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자존감의 사랑법 - 나를 지키는 사랑은 어떻게 가능한가
정아은 지음 / 마름모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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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정아은은 2013년 한겨레문학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사랑은 사건이다.

남녀노소 누구나 살아가는 내내 열망하고 인류가 이룬 모든 유무형의 자산이 이것을 쟁취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생에 가장 강력한 발자국을 남기는 이 사건은 내 의지로 오지 않는다.

인간이 받는 생 또한 의지와 상관없이 받았다가 의지와 상관없이 내놓아야 한다.

우리는 불가항력이며 우연적인 사랑, 우리의 생과 놀랍도록 닮아 있는 이 사건을 어떻게 소화해야 할까,,

어차피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으니 그저 되는대로 내버려둬야 할까,,

그렇게 하기에 사랑이란 사건은 너무 치명적이다.

스쳐가는 걸 보고만 있기엔 미치는 파급효과가 너무 크다.

결국 우리는 사랑 앞에서 버둥거리게 된다.

이 마법 같은 감정을, 새롭게 발을 들인 황홀한 세상을 지속시키기 위해 무엇이든 하려 하게 된다.

그러나 대부분 이런 노력은 사랑의 근본적인 성격 혹은 입퇴장 시기 같은 굵직한 행보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사랑이라는 일생일대의 사건에 인간이 대처할 수 있는 최대치는 사랑이 머물러 있던 시간을 복기하고 의미를 곱씹어 정리하는 정도이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은 자신의 육신과 영혼을 포박하여 다른 세상으로 데려갔던 그 존재들에게 서려 있던 일관된 기운은 생소함이었다.

모르는 사람, 생전 알았던 누구와도 같지 않은 완전히 새로운 존재애게서 나오는 신비함이 사람의 감정이었다고 했다.

이국적인 기운, 그 알 수 없음, 알 수 없기에 도무지 예측되지 않는 존재의 현현이, 벼락같은 설렘을 선사했다고 한다.

사랑은 무지에서 온다는 것을, 알 수 없는 상대가 뿜어내는 신비함에서 온다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자세히 알고 그렇기에 예측할 수 있는 대상에게 매혹되지 않는다.

안다는 것은 그 대상의 한계와 습성을 꿰고 있다는 의미이기에 불확실성에서 비롯되는 폭에 대한 착각에 빠져들지 않는다.

한 사람을 제대로 파악하는 데 필요한 건 긴 시간이나 밀접한 거리가 아니다.

제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능력이다.

제 안에서 요동치는 감정을 직시하고 그 감정을 만들어내는 다양한 환경적인 요인을 한 발짝 떨어져서 관망할 수 있는 지성이다.

우리가 겪는 감정은 우리가 무엇을 알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우리는 잘 모르는 것, 예측 불가능한 것에 압도되고 휘둘린다.

어떤 일에 대해 많이 알면 알수록 그 일의 근원을 파악하고 그 일이 보이는 것만큼 대단하지 않다는 것을 통찰하기에 격한 감정에 휩싸이지 않을 수 있다.

더 이상 그 일이 낯설지 않기에 그 일이 마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다.

사람에게 감정은 바람처럼 온다.

오기 전에 예고를 하거나 왜 왔는지 말해주거나 언제쯤 마음에서 빠져 나갈 예정인지 말해주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기에 우리는 어느 지점에서 반드시 낯설고 두려운 무언가와 마주치게 된다.

살면서 접하는 모든 대상, 모든 현상에 대해 다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

두렵고 매혹적인 타자를 마주쳐 사랑하게 되는 순간, 우리는 어찌해볼 겨를도 없이 낯선 세상으로 빨려 들어간다.

사랑이란 인간이 태어나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사치스러운 감정이다.

먹고사는 일과 가장 먼 거리에 있으며 돈이나 이익을 가져다주기는커녕 그런 것들과 정반대 방향으로 달려가도록 추동한다.

