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막한 독서 - 안나 카레니나에서 버지니아 울프까지, 문학의 빛나는 장면들
시로군 지음 / 북루덴스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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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때 한국문학 전집, 세계문학 전집을 읽고 그 뒤로는 소설은 거의 끓었다. 사상이나 과학, 논리, 법, 철학, 정치쪽만 많이 읽어서 마음은 완전 드라이해졌다. 진짜 감정은 없고 이성만 필요한 책을 읽으니까 보는 눈도 드라이해져서 감정의 호소에는 별로 동하지 않고 인과관계나 논리, 이성적으로 맞는 얘기에 더 끌리게 되는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 감정적인 부분이 살아나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걸고 다시 한 번 더 읽고 싶었다. 안나 카레니나에서 버지니아 울프까지 문학의 빛나는 장면들이 나온다. 책을 읽는다는 건 읽으려고 펼치긴 하지만 모르는 사이에 넋이 나가게 된다. 저자는 시로군이다. 저자는 독서모임진행자, 느리게 읽는 사람, 대학에서 영문학을, 대학원에서 국문학을 전공했다. 세계문학 읽기 모임 ⟦막막한 독서모임⟧, ⟦한책읽기⟧의 기획과 진행을 맡고 있다.

릴케와 울프에서 초조해 하지 않고 느리게 읽는 법과 한 장면에 오래 머무는 법을 배웠다. ‘닥치는 대로 많이 읽기’ 와 ‘파헤치듯 꼼꼼히 읽기’의 과정을 거쳐 요즘은 ‘함께 읽기의 즐거움’을 멤버들과 함께 나누고 있는 중이다. 오래 독서 모임을 진행해오면서 자연히 ‘책을 읽는다’ 는 말의 의미에 생각해 보게 됐다. 독서 모임을 진행해오면서 가장 좋았던 점은 수많은 감상들을 들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 감상들엔 항상 ‘저자가 미처 살피지 못한 디테일’과 ‘예상치 못한 관점’ 이 들어있었다. 막막한 독서 모임에는 ‘인상적인 장면’ 코너가 있다. 참가자 각자가 인상적으로 읽은 대목을 나누는 순서다. 핵심적이거나 감동적인 장면뿐만 아니라 사소하지만 웃겼던 장면, 궁금증이 일었던 장면을 나눈다. 서로가 짚어주는 한 대목, 한 장면을 이렇게 읽었구나, 상당수는 그런 감상 나누기를 통해 포착된 장면들이기도 한다.

╔말테의 수기╝의 독서 장면으로 돌아가 보면 이 장면이 이상적이었던 이유는 책을 펼쳐놓고 넋이 나간 가정교사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릴케의 서술에서 일종의 위로와 응원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안나를 대표하는 두 단어, SimpIe과 spirit: ╔안나카레나╝레프 톨스토이라는 두 단어를 기억한다.



⟦안나의⟧자신의 상황에 대한 솔직하고 깔끔한 태도는 몹시 골리 니쉬체프의 마음에 들었다. ⟦프랑켄슈티인⟧의 줄거리는 전기와 연금술에 꽂힌 한 ‘청년 과학도’가 있다. 그의 이름은 빅터이다. 그는 공포와 혐오감에 질려 실험실을 뛰쳐나간다. 자신이 만든 피조물을 빅터 프랑케슈타인 그는 시체와 부분들을 한데 모은 후 전기를 이용하여 새로운 생명체를 만들어 낸다. 그런데 막상 결과물이 생명을 얻어 꿈틀거리는 모습을 보니 흉측하기 그지없다.

그는 공포와 혐오감에 질려 실험실을 뛰쳐나간다. 자신이 만든 피조물을 내버려둔 채 도망친 것이다. 그런데 작가는 한동안 청년 과학도 빅터에게 초점을 두고 그의 내적 고뇌를 전한다. 자연의 아름다움이나 가족들의 천진하고 선한 모습은 오히려 자신이 놓인 처지를 일깨울 뿐이다. 후회와 양심의 가책에 시달리는 동안 그의 마음에 차츰 증오심이 싹튼다. 그러던 중 급기야 어린 동생이 처참하게 살해 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그는 괴물의 소행임을 직감하고 고통과 분노에 몸서리친다. ⟦프랑켄슈타인⟧2부는 소설에서 가장 흥미롭고 눈여겨볼 만한 대목이다. 무엇보다 두드러진 건 ‘괴물이 말을 한다’ 는 점이다. 많은 영화화 판본들이 괴물의 거대한 덩치‘ 흉측한 외모, 파괴적인 힘을 강조하는 것과는 다르다. 거기에는 괴물의 고뇌와 고통이 담겨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창조자에게 요청하는 것도 딱 한가지다.

자신이 그동안 무슨 일들을 겪었는지 들어달라는 것이다. 끈질긴 요청 끝에 프랑켄슈타인을 자리에 앉히는 데 성공한 괴물은 지금까지 자신이 겪어온 일들, 즉 사람들로부터 받아온 부당한 대접과 아무리 노력해도 인간 사회의 일원이 될 수 없었던 처지를 토로한다. 말하자면 무책임한 창조자를 상대로 한 괴물의 신세 한탄이다.

