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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경제 - 양자적 관점으로 해석하는 인공지능, 팬데믹, 기후위기 이후의 세상
앤더스 인셋 지음, 배명자 옮김 / 흐름출판 / 2022년 2월
평점 :

저자 앤더스 인셋은 노르웨이에서 태어나 독일에서 활동하는 비즈니스 철학가이자 벤터 투자자이다.
2018년 경영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싱커스50선정 미래의 가장 중요한 경영철학자로 뽑혔다.
난 새로운 경제 이론에 대해서 항상 알고 싶고 지금의 경제에 문제가 있다면 그 부분도 알고 싶다.
그리고 새로운 대안이 있는지도 찾아 보고 싶어서 이 책을 읽었다.
양자경제란 기존 경제체제를 새롭게 바라보는 시선이다.
식량, 주거, 안전이라는 명백한 물리적 욕구를 넘어 소속감, 자존감, 자아실현 같은 심리적 욕구까지 통합한다.
순환하며 잠재적으로 무한하다.
생산자와 소비자의 거리를 좁히고 직접적 거래를 가능하게 한다.
양자세계만큼 예측 불가처럼 보이지만 양자물리학만큼 현실적이다.
상호의존 시스템이다.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어 있고 인간과 기계도 협력한다.
분야 간의 경계를 허물어 자연과학과 인문학을 통합한다.
분권적이고 상호연결된 구조를 둔다.
우리의 소비 인식을 되돌아보게 하고 비물질적 성장으로 가는 길을 열어준다.
지성사회, 의식혁명, 순환하는 무한성, 철학적 사고로 구현된다.
저자는 마지막 종교는 현재 물질주의 단계에 있는 자본주의라고 한다.
거대한 부작용이 자본주의의 축복을 상쇄하고도 남음에도 우리는 자본주의 우상을 계속해서 숭배하고 있다.
애덤 스미스는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이 물질적 풍요를 지구에 선사했다.
그러나 동시에 무자비한 탐욕과 이익 극대화의 독을 뿌렸고 그 독이 몇 세대 안에 우리의 생활기반을 광범위하게 파괴했다.
메가급 거대기업들은 시장을 자기들끼리 나눠 가졌다.
스타트업 투자의 80퍼센트가 네토크라시(인터넷 귀족계급)라 불리는 인터넷 슈퍼갑부들로부터 나온다.
경쟁으로 사업에 활기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승자독식이라는 결과만 생겼다.
그것의 파멸의 대가는 우리 모두에게 돌아온다.
가장 부유하고 기술적으로 진보한 곳에서조차 상류층과 빈곤층의 사회적 격차가 파괴적 수준에 도달했다.
상위 1퍼센트의 소득이 비약적으로 높아지는 동안 나머지 99퍼센트의 소득은 조금 오르거나 동결했다.
구글, 아마존, 애플,마이크로소프트, 페이스북으로 구성된 빅파이브와 아리바바를 필두로 등장한 아시아 기업들이 새로운 기회와 정보를 흡수하고 알고리즘화하여 나눠 가지고 있다.
새로운 스타트업이 정상에 진입할 기회는 사라지고 있다.
데이브 에거스가 더 써클에서 썼듯이 소기업은 구글, 우버, 알리바바 같은 고래의 플랑크톤에 불과하다.
현재의 자본주의는 알고리즘의 최적화를 의미한다.
가장 부유한 0.1퍼센트의 주머니로 들어가는 마진의 극대화가 최적화의 목적이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뛰어난 실력이 아니라 자본으로 재산을 축적한 슈퍼갑부들이다.
토마스 피케티는 지금의 자본주의 시스템에 개혁능력이 없다고 한다.
그럼 어떻게 하냐,,
현재 자본주의의 유일한 동력은 극대화, 더 많이, 그리고 채울 수 없는 욕심뿐이다.
초자본주의는 소수의 슈퍼갑부에게도 단기적으로 축복이다.
우리 모두는 지구 우주선의 승객이다.
당신과 나,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와 구글의 래리 페이지, 상류층, 중산층, 빈곤층 상관없이 지구 우주선의 공급 시스템이 무너지면 종말이다.
