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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와 우파의 개소리들 - 정치적 개인주의 선언
이관호 지음 / 포르체 / 2021년 11월
평점 :

난 요즘엔 정치에 다시 관심이 없어졌지만 지식적인 면은 알아야 할 거 같아서 읽었다.
저자 이관호는 연세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철학과에서 <퇴계 이황의 천사상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프레임은 상대방이 자신을 공격할 때 그 공격을 폄하하는 용도로 쓰인다.
자신의 생각을 갖고 싶다면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저자는 치킨을 먹을 때 다리와 날개만을 먹고 버거를 먹을 때는 가슴살 패티만 먹는다.
그게 생활 속에서 발견한 프레임의 힘이다.
어떤 프레임에 익숙해지고 반복되면 그것이 편하고 좋고 옳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난 악숙한 것보다는 항상 새로운게 좋다.
그래서 치킨과 피자는 절대로 같은 걸 시켜 본적이 없다.
그러다가 디카페인 돌체 라떼와 바리스카 카라멜 마끼아또가 가장 맛있다는 걸 찾았다.
피자도 다른 종류대로 전부 시켜 먹었는데 가장 맛있는 피자가 시카고 피자라는 걸 깨달았다.
치킨은 아직도 가장 맛있는게 뭔지 찾지 못했다.
커피와 피자의 프레임을 찾은 것이다.
인지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는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에서 프레임은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형성하는 정신적 구조물이라고 했다.
정치에서 프레임은 사회정책과 그 정책을 실행하기 위해 만드는 제도를 형성한다.
프레임을 바꾸는 것은 이 모든 것을 바꾸는 일이다.
그러므로 프레임을 재구성하는 것은 곧 사회 변화를 의미한다.
정신의 구조는 언어, 기호에 의해 만들어진다.
우리는 언어를 통해 프레임을 인식한다.
우리가 어떤 단어를 들으면 우리 뇌에서 그와 관련된 프레임이 활성화된다.
부동산 가격은 규제를 하면 오른다.
매매 차익과 같은 경제적 이득만 생각하면 정확한 이유를 찾기 어렵다.
1980년 대학 운동권은 김일성 주체사상을 기반으로 한 주체사상파가 학생운동을 주도하면서 반미 감정이 증폭했다.
1980년대 운동권들은 전두환 독재를 타도하려는 민주화운동과 함께 남한을 사회주의국가로 만들고자 하는 혁명을 준비했다.
민주화 세력에는 우익과 좌익이 섞여있었고 민주화운동 세력이 꿈꾸었던 민주화된 세상의 모습이 동일하지 않았다.
진보에 대한 책도 보고 우파에 대한 책도 봤는데 중도에 대한 책은 거의 처음 보는 것 같다.
중도는 이중 개념 소유자라고 할 수 있다.
선행학습금지법에 대한 보수는 반대한다.
원전폐기를 보수는 반대한다.
국가보안법 폐기를 진보는 찬성한다.
차별금지법을 진보는 찬성한다.
한국사 국정교과서를 진보는 반대한다.
특목고 폐지를 진보는 찬성한다.
5·18특별법을 보수는 반대한다.
공기업 민영화를 보수는 찬성한다.
1가구 2주택자 규제를 진보는 찬성한다.
우버. 쏘카를 보수는 찬성한다.
기본소득 도입을 진보는 찬성한다.
소득주도성장을 보수는 반대한다.
안철수는 극좌나 극우가 있는가하면 극중도 있다고 했다.
안철수가 말한 극중은 정치권이나 언론에서 통용되는 중도의 개념이 아닌 철학적인 개념을 활용한 것이다.
철학적 의미의 중이란 어떤 상황에서 모자람과 지나침이라는 악덕을 피하는 가장 적절한 선택을 말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용을 의미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덕은 그것의 실체와 본질을 따르자면 중용이지만 최선의 것과 잘해냄의 관점을 따르자면 극단이라고 했다.
극중이란 중용(적당함, 적절함)의 실천을 위해 극도의 노력에 노력을 기울이는 정신과 자세이다.
마르크스가 부자의 재산을 겨냥하는 까닭은 재산은 사회 공동의 노력에 따른 결과물이라고 생각해서이다.
특정한 누가 그 재산을 갖게 된 것은 하나의 우연일 뿐이다.
그렇다면 나누어 가져야 한다고 했다.
자본은 개인적인 힘이 아니라 하나의 사회적인 힘이라고 했다.
마르크스는 누군가의 성취는 그 사람 본인의 노력과 역량에 의한 것이 아니라 우연의 논리라고 생각한다.
우연은 공산주의와 사회적 자유주의나 공동체주의의 이론 구성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이다.
자유주의 내에서 우연에 대한 논쟁이 이루어졌다는 점은 자본주의가 몰락할 것이라고 말한 마르크스의 예언이 틀린 이유다.
자본주의는 내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마르크스의 논리 일부를 받아들여 진화하면서 살아남았다.
마르크스, 롤스, 샌델 모두 부의 재능은 일정 부분 우연의 결과라고 말하는 것이다.

저번에 에드먼드 버크의 책을 읽을까하다가 왠지 재미가 없는 느낌이 들어서 안 읽었다.
보수는 보수만의 토론거리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건 없고 진보적 아젠다에 대한 반응만 있다.
에드먼드 버크는 근대 보수의 아버지이고 영국 정치인이다.