한참 동안 이어지는 이 이야기에서 괴물은 자기가 인간 사회의 일원이 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털어놓는다. 특히 말 (인간의 언어)을 배우고자 노력했음을 강조한다. 사람들에게 자신을 드러내기 전, 말을 배워 의사소통을 할 수있게 되면 자신의 흉측한 모습은 크게 문제가 안 되리라고 믿었었던 것이다.

⟦목로주점⟧은 ‘루공 마카르 총서’라는 큰 기획의 일부다. 거창하게 들리는 명칭이지만 루공 가문과 마카르가문, 드 가문의 이야기를 다룬다고 해서 붙여친 명칭이다.(소설 등장인물들이 모두 이 두 가문 소속이거나 두 가문과 혼인 등으로 연결되어 있다) ‘루공 가 브르조아와 상인으로 이뤄진 가문이며 ’마카르 가‘ 는 농부, 광부, 밀립꾼, 하층 노동자들로 이뤄진 계보가 사생으로 얼룩진 가문이다.



에밀 졸라는 기본적으로 장면 묘사에 뛰어난 작가여서 그냥 묘사대로 읽어나가는 재미만 해도 상당하다. 대사 역시 노동자들의 말투가 그대로 드러나 생생함을 전달한다. 여기에 얹어지는 중요한 작가적 시각이 있는데, 바로 졸라가 취한 ‘자연과학자의 시선’ 이다. 그는 냉정한 과학자의 시선으로 인간과 세상살이를 바라봤다. 요컨대 인간의 운명에는 개인의 의지나 열정, 선한 마음 같은 것보다 유전과 환경 같은 자연법칙 훨씬 중요하고 큰 영향을 끼친다고 본 것이다.

독자가 될 수밖에 없으며 폭력적인 환경에서 자란 아이는 어른이 되어서도 폭력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에밀 졸라는 자연과학자의 눈으로 세상과 인간을 보았는데, 그의 관점은 어떤 한 개인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그 사회 전체라는 관점이기도 하다. 이런 관점 아래 졸라는 19세기 중후반 프랑스 사회의 풍속, 가치관,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생활방식, 곧 시대상 전체를 상세히 묘사한다. 이런 면에서 졸라의 소설들을 ‘예술’ 보다는 ‘사회과학’에 더 가깝다고 보는 학자들도 있다.

⟦목로주점⟧에서 졸라는 ‘자본의 시대’를 살아가는 노동자들의 생활상을 때로는 사실적으로, 때로는 비유와 암시를 통해 묘사 한다. 이른 아침, 제르베즈의 시선은 시문을 통과하여 파리 시내로 향하는 노동자들의 행렬에 가닿는다. 이 행렬은 맥이 빠진 채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그들을 집어삼킬 입을 활짝 벌리고 있는 “괴물 같은 파리”향한다. 그런데 시문 옆에는 주점이 있고, 노동자들은 아침부터 일터가 아닌 주점으로 향한다.

읽은 책을 다시 읽게 될 때가 있다. 찾아볼 게 있어서 일부러 볼 때도 있지만, 좋아하는 책같은 경우에는 괜히 꺼내 들고 여기저기 뒤적이기도 한다. 특히 고전의 반열에 오른 세계문학은 다시 보는 경우가 드문 것 같다. 왜일까? 노래나 만화, 영화는 기꺼이 다시 보고 듣는데, 왜 문학 작품 다시 읽기는 고역처럼 여겨지는 걸까? 생각해 볼 문제다. 다시 읽기의 묘미는 역시 처음에 때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디테일들이 눈에 들어온다는 것이다.

한 번은 ⟦안나 카레니나⟧를 뒤적이다 위 인용 대문이 눈에 딱 들어왔다. 안나가 기차 안에서 소설을 읽는대목인데, 지하철에서 책을 읽을 때가 종종 있는 우리로서는 관심을 가져볼 만한 대목이다.

안나 카레니나에서 버지니아 울프까지 막독 리스트를 알아본다. 진실되고 단호한 박치기 돈키혼테, 안나를 대표하는 두 단어 simpie과 spirit안나 카레나, 누구라도 어디든 갈 곳이 한 군데는 있어야 한다.

죄와 벌 속내를 드러내지 말 것, 골짜기의 백합, 독서하는 괴물, 프랑켄슈타인, 인간의 심연을 관찰한다. 에드거 앨런 포 단편선, 위장과 역할놀이를 통해 사랑의 정의를 탐색한다. 좋을 대로 하시든지,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선 참마죽, 소통을 말한다. 상자속의 사나이, 산딸기, 권력에 맞서는 카프카적 방식 변신, 어느 계약직 직장인 선언은 “일을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필경사 바틀비, 독서를 통해 획득한 저항의 말들 제인 에어, 착한 딸들, 아버지의 질사에 반기를 들다.

댈러웨이 부인, 혁명 속에 개인 두 도시이야기, 노동자의 생활을 최초로 그렸다. 목로주점, 도움을 주기에는 장소가 좋지 않다 산시로, 극한 알바 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 안나의 기차 안 책 읽기 안나 카레니나, 한 줄의 시구를 얻기까지 말테의 수기, 책 읽기가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것은 버지니아 울프 독서 에세이등 이렇게 소설의 내용이 있었다. 이 책에 나오는 소설들은 거의 다 읽은 것들인데 다시 읽으니까 정리가 되는 것 같다.



서평단 이벤트에 참여하여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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