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필로소피 - 테크네에서 에로스까지, 오늘을 읽는 고전 철학 뿌리어 EBS CLASS ⓔ
김동훈 지음 / EBS BOOKS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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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동훈은 서양고전학자이다.

서울대 서양고전학협동과정에서 희랍과 로마 문학 및 로마 수사학을 연구했고 고려대에서 철학을 공부했다.

말뜻은 천자만별이다.

이 말들이 서로 다른 뜻을 붙잡으면 말끝은 모호해진다.

다양한 말뜻은 나뭇잎으로 비유될 수 있다.

나뭇잎은 뿌리에 비해 무성하다.

뿌리에서 뻗어 나온 줄기는 몇 안되지만 거기에 잎이 나기 시작하면 잎은 더 우거지고 서로 뒤섞여 원래의 뿌리를 모를 정도로 무성한 나뭇잎에 현혹된다.

나뭇잎에 정신을 빼앗기다 보면 뿌리와 줄기는 잊어버리고 그 맥을 무시한 채 무턱대고 다른 나뭇의 잎으로 오해한다.

그렇게 전개된 이론은 생각이 깊지 못하고 쌓이다가도 무너진다.

말은 세월과 장소가 바뀌면서 갈래가 나뉘었고 그 뜻도 다양해졌다.

뿌리어의 말뜻은 깔끔하고 깨끗하다.

뿌리어부터 뜻을 헤아려본 후 갈려 나온 줄기와 상관하여 특정 뜻을 맺어 본다.

옛말의 뿌리를 통해 올바른 어원을 숙지하면서 그 파생의 신비를 알게 된다.

무성한 나뭇잎 못지않게 뿌리도 얽히고 설켜 있다.

뿌리어는 조상 대대로 살았던 옛 땅에 박혀 줄기와 나뭇잎을 지탱해 주고 있다.

예술 또는 미술이라는 말의 뿌리어는 그리스어 테크네다.

테크네라고 하면 익숙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에서 예술이 고대어 테크네다.

테크네라고 하면 테크닉, 기술이라는 말로 이해한다.

테크네를 예술로 번역하는 것에 대해 테크네라는 단어에는 기술이라는 측면도 있으니 기술이란 말이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최근에는 두 의미를 담아, 기예, 학예라고도 번역한다.

오늘날 테크네는 기술적인 측면만 남고 다른 쪽 측면인 예술은 아트라는 말로 정착되었다.

그리스어 테크네는 간단한 손재주와 손재주를 활용할 수 있는 지식까지 포함한 단어이다.

여러 문헌을 통해 테크네의 의미가 점점 좁아진다.

철학가인 키케로는 저서 연설가에 관하여에 테크네가 어떤 식으로 좁아졌는지 구체적으로 밝혔다.

키케로는 연설가가 되기 위해서는 아르스를 공부해야 한다고 했다.

이 아르스가 테크네를 라틴어로 번역한 말이다.

키케로는 연설가들은 열심히 수사학의 아르스 즉 테크네를 배워야 하는데 원래의 아르스를 공부하지 않고 아르스의 아주 작은 부분만을 공부한다고 비판했다.

당시 연설가들은 법정에서 변론을 많이 했다.

정치가로서 사람들에게 여러 방면에서 연설을 해야 되니 무엇보다 아르스가 중요했다.

키케로의 눈에는 연설가들이 아르스를 좁은 의미로만 파악하고 목소리만 연습하는 것처럼 보였다.

노력하지 않고 선천적으로 말재주가 있는 사람들이 연설가가 되는 현상이 벌어졌다.

키케로가 보기엔 아르스가 줄어드는 현상이었다.

키케로는 좁아진 의미의 테크네가 아니라 원래의 테크네로 복원해야 된다고 주장했다.

테크네의 의미가 좁아지는 것에 대해 걱정한 것은 로마 공화정 시기에 크라수스라는 감찰관도 있었다.

크라수스는 감찰관으로 있으면서 로마 수사학 학교가 좁아지자 테크네만 가르치는 것이 문제가 있다 생각했다.

