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살아갈 수 없는데 다른 사람의 속을 명쾌하게 알도리가 없으니 마음이 늘 불편하고 찜찜하다. 또 저기 자신에 대한 평가도 타인의 눈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렇게 우리는 자유를 잃는다. 타인의 시선이라는 감옥에 갇히고 마는 것이다. 타인은 지옥을 우리식으로 표현하면 ‘인맥의 평판’이 아닐까. 젊었을 때는 인간관계가 매우 중했다.
인맥이 넓다는 것은 칭찬 중에서도 으뜸 칭찬이었다. 인맥이 중요한 시대였기에 덩달아 평단도 중요해졌다. 믿을 만하고 도움이 될 만한 사람이라고 소문이 나야 주변에 사람이 붙었다. 누군가 내리는 평가 한마디 한마디가 인간관계에 영향을 미쳤다. 그래서 누가 무엇을 부탁하는 것을 거절하기가 힘들었다. 직장상사가 명령하면 복종하고, 친구가 부르면 피곤해도 나갔다. 이것이 지난 세대들의 보통 모습이었다.
그들에게 ‘나’ 개인은 없었다. ‘우리’ 라는 무리 속에 끼인 ‘자신’이 있을 뿐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은 우리 아빠의 상황이 생각난다는 것이다. 사람들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결국 많은 경제력을 잃었다. 그로 인해 필요한 살림 도구 모두 시골 농가주택에 갖다 두었다가 버려야 하는 아픔, 많은 책들, 옷 등 어느 한 가지를 건진 것이 없다.
그래서 지금 나는 절대로 사람을 가까이 하지 않는다. 엄마도 사람을 가까이 사귀지 않고 평생 공부하고 책만 보면서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요즘은 어떤가, 정보는 더 이상 사람과 사람사이에서만 흐르지 않는다. 스마트폰을 타고 빠르고 평등하게 흘러든다. 인맥이 없어도 먹고 사는데 크게 지장이 없다. 그러므로 욕구에 따라 자발적으로 관계를 맺어도 괜찮다.
억지로 힘들게 유지하는 관계가 아니라, 호의를 바탕으로 맺은 관계가 대세가 된다니 희망적인 변화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계 맺기는 여전히 녹록지 않다. 인간관계는 문제다. 특히 억지로라도 모든 사람과는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 무례하게 상처를 주는 사람과는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 같은 질문을 많이 한다. 꼭 모두가 두루두루 잘 지낼 필요가 없는 세상에 살면서도 왜 이런 걱정을 하는 걸까? 잘 생각해 보면, 사람과 더불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의 관계에서 갈등을 겪는 것은 당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