 과업을 마침내 완수 했다. 나폴레옹의 경우는 매우 이례적인 사례다.
하지만 위대한 종교, 사상, 제국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이해를 돕기 위해선 언급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위업이 꼭 개인의 지배력이나, 군사적 영광 그리고 종교적 공포를 기반으로 생기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시대에도 다양한 예를 찾아볼 수 있다. 그중에서 여러 시대에 걸쳐 자손 대대로 회자될 가장 인상적인 사례 중 하나로, 두 대륙을 분리해 지국의 모습을 바꾸고 민족 간 교역 관계를 변화시켜 유명한 레셉스의 이야기가 있다.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그의 강렬한 호소력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반대하는 자들을 물리치고, 역경을 극복하며 모든 것을 이겨낸 레셉스는 더 이상 어떤 장애물도 자신을 막지 못할 것이라고 믿었고, 수에즈에서의 성공을 파나마에서도 재현하려 했다.
군중의 정신에 일시적으로 의견을 주입하는 것은 매우 쉽다. 하지만 신념을 오랫동안 유지시키기는 무척 어렵다. 한 번 뿌리 내린 신념을 뽑아내는 일 또한 결코 만만치 않다.
여럿이 힘을 모으면 폭군을 쓰러뜨릴 수 있다. 하지만 굳건히 자리 잡은 신념을 상대로 무슨 수를 써야 할까? 프랑스 대혁명은 카톨릭교의 격렬한 투쟁에서 군중의 명백한 지지를 얻고 종교재판에 버금가는 무자비하고 파괴적인 수단까지 동원했지만 결국 패배하고 말았다. 인류가 겪어온 폭군들의 실체는 죽은 자의 망령이거나 인류가 만들어낸 환상일 뿐이었던 것이다. 요즘의 군중은 똑똑해서 무조건 지도자를 숭배하지 않는다. 당위가 확실할 때만 따르거나 지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