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학십도 - 수천 년 지혜를 만나는 가장 손쉬운 길 클래식 아고라 5
이황 지음, 강보승 옮김.해설 / arte(아르테)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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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만 듣던 성학십도라서 전문으로 되어 있는 걸 한 번 보고 싶었다. 국부론도 전문으로 보니까 막연하고 안개 속에 쌓였던 것이 환해지는 느낌이었다. 퇴계 이황은 1501~1570년 생존했던 조선의 유학자이다. 경북 안동 출신으로 자는 경호, 호는 퇴계이다. 홀어머니 슬하에서 자랐고 서른넷에 벼슬길에 나아가 문장과 덕행으로 이름이 높아졌고 교육, 학문, 외교 분야에서 활약했다. 성균관대사성 고위직에 임명되었지만 사퇴했다. 고향으로 물러나 학문과 교육, 수양에 전념하면서 많은 제자를 길렀고 조정의 벼슬을 사양하다가 말년에 서울에 올라와 임금을 위한 수양서인 성학십도를 지었다. 선비, 학자, 교육자, 정치가의 모범이자 탈권위적이고 인간적인 면모로 학파나 당파, 시대를 초월하여 추앙받았으며 일본과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사상계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이황은 내가 바라는 인간상같다.

차례를 보면 제1도 태극도, 제2도 서명도, 제3도 소학도, 제4도 대학도, 제5도 백록동규도, 제6도 심통성정도, 제7도 인설도, 제8도 심학도. 제9도 경재잠도, 제 10도 숙흥야매잠도이다. 고전은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길을 안내하고 검증된 지도이다. 고전이라는 지도는 우리가 결국 도착해야 할 목적지를 알려주고 산과 들, 강과 바다, 해와 달과 별을 이정표로 목적지를 안내한다. 성학십도는 퇴계 이황이 삶의 길을 찾는 사람들을 위해 그렸다. 원래는 임금을 위한 길이었지만 너무 좋아서 위정자, 선비, 제자, 외국인들까지 봤다. 500년 가까이 우리나라에서는 최고의 지도였고 중국와 일본에서도 최고의 지도로 인정 받았다. 세상이 아무리 변하여도 사람들이 최종적으로 추구하는 가치와 행복은 자신을 완성하고 남과 더불어 행복해지는 것이다. 퇴계는 인간의 순수하고 선한 본성을 긍정하고 그 본성에 따라 인간이 주체적이고 능동적으로 도덕적 삶을 살 수 있다는 이발설을 주장했다. 그는 인간의 완벽한 본성을 회복할 수 있는 경을 핵심으로 하는 수양을 강조했다.

고봉 기대승과 벌인 8년여의 사단칠정논쟁을 통해 도덕 감정과 일반 감정의 발생 경로를 탐구하고 본성을 함양하고 감정을 제어하여 우리가 더욱 인간다운 존재로 거듭날 수 있다고 했다. 성학십도는 책이 아니라 상소문에 포함된 그림과 해설이다. 성학십도가 포함된 상소문의 명칭은 진성학십도차병도인데 성학에 관한 열 개의 그림을 올리는 상소문이다. 성학은 성현의 덕성을 갖추기 위한 학문이다. 어린 왕에게 성학을 제시하기 위해 퇴계는 여러 현인의 말과 자신의 견해를 열 개의 그림과 해설로 집약했다. 성리학의 체계와 내용을 집약한 것이다. 성학십도는 도덕적 본성의 자각과 그 회복 방안의 제시라는 틀로 보면 된다. 난 이 책에 나오는 심통정정도는 한 번 읽어본적이 있는데 그때 정말 어렵게 느껴졌다.

