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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시가 필요한 시간
장석주 지음 / 나무생각 / 2023년 10월
평점 :

엄마가 동네구에서 개최한 백일장에서 2등을 하셨다.
내가 읽어보고 엄마께 읽어보라고 하고 싶다.
엄마께서 시에 대해서 더 깊이 아셨으면 좋겠다.
저자 장석주는 매일 읽고 쓰는 시인이자 에세이스트, 인문학 저술가, 출판 편집자, 대학 강사, 방송 진행자, 강연가이다.
난 감성은 없고 이성적인데 이 책으로 시를 한번 느끼고 이해해보려고 한다.
시는 무의식, 충동, 시작도 끝도 없는 모호함, 놀랍도록 독창적인 상상에서 시는 시작하고 혼자 온다.
가늠할 수 없는 먼 곳에서 부재의 빛으로 오는 시는 스스로 발광체처럼 빛난다.
역시 언어가 모호한 것 같다.
반딧불처럼 왔다가 사라진다고 한다.
낯익은 것에서 낯선 것을 보고 의외성을 가진 이미지, 저자가 얘기하는 시들은 내가 이해하기에는 힘든 점이 있다.
좋은 시는 물음을 핵심으로 삼는다.
이성과 논리가 아니라 직관을 뚫고 나오는 이 물음들은 잠든 의식을 깨우고 몽매함이라는 구덩이에서 자아를 끄집어내는 집게다.
이해하고 느끼려고 정말 노력하고 있다.
시의 물음은 굳이 답을 요구하지 않는다.
시를 쓰는 일은 무위에 헌신하고 아무 쓸모가 없는 아름다움을 구하는 일이다.
뭔말?
무위는 아무것도 하는 일이 없고 이룬 것이 없는 것이다.
철학자 하이데거는 이 덧없고 하염없는 일이 진리를 환히 밝히는 기투의 한 방식이라고 단언한다.
하염없이는 시름에 싸여 멍하니 이렇다 할 만한 아무 생각이 없는 것이고 어떤 행동이나 심리 상태 따위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계속되는 상태이다.
기투는 현재를 초월하여 미래에로 자기를 내던지는 실존의 존재 방식이다.
하이데거나 사르트르의 실존주의의 기본 개념이다.
기투는 이해의 구조를 어떤 것에 의거해 다른 어떤 것을 이해하는 구조를 특징짓는 말이다.
현존재는 언제나 자신을 자신의 존재가능성에로 던지고 그렇게 던져진 자신의 존재가능성에 의거해 자기 자신을 이해한다.
그 자신이 현존재로 존재하는 한 그때마다 이미 자신을 기투하였고 기투하면서 존재한다.
현존재는 자신의 긍극목적을 향해 자신을 기투할 뿐 아니라 이로써 목적과 수단의 계열에서 수단을 하나하나 유의의화하기 위해 도구적인 것으로 하여금 쓸모를 갖도록 한다.
자신을 세계의 세계성인 유의의성을 향해 기투한다.
기투가 새로운 가능성을 창안하는 것은 아니다.
내던져져 있는 기투로서의 이해는 어떤 기분에 젖은 정황 속에서 드러나는 가능성을 가능성으로 선취한다.
유의의화란 의의 있게 만듦을 의미한다.
유의의성은 존재자 전체의 지시적 관련연관에 대한 다른 이름이다.
의의화 작용은 목적과 수단의 계열을 의의 있게 만들어 준다.
선취는 남보다 먼저 갖는 것이다.
시를 쓰면 의미를 갖게 한다는 것 같다.
시를 쓰는 이들은 자신과 제 경험을 탈취하여 언어 속으로 밀어넣는다.
탈취는 빼앗아 가지는 것이다.
언어 자체는 시가 아니다.
시는 언어를 넘어서서 이미지가 이끄는 대로 미지로 나아간다.
이런 행위는 누구의 강압도 아닌 자발적인 행위다.
시가 시인의 내밀한 욕망과 감정의 마그마를 분출하는 일이라면 그 에너지는 우리 안의 동물적 원초성이다.
인간은 행위와 욕망의 원천인 감정을 취하고 그것에 영향을 받는 존재다.
사람마다 감정이 촉발하는 발화점은 다르다.
감정은 제어되고 조절되면서도 불안정하게 솟구치는 걸 막기는 어렵다.
마사 누스바움은 감정이란 이성적 추론이 미치지 않는 맹목적인 힘이라고 했다.
비합리적인 비사유의 영역은 슬픔, 두려움, 불안, 절망, 분노, 연민, 우울 등 주체의 여러 감정이 공적 삶에 영향을 미친다.
