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케로 의무론 (라틴어 원전 완역본) -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현대지성 클래식 61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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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케로의 의무론에 대한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어떤 책인지 궁금해서 읽었다. 고전은 좋은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이 책은 카이시르 독재 앞에서도 굽히지 않았던 불멸의 철학적 유산 사익과 공동체의 선이 충돌할 때, 가장 현실적인 해법을 제시하다. 저자는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이다. 기원전 106년 이탈리아 아르피눔의 기사 계급 가문에서 태어난 키케르는 로마 공화정 후기의 정치가이자 철학자, 수사학자로서 서양 사상과 정치철학의 기초를 놓은 인물이다.

부유한 집안 덕분에 일찍이 로마에서 수학할 수 있었고, 아카데미아학파의 학장 필론에게서 철학을, 법률가 스카이 볼라아게서 법학을, 수학자 아폴로니우스 몰론에서 수사학을 배우는 등 당대 최고의 교육을 받았다. 이러한 철학적 배경은 키케로의 정치적 결정과 사상적 기반에 평생 영향을 미쳤다. 기원전 80년, 26세 의 나이에 친부를 살해죄로 기소된 섹스투스 로스키우스의 변호를 맡아 성공하면서 로마 정계에 이름을 알렸다.

이는 당시 독재관 술라의 측근을 진범으로 지목하는 대담한 도전이었으나, 키케로는 이를 성공적으로 해내며 실력과 용기를 입증했다. 이후 재무관, 법무관을 거쳐 기원전 63년, 43세라는 젊은 나이에 집정관에 올랐으며, 재임 중 카틸리나의 반란을 진압하여 “조국의 아버지”라는 칭호를 받았다. 스토아 철학의 영향을 받았으면서도 현실적 판단을 중시한 이 저서는, 이후 서양 윤리학과 정치철학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래서그런지 법학적성시험 지문에 나온다. 지금까지 그리스인 중에서 대중연설과 냉철한 토론 두 분야를 모두 행하여 성공한 사람은 한 명을 제외하고는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 사람은 바로 팔레론 출신의 데메트리오스다. 그는 날카로운 논쟁가이자 테오프라스토스의 제자답게 격정적이지 않으면서도 매력적인 연설가였다.

물론 플라톤이 대중연설을 하고자 했다면 매우 장중하면서도 유창하게 연설을 했을 것이고, 데모스테네스도 훌륭하고 뛰어난 글을 써냈을 것이다. 플라톤에게 배운 것을 계속 연구하여 발표했다면 수사학적으로 훌륭하고 뛰어난 글을 써냈을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와 이소크라테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은 각자의 분야에 몰두하느라 서로를 경시했다.

그리고 이 주제는 모든 철학자들이 공통적으로 다루는 문제다. 의무에 관해 가르치지 않으면서 어떻게 자신을 철학자라고 말할 수 있겠느냐?를 규정할 때 모든 의무를 왜곡하는 일부 철학 학파들이 있다. 그들은 미덕과 무관하다고 보며, 최고선을 판단하는 기준도 미덕이나 도덕적 올바름이 아니라 마음속에 종종 생겨나는 본성적인 선조차 물리친다면, 그들에게서 우정이나 정의감 혹은 후히 나누어 주는 심성은 자라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고통을 최고악으로 여기는 이들에게서 용기를, 쾌락을 최고선으로 여기는 이들에게서 절제를 기대할 수 없다. 도덕적으로 올바른 것이 그 자체로 추구할 가치가 있다고 말하는 철학 학파들만이 의무에 관한 확고하고 안정적이며 본성에 부합한 가르침을 제시 할 수 있다.

의무를 제대로 가르칠 수 있는 곳은 스토아학파, 아카데미아학파, 소요파뿐이다. 아리스톤, 피론, 에릴로스의 견해는 이미 오래전에 배척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의무에 관한 모든 논리를 펼치려 하니 먼저 의무가 무엇인지 정의하는 것이 좋겠다. 파나이티오스가 이 과정을 생략한 것이 의아하다. 체계적으로 다루려면 항상 무엇을 논의하려는지 알 수 있도록, 그 대상을 정의하는 일부터 시작하는 것이 마땅하다.

