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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란 무엇인가
테리 이글턴 지음, 이강선 옮김 / 문예출판사 / 2021년 3월
평점 :

저자 테리 이글턴은 영국의 대표적인 마르크스주의 문화비평가이자 문학평론가, 1943년 영국 샐퍼드의 아릴랜드가 카톨릭 집안에서 태어났다.
영국 문화 연구의 창시자인 레이먼드 윌리엄스의 제자로 케임브리지 트리니티 칼리지를 졸업했다.
옥스퍼드학교와 맨체스터대학교 영문학 교수를 거쳐 현재 랭커스대학교 영문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19세기 이후 영미문학을 주로 연구했으며, 문학사상론, 포스트모더니즘, 정치, 이면, 종교 등 분야를 넘나들며 왕성한 저술할동과 사회참여를 병행해왔다.
전 세계적으로 70만 부 이상 판매된 <테리 이글턴의 문학이론 입문>을 비롯해 < 신의 죽음 그리고 문학>등 50여 종의 저서를 출간했다.
옮긴이 이강선은 필명은 이명, 성균과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번역학으로 석사학위를, 토니 모리슨 연구로 영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성균관대, 한국외국어대, 중앙대, 성신여대 등에서 영문학과 번역을 가르쳤고, 현재 호남대학교에 재직하고 있다.
문화란 다면적인 개념이어서 엄격히 통일된 하나의 경우로 논하기 힘들다.
현대의 문화관념이 왜 그처럼 중요해졌는지에 관한 질문으로 넘어가 다양한 범위의 답을 제시할 수 있다.
주요한 답들은 산업자본주의에 대한 미학적 혹은 유토피아적 비판으로서의 문화라는 관념, 혁명적 민족주의, 다문화주의, 정체성 정치의 발흥, 종교의 대체재를 찾으려는 노력, 소위 문화산업의 출현 등이다.
이는 문화가 인간 존재 속에 철저히 스며들어 있기 때문으로, 문화 상대주의의 문제 역시 인간 존재 속에 있는 것이다.
일부 포스트모던 사상가들은 다수 문화의 번창을 사실이자 중요하다고 받아들인다.
이런 관점에서 다양한 생활 형태의 존재는 게이 문화, 패션쇼 문화, 가라오케 문화에서부터 시크교도 문화, 풍자 문화와 폭주족 문화에 이르기까지 그 자체로 축하할 만한 이유가 된다. 하지만 이는 분명한 오류다.
사실 이것은 오늘날 이 주제를 검색하면 등장하는 형식적인 말들의 전형에 지나지 않는다. 문화 이론가 대부분은 생활 형태의 다원성을 믿을 뿐만 아니라 생활 형태의 혼종적 혼합물도 믿는다.
인간 역사 중 그 어떤 생산양식도 자본주의만큼 혼종적이고 포괄적이며 이종혼합적었던 것이 없었다.
자본주의는 경계를 부식시키고, 양극을 무너뜨리며, 고정된 범주를 뒤섞고, 생활 형태의 다양성을 잡다하게 버무린다.
상품보다 더 관리하고 포용적인 것은 없다.
상품은 살 수단을 가지고만 있다면 지위, 계급, 인종, 성별의 구별을 혐오하면서 누구에게나 바싹 파고들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문화연구만큼이나 계층의 적이다.
저자는 사회주의라서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것 같다.
자본주의는 자신을 포함한 바로 그 틀을 갉아먹을 수 있는 정치적 태도를 가진 사람들만 제와하고 모두를 포함한다.
영국에서 사적 의료서비스를 공적 의료보장과 혼합해 국민건강보험 NHS를 혼종화하려는 조치들이 있었다.
최고의 혼종성과그 자체가 좋은 것이라고 믿는 옹호자들은 그런 기획을 받아들인다.
미국 공화당은 자유주의적 공화당원들과 보수주의적인 티파티 회원들을 함께 포함하고 있는 혼종적 조치인데, 이는 차이의 다양성을 의문의 여지없는 장점으로 여기는 이들에게 환영할 만한 사실임에 틀림없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무슬림 동포단의 일원이고 알카에다가 미 중앙정보부 소속이라고 믿는 공화당원들이 없다면, 공화당 구성은 더욱더 황량하고 단조로울 것이다.
모든 획일성이 다 치명적인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모든 단일성이나 의견 일치가 ‘ 본질주의’로 악마화될 일도 아니다.
