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가 묻고 성경이 답하다
차준희 지음 / 도서출판CUP(씨유피)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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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차준희는 구약학자, 신학 교수이다.

서울신학대학교,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신학석사, 독일 본 대학교에서 신학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남현교회에서 담임목사로 사역했다.

성을 성경적인 관점으로 바라보고 성경적으로 누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난 아직 성을 사용해본적이 없다.

궁금하고 앞으로 성을 사용해도 하나님 뜻안에서 사용하고 싶다.

성경은 이성의 기원을 아담의 갈빗대에서 하와가 탄생했다고 한다.

그것은 남성과 여성의 본질적 일체성이라고 한다.

남성과 여성은 본래 한 몸이었다.

동시에 이 이야기는 남성과 여성의 성적 이끌림을 말한다.

남성과 여성은 서로 성적으로 하나가 되고 싶은 본능을 지닌 존재다.

인간은 영성과 정신만을 지닌 존재가 아니라 육체와 성도 함께 지닌 존재다.

성을 지닌 존재라는 것은 인간이 이성을 원하며 동시에 이성을 필요로 하는 성욕을 가진 의존적 존재임을 말한다.

성적 욕망 자체는 불결하거나 추하거나 악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고 선하고 유익하며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다.

성은 좋은 것이요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렇게 좋은 성을 하나님은 왜 아직도 나한테 사용을 못하게 하셨지,,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_창세기2:24-25 "

사랑의 관계가 혈연관계보다 더 강함을 말해준다.

사랑이 피보다 진하다.

친부모와의 결속보다 강한 것이 하나님이 짝지어주신 부부관계다.

부모는 일촌관계이고 부부는 무촌관계이다.

아내와 합하여라는 표현에서 와는 히브리어 베이고 합하여는 다바크이다.

그래서 부부가 헤어지면 떨어진다라고 말하지 않고 찢어진다라고 한다.

서로에게 씻을 수 없는 큰 상처를 남긴다.

아내의 몸 안에서 남편과 아내가 껌딱지 같이 완전히 달라붙어 한 몸이 되는 상황을 그려준다.

부부 사이는 벌거벗고도 전혀 부끄럽지 않다.

난 그게 뭔지 신기한 것 같다.

그만큼 상호 무제한적으로 신뢰하는 관계다.

성을 타락의 원인 또는 결과로 보면서 성을 죄악시하는 것은 성에 대한 오해다.

타락한 성이 문제다.

원래의 성은 선한 것이다.

성은 아름답고 즐겁고 감사한 것이다.

성은 상대방의 동의와 배려를 통해서만 의미가 있다.

부부간의 성은 상대를 배려함에서 출발한다.

상호주의 원칙에서 성관계는 이루어진다.

부부 사이에서도 강제적인 성적 관계는 옳지 않다.

칼 바르트는 공존 없는 성관계는 악마적인 일이다라고 말했다.

상대방을 인격이 아닌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는 수단으로 대할 때 성은 하나님의 선물이 아니라 억압의 수단이 된다.

상호합의에 의한 부부간의 사랑 나눔은 친교와 즐거움의 순간이다.

"네 샘으로 복되게 하라 네가 젊어서 취한 아내를 즐거워하라 그는 사랑스러운 암사슴 같고 아름다운 암노루 같으니 너는 그의 품을 항상 족하게 여기며 그의 사랑을 항상 연모하라_잠언 5:18-19"

이 구절은 부부간에 누리는 성적인 친밀감을 표현해주고 있다.

"너는 네 우물에서 물을 마시며 네 샘에서 흐르는 물을 마시라_잠언 5:15"

여기서는 성적 욕구를 실현하고 즐거움을 주는 샘이라는 의미를 보탠다.

아내를 즐거워하라라는 표현은 아내와 함께 즐거워하라라는 뜻이다.

부부간에 나누는 성적인 즐거움은 일반적이어서는 안 된다.

반드시 쌍방적이어야 한다.

이기적인 즐김이 아니라 공동의 즐김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신앙생활과 성생활은 반비례하지 않는다.

성적 욕망 자체는 자연스럽고 선하고 유익하며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다.

선물에는 반드시 과제가 따른다.

성에도 적절한 통제가 필요하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리라_마태복음 5:28"

예수님의 이 말씀은 성적 욕망 자체를 책망하는 것이 아니다.

성적 충동조차 금하는 것은 아니다.

최초의 성적 충동에 이어지는 응시와 음욕에 가득 찬 상상을 금하는 것이다.

남성과 여성간의 이성적 호감과 성적 이끌림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건강한 것이다.

돌아간 눈을 제시간에 돌려놓지 못하면 문제다.

성경을 보면 성의 순결은 혼전뿐만 아니라 혼후에도 매우 중요하다.