빠져드는 순간 나를 잊고 현실에서의 이해타산을 잊고 지금까지의 나를 만든 수많은 요인을 잊고 마구 밀려가게 만드는 감정, 내가 가진 것은 물론이고 내가 가지지 않은 것까지 훔쳐서라도 주고 싶어지게 만드는 감정, 사랑에 빠지는 일은 사람을 다시 태어나게 만드는 일이다.

사랑은 능동적인 감정이다.

한 사람의 마음 깊은 곳에서 자발적으로 나와 굵직한 파동을 만들어내는 완전히 자발적인 의지이다.

사랑에 빠진 이들은 온종일 그 사람을 생각한다.

아침에 눈뜰 때부터 밤에 잠드는 순간까지, 밥을 먹을 때, 일할 때, 공부할 때, 언제나 마음 속에 그 사람이 있다.

어떤 순간에 거의 그 사람이 된 듯, 그 사람과 연관된 일들에 그 사람보다 더 격하게 반응한다.

기쁜 일에 그 사람보다 더 기뻐하고 슬픔이 닥치면 그 사람보다 더 슬퍼한다.

사랑이 선사하는 마법이다.

나라는 육신에서 빠져나가 상대방 속으로 들어가는 것, 일순간 내가 나가 아니게 되는 것, 그 순간의 느낌은 자유라 불리는 상태와 비슷하다.

뭔가로부터 해방된 듯한 언제나 나를 감싸 돌던 무겁고 두터운 장막에서 벗어난 듯한 그제야 세상 만물과 장애물 없이 직접적으로 만나는 듯한 순간들,,,,,,,

우리는 수많은 인간과 비인간 생명체들에게 둘러싸여 살지만 언제나 내 육신 안에 갇혀 있다.

사랑은 자신을 잊고 무언가에 빠지는 순간이 집중적으로 극대화되는 일이다.

한 가지 일에 빠져드는 것은 일시적이지만 한 사람에게 빠져드는 것은 그런 일의 연속이다.

사랑에 빠지는 순간 우리는 우리와 관련된 모든 일상을 산산이 분해한 뒤 그 조각을 일제히 그 사람에게 던져 넣는다.

나를 둘러싼 사물, 기후, 인간, 비인간 생명체, 지나온 내 삶의 역사, 공동체의 역사를 모두 해체해 그 사람과 결합시켜 재탄생시키면서 급격하게 내 안에서 빠져 나간다.

당사자인 두 사람이 각각 제 몸에서 빠져나와 자신을 이루던 모든 것을 해체한 뒤 상대의 것과 합쳐 조합해내고 그렇게 해서 완전히 새로운 두 개의 인격을 다시 만들어내는 것이다.

한 가지 일에 빠져드는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강도의 몰입이 보장되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에마뉘엘 마크롱은 좌파도 우파도 아닌 프랑스의 이익을 위해 뛰겠다고 선언하고 신당을 창당한 뒤 프랑스 전역에 돌풍을 일으키며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다니던 고등학교 연극반 교사였던 브리지트 트로뉴에게 반해 그 마음을 계속 지켜가다가 2007년에 그녀와 결혼했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때부터 14년이 지난 뒤 1남 2녀의 엄마였던 브리지트가 남편과 이혼한 다음 1년을 기다렸다가 결혼했다.

그 이후로 에마뉘엘 마크롱과 브리지트 트로뉴의 연애와 결혼은 프랑스인들의 지속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두 사람을 응원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16세인 남자 제자를 두고 사랑에 빠진 40세의 교사 브리지트를 페도필리아라고 비난하는 여론이 높았다.

두 사람은 이에 대해 처음 만났을 때는 스승과 제자 관계 이상으로 넘어가지 않았다고 밝혔지만 사람들은 성인인 브리지트가 미성년인 제자에게 이성으로서 감정을 품었다는 데에 거부감을 숨기지 못했다.

이에 대해 마크롱은 자신이 24세 연상이었다면 아무도 부적절한 관계라고 비난하지 않았을거라고 억울해했다.

의사 부부의 장남으로 태어난 마크롱은 어려서부터 수재로 이름을 날렸다.

도서량이 풍부하고 생각이 깊었던 마크롱은 어릴 쩍 친구의 말에 의하면 사춘기를 전혀 겪지 않고 바로 어른이 된 사람같은 느낌을 주었다고 한다.

