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해력이 받춰줘야 신앙도 업그레이드된다는 얘기에 확 꽂혔다. 문해력, 이해력, 독해력에 너무 관심이 많은데 문해력이 있어야지 신앙도 성장한다는 얘기가 도대체 뭘까라는 궁금증이 너무 들어서 이 책을 읽는다고 해도 다이다. 문해력은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이어서 신앙생활에선 매우 중요하다. 아,,,,문해력도 신앙에 영향을 끼친다,,,문해력은 세상을 살아가는 힘이고 정보와 지식을 흡수하는 자기만의 방식이고 범접할 수 없는 격차를 만들어내는 결정적인 한 수이다. 와,,이런 문해력을 다들 원해도 손에 못 쥐는 건 이것이 독서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책을 깊이 읽은 내공을 가져야만 문해력이 주어진다. 문해력이 생기면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된다. 언어 너머의 세계가 보이기 시작한다. 평소 우리가 기도와 말씀으로 깨어서 성령과 동행하는 사람, 빛과 소금처럼 사는 삶을 꿈꿔도 이게 말잔치로 끝나는 건 나와 나를 둘러싼 세계를 읽는 힘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문학으로 비유한다면 읽는 것과 읽고 싶다는 것의 차이를 모르는 것이다. 한마디로 신앙의 기초체력인 문해력이 부족한 것이다. 장미의 이름에서 주인공 수도사 윌리엄은 책을 읽는 눈이 없으면 서책은 그저 기호에 불과하다. 글을 읽는 힘이 좋아지면 독서가 기도처럼 느껴진다. 미국 작가 매들렌 렝글은 천천히, 천천히, 나는 기도를 듣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책이 하는 말에 귀 기울이는 법을 배우고 있다. 인생에 대한 톨스토이의 깊은 사유는 소설뿐 아니라 에세이 인생에 대하여에도 잘 나와 있다. 그는 눈을 뜨기 전까지 꿈은 꿈이 아니며 깨어나는 순간에야 비로소 그 모든 것이 꿈이 된다라고 썼는데 이런 문장은 그에게 통찰이 있다는 걸 보여준다. 이런 통찰은 문해력을 가진 사람만이 손에 넣는데 그 힘이 꼭 기도 같다. 문해력을 터득할 땐 소설을 읽는 게 가장 효과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