보수는 긍정적인 요소를 보고 과거와의 연속을 생각하고 진보는 부정적인 요소에 주목하여 과거와의 단절을 생각한다.
영국 휘그당의 정치인 에드먼드 버크는 프랑스 혁명을 잘못 시작한 것이라고 했다.
버크는 오늘날 영국 보수당의 전신인 토리당이 아니라 진보에 가까운 휘그당의 멤버였다,
휘그는 모반자, 말 도둑이라는 뜻으로 청교도들을 지칭한다.
1688년 명예혁명 때 버크는 토리당과 협력해 국왕과 대결했고 국왕은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는 영국 의회주의의 확립에 기여했다.
그 후에는 지주들과 귀족을 옹호하는 토리당과 맞서 신흥 인텔리와 자본가들의 편에 서서 개혁을 주장했다.
프랑스의 혁명가들은 그런 진보적인 영국인 버크의 지지를 기다리고 있었다.
보수와 수구의 뜻은 과거를 지킨다로 사전적 의미는 같다.
차이는 건강한가, 퇴행적인가라는 뉘앙스에 있다.
현실의 문제에 대한 개혁의 요구에 어떻게 반응하는가에 따라 보수와 진보가 나뉜다.
보수는 개혁에 반대하지 않으면 수구화와 관련이 없다.
보수는 제안된 개혁안에 대해 그런 뜻은 알겠고 그건 이런 방식으로 풀어야 한다고 하는 것이다.
이런 방식에서 드러나는 공통적인 성격들은 경험 참조, 전통의 존중, 법치, 신중함 등이 보수의 특징이다.
버크는 프랑스 혁명에 대한 판단을 그 직전에는 보류했었다.
혁명의 진행 과정을 보고 비판했다.
버크를 동해서 보수의 정신을 정리해보면 보수는 기존의 것을 활용하려 한다.
따라서 전통을 해체하는 데 신중하다.
버크는 신중함이 100년에 걸쳐 세운 것을 분노와 광포함이 반 시간 안에 폐허로 만들 것이라 공교하면서 검증된 모델 없이 지금 쓰고 있는 것을 없애면 곤란하다고 했다.
버크가 우리나라의 애국가 논란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면 신중한 입장을 권유했을 것이다.
애국가의 작사가 윤치호와 작곡가 안익태가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어 있기 때문에 생겨났다.
하지만 애국가는 한국 현대사의 고비마다 민중을 하나로 결집시키는 용도로 사용되어 또 다른 역사성을 가지고 있다.
보수주의자들은 이점을 들어 새 국가 재정을 반대한다.
불평등은 보완될 뿐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버크는 프랑스 혁명에서 외치는 평등은 헛된 기대감을 불러일으키고 사람들을 결집시키지만 이러한 기대감은 결코 없어지지 않을 실제의 불평등을 더욱 악화시킨다고 했다.
온갖 부류의 시민으로 구성된 모든 사회에서 어떤 부류는 반드시 최상층이 되기 마련이라고 했다.
보수는 가치보다 현실에서의 실용에 관심을 둔다.
진보는 반전, 평화, 여성, 환경, 민족 등의 가치를 추구한다.
보수는 신중함, 사려 깊음, 절제, 책임감, 준법, 자유 들의 가치가 아니라 성품을 얘기한다.
이념 지향이 아니라 현실에서의 실현 가능성과 유용성에 관심을 둔다.
그런 의미에서 중도와 보수는 가깝다.
인간은 늘 실수를 저지르는 불완전한 존재이지 이성에 따라 옳은 판단만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버크는 프랑스 혁명가들의 행동은 인간 본성, 정서적 측면을 부정한 것으로 극도로 부자연스럽고 반자연적인 행위라고 했다.
인간의 욕망을 억제하는 정책은 실패하기 쉽다.
버크는 미국에 부과하는 인지세법에 반대했고 1766년 해당 법의 철폐를 이끌어냈다.
영국 정부는 의회가 미국에 과세할 수 있음을 선언하는 선언법을 제정했다.
버크는 이것을 비난하면서 영국이 미국 식민지와 적극적인 화해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영국은 미국에 반란 진압을 위한 군대를 파견했고 미국독립전쟁에서 패했다.
현실 문제는 단순한 이론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버크는 혁명가들의 주장이 이론적으로는 맞지만 현실의 도덕과 정치에서까지 옳은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버크는 정치인이 옳다고 믿는 것을 실행하기 전에 국민 정서와 집단 간 갈등 상황, 종교적 역사적 맥락 등이 복잡하게 얽힌 현실을 종합적으로 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원리보다 경험에서 지혜를 얻는 것, 전통을 무시하지 않고 존중하는 것, 인간의 불완전함을 인정하며 법치를 신뢰하는 것, 신중함과 사려 깊은 태도를 가지는 것, 대화와 타협을 시도하고 규제보다는 자율을 추구하는 것이 버크의 정신이다.
동시대에 버크와 논쟁했던 토마스 페인은 상식과 인권에서 진보의 정신을 말해준다.
단순한 해법을 제시한다.
오래되었다고 정당성이 확보되지 않는다.
증세를 통해 복지를 확장하려 한다.
토지는 개인의 것이 아니다.
보수, 진보, 중도를 살펴보면서 드는 생각은 나한테 가장 도움이 되는게 무엇인지 판단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난 극하주의자이다.
하나님을 극도로 추구하는 주의자라는 것이다.
그것과 가장 맞아 떨어지는 스탠스를 취해야 할 것 같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