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블로 피카소 - 거장은 어떻게 탄생되는가
이종호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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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종호는 고려대 건축공학과와 같은 대학원을 졸업하고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페르피냥대학에서 공학박사 학위와 과학국가박사 학위를 받았다.

저자는 프랑스 유학 시절부터 세계의 여러 유적지를 탐사하며 연구해 기초 없이 빌딩을 50층 이상 올릴 수 있는 역피라미드 공법을 비롯해 특허 10여개를 20여 개국에 출원했다.

저자는 한국과학저술인협회장으로 신문, 잡지 및 인터넷에도 활발히 기고하는 등 과학 대중화에 앞장 서고 있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20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한 명으로 선정한 파블로 피카소는 역사상 가장 많은 미술품을 남긴 화가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었다.

그가 그린 유화는 1만 3500점이었으며 700여 점의 조각품, 판화, 데생은 물론 도자기 등 다양한 형태의 미술픔 5만 점을 생전에 제작했다.

피카소 재단은 피카소가 78년 동안 1만 3500점의 그림, 10만 개의 판화, 3만 4000개의 일러스트레이션을 창작했다.

피카소에 대해서 아는 건 추상화가이고 여자관계가 복잡하다는 것이다.

피카소는 155센티미터의 단신으로 하루에 담배 4갑씩 피운 골초임에도 92세까지 장수하면서 역사상 살아 생전에 가장 많이 돈을 번 화가이다.

그가 유언장 없이 후손들에게 남긴 유산만 해도 최소한 8조 5000억 원에서 10조 원이다.

피카소는 당대의 정황상 이해되지 않은 수많은 기행을 벌였고 여성 편력이 있었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스타일이 여성 편력있는 남자이다.

요즘 세계 최고 부자라고 하는 일론 머스크도 결혼을 4번을 하고 연애를 많이 한다.

그런 남자는 아무리 성공해도 아무 소용없는 것 같다.

언론에서 공식적으로 설명하는 여자만 해도 7명에서 12명이다.

그중 2명과 결혼했으며 결혼 중에도 불륜을 저질렀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스타일의 남자다.

극혐인 남자다.

그가 만남 여성 가운데 2명은 자살했으며 2명은 정신질환을 앓았고 1명은 젊어서 요절했다.

이런 남자 옆에 있으면 불행해지는 것 같다.

피카소의 풀네임은 파블로 디에고 호세 프란시스코 데 파울라 후안 네포무세노 마리아 데 로스레메디오스 시프리아노 데 라 산티시마 트리니다드 루이스 이 피카소다.

스페인에서는 선조, 가문의 이름에 자신의 이름을 첨가하여 사용하는 것이 보편화되어서이다.

자기 이름을 외울 수 있는지 궁금하다.

스페인의 카타루냐 지역에선 결혼 시 양부모의 성을 합치는데 조상들의 성을 다붙이므로 이름이 길어진다.

피카소는 어릴 때부터 그림을 잘 그렸다.

1906년 이후 앙리 마티스의 야수파 영향을 받아 서로 경쟁 관계를 형성하면서 현대 미술의 지도자로 부각될 수 있었다.

피카소는 1881년 10월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의 말라가에서 태어났다.

이슬람과의 전쟁에서 기독교의 최전선인 요새 도시로 성장한 말라가는 현재 세계적인 휴양지로 각광받고 있다.

피카소가 태어났을 때 조산사는 그가 사산했다고 생각해 그를 식탁 위에 그대로 놔두었다.

피카소를 구한 건 삼촌이자 의사인 돈 살바도르였다.

피카소는 어릴 때 주의력 결핍 과잉 행동 장애인 ADHD를 앓았다.

피카소의 아버지는 작가로서의 꿈을 이루지 못한 시골의 미술 선생이었다.

피카소를 철저하게 교육시켰다.

피카소의 아버지는 비둘기를 그리라고 비둘기 시체에서 내장을 꺼내 박제를 시킨 일도 있다.

피카소는 아버지가 스파르타로 교육을 시켜서 아버지에 대한 분노가 있었고 어린 시절의 상처를 창조성의 연료로 삼았다.

피카소 아버지가 스트레스를 줬다면 피카소 어머니는 스트레스를 완화시켜 주었다.

피카소는 스페인 화가, 조각가, 판화 제작자, 도예가, 연극 디자이너로 불렸다.

피카소가 파리 여행 중에 얻은 미술적 성과는 색채의 발견이었다.

전통적인 스페인 회화의 충충한 색채, 스페인 여인들이 즐겨 결치는 숄의 검정색조, 스페인 풍경에서 보게 되는 황갈색조나 갈색조가 아닌 반 고흐의 강렬한 색채 등 전혀 새로운 색채를 경험했다.

피카소는 목탄, 파스텔, 수채, 유채 등 다양한 매체로 파리의 생활을 묘사했는데 실연으로 의기소침해진 친구 카사헤마스 때문에 2개월만에 스페인으로 돌아가야 했다.