성학십도 서문은 성학십도앞에 붙여진 퇴계의 상소문이다. 서문에서 퇴계는 임금이 왜 자신의 마음을 다스려야 하고 왜 성군이 되어야 하는지를 자상하게 말하고 있다. 유학자들이 임금을 계도하여 정치를 바르게 하려는 것은 집중된 권력으로부터 필연적으로 야기될 수밖에 없는 폭력의 방지를 위해서이다. 임금을 비롯한 권력자들이 스스로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면 그 결과는 폭력에 의한 약자의 희생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 때문에 유학자들은 목숨을 걸고서라도 임금에게 아니 되옵니다라고 진언했다. 수기치인, 내성외왕 모두 이런 폭력의 방지를 위해 유학이 제시한 길이다. 보위에 오른 열일곱의 선조에게 올린 성학십도서문에는 임금과 나라를 위하는 퇴계의 간절한 마음이 담겨 있으며 유학자로서 퇴계에게 부여된 사명과 그 사명을 충실히 이행하고자 하는 그의 의지가 잘 나타나 있다.

성학십도의 내용을 보면 전하, 성학십도는 그림과 해설을 겨우 열 폭의 종이 위에 나열한 것일 뿐이니 생각하고 배우는 공부는 반드시 평소 거처하는 곳에서 이루어 나가야 합니다. 하지만 도를 이루어 성인이 되는 요점과 근본을 바르게 하여 올바른 다스림을 이루는 근원이 성학십도에 모두 갖추어져 있으니 전하께서는 오직 여기에 마음을 두시고 굳은 의지를 더하시어 처음부터 끝까지 반복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상소문투이다. ㅋㅋㅋㅋ 서문에서 퇴계는 선조에게 순임금처럼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배움과 실천에 매진할 것을 요청했다. 순은 인격과 역량을 갖추고 하늘과 같은 경지에 이른 성인이자 군주이다. 퇴계를 비롯한 성리학자들에게 완벽한 인간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회복되는 것이다. 인간의 본성은 하늘의 이치를 받은 것이므로 인간의 본질은 하늘과 같다. 그러나 타고난 기질이나 후천적 환경, 경험 등에 의해 본질이 가려진다. 따라서 수양을 통해 본성을 가리는 요소들을 걷어내면 인간은 본성을 회복할 수 있다.

유학은 인간의 본성이 순수하고 선하다고 단언한다. 서양의 종교나 철학, 사상은 기본적으로 인간의 본성을 악하거나 이기적이라고 규정한다. 서양의 종교는 인간 스스로 성인의 경지에 올라 하늘과 동등해지는 것이 아닌 하늘의 명에 순종하여 구원받는 것을 중시한다. 서양의 철학과 사상이 그리스 이래로 이성을 강조한 것도 이기적인 인간 본성을 통제하고 완화하기 위함이다. 태극도를 통해 퇴계는 인간은 완벽하며 선조 당신도 완벽하다고 했다. 군자는 성인외 되기 위하여 수양하므로 길하고 소인은 그렇지 않으므로 흉하다. 태극은 우주의 근본적 원리, 근본적 진리를 가리키는 말이다. 태극은 느낄 수는 없으나 엄연히 존재하는 궁극적 원리이자 진리이다. 퇴계는 태극을 어떤 실체로 이해하는 것을 막기 위해 무극이라는 개념과 함께 설명하였다. 태극은 음과 양으로 이루어지고 음과 양이 활동하여 오행, 화수목금토라는 만물의 원초적 특징들을 낳게 된다.

오행은 물로 나무가 자라고 땅에서 쇠가 나오는 것과 같은 상생의 관계와 물은 불을 꺼뜨리고 불은 쇠를 녹이고 쇠는 나무를 베는 것과 같은 상극의 관계로 운행된다. 오행의 이러한 상호관계로 만물이 생성되며 만물 각각에는 태극이라는 이치가 내재하게 된다. 인간의 근원과 생성 원리는 만물과 동일하지만 인간은 다른 존재와 달리 가장 빼어나고 순수한 기가 응축되어 이루어진다. 만물이 저마다 다르듯 인간도 타고난 기질이 저마다 다르므로 성인과 일반인의 차이가 생긴다. 타고난 기질이 다르더라도 극복할 수 있으니 수양으로 기질을 극복해 가는 사람은 군자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소인이 된다. 전하, 성인을 본받고자 하는 사람은 태극도에서부터 실마리를 구해나가고 다음으로 소학과 대학 같은 책을 힘써 배워야 합니다.

