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선택, 카멀라 해리스
이채윤 지음 / 작가교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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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대학 선배가 해리스를 정말 안 좋게 얘기하고 트럼프를 후원하는데 내가 볼때는 트럼프가 이상한 것 같고 해리스가 더 나은 것 같은데 책을 한 번 읽어 보고 싶었다. 저자 이채윤은 정치에 관심이 없다. 정치가 팬덤화되는 것을 보고 걱정이 돼서 정치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차례를 보면 제1장 어린 시절과 가정환경 제2장 캐나다에서 보낸 시절 제3장 하워드 대학교에서의 시간 제4장 법학 공부와 첫 경력 제5장 검사로서의 경력 제6장 캘리포니아주 법무 장관 제7장 미국 캘리포니아주 상원의원 경력 제8장 첫 여성, 첫 흑인, 첫 아시아계 부통령제 8장 미래와 미국 대통령이다.

해리스는 뉴스에서만 가끔 보고 있다. 카멀라는 1964년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에서 이민자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도널드 해리스는 자메이카 출신 흑인 경제학자이자 스탠퍼드 대학교 교수였고 어머니 샤말라 고팔란은 인도 출신의 암 연구원이었다. 도널드와 샤말라는 도널드의 강연에서 만났고 서로에게 반했다.

진보적인 사상에 같이 관심이 많았고 민권운동, 반전운동에 참여했다. 1963년 7월 두 사람은 결혼했고 샤말라는 카멀라가 태어날 때 박사학위를 받았다. 카멀라라는 이름의 뜻은 연꽃, 힌두교 여신 락슈미의 이름이고 부와 번영, 행운을 상징한다. 카멀라의 부모님은 카멀라를 유모차에 태우고 평등을 원한다는 시위를 했다. 카멀라의 부모님은 카멀라가 7살 때 이혼하셨다.



카멀라의 어머니는 지식은 힘이고 원하는 세상을 만드는데 필요한 도구라고 했다. 카멀라는 흑인 침례 교회와 힌두교 사원을 같이 다녔다. 카멀라는 성경 읽기 대회에서 1등을 한 적도 있다. 12살 때 카멀라는 어머니와 캐나다 몬트리올로 이주했다. 어머니는 몬트리올 맥길 대학교 교수직과 유대인 종합병원에서 연구를 수행하는 기회를 얻었다.

몬트리올은 다문화적인 도시로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공존하는 곳이다. 샤말라는 에스트로겐 수용체와 프로게스테론 수용체가 유방암 세포의 성장과 증식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했다. 그녀의 연구는 호르몬 치료법 개발에도 중요한 기여를 했다. 카멀라의 어린 시절의 사진도 있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사진밖에는 없어서 아쉬웠다.

카멀라는 워싱턴 D.C에 위치한 흑인 대학인 하워드 대학교에 진학했다. 미국은 흑인 대학, 백인 대학, 동양인 대학이 따로 있는 건가,,카멀라가 하워드 대학에 진학한 이유는 흑인 역사와 문화에 깊이 뿌리박힌 기관으로서의 의미가 있어서이다. 그녀는 정치학과 경제학을 전공하며 흑인 학생회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경제학 학회 의장을 맡았다. 카멀라는 알파 카파 알파 소로리티에 가입하여 다양한 사회적 활동에 참여했다. 하워드에서 공부하는 동안 연방거래위원회에서 인턴으로 알바도 했다. 하워드를 졸업할 무렵, 카멀라는 사회 정의와 인권을 위한 법조인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 캘리포니아 대학교 헤이팅스 법학대학원에 입학했다.



카멀라는 로스쿨에 다니면서 다양한 법률기관에서 인턴을 했다. 헤이스팅스 법학전문대학원은 인종 차별이 존재하는 곳이었다. 흑인 학생들이 백인 학생들보다 취직하기가 어려웠다. 카멀라는 흑인 학생들이 로펌들과의 연결고리를 강화하고 더 많은 취업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노력했다. 취업박람회가 그 연결고리였다.

헤이스팅스에서 그녀는 학문적 도전과 성장의 기회를 가졌고 정치적 신념과 리더십을 강화하는 시기였다. 법의 이론과 실제를 깊이 있게 이해하고 다양한 인맥을 형성하며 사회적 정의를 위한 법적 접근 방식을 배웠다. 그런 것들이 그녀가 오늘날의 위치에 오르게한 중요한 기초가 되었다. 카멀라는 1989년에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카멀라는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 후 1990년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의 알라메다 카운티 지방검찰청에 보조 검사가 되었다. 알라메다 카운티 지방검사실은 다양한 범죄 사건을 다루는 법률 기관이다. 그녀는 경범죄와 중범죄 사건을 담당하며 범죄 수사와 기소과정에 참여했다. 카멀라는 알라메다 카운티 지방검찰청에서 일하는 동안 어린이 성폭력 사건을 다루며 피해자들을 위한 정의 실현에 힘썼다.

카멀라는 어린 피해자들을 위한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임무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1998년 카멀라는 알라메다 카운티 지방검찰청에서 9년간 근무하고 샌프란시스코 지방검사로 임명되었다. 이때는 폭력 및 연쇄 범죄자를 다루는 강력 범죄 부서를 맡았다.



카멀라는 샌프란시스코 검사장이 되었고 어머니 샤말라는 말년에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 유방암을 연구했는데 유방암이 걸린 것이 아이러니하다. 2009년 샤말라는 7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2010년 카멀라는 샌프란시스코 지방검사장 경험을 바탕으로 캘리포니아주 법무장관에 출마한다.

출마 공약은 법 집행의 공정성과 효율성을 높이고 경제 위기와 범죄 증가로 어려움을 겪는 주를 위해 일하겠다고 했다. 해리스가 74000표 차이로 승리하며 캘리포니아 최초의 여성, 최초의 흑인 및 최초의 남아시아계 법무장관이 되었다. 카멀라는 캘리포니아 법무장관으로서 형사사법개혁, 범죄 예방, 피해자 보호를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법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해리스는 버락 오바마를 지지했다. 이번에 해리스가 대통령 후보로 나오니까 버락 오바마가 지지연설을 하는 걸 봤다.

2014년 카멀라는 로스앤젤레스의 기업 변호사 더그 엠호프와 결혼했다. 카멀라는 엠호프를 온라인 데이팅 사이트를 통해 만났다.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깊은 관심과 존경을 바탕으로 사랑을 키워갔고 결혼을 결심했다. 2016년 카멀라는 캘리포니아주 상원의원에 선출되었다.

그녀는 형사사법개혁, 이민정책, 환경보호, 여성과 소수자권리보호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며 정치적 역량을 발휘했다. 트럼프는 여성 성폭행, 장애인 조롱, 인종 차별, 이민자 악마화, 전쟁 영웅과 골드스타 가족 공격, 언론에 대한 적대감, 증오를 조장하는 등 품위와 진실성의 모든 경계를 넘나드는 정치인이었다. 그를 대항하는 바이든 편에 서서 첫 여성, 첫 흑인, 첫 아시아계 부통령이 되었다.

이제는 부통령에서 대통령까지 도전하고 있다. 선배한테 얘기만 들었을 때는 대단한지 몰랐는데 이 책을 보니까 법조인과 정치인으로서도 엄청나게 능력있는 여성이었다. 그녀의 정책들도 좋은 게 많은 것 같다. 나도 어릴 때 로스쿨을 가고 법조인이 되었다면 검사가 되고 싶었을 것 같다. 이상한 트럼프가 아니라 정상적으로 보이는 카멀라가 대통령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책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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