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살까지 유쾌하게 나이 드는 법 - 어차피 살 거라면, 개정증보판
이근후 지음 / 메이븐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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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살까지 유쾌하게 나이 드는 법이 뭔지 궁금해서 이 책을 읽었다.나이 들어서도 유쾌하게 잘 사는 방법이 알면 행복하게 잘 살 것 같다. 저자 이근후는 이화여자대학교 교수이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로 50년간 환자들을 돌보고 학생들을 가르쳤다. 국내 최초로 폐쇄적인 정신 병동을 개방 병동으로 바꾸었고, 정신 질환 치료법으로 사이코드라마를 도입했으며, 대한 신경정신 의학회 화장을 역임하는 등 우리나라 정신의학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추전의 말 중에서 보면 이근후 저자는 중년의 시기를 탐색하는 데 도움을 주는 완벽한 가이드다. 90년이라는 한국의 역사를 온전히 살아온 그는 가식이나 자화자찬 없이 과거의 삶을 있는 그대로 인정한다. 이것은 분명 쉽지 않은 일이다. 나이 들어가는 게 두렵다면 사회가 정해 놓은 목표를 따라 가느라 지쳤다면 삶의 목표를 잃어 우울하다면 ‘돈 걱정 증후군’을 앓고 있다면, 아흔 살 노년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지난 시간을 후회하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말아야 한다. 어쨌든 하루하루 재미있게 살아야 한다. 몸의 아픔을 품격 있게 표현한다. 우리 사회는 어른이 쓴 책 아흔의 정신건강학과 의사는 말을 들어봐야 한다. 삶은 우연으로 가득찬 슬픔이고 내 생각대로 되는건 적고 그렇기에 유쾌하게 살아야 한다고 삶의 고비마다 참고가 될 만한 생각들이다.

겪지 못한 인생에 대한 최고의 간접 경험이다. 막상 살아보니 오늘 하루에 집중하는 삶이 나쁘지 않다. 오늘에 초점을 맞추면 성취거리가 많다. 아침에 건강히 눈을 떠서 하루치 숙제를 마친다. 그러면 걱정도 후회도 적고, 잠도 잘 온다. 다음날 눈을 뜨면 기분이 좋다. 나이 들었다고 억울해 하지 말았어야 했다.



미국의 유명한 정치 칼럼니스트 마이클 킨슬리는 40세 젊은 나이에 파킨스 병에 걸려 남들보다 재빠르게 노화를 경험했다. 신체의 변화를 겪는 동안 느끼는 소회를 담아 ⟪처음 늙어보는 사람들에게⟫라는 책을 섰는데, 거기에 재미있는 일화가 나온다.

킨슬리는 매일 아침 출근 전에 수영을 하곤 했는데, 어느 날 아침 수영장에서 한 노인을 만나게 되었다. 노인은 킨슬리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내 나이가 90이오." “와, 놀랍네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네요.” 그런데 노인은 칭찬에 우쭐해졌는지 가슴을 내밀면서 선언하듯 말했다. 나는 판사였다고, 나이만 말했으면 좋았을 것을 자신의 하는 일도 자랑하고픈 것이었다.

자본주의 사회는 열등감을 이용해 돈도 번다. 킨슬리는 그 노인의 판사라는 말에 심기가 불편했다. 경제적 능력이 줄어든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 화가나면 ‘화가 나는구나’ 하고 느껴본다. 킨슬리는 여전히 ‘삶의 대열’에 참여하고 있는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죽도록 일만 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열심히 일만 하며 살 필요가 없었는데 젊어서 죽도록 일만 하다 어느 날 돌아보니 애들은 이미 다 커 버리고, 아내와는 서먹해져 버린다. 더 안타까운 일은 그러한 현실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어차피 백년을 살아야 한다면 우리가 세상에 남길 수 있는 진정한 흔적은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들의 가슴에 남기는 좋은 기억뿐이다.

자신이 죽은 후에 누군가 자신으로 인해 사는 게 조금은 행복했었다고 말해 준다면 그보다 값진 인생은 없을 것이다. 저자가 아흔이 되어서야 깨달은 인간관계의 비밀은 타인은 지옥이라는 것이다.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의 유명한 말이다. 사람과 더불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은 필연적으로 다른 사람을 신경 쓰고 그의 눈치를 봐야 한다.