반대로 단일성이나 의견 일치가 훨씬 더 많을수록 전적으로 환영받을 수도 있다.
하나의 세계를 구성하기 위해 모든 종류의 의견이 필요하다는 말은 옳다.
또 그다지 좋은 다양성의 사례는 아니지만, 이민자를 환영해야 한다고 믿고 사람이 있는 반면, 그들이 탄 보트에 조준 사격을 퍼부어 침몰시켜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서로 다른 관점을 지닌 사람들이 있다.
다른 관점은 단지 그것이 다르다는 이유로 존중되지 않는다.
어떤 의견은 누군가가 그런 의견을 갖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가치 없다 여겨진다.
어떤 역겨운 관점이라도 덜하거나 더하거나에 상관없이 생각만 할 수 있다면, 어디에선가 누군가는 그런 관점을 갖고 있기 마련이다.

넬슨 만델라가 악의 화신이었다고 믿는 우파 아프리카너들도 있기 때문이다.
그루초 막스는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이 활동하는 클럽에는 가입하고 싶지 않을 거라는 유명한 말을 했는데, 전쟁 범죄자들이 운영하는 클럽에 가입하기를 열망하는 사람 역시 없을 것이다.
배타성의 원칙에는 잘못된 것이 전혀 없다.
예를 들자면 소아성애자 집단이나 여자들을 성노예로 매매하는 남자들이다.
또한 모든 소수자를 애정으로 포용해야 하는 건 아니다.
왜냐하면 포스트모더니즘은 아직 역사가 짧아 대중 정치운동이 어떤 주변부나 소수자들보다도 훨씬 더 강력하게 국가를 뒤흔들 역량이 있음을 증명한 때가 없기 때문이다.
포스트모니즘은 그 자신의 정치적 역사가 혹은 오히려 정치적 역사 부재가 정치적 관점을 얼마나 깊이 형성하는지알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문화적으로 말하면 우리 모두는 동일하게 존중받는 반면, 경제적으로 말하면 푸드뱅크 이용자와 투자은행 이용자 사이의 격차는 그 어느 때보다 커졌다.
포용성을 무조건적으로 맹신하면 이런 물질적 차이를 못하게 된다.
원하는 대로 옷을 입고, 숭배하고, 사랑을 나눌 권리는 존중받지만, 제대로된 임금을 받을 권리는 부정된다.
문화는 위계를 거부하지만, 교육 시스템은 위계로 가득하다.
문화이론은 혼종성과 다원성으로부터 고통을 몰아내버릴 위험성을 갖고 있다.
여러 언어가 사용되는 카페에서 외국에서 온 동료들과 어울리면서 더욱 범 세계주의적 스타일을 추구하기 위해 모국을 배척했던 모더니스트 예술가들은 문화이론을 매혹적인 해방이라 여겼다.
모든 인간은 살아가는 데 적정한 정도의 정체성과 안정성을 꼭 필요로 한다.
일부 포스트모던 이론가들은 1980년대 이래로 인간사를 오로지 문화로만 설명하는 문화주의라는 신조를 수용하기 시작했다.
인간은 더 이상 하나의 종으로 공통적인 필요와 능력을 가진 자연적이고 물질적인 동물이라고 여겨지지 않았고, 대신 시종일관 문화적인 동물로만 파악되었다.
인간이 공유한 필수적 특징들을 공통 인간성으로 나타내는 일은 겉만 그럴싸한 보편성이라는 이름으로 문화적 차이를 억누르는 일이었던 것이다.
문화 상대주의는 아주 믿기 어려운 지점에 위치한다.
대부분의 문화주의자에게 인간 존재에 보편적 토대가 있다는 믿음은 환상이다.
문화는 단독으로 존재한다.
문화는 자신보다 더 근본적인 어떤 것, 즉 신, 정신, 물질, 인간 본성, 생명력, 변증법, 역사의 전진, 우주의 구조 등에 의지하는 것처럼 보여서는 안된다.
하지만 문화보다 더욱 심층적인 것이 있으니, 곧 문화를 가능하게 하고 필연적으로 만드는 역할을 하는 물질적 조건이 그것이다.
인간이 애초에 문화를 탄생시킨 특유한 종류의 물적 존재이고 또한 문화를 탄생하게 만든 것이 바로 이 물적 성질이다.
문화는 너무 광범위한 주제라서 그런지 역시나 어렵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