의무에 관한 모든 논의는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선이 무엇인가를 탐구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삶의 모든 영역에 적용할 수 있는 실천적 원칙을 정하는 것이다. 의무를 구분하는 또 다른 방식이 있다. 그 원칙을 설명하면 우리는 평균적 의무와 완전한 의무에 대해 말한다.

저자의 생각에 의무는 완전한 의무는 곧 올바름이라 부를 수 있다. 그리스인들은 완전한 의무카토르토마라고 부르고, 일반적 의무카테콘이라고 부는데, 그들은 이 둘을 이렇게 정의한다. 즉 반드시 해야 하는 모든 올바른 행위가 완전한 의무이며, 어떤 행위가 적절한 이유를 제시할 수 있는 것이 평균적 의무다.



인간은 타고난 본성 덕분에 이성의 힘을 바탕으로 언어를 사용하여 사회를 형성하고 함께 살아간다.사회를 형성해서 집회와 축제를 열고 참여하고 사람들은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처자식과 자신이 보살펴야 할 소중한 이들의 생활에 필요한 것을 마련하고자 열심히 노력하게 된다. 이러한 책임감은 사람들의 마음을 일깨워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더욱 열심히 하게 만든다.

인간 본성에 충실한 정신을 지닌 사람은 정의와 법에 따라 타인의 이익을 위해 가르치고 이끄는 이외에는 누구에게도 복종하지 않게 된다. 이로써 인간 정신의 위대함을 보고 세상일을 초연히 바라보는 태도가 생긴다. 나도 성경말씀이 가장 우선이고 기독교 세계관이 우선이니까 그 사상에 반하는 페미니즘이나 사회주의, 공산주의는 버리고 아무리 권력이 높은 사람이라도 하나님말고는 두려워 하거나 무서워하는 사람이 없다.

본성과 이성의 힘은 결코 작지 않다. 이 두 가지 덕분에 인간은 행동과 말에서 질서가 무엇인지, 무엇이 적절한지 그리고 어떻게 절제해야 하는지를 아는 유일한 존재가 된다. 다른 동물들은 눈에 보이는 사물들 속에서 아름다움, 우아함, 부분 간의 조화를 파악하지 못한다. 인간은 본성과 이성을 통해 눈에 보이는 것들로부터 유추한 바른 정신으로 옮겨, 모든 생각과 행동에서 더 큰 아름다움과 일관성, 질서를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또한 부적절하거나 나약하게 행동하지 않으려 하며, 충동적인 욕망에 사로잡혀 행동하거 생각하지 않도록 조심한다.

내 아들 마르쿠야, 지금 너는 플라톤이 “눈으로 보고 알 수 있다면 지혜에 대한 놀라운 사랑을 불러일으킬”도덕적 올바름의 형상, 즉 그 진면목을 보고 있다. 도덕적으로 올바른 모든 것은 다음 네 가지 부분 중 하나에서 생긴단다.

첫 번째는 진리에 대한 명확한 통찰이나 훌륭한 추론이다. 두 번째는 인간 사회의 보존, 각자의 몫에 따른 분배, 계약에 대한 신의 준수다. 세 번째는 굴하지 않는 훌륭한 정신의 위대함과 강직함이다. 네 번째는 중용과 절제가 포함된 질서와 절도를 갖춘 언행이다. 키케로가 마르쿠스에게 하는 대화체의 얘기들은 시험 문제도 나왔다.

예를 들어, 철학적 지혜와 실천적 지혜에 속한다고 여겨지는 첫 번째 미덕에서는 진리의 탐구 및 발견과 관련된 의무가 생겨난다. 따라서 이 의무는 이 미덕의 고유한 열매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어떤 일을 있는 그대로 가장 참되게 꿰뚫어 보고 가장 날카롭고 이유를 알아내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을 실천적 지혜에서 가장 탁원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진리는 이 미덕이 다루는 재료이고, 이 미덕은 진리를 알아내기 위해 사용된다. 반면, 나머지 세 가지 미덕은 인간이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데 필연적인 것을 마련하고 유지하는 데 필요하다. 이러한 미덕들 덕분에 인간 사회는 형성되고 유지되며, 사람들이 자기 자신과 자신의 사람들을 위해 부와 유용한 것을 확보할 때 정신의 위대함과 탁월함이 드러난다.

