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배울 수 있다면 - 사랑을 이해하는 철학적 가이드북
로버트 C. 솔로몬 지음, 이명호 옮김 / 오도스(odos)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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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로버트 C.솔로몬은 미국 텍사스대학교 철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난 사랑이 무엇이고 사랑을 어떻게 성취를 하고 어떻게 사랑을 유지하는지 알고 싶다.

난 요셉처럼 정결하고 순결하고 깨끗하고 음란한 것에는 단호한 남자가 좋은데 사람들은 그런 남자가 어디있겠냐고 회의적으로 얘기한다.

대학교 때 선교단체 간사님이 내가 결혼을 가장 늦게 할거라고 하더니 연애는 시작도 해본적이 없다.

내 친구는 내가 남자를 만나기 힘들거라고 했다.

내가 영성이 너무 높은 남자를 원해서라고 한다.

난 그냥 나처럼 성경 말씀대로 살고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고 성경말씀을 잘 지키는 걸 원하는데 그게 그렇게 어려운가라는 생각이 든다.

나처럼 살면 하나님안에서 최고이고 엄청 당당하고 행복할텐데말이다.

언제 만나든지 그게 하나님때라고 생각하고 하나님께 모든 책임을 전가시키면 걱정이 없을텐데말이다.

사랑은 일시적인 느낌이나 열정이 아니며 최초의 끌림과 젊은 첫사랑이라는 한정된 용어로 생각되어서도 안 된다.

사랑를 과도하게 길들이거나 이상화해서도 안 된다.

사랑이 지속되지 않는 것은 사랑을 오해하고 사랑에 관심을 잃고 사랑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거나 직업적 커리어와 반복되는 일상으로 사랑을 질식시키기 때문이다.

사랑은 사랑이 자신을 중요한 것으로 인정하고 사랑이 자신의 어려움에 직면할 때 사랑이 열정이 아니라 과정으로 자신을 이해할 때 지속된다.

사랑은 사람들이 대부분이 마주했거나 마주하게 될 가장 환희에 찬 또한 종종 가장 고통스럽고 파괴적인 경험이다.

미국에서만 매일 6천 명의 10대들이 새롭게 사랑의 행위속으로 입문하고 미국에서만 매일 6천 명이 이혼하고 6천 개의 사랑이 법적으로 종료된다.

이 수치는 사랑과 이혼의 상관관계를 보여주는 통계이다.

사랑은 사회적 발명품이고 사회에서 아주 특별한 기능을 수행하는 관념들의 구성물이다.

사랑은 보편적 현상이 아니라 성적 끌림과 그로부터 비롯되는 복잡한 문제들이라는 보편적 현상에 대해 문화적으로 특수하게 내린 해석이다.

사랑은 생물학에서 시작될 수 있지만 본질적으로 일련의 관념들이다.

사랑은 그 원천인 생물학적 충동에 반할 수 있다.

낭만적 사랑의 역사는 섹스에 대한 특별한 태도의 역사이다.

사랑이 너무 모호하다면 섹스는 너무 구체적이다.

사랑은 섹스 이상이다.

이 이상때문에 사랑은 모호하다.

사랑이 손에 잡히지 않고 모호한 이유는 이 이상이 다름 아닌 우리 자신이 하는 일이고 우리가 그것을 바라볼 때 그것은 계속 바뀌기 때문이다.

사랑에서 결정적인 순간은 만남의 순간, 첫 시선과 첫 접촉과 첫 애무가 아니라 결정적 순간은 섹스를 하거나 사랑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한마디 말 혹은 나는 당신을 사랑해라는 작은 세마디 말이다.

이 세마디 말에서 첫 번째 말은 자아를 가리키고 세 번째 말은 타인을 가리킨다.

그 사이에 있는 동사는 의도와 의무와 사회적 기대의 놀랍고 새로운 복합체 속으로 두 사람을 끌어들인다.

사랑에는 욕망과 느낌이 들어 있다.

사랑이 욕망이나 느낌뿐이라면 사랑을 선언하거나 사랑이라고 부를 필요는 없다.

사랑이 우리 인생에서 최고로 중요한 사건이라고 밝힐 필요는 없다.

그게 사실이라면 우리는 사랑이 잘못될 수 있다는 점을 걱정하지 않고 진정한 것인지 아닌지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사랑은 상호적이다.

그것은 특정한 한 사람에 대한 사랑이며 우리가 돌려받기를 원하는 사랑이다.

낭만적 사랑은 아무리 억제되고 성숙하고 승화되어 있다고 해도 그 기원과 동기는 성적이다.

낭만적 사랑은 자발적이고 자유의지에 따른 것으로서 환경의 문제만이 아니라 의지의 문제이다.

무엇보다 낭만적 사랑의 본질적인 구조는 섹스이다.

낭만적 사랑은 섹스에 관한 것이 아니라 섹스에 기대고 섹스를 즐기고 섹스를 매개체이자 언어, 종종 주요 내용으로 이용한다.

낭만적 사랑은 성적 끌림의 영감과 환희와 함께 시작된다.