미완의 자본주의와 기술 진보가 맺은 소위 운명적 동맹을 지금까지 어떻게든 지탱해왔지만 앞으로는 거기에 희망을 걸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사회주의는 대안이 될 수 없지만 마르크스, 프로이트, 니체, 칸트, 헤겔 같은 철학자들의 저서들을 21세기 맥락에서 읽어야 한다.
자본주의는 대량 소비, 무제한 소비, 무의식적 소비가 있다.
자본가와 소비자는 똑같이 극대화를 추구한다.
자본가는 이익을 극대화하려 하고 소비자는 소비 욕구 충족을 극대화하려 한다.
극대화 때문에 인류 문명의 수명이 적어도 두 세대 이상 연결될 가능성이 점점 더 희박해진다.
소비주의는 지구 생태계를 남용하게 하고 전 세계를 적자생존이 아닌 비대자 생존으로 이끈다.
서구 국가는 포퓰리즘이 힘을 얻고 있다.
포퓰리즘은 알고리즘 시대에 감정에 기초한 결정이 무제한으로 조작된다.
지구화된 세계에서 국내 정치인의 힘이 약화되면서 세계가 거짓 약속과 퇴보의 길로 간다.
2016년 뉴요커의 기자가 대다수 유권자가 정보에 무지하다면 대중의 안위는 누가 결정하냐고 했다.
소크라테스가 민주주의 초기에 경고했던 현상을 오늘날 여러 국가에서 목격할 수 있다.
대중의 소망과 선입견에 호소하는 선동 정치인, 냉철하지 못하고 반성하지 않으며 반사적이고 비합리적으로 행동하는 유권자가 존재한다.
소크라테스의 가장 유명한 제자인 플라톤은 민주주의가 너무 나쁜 아이디어이기 때문에 대중과 격리되어 외부 영향 없이 합리적 결정을 내릴 수 있는 통치계급이 필요하다고 확신했다.
정치철학자 데이비스 에스틀런드는 2008년 민주적 권위에서 지적이고 합리적인 결정을 보장하는 실용적이고 진보적인 접근방식을 제안했다.
그는 지식인이 정치를 담당하는 에피스토크라시를 목표로 삼았다.
선거 때 유권자들이 감정에 이끌린다.
인간은 완벽한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다.
고대 그리스의 평민화에서도 카리스마가 넘치는 사람이 가장 많은 표를 받았다.
로마에서 카이사르에 매혹된 대중은 그들의 정책이 자신의 이익에 정면으로 반하더라도 그에게 환호했다.
원인은 무지한 유권자가 아니라 알고리즘과 소셜 미디어의 시대에 모든 이념가는 아날로그 시대의 선전가보다 비교할 수 없이 효과적인 메커니즘을 가지게 됐다.

디지털화는 아날로그 정보가 디지털 비트로 바뀌는 과정과 디지털 커뮤니케이션 및 미디어 인프라구조를 중심으로 사회생활이 구조화되는 방식이다.
자동화는 비용을 절감하고 시장점유율과 가격을 둘러싼 새로운 경쟁으로 이끈다.
데이터는 제2의 석유라고 한다.
양자물리학처럼 전 세계는 아주 크고 동시에 아주 적다.
이것은 양자경제에도 적용된다.
미래의 경제, 양자경제가 발전하면 우리의 의식은 더 높아지고 동시에 인류를 위한 새로운 유토피아가 구축된다.
양자물리학처럼 양자경제학과 양자 미래의 발달에서도 양립할 수 없어 보이는 개념들을 하나로 합칠 때 한걸음 나아갈 수 있다.
오로지 한 분야만 연구하는 전문가들은 그럴 능력이 없다.
심리학과 철학에 경제학을, 철학적으로 반추하는 정신분석하에 자연과학을 단락 회로로 연결할 수 있고 교차 사고를 할 줄 아는 사상가가 필요하다.
철학을 공부한 경영자는 생태적 지속가능성과 인공지능의 잠재력을 염두에 두고 결정한다.
경영자는 단기 이익을 기반으로 방향을 설정해선 안 된다.
시대의 징표도 읽을 줄 알아야 한다.
최고경영자는 5년짜리 계약서를 받을 뿐이고 정치인은 단지 4년을 위해 선출된다.
단기적으로 성취할 수 있는 목표를 세우고 그것에 맞게 행동하는 것 말고 할 수 있는게 없다.
이것도 시스템 오류이다.