그러나 플라톤이 매우 훌륭하게 설명했듯이 우리는 자신만을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다. 국가와 친구들이 우리 삶에 기여한 부분이 있으므로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자연과 인간의 본성을 이정표로 돕기 위해 태어났다. 이익을 중심에 두고 의무를 주고받으며, 기술과 노고와 재능을 나누어 사람들 사이의 유대를 다져야 한다. 스토학파 철학자들은, 자신이 말한 것을 그대로 실행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신의’라고 불렀다.

불의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불의를 저지르는 자의 불의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에게 가해진 불의를 물리칠 수 있는데 그렇게하지 않는 자의 불의다. 불의라 해도 일시적이고 순간적인 정신적인 혼란으로 인해 저지른 불의와 사전에 계획하고 의도한 불의는 크게 다르다.

갑작스런 충동에 의한 불의는 미리 계획된 불의보다 가벼운 죄로 여겨진다. 불의를 막을 의무를 저버리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사람들은 불의를 당하는 자에 대한 적대감이나 수고와 비용을 피하려는 마음에서 불의를 방관한다. 우리나라에거 지금 가장 불의한 집단이 민주당, 헌재와 선관위이다. 가장 정의로워야 할 재판관이 가장 불의하다.

무관심, 나태함, 무능력 때문에, 또는 자신의 일에 빠져 마땅히 보살펴야 할 사람을 소홀히 하기도 한다. 또는 자신의 일에 빠져 마땅히 보살펴야 할 사람을 소홀히 하기도 한다. 따라서 플라톤이 철학자들에게 대한 한 말이 적절한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



도덕적 올바름을 겉으로 드러난 국익보다 우선시한 훌륭한 사례글도 있다. 도덕적으로 부끄러운 일은 결코 유익할 수 없으며, 아무리 유익하게 보일지라도 실제로는 유익하지 않다. 도덕적으로 부끄러운 일을 유익하다고 착각하는 자체가 재앙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유익한 것과 도덕적으로 올바른 것이 정말로 도덕적으로 올바른 것과 상충하는지, 혹은 도덕적으로 올바른 것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지를 세심하게 검토해야 한다.

이런 문제와 관련된 사례를 보면, 로도스에 기근이 들어 곡물 가격이 폭등했을 때, 한 선량한 사람이 알렉산드리아에서 많은 곡물을 싣고 로도스로 향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그가 로도스인들에게 이 사실 알려야 하는가? 아니면 침묵한 채 자신이 가져온 곡물을 가장 비싼 가격에 팔아야 하는가? 우리는 지금 지혜롭고 선량한 사람의 예를 들고 있다.

이 사실을 숨기는 것이 도덕적으로 부끄러운 일이라고 판단된다면, 그는 로도스인들에게 사실을 숨기지 않을 것이다. 다만 이 사실을 숨기는 것이 도덕적으로 부끄러운 일인지 아닌지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우리는 바로 그런 사람이 이 문제를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논의할 수 있다.

이 경우, 위대하고 금욕주의적 스토아학파 철학자 바빌로니아의 디오게네스와 그의 제자이며 매우 예리한 통찰력을 지녔던 안티파테르의 견해는 서로 달랐다. 안티파테르는 판매자가 알고 있는 모든 정보를 구매자에게 공개하여 모르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디오게네스는 판매자 시민법이 밝힐 의무는 없으며, 속임수만 쓰지 않는다면 상품을 가장 높은 가격에 팔아도 된다고 주장했다.