"누구든지 남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 곧 그의 이웃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는 그 간부와 음부를 반드시 죽일지니라_레위기20:10"

인간의 성적 욕망은 인간 본성의 자연스러운 한 부분이다.

욕구는 본능적이고 감정적이지만 지성과 의지의 통제를 받아야 건전해진다.

성적 욕망은 적절히 통제될 때만 아름답고 건강한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않다고 판단하시고 돕는 배필을 만들기로 작정하셨다.

돕는 배필의 본질적 목적은 친밀감이었다.

부부관계의 더 근원적인 부분은 성적인 관계를 넘어서 친밀감이다.

성적인 관계가 부부관계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이긴 하다.

상호 친밀감을 위해서 존재한다.

부부라는 울타리 안에서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성을 건강하게 나눌 수 있을 때 즐겁게 나누고 육체적 친밀감뿐만 아니라 영적이고 정신적이고 정서적인 친밀감을 충분히 교감하는 복된 부부가 되어야 한다.

성은 하나님의 울타리 안에서만 즐겁고 건강한 선물로 기능한다.

하나님의 통제를 받는 성이 최고의 성이다.

인간의 시간은 유한한데 이 유한한 시간을 살아가는 인간에게 주어진 숙제는 무엇일까,,

서양 사람들은 시간을 크로노스라고 한다.

그리스 신화에서 크로노스는 자기 자식을 낳는 대로 잡아먹는 끔찍한 신이다.

크로노스의 시간은 단지 흘러가고 마는 것, 그래서 값어치 없는 것, 허무하기 짝이 없는 것이 되고 만다.

이러한 크로노스의 시간을 물리적 시간이라고 한다.

크로노스의 시간은 의미 없이 흘러가는 시간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하나님의 시간인 영원과 같은 시간, 즉 흘러가 버리거나 사라지지 않고 과거와 미래가 모두 현재 안에 존재하는 시간을 우리의 마음 안에서 찾아냈다.

우리의 몸은 어쩔 수 없이 물리적 시간을 살지만 우리의 마음은 이와는 전혀 다른 시간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간을 서양 사람들은 보통 카이로스라고 한다.

카이로스의 시간은 심리적 시간이라고 부른다.

카이로스의 시간은 의미 있는 결정적 시간이다.

충만한 시간, 기회라고도 한다.

시간에는 크로노스라는 물리적 시간과 카이로스라는 심리적 시간이 있다.

크로노스는 우리가 경험하는 자연의 시간이고 카이로스는 하나님을 경험하는 시간이다.

물리적 시간으로 자기 삶과 세계를 파악하는 관점에서 심리적 시간의 관점으로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

이는 인간의 관점에서 하나님의 관점으로 바꾸는 일종의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이것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메타노이아, 즉 회심이다.

우리는 물리적 시간관이 아니라 심리적 시간관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시간은 매 순간 상처를 입히고 마지막에는 죽이는 시간이 아니라 오히려 매 순간 새로이 태어나게 하고 마지막에는 구원하는 시간이다.

우리의 마음이 물리적 시간을 살 때 사람은 사라진 과거때문에 허무하고 사라지고 말 현재 때문에 무의미하며 올지 안 올지 모르는 미래때문에 불안하다.

그래서 존재보다는 존재물에 집착하게 되고 결국 세속적/탐욕적/쾌락적이 된다.

하지만 우리 마음이 심리적 시간을 살 때 우리의 삶은 현재와 연결된 과거와 미래로 인해 의미와 가치 그리고 희망으로 충만하고 풍요로워진다.

그래서 존재물보다는 존재에 세상보다는 하나님의 나라에 관심을 갖게 되고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을 살게 된다.

사도 바울은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고 권고한 적이 있다.

아끼라는 헬라어 동사는 구속하다 혹은 되사다이다.

시간을 그것의 악한 속에서 되사라는 호소다.

시간은 지나가는 모든 기회를 말한다.

이 땅의 날들이 대부분 악하게 흘러갈 수 있기 때문이다.

몸의 시간은 악하게 흘러갈 수 있다.

마음의 시간인 세월을 몸의 시간인 날들에서 되사라는 말이다.

몸의 시간에 팔린 마음의 시간을 되사야 한다.

몸의 지배에서 벗어나 마음이 중심이 되는 삶을 살라는 것이다.

시간을 바른 방향으로 사용하라는 것이다.

세월을 아끼는 것은 몸의 시간이 아닌 마음의 시간으로 사는 것이다.

모든 때가 아름다운 때이며 기회임을 놓치지 말고 이를 인식하고 누리고 살라는 것이다.

하나님과 시간을 보내는 것, 서로 시간을 보내는 것, 특히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것, 그리고 자기 자신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단순히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아주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이다.

시간을 창조하신 것도 하나님이니까 조급하지 않게 사랑하며 시간을 써야 한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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