서명은 송나라유학자 장재가 지은 글이다. 서명도는 태극도의 내용을 인을 중심으로 확장하였다. 임금이 돌보아야 할 사람들과 존재들 및 그 존재들을 돌보는 길로써의 인과 효를 상도와 하도로 나누어 제시했다. 소학도는 소학의 체계와 내용을 토대로 퇴계가 그림으로 도식화한 것이다. 태극도와 서명도를 통해 세상의 근본적인 이치와 삶의 거시적인 방향을 제시했다. 눈높이를 낮추어 소학도를 제시하였으니 이는 이상은 높게 두되 실천은 현실의 나로부터 해 나가야 함을 의미한다. 하학상달이라고 하는데 현실에서 배우고 이상에 도달한다는 것이다. 대학도는 퇴계가 대학 첫 장의 체계와 의미를 그림으로 그린 것이다. 대학은 공자가 제자인 증자에게 전한 것이다. 대학은 원래 중용과 함께 예기의 한 편으로 수록되어 있었는데 주희가 이 두 편을 분리하여 논어, 맹자와 함께 사서의 체계를 만들었다. 논어, 맹자, 대학, 중용의 사서는 성리학에서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경전이며 주희 이전까지는 오경이 유학의 중심이었다.

백록동규는 주희가 중건한 백록동서원의 학칙이며 백록동규도는 주희의 백록동규를 바탕으로 퇴계가 그린 그림이다. 퇴계는 백록동규도를 통하여 대학도에서 제시한 학문과 실천의 길을 구체화하였다. 학문은 오륜으로 대표되는 인간관계의 도덕적 원칙과 질서를 자율적으로 배우고 실천하는 것이다. 부자유친, 군신유의, 부부유별, 장유유서, 붕우유신으로 맹자가 처음 제시했다. 전하, 이상 태극도부터 백록동규도까지의 다섯 가지 그림은 하늘의 도를 근본으로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섯 그림의 목적은 인간이 나아가야 할 길을 밝히고 덕을 쌓아가는 데에 힘쓰도록 하는 것입니다. 심통성정도부터 마지막 숙흥야매잠도까지는 이론의 측면을 제시하면서도 어떻게 구체적으로 수양할 것인가하는 실천의 측면에서 그림과 설명을 제시한다. 실천은 마음속 감정이나 의지가 행동으로 표출되는 것이다. 실천 곧 행동을 일으키는 마음을 먼저 살피고 바르게 해야 할 것이다.

퇴계는 실천에 선행하여 올바른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심통성정도, 인설도, 심학도를 순차적으로 싣고 있다. 도덕적인 삶은 어떠한 마음을 가지느냐 곧 마음먹기에 달린 문제이다. 성이 있으므로 선한 동기는 이미 우리가 가지고 있지만 그 동기를 선한 쪽으로 이끌고 가려면 마음의 의지가 필요하다. 자신의 마음을 이해하고 마음 속 본성을 보존하며 마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심통성정은 마음이 본성과 감성을 통괄한다는 뜻이다. 통은 통괄과 통솔이다. 통괄한다고 보면 본성과 감정을 모두 포함하는 것이 마음이라고 심통성정을 해석할 수 있고 통솔한다고 보면 마음이 본성은 곧 이치이고 이는 기를 주재하는데 마음이 본성을 통솔한다고 하면 기가 이를 주재하는 것이 된다. 마음 자체는 기이기 때문이다. 학계에서는 대체로 마음이 본성을 기준으로 감정을 통제한다는 의미이다. 상도는 순수하고 선한 본성의 측면에서 마음을 분석하고 오상, 인의예지신에서 발현되는 다섯 가지 도덕 감정을 위주로 마음의 본질을 제시하였다. 중도는 칠정이고 하도는 기질지성이다. 성리학에 대해서 잘 정리되어 있는 것 같다. 이황의 개인적인 삶은 불행했지만 그의 지적인 면모는 멋있는 것 같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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