로마의 지도자들은 로마공화정이 올바로 가기 위해서는 테크네가 무엇인지 온전하게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테크네의 원래 의미 그대로 전수돼야 한다고 했다.

키케로가 말한 테크네는 후마니타스, 인문학이다.

인문학을 통해서 아르스, 테크네를 복원해야 한다고 했다.

인문학이 테크네라는 것이다.

키케로는 후마니타스를 수사학의 본질이라고 주장하며 고대 그리스부터 내려온 인본주의 전통을 로마까지 잇고자 했다.

키케로가 주장한 인문학의 주요한 요점은 교양과 인간을 사랑하는 인간애에 대한 것이다.

교양이라고 할 때 그리스어 엔퀴클로파이데이아를 쓰는데 보통 줄여서 파이데이아라고 한다.

엔퀴클로파이데이아에서 엔은 영어의 in이라는 말이고 퀴클로는 서클이란 말이다.

이 개념이 엔퀴클로파이데이아다.

백과사전을 의미하는 엔싸이클로피디아라는 말도 교양이란 엔퀴클로파이데이아에서 나왔다.

그리스어로 인간됨은 안드로피아, 사랑은 필이고 인간에는 필안드로피아이다.

교양은 어떻게 해야 인간을 사랑하고 인간 됨됨이를 우리가 고양시키면서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다.

자유시민은 엔퀴클로파이데이아라고 해서 공부해야 될 학문들이 11과목, 줄어들면 7과목이었다.

로마에 가선 자유시민 7개의 학문이라고 해서 자유학예로 정착했다.

키케로는 테크네를 지성, 인성, 감성의 세 차원으로 이야기하는 데 그중에 지성 차원에서 주장했던 것이 테시스훈련이다.

이론도 테시스에서 나온 말이다.

테시스를 당시 의미를 되새기며 번역을 한다면 일반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일반성이라는 것은 어떠한 구체적인 사건들에서 보편성을 찾아내는 것이다.

테시스 훈련은 개별적인 여러 특성 사건들이 있는데 여기서 공통된 일반문제를 끌어내도록 하는 것이다.

테시스로 끌어내기 위해 보여주는 여러 특정 사건들은 테시스밑에 있다고 해서 히포테시스라고 한다.

그리스어로 밑에라는 말이 히포다.

가설이라 번역되는 히포테시스가 예전에는 테시스 밑에 있는 특정 개별적인 모든 사건들을 의미했다.

키케로는 로마 수사학 학교가 히포테시스, 특정 개별적인 사건에서 보편성으로 끌어내는 연습을 해야 하는데 이런 것을 가르쳐주지 않고 계속 특정 사건만 가지고 언제 어떻게 일어난 것인지만 따지는 것처럼 보였다.

로마 수사학 학교가 판례만 가르쳐주고 그 판례들을 포괄할 수 있는 보편성은 어떻게 끌어낼 수 있는지는 가르치지 않은 것이다.

폭넓은 학식을 공부해서 특정 과목들의 사건들을 알고 거기서 보편성을 끌어내는 훈련을 하는 것이 실제적으로 인간으로서, 자유시민으로서 해야 될 능력이다.

테크네가 라틴어로 번역되면서 아르스가 되었는데 이게 영어의 아트다.

테크닉은 기술적인 측면을, 아트는 예술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말로 쓰인다.

인문학적인 의미로 폭넓게 쓰이던 테크네가 좁아진 의미의 아트가 된것은 르네상스를 거치면서다.

고대의 교양, 파이데이아는 중세 때는 7과목으로 확고하게 자리를 잡는다.

대학에서는 문법학, 수사학, 논리학, 산술학, 기하학, 천문학, 음악을 자유7학예라 하여 가르쳤다.

음악은 지금 생각하는 음악이 아니고 미술들의 예술도 없었다.

중세 때까지만 해도 오늘날의 공연 예술에 속하는 과목을 가르치지도 않았다.

당시의 예술은 수공예였다.