그는 또래들과 다른 세상에 속한 것처럼 보일 정도로 자기 세계가 확고한 아이였다.

독특했던 어린 시절과 성장기의 언행을 따라가다보면 브리지트 트로뉴라는 여성을 만나 사랑에 빠졌을 때 마크롱이 대처하는 방식이 지극히 그다운 일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공감 능력이 탁월하고 사교적이었으며 그러면서도 마음먹은 일은 반드시 해내는 뚝심이 있었다.

마크롱은 브리지트는 금기 그 자체였다.

스물 네살이라는 나이 차이뿐만 아니라 가정을 이뤄 세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엄마라는 사실, 거기에다 사생활에 관대한 프랑스 국민들조차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사제 간의 사랑이었기 때문이다.

마크롱은 브리지트에게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들었고 부모의 권유로 유학을 떠나면서도 언젠가 브리지트와 결혼하겠다고 마음먹었다.

마크롱은 브리지트 트로뉴라는 인물을 외모나 부분적인 특성, 나이 혹은 특정한 배경 때문에 사랑하지 않았다.

그저 브리지트라는 사람이 이루고 있는 됨됨이를 통틀어 총체적으로 사랑했다.

자신을 통째로 내주어도 좋다고 생각할 만큼,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자존감의 소유자였던 마크롱은 사방에서 날아오는 비난과 견제에도 꿋꿋이 브리지트와의 관계를 밀고 났고 브리지트가 이혼하고 법적으로 다시 결혼할 수 있는 상태가 될 때까지 기다렸다.

마침내 브리지트와 정식으로 부부가 되었을 때는 브리지트가 전남편과의 사이에 낳아 키운 3남매와 그들의 아이들을 제 자식처럼 제 손주처럼 아꼈다.

그는 언제어디서든 브리지트의 가족들을 내가족이라고 불렀고 주말에 내손주를 보러 가야 한다고 거리낌없이 말하고 다녔다.

브리지트의 막내딸은 이 특별한 새아버지를 무척 좋아했고 대통령 선거 당시 적극적으로 지지하며 선거운동을 펼쳤다.

선거운동 기간에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아내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 마크롱은 브리지트의 의견이 자신에게 아주 중요하고 그녀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보다 더 많은 경험을 쌓았다고 했다.

브리지트는 그의 핸티캡이 아니라 그를 일으켜 주고 잠재된 능력을 발휘하게 해주는 멘토였다.

마크롱은 한 여성에 대한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결과 그 여성이 쌓아온 인생의 경륜을 얻고 세상을 더 깊고 넓게 보는 시야를 얻었다.

브리지트라는 스물네 살 연상의 여인이 쌓아온 인생의 경륜을 빌려 젊은 자신에게 부족한 지혜와 통찰을 채워 넣었던 것이다.

이런 사랑이 가능한 건가보다.

지구 어느편에서는 이런 사랑이 존재하니까말이다.

나의 사랑을 생각해봤다.

난 서울대를 가면 연애를 해야지라는 생각을 했다.

서울대를 못갔다.

연애를 하면 안되겠다라고 생각했다.

대학에 가서 선교단체에서 완벽해 보이는 간사님을 봤다.

저 간사님이면 사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 간사님이 사귀자고 했을 때 회계사시험을 공부해야 해서 못 사귄다고 했다.

회계사시험이 붙으면 연애를해야지라고 생각했다.

공부하다가 아파지면서 병이 나으면 연애해야지라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스펙트럼은 끝도 없이 생긴다.

로스쿨가면 연애해야지, 아빠가 받을 돈을 받으면 연애해야지, 나이는 계속 먹어가고 나이가 들어가니까 더 사람에게 다가가기 힘들다.

사랑은 그런 면에서 기적이다.

사랑은 귀하고 죽음이라는 씨앗을 내장한 나와 상대의 유한함을 인식하고 조금이라도 서로 맞닿을 수 있기를 바란다.

너에게 가까이 가고 싶지만,,,,,,나의 생각스펙트럼은 언제나 작용한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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