홀로 살아갈 수 없는데 다른 사람의 속을 명쾌하게 알도리가 없으니 마음이 늘 불편하고 찜찜하다. 또 저기 자신에 대한 평가도 타인의 눈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렇게 우리는 자유를 잃는다. 타인의 시선이라는 감옥에 갇히고 마는 것이다. 타인은 지옥을 우리식으로 표현하면 ‘인맥의 평판’이 아닐까. 젊었을 때는 인간관계가 매우 중했다.

인맥이 넓다는 것은 칭찬 중에서도 으뜸 칭찬이었다. 인맥이 중요한 시대였기에 덩달아 평단도 중요해졌다. 믿을 만하고 도움이 될 만한 사람이라고 소문이 나야 주변에 사람이 붙었다. 누군가 내리는 평가 한마디 한마디가 인간관계에 영향을 미쳤다. 그래서 누가 무엇을 부탁하는 것을 거절하기가 힘들었다. 직장상사가 명령하면 복종하고, 친구가 부르면 피곤해도 나갔다. 이것이 지난 세대들의 보통 모습이었다.

그들에게 ‘나’ 개인은 없었다. ‘우리’ 라는 무리 속에 끼인 ‘자신’이 있을 뿐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은 우리 아빠의 상황이 생각난다는 것이다. 사람들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결국 많은 경제력을 잃었다. 그로 인해 필요한 살림 도구 모두 시골 농가주택에 갖다 두었다가 버려야 하는 아픔, 많은 책들, 옷 등 어느 한 가지를 건진 것이 없다.

그래서 지금 나는 절대로 사람을 가까이 하지 않는다. 엄마도 사람을 가까이 사귀지 않고 평생 공부하고 책만 보면서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요즘은 어떤가, 정보는 더 이상 사람과 사람사이에서만 흐르지 않는다. 스마트폰을 타고 빠르고 평등하게 흘러든다. 인맥이 없어도 먹고 사는데 크게 지장이 없다. 그러므로 욕구에 따라 자발적으로 관계를 맺어도 괜찮다.

억지로 힘들게 유지하는 관계가 아니라, 호의를 바탕으로 맺은 관계가 대세가 된다니 희망적인 변화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계 맺기는 여전히 녹록지 않다. 인간관계는 문제다. 특히 억지로라도 모든 사람과는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 무례하게 상처를 주는 사람과는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 같은 질문을 많이 한다. 꼭 모두가 두루두루 잘 지낼 필요가 없는 세상에 살면서도 왜 이런 걱정을 하는 걸까? 잘 생각해 보면, 사람과 더불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의 관계에서 갈등을 겪는 것은 당연하다.



사람에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좋아하는 사람끼리 서로에게 같은 기대치를 갖고 있으면 싸울 일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일은 불가능하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가 내 마음을 다 알거라는 환상적인 기대야 말로 갈등의 주범이다.

외로움을 꼭 사람으로 달랠 필요 없다. 기대를 버리고 나면 외로움이 밀려올지도 모른다. 이 세상에서 누가 내 마음을 알아줄까 싶어 허망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외로운 마음을 꼭 사람으로 달랠 필요는 없다. 함께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장소나 존재도 있다. 반려동물을 가장 믿음직한 친구로 꼽는 사람들도 있다. 바다에 가면 저절로 울분이 풀린다는 사람도 있다.

마음에도 에너지가 든다는 사실을 명심한다. 젊어서 마당발로 불리던 저자의 친구가 이었다. 그러던 것이 세월이 흐를수록 그를 찾는 사람이 줄었다. 나중에는 아무도 연락하지 않는 외톨이가 되었다. 그는 손절의 전문가였다.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 사람을 미움으로 단죄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상대에게만 상처를 입히는 미움은 없다. 미워하는 동안 자기가 가진 에너지와 시간도 함께 소진된다. 특히 나이가 들수록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올바른 선택은 차라리 그에 대한 관심을 끄고,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한다. 미움이 마음을 휩쓸 때는 꼭 기억하기를 미움에도 에너지가 든다는 사실을 기억한다. 사람이 그리울 땐 먼저 다가간다. 아흔이 되어서야 알게 된 것 하나는 사람에 대한 미움보다, 그리움이 더 오래 남는다는 것이다. 난 최소한의 인간관계만 맺고 하나님께만 집중한다. 그게 손해가 별로 없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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