모든 것이 길드라고 하는 동업조합에서 가르쳐주는 수공업이었다.

그러다보니 교양보다는 장인의 기술이 중요했다.

르네상스 시대에 들어서자 많은 귀족들이 미술을 후원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별도의 과목을 공부하던 이들이 점점 7학예에 접근하며 교양을 쌓게 된다.

교양을 많이 쌓은 작가들이 조각, 회화, 건축 분야에 등장하는 것이 바로 이 시기였다.

예술이 점차 장인들의 기술 차원을 넘어 학문의 세계에 도달한다.

그들이 하는 미술에 아르스 또는 테크네라는 이름을 붙인다.

18세기에는 아르스에 들어 있던 영역들이 분리되는 현상이 일어난다.

아르스라는 개념에 포함되어 있던 7개의 학문이 독립된 학문으로 인정받았다.

아르스에 있던 학문이 독립을 하자 아르스하면 미술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아르스라고 할 때 원래 있던 7개의 학문을 말하는건지 새롭게 포함한 미술을 얘기하는 건지 헷갈렸다.

그래서 미술을 그냥 아르스라고 하지 말고 좋은이라는 말을 넣자는 움직임이 생긴다.

근대적 예술 개념을 처음 세운 프랑스의 철학자 샤를 바퇴는 예술을 정의하면서 프랑스어로 좋은 아트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이 말이 영어로 옮겨지면서 파인 아트가 되었다.

초기 좋은 아트는 회화, 조각, 건축, 무용, 음악, 수사학의 7학예이다.

19세기에 파인 아트라는 영어로 바뀌고 나서는 7학예에 속한 것이 모두 빠진다.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수사학이 빠지자 회화, 조각, 건축만 파인 아트로 지칭하게 되었다.

이후 파인이라는 말도 빼버리고 아트라는 용어가 정착된다.

이제는 아트라고 하면 시각으로 보는 미술만 떠올린다.

원래 예술만이 아니라 기술도 포함한 테크네는 19세기 아트를 미술로 이해하면서 기술은 테크닉 또는 테크놀로지라는 말로 아트와 분리된다.

과학을 포함하던 아르스가 파인 아트의 개념이 생긴 후 미술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커지게 되니 과학적 지식이나 기술을 표현할 개념이 따로 필요해졌다.

19세기 후반에 과학이 발전을 하면서 과학자들은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고민한다.

과학자들은 테크네라는 용어를 그대로 끌고 와서 거기에 기술적인 의미를 집중적으로 부각시키게 된다.

19세기에 파인 아트가 정착되며 나누어진 예술과 기술이 19세기 후반에 가서는 완전히 분리되어 한쪽은 아트라는 말로 예술을 강조하고 한쪽은 테크닉이라는 말로 기술을 강조하게 된다.

원래 한 단어로 테크네 또는 아르스로 표현했던 예술과 기술이란 말이 19세기 후반에 들어서 완전히 분리되었다.

가끔 의식하지 못한 채 아트를 기술로도 이해를 한다.

에리히 프롬이 쓴 책을 사랑의 예술이 아니라 사랑의 기술로 번역한 것처럼말이다.

지금도 아트라는 말을 쓸 때 꼭 예술만 얘기하지 않고 거기에 고대 교양, 테크네의 전통이 그대로 남아서 아직도 기술로 쓰는 경우도 많다.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전혀 몰랐을 뿌리어의 존재이다.

뿌리어의 존재부터 뿌리어의 변천 과정을 저자가 자세히 알려주는데 너무 신기하다.

저자때문에 단어나 언어에 대해서 새로운 매커니즘이나 어떤 숨겨진 과정이 있을까라는 생각을 계속하게 될 것 같다.

아레테, 메타, 미디아, 트렌스, 포르마, 미메시스, 인판티아, 팍툼, 메타포라, 조에, 데쿠스, 로망, 스티마, 에로스도 뿌리어를 찾는 과정은 쉽지 않지만 저자가 알려주니까 이 책만 읽으면 될 것 같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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