피카소는 만나는 여자에 따라서 그림이 밝아졌다 어두워졌다를 반복했다.

앙리 마티스와의 만남은 피카소가 자신의 예술 경력을 재정립하고 마티스는 피카소의 평생 친구이자 라이벌이었다.

피카소의 아비뇽의 아가씨들은 폴 세잔의 영향을 받은 것이고 자연의 기본 형태가 원통, 구, 원추라고 생각한 세잔은 자연을 자신이 그리기 쉽도록 변화시켰다.

피카소는 자신의 작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게 하는 것이야말로 자신의 특기라고 했다.

피카소는 입체파 추상화가로 알려져 있지만 그가 도예가, 판화가, 시인, 희곡작가로도 활약했다는 것은 잘 모른다.

피카소가 그림에서 너무 뛰어나서 다른 분야에 대한 평가가 그렇게 높지 않았기 때문이다.

피카소는 1946년 프랑스 남부에 있는 코트다쥐르 해안에서 여름을 보낼 때 발로리스에서 열린 연례 도예 전시회를 방문하면서부터다.

그는 발로리스의 마두라 도자회사의 작품에 매료되었고 그 회사의 사장인 수잔 라미와 조지 라미를 만나 자신도 도자기를 만들어보고 싶다고 요청했다.

수잔과 조지는 피카소에게 자신의 공방에서 도예작업을 해도 좋다고 했다.

수잔과 조지는 피카소가 만든 작품을 자신들이 카피본을 만들어 팔 수 있도록 요청했다.

피카소는 사망전까지 이 공방에서 도예작업을 했다.

피카소는 60세가 넘어 신화적 주제를 도자기에 표현하면서 자신의 회화 작업과 연결 지었다.

1947년부터 1948년까지 1년 사이에만 2000여 점이 넘는 도예 작품을 제작했다.

풍부한 색채와 강렬한 붓 자국이 인상적인 피카소의 도예 작품들은 회화를 넘어 조형으로 표현하려는 경향을 보여 주는데 인간 생명의 근원을 이루는 에로스를 표현한 작품이 대다수다.

피카소는 그림을 그릴 때는 매우 신경이 많이 쓰이고 피곤하지만 흙을 만지면 매우 편안함을 느낀다며 도예에 심취했다.

입체주의 , 큐비즘은 회화, 조각, 사진만이 아니라 건축, 가구, 의복, 일상용품에 이르는 모든 것의 디자인까지 변모시킨 조형 혁명의 시작이다.

화가는 세상의 모습을 그림으로 표현한다.

구석기시대부터 수많은 그림을 그렸지만 미술분야에서 획기적인 전환점은 원근법의 발견이다.

15세기가 되자 이탈리아의 건축가 브루넬레스키가 유클리드의 광학 이론과 기하학을 바탕으로 선형 원근법을 탄생시켰다.

브루넬레스키는 건물의 투시도를 통해 원근법의 놀라움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다.

아쉬운 것은 브루넬레스키가 원근법을 이론적으로 도입했지만 남아 있는 작품이 없다는 점이다.

본격적으로 기하학적 원근법을 적용한 작품으로는 1428년 마사초가 그린 성삼위일체를 꼽는다.

원근법이라면 이보다 다소 후대인 레오나드로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모나리자에 적용되었다.

예술가들이 원근법에 매료된 것은 자연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큐비즘의 기원은 피카소가 아니라 조르주 브라크의 풍경화에서 비롯되었다.

피카소는 새로운 여성과 사랑에 빠질 때마가 새로운 스타일을 발명했다.

한국에서의 학살은 한국 사회에 상당한 논란을 불러온 작품이다.

게르니카는 제2차 세계대전이 벌어지기 전 스페인의 내분에 의해 일어난 참사를 작품화한 것이다.

피카소는 시체 구덩이를 통해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독일 나치 정권에 의해 자행된 유대인 집단 학살의 비극을 고발했다.

피카소가 어울린 여자는 학력, 얼굴, 몸매, 취미, 국적, 직업, 기혼 여부에 관계없다.

주변에서 만나는 여성이라면 닥치는대로 자기 품안으로 끌어들였다.

정신나간 남자,,

바르셀로나의 몬카다에 있는 피카소 미술관은 피카소 스페인에서 그렸던 초기 작품들을 주로 전시하고 있다.

피카소는 일중독자였고 거의 매일 먹지도 자지도 않고 8시간씩 그림을 그렸다.

죽기 1년 전에도 200점의 작품을 완성했고 죽기 12시간 전까지 그림을 그렸다.

일하다가 죽은 것이다.

피카소는 평생에 걸쳐 5만여 점의 작품을 남겼는데 기네스북에 올랐다.

피카소는 예술가로서, 인간으로서 한계를 뛰어넘으려 했던 불굴의 투지가 있었다.

92세까지 산거보면 나름대로 건강관리를 많이 한 것 같다.

난 인상주의책만 많이 봤는데 피카소에 대한 책을 보니까 난 가까이 할 수 없는 정서를 가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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