시인은 감정에 포획되지만 그것에 휘둘리지는 않는다.
감정의 일렁임을 관조하고 그것에서 시심을 , 시의 이미지들을 불러낸다.
감정의 애틋함은 시인에게 기초적인 시적 동기이다.
감정은 시의 촉매이고 시에 생명과 그 실감의 풍성함을 불어넣는 기제다.
기제는 인간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심리의 작용이나 원리이다.

사랑하는 자의 얼굴이 빛나는 것은 사랑이 신의 영역인 무한과 불멸에 기대고 그 불가능성을 욕망하는 일이라서 그렇다.
이 빛은 사랑하는 자가 내 것이 되었다는 안도감과 영웅적 성취감이 만들어낸다.
사랑이 사라지면 이 빛도 꺼진다.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사랑은 진부하지만 사랑한다는 선언 속에서 그 생명을 얻는다.
사랑한다는 말은 그저 말소리가 아니라 의미의 범주화라는 맥락에서 너는 내게 의미가 있는 존재라거나 네가 없다면 내가 사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
사랑에 빠져서 사랑한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 사랑한다고 말함으로써 사랑에 빠져든다.
사랑은 기쁨과 불안을 동반한다.
그 감정이 곧 사랑은 아니다.
사랑은 사랑할 수 없음의 불가피하고 당위적인 부정이다.
사랑은 사랑할 수 없음을 피할 수 없고 마땅히 그렇게 되어야 함의 부정이다.
사랑은 다른 선택지를 다 지워버린 사랑할 수 밖에 없음이다.
사랑할 수 밖에 없음은 윤리로 도포되는데 이것은 사랑이 전략적인 행위에 기대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은 윤리가 씌어져 있고 사랑을 꾸미고 이루어가는 교묘한 방법에 기댄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더 착해지고 더 우아해지고 더 자주 호감을 사는 행동을 하려고 한다.
사랑은 타인을 향한 무조건적인 환대이고 사랑에 빠지는 것은 대상을 이상화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사랑에 빠진 이들은 제 매력을 증대시키고 상대의 매력은 더 과장해서 바라본다.
대상의 매력을 극대화해서 보는 것은 기만에 가까운 행위다.
기만은 남을 속이는 것이다.
사기도 남을 속이는 것인데 속이는 것은 거짓이나 꾐에 넘어가게 하는 것이다.
식은 재는 불꽃을 일으키지 못한다.
한껏 달아오른 감정만이 불꽃을 일으키며 타오른다.
사랑이 자주 의심과 혼란을 동반하는 것은 그것이 감정의 기만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남녀의 사랑에는 영혼을 혼란스럽게 하는 요소가 끼어든다.
부모의 자식 사랑에는 그런 혼란이 없다.
어미의 사랑은 흥분과 불안이 배제된 투명함 그 자체이다.
포옹
이기성
비가 수천의 하얀 팔을 뻗어
너를 안는다.
흰 도화지 같은 공중에
너의 입을 예쁘게 그려줄게
주르륵 녹아 흐르는 입을 다시 그려줄게
똑같은 노래를 반복하는 파란 입술 그려줄게
비의 하얀 팔들은 어디로 가서
낯선 얼굴 어루만지는, 어디로 날아가
검고 차가운 목덜미를 감싸며 흩어지는지
아직 해야 할 이야기가 있고
아직 따뜻하고 고요한 뺨이 있다는 듯
주황색 포클레인이 우뚝 멈춰 있다
부서진 옥상 위
아이의 슬리퍼가 고요히 젖고 있다
비의 팔들은 모두 어디로 날아가는지
퍼붓는 빗속에서 아이는
하염없이 입을 벌리고 걸어간다
시인은 너를 명확히 밝히지 않는다.
너는 시인이 마음에 품은 한 사람일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시인이 너를 특정하지 않는 이유는 너가 멀리 있기 때문이다.
너를 끌어안는 이 포옹은 환대의 행위이고 애틋한 다정함의 표현이다.
하지만 상상 속에서만 가능하기에 이 포옹은 허전하고 공허한 일이다.
따뜻한 뺨에 뺨을 맞대고 부비고 싶은데 그 대상은 여기에 없다.
이 책은 처음에는 시에 대한 언어가 익숙하지 않아서 낯설었지만 계속 읽다보니까 적응이 되고 시에 대한 공부를 재미있게 했다.
시를 공부한다는 건 낯설지만 흥미로운 경험인 것 같다.
엄마가 시를 쓰고나면 나에게 읽어주는데 그 시를 읽어줄 때의 엄마는 업되어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시를 쓰면 또 다른 자아와 타자를 만나는 새로운 경험을 한다는 걸 알았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