고대 그리스 철학은 기원전 585년 밀레토스가 활동을 시작한 시점부터 로마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아카데미아를 폐쇄한 기원후 529년까지 그리스인들이 수행한 철학을 가리키며, 크게 세 시기 로 나뉜다. 제 1세기는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 시기로, 인간을 둘러싼 자연의 근원이 무엇인지를 탐구하는 자연철학이 특징이며, 이오니아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제 2세기 아테네 철학 시기로, 아테네가 페르시아 전쟁(기원전 492-448)에서 승리한 후 저명한 사상가들이 아테네로 모여들면서 고대 그리스 철학이 꽃을 피운 시기다. 이 시기에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이 활동했다. 키케로는 제 2기와 제 3기에 속한 모든 철학 학파의 사상을 두루 섭렵해 논할 때는 서로 다른 입장을 보였지만, 실천적 측면에서는 비슷했다.

키케로는 적대적 진리를 추구하기보다는 철학을 실천에서 적용해 얻는 실용적 철학을 추구했다. 소크라테스(기원적 약 470-399년) 는 당시 유물론적 자연 철학에 반대하여 이성과 이성적 추론을 통해 진리를 발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도 처음에는 자연을 관찰하여 진리를 찾으려 했지만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오로지 이성에 의지하여 진리를 발견하는 길을 택했다.

그는 우주론에 기초한 윤리학에서 벗어나 오직 이성과 논리적 추론에 기초한 철학을 개척하여 이후에 이성을 중지하는 모든 철학의 시조가 되었다. 아카데미아학파 소크라테스의 제자인 플라톤(기원전427-347) 은 유명한 이데아설을 제시했다. 그는 오직 ‘이데아’만 비물질적이고 영원하며 초월적인 절대적 실재라고 주장했다.

반면, 물질적이고 감각적인 존재는 정적이고 상대적인 것이며, 감각에 의존한 경험적 사물의 세계는 이데아의 그림자나 모상에 불과하다는 이원적 세계관을 취했다. 플라톤은 인간의 불멸하는 영혼이 본래 이데아계에 존재했다가 현세에 태어났으며, 이 영혼이 세계 혼의 인도 아래 이데아를 회상할 때 비로소 참된 인식에 도달할 수 있다고 보았다.

소요학파의 시조는 마케도니아 스타게이라 출신의 아리스토텔레스다. 그는 기원전 367-347년까지 아카데미아에서 연구하다가, 기원전 335년에 아테네 동부의 리케이온 학교을 세웠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리톤의 이데아론을 비판하면서도 플라톤의 관념론과 유물론 사이에서 중간 입장을 취했다. 만물과 그 현상은 이데아의 타락한 형태라고 본 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데아는 만물과 그 현상에 내재되어 있으므로 거기서 이데아를 찾을 수 있다고 보았다.

소크라스의 제자이자 견유학파의 창시자인 아테네 출신 안티스테네스(기원전445-365년)는 세상의 욕심을 버리고 덕을 추구하는 것만이 최고의 삶이라고 주장했다. 행복이란 인간의 본성적 욕구를 가장 쉬운 방법으로 만족시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본성적인 것은 부끄러운 흉함이 아니므로 감출 필요가 없다고 했다.

스토아학파 창시자인 제논 (지원적약 335-263) 은 지중해 동부 키프로스섬 그리스 식민지시 키티온 출신이다. 30세쯤 아테네로 와 여러 학파에서 배운 후 견유학파 철학을 훨씬 더 발전시키고 체계화 한 독자적인 철학을 정립했다. 의무론은 키케로가 철학을 공부하고 있는 자신의 아들에게 쓴 편지 형식이다.

정치에 관심을 갖고 자연과 지혜를 따르고 쾌락과 나태함을 조심하라고 했다. 나도 정치에 별로 관심이 없고 국제정세에 대한 책이나 다양한 주제의 책만 방구석에서 5000권 가까이 읽었는데 책을 읽고 나니까 애국심도 생기고 내가 살고 싶은 체제가 자유민주의의, 자유시장경제라서 그 체제를 지키려면 반국가세력들(민주당, 중국, 선관위, 헌재, 공산주의,사회주의, 북한)과 싸우고 대항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게 바로 키케로의 의무론에 입각해서 사는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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