역기능이 더 많아진 대의민주주의를 가능한 한 빨리 미래에 합당한 시스템으로 바꿔야 한다.
경제학자들이 다루는 경제이론에는 물질주의가 각인되어있다.
수요공급모델은 물론이고 밀턴 프리드먼을 중심으로 하는 시카고학파의 자본주의 이론도 마찬가지다.
애덤 스미스는 데카르트의 관점에 따라 시장의 형이상학적 특성을 믿었다.
물질주의 시대는 고전 물리학에서 양자물리학으로 물질에서 의식과 에너지로 관심이 이동하고 있다.
경제모델은 기계적이었다.
양자경제의 접근방식은 직선적이지도 인과적이지도 않다.
양자물리학처럼 겹침과 확률을 다룬다.
새로운 게임규칙과 법칙을 만들 수 있고 만들어야 하지만 모든 최적화와 재조정에도 불구하고 예측하지 못한 일이 계속해서 벌어질 수 있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양자경제에서는 인간과 기계와 지구의 상호의존성이 증가한 덕분에 우리의 의식은 더욱 높아진다.
포괄적 윤리 도덕을 기반으로 하는 가치 지향적 사회를 구현할 기회가 열린다.
상호의존적 세계에서는 자본 흐름에 경계가 없다.
중국이 세계 정상을 향해 질주할 때 실리콘밸리는 멈추고 유럽은 보고만 있었다.
중국의 신에너지 분야 벤처캐피탈펀드만 해도 유럽 전체의 벤처캐피탈펀드 총액보다 많다.
중국이라는 신흥 부자는 새로운 과학기술과 부동산, 땅, 천연자원에 투자를 늘리고 있다.
한편으론 세계적 빈부격차가 급격히 커지고 있다.
기존이 경제이론은 이런 변화를 설명해내지 못한다.
양자경제에서는 돈과 자본흐름도 포괄적으로 보게 될 것이고 분배와 사용의 통합을 새롭게 숙고할 것이다.
신고전주의 이론에 따르면 자본의 자유로운 흐름은 경제의 균형을 유지하고 합리적으로 최적화된 자원이용을 마련하고 우리의 행복 추구를 지원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우리의 행복감도 환경도 파괴하고 잇다.
무한 개인주의는 생태 붕괴와 급속히 커지는 사회 분열을 통해 한계에 도달할 뿐아니라 양자연구의 발견을 통해서도 논박된다.
개인주의가 가정한 것과 달리 우리는 절대적으로 자유롭지 않고 집단주의적 이데올로기가 주장하는 것과 달리 절대적으로 동등하지도 않다.
우리는 고유하고 독특한 역사를 지닌 개인이면서 동시에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된 커다란 전체의 일부분이다.
우리는 신경과 호르몬과 유전자 구성 때문에 독립적 개인이 아니라 상호의존하는 존재다.
순수경쟁이 구경제에 속한다면 협력은 양자경제에 속한다.
미래에는 경영진과 직원의 책임 있는 태도와 행동 그리고 기업의 윤리적 방향이 기업의 성공을 결정할 것이다.
양자경제에서 기업은 실존적 지능을 개발하고 사용해야 한다.
인간과 세계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인간의 능력과 개인의 직관과 전체적 가치를 조합해야 한다.
양자경제에서는 제품의 전체 수명주기에 대한 책임은 제조업체에 있다.
양자경제에서는 노동자가 아니라 자원 사용자에게 세금이 부과된다.
실제 가치창조가 있는 곳이면 어디나 세금을 부과한다.
과학기술의 급격한 발달로 고전 철학적 물음이 중요해졌다.
오늘날 인간으로 사는 것은 무엇이고 내일도 계속 인간일 수 있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버려야 하는지 고찰해야 한다.
디지털화의 끝이 어떻게 될지도 예측해야 한다.
저자는 지식을 공유하고 과학, 기술, 예술, 심리학, 철학을 공부하고 세계의 새로운 운영시스템을 개발할 수 있게 되라고 한다.
저자가 너무 많은 걸 바라는 것 같다.
저자의 얘기를 요약하면 경제에 모든 분야를 짬뽕시켜서 문제점도 다각적인 시각으로 찾고 대안도 전방위적으로 찾아서 시스템을 바꿀 수 있는 사고를 하라고 한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