사랑의 핵심적이 요소는 동반자, 섹스, 결혼과 맺는 자연스러운 연결 끈, 열정이 갖는 엄청난 중요성과 열정을 잃을 때의 파멸적 충격을 하나로 묶어주는 개념적 중핵이다.

사랑을 구성하는 이 중핵적 요소는 개별적 자아정체성이다.

사랑은 모순의 드라마다.

독립적 개인은 사랑의 전제 조건이지만 사랑이 극복하고 부인하고 싶어하는 것이 독립성이다.

개인은 자기 정의를 주장하지만 사랑은 공유된 정의가 필요하다.

사랑의 역설은 남성과 여성 사이의 역설, 남성적인 것과 여성적인 것 사이의 역설이다.

두 섹스나 두 젠더나 두 마음의 역설이 아니라 두 문화, 인생을 바라보는 두 모순적인 견해 사이의 역설이다.

사랑을 느낌으로 생각하고 사랑이 지속되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것은 어리석다.

느낌은 지속되지 않는다.

사랑의 자기 인식은 사랑이 가변적이며 성찰과 비판의 과정에서 변화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사랑은 감정적 과정이다.

낭만적 사랑의 근저에는 로맨스, 즉 이야기가 있다.

사랑은 단순히 순간적이 열정이 아니라 감정의 전개이다.

평생 지속되는 사랑은 사랑과 우정이 하나로 수렴되는 이성적 모델을 보여준다.

사랑에 빠지는 첫 단계에서는 사랑이 현명한지 어리석은지 진짜로 실현 가능성이 있는지 아니면 착각과 자기기만에 기초한 것인지 알 수 없다.

시간이 흘러 한결 현명해진 눈으로 뒤돌아보면 사랑의 시작 단계를 판단할 여러 방식들이 존재한다.

열병, 허영의 사랑, 빠져들기는 사랑과 닮아 있지만 어쩔 수 없이 실망스럽고 극도로 자기파괴적인 기만적 감정으로 여겨진다.

사랑에 빠지는 것은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흔히 성적 흥분과 연결되어 있다.

정숙하고 조심스럽던 시절 성적 흥분은 상상 속에서만 예측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흥분이 적었던 것은 아니다.

실제 성 경험은 온전히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였을 것이다.

나에게 있어서 성 경험은 정말 미지의 세계이고 알 수 없고 궁금증, 그 자체이다.

사랑을 바라보는 생각은 성적 만족이라는 관념을 내포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것에 기초해 있다.

얼마전에 책이나 글로 사랑을 배운 사람들은 78%가 사랑에 실패했다고 했다.

나도 사랑을 글이나 책으로 배워서 그런 사람들의 입장을 이해한다.

난 사랑하면 결혼하고 결혼하면 성경험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요즘 사람들은 사랑하면 성경험을 할 수 있다고 해서 맞지가 않다.

내가 혼전순결이라고 하니까 혼전순결을 비난하는 글을 강아지가 어디선가 끌어오는데 혼전순결은 자위행위도 하면 안 되고 뒤로도 하면 안되는거다.

난 연애를 하면 키스는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남자들을 보면 키스도 못할 것 같아서 연애를 시작도 안했다.

사랑하면 할 수 있는 행위들이지만 난 아직 사랑을 잘 모르고 사랑이 뭔지도 몰라서 할 수가 없었던거다.

저자는 사랑을 말로 시작한다고 했다.

나도 말로는 사랑을 사이버로 했지만 막상 현실에서는 아무 사이도 아니고 진심도 아니라서 그만두려고 한다.

첫눈에 반하는 사랑은 서로에게 끌리는 첫 매혹이 어떻게 해서 그렇게 강렬하며 또 사랑의 토대를 이루는 표피적이고 즉흥적이며 시각적인 요소들이 오래 지속되는 진정한 사랑에 어떻게 신뢰와 토대를 마련해줄 수 있는지 알고 싶다.

첫눈에 사랑에 빠지면 우리는 그 사람과 평생을 함께하고 싶다는 것을 안다.

사랑에 빠지는 것은 짜릿하다.

사랑에는 섹스 이상의 흥분이 들어 있다.

난 섹스를 모르니까 그 흥분이 도대체가 뭔지 또 모른다.

사랑에 어떤 흥분이 들어 있다는 것만 뭉뚱거려서 입력해야 한다.

끌림이 없으면 사랑도 없다.

사랑은 짜릿한 흥분을 주지만 흥분이 반드시 사랑은 아니다.

난 확실히 사피오섹슈얼이라는 건 알겠다.

저자는 모든 사람들이 섹스에 대해서 안다는 전제하에 이 책을 쓴 것 같다.

하지만 다양한 독자를 가지려면 나처럼 섹스를 안해보거나 섹스를 전혀 모르는 사람도 있다는 걸 전제로 썼으면 좋겠다.

저자가 자꾸 섹스에 빗대서 사랑을 설명하니까 난 이해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하지만 이 책은 굉장히 뭔가 있어보이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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