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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드시는 하나님 세우시는 하나님 - 팬데믹 이후, 인생 재편의 시작
박종렬 지음 / 패스오버 / 2021년 3월
평점 :

하나님은 흔드시고 그 다음 다시 세우신다.
하나님은 네가 할 수 있는 것만 하고 나머지는 하나님이 해주신다는 얘기가 위로가 된다.
세상을 살다보면 삶의 의지도 꺾는 인생의 위기가 있는 것 같다.
기독교는 부활의 기쁨만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고난을 이겨내면 강력한 믿음의 사람이 된다.
하나님의 움직임을 발견하는 사람은 행복하기는 하다.
인생에서 문제가 생기면 내 인생이 어디가 꼬였는지 생각할 게 아니라 하나님이 내 인생을 어떻게 되기를 원하시는지 내가 무엇을 깨닫기를 원하시는지를 알아야 한다.
삶의 멘붕에 빠졌을 때 염려를 하지 말고 11차원도 넘는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
낙망하지 말고 기도의 끈을 붙잡고 있으면 이길 수 있다.
주변에 코로나에 걸린 교수님이 계신데 코로나는 몸살 감기와 같았다고 했다.
코로나로 교회가 침몰하는 것 같은데 이 책에 교회나 사람들이 다시 비상할 수 있는 방법들이 있는지 찾아 보고 싶어서 읽었다.
저자 박종렬은 14년간 공익 공익 분야에서 일했고 1994년부터 온누리교회에서 전임 사역을 시작해 미디어 연관 목회에서 많은 열매를 거뒀다.
안정적 사역을 하다가 50대 중반 2008년 조이어스교회를 개척했다.
난 믿음과 기도에 대해서 가장 관심이 많다.
내가 잘 믿는다면 이 세상에서 어떤 고난에도 끄떡없고 기도생활을 잘한다면 하나님과의 교제 속에서 너무 행복하고 즐겁기때문이다.
사람들은 믿음이 있다면 모든 삶에서 형통해야 하지 않느냐고 생각한다.
그런 그렇지 못할 때가 너무나 많다.
오히려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더 안 풀리고 더 힘들게 살아가기도 한다.
그래서 당황하고 맥이 빠진다.
그러나 기독교의 믿음은, 믿음으로 인한 구원은, 이 구원의 은혜는 형통함으로 인도하지만 형통과 동격은 아니다.
그 본래 의미는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이 삶의 모든 영역을 다스리고 지키고 인도해주시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고전2:5)
세상 이치와 기준에 익숙해지면 믿음도 외형적이고 물질적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인간적인 야망과 영적 세계에서 말하는 믿음은 분명 다르다.
믿음의 실체, 믿음의 크기는 하나님을 얼마나 신뢰하느냐에 달려 있다.
믿음은 하나님을 얼마나 신뢰,,,,,,,새기고 또 새기고 하나님을 끝간데 없이 무한대로 신뢰해야 겠네,,
인생이 너무 힘들 때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할 수 있냐고 하는데 죽음직전까지 갔을 때 이 세상에는 아무것도 붙들게 없었다.
난 어쩔 수 없이 하나님만 붙들었고 그런 나를 하나님은 외면하지 않으시고 나의 손을 붙들어 주셨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믿음으로 요셉은 임종 시에 이스라엘 자손들이 떠날 것을 말하고 또 자기 뼈를 위하여 명하였으며,,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받기를 거절하고 (히11;8, 22, 24)
믿음을 빼고 아브라함이나 요셉의 삶을 생각하면 미련하고 바보스러운 인생이다.
자기 꿈과 야망을 따랐다면 더욱 확실하고 유리하게 자기 자리를 찾아 가야 했을 것이다.
믿음의 사람, 믿음의 세계, 믿음의 원리는 세상 원리와는 전혀 다른, 또 다른 세계를 만들고 또 다른 세상에서 살게 한다.
진짜 믿음은 약속의 말씀을 붙드는 것, 그 약속을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다.
믿음의 근거는 내가 경험한 것, 내가 본 것, 내가 행한 것에 있지 않고 주님의 말씀에 있다.
겨자씨만 한 믿음 자체로만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믿음 자체가 기적을 만들어내지는 못하고 예수 그리스도가 있어야 한다.
능력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것이다.
겨자씨만 한 믿음은 믿음의 근거, 믿음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가를 말씀하신 것이다.
믿음의 근원 되신 예수 그리스도에 눈을 뜨는 것, 그 예수를 내 삶과 능력의 근원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주님은 바라신다.
예수님과 함께하는 것이 믿음의 근본이다.
주께 합당하게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골1:10)

기도는 영혼을 살리고 유지시키는 호흡이다.
모든 믿음의 사람에게 기도는 지켜야 할 원칙의 문제가 아니라 삶 그자체이다.
인간은 다른 무엇보다 영으로 사는 존재임을 알게 하고 영의 능력으로 살아야 행복하다는 것을 알도록 한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눅18:1)
기도는 생명의 근원 되시는 하나님과의 만남이고 대화이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내 안에서 일하시는 생명의 능력을 나타낼 수 있다.
어려움에 부닥쳤을 때 기도는 그 모든 상황, 환경, 인간의 약점, 연약함을 돌파하는 힘을 준다.
사방이 다 막혔더라도 하나님을 찾고 예수께 나아가는 기도의 길은 언제든지 열려 있다.
기도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세계를 마음껏 펼쳐 보여주신다.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이는 변함없는 진리이다.
기도는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을 볼 수 있게 한다.
기도의 열매는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낸다.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특징이 있다.
겉으로 볼 때는 힘도 없고 볼품도 없지만 그 안에는 강인한 힘이 있고 말과 말 사이에 분명한 매듭과 확신이 있다.
하나님은 신실하시다.
주변을 둘러보고 우리 자신을 살펴보아도 믿을 만한 것 하나 없는데 그래서 외롭고 고독하고 두려움과 염려뿐인데 하나님은 늘 그 자리에 계신다.
기도만이 살길이다.
절망적 상황에서 절대자를 놓치지 않는 것이 정의를, 인자를 나타내는 겸손한 자의 영성이다.
하나님앞에 부르짖으며 침묵하며 몸부림치며 해왔던 모든 기도는 영원히 남아 있다.
우리가 하나님을 붙잡고 드린 기도는 사라지지 않는다.
기도는 하나님 백성이 하나님 나라에 쌓아둔 자본금이다.
하나님은 성도가 그렇게 쌓아둔 기도를 세상에서 필요할 때마다 기도자의 삶에 필요할 때마다 크고 놀랍게 사용하신다.
개인에게 응답되지 않은 기도도 있고 상황이 크게 달라진 것 같지 않더라도 하나님은 믿음으로 구하는 모든 기도를 하나도 버리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우리 기도를 당신의 품 안에서 잘 품으시다가 어느 순간 때가 되면 강력한 생명력으로 나타나도록 사용하신다.
이것이 기도의 힘이다.
이런 의미에서 기도의 사람은 절대 죽지 않는다.
불멸의 존재가 되는 것이다.
기도는 하면 할수록 아버지의 품을 파고들어 그 품 안에서 둥우리를 만들고 그 안에서 많은 열매와 결과를 낳는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로 세상을 다스리시길 원하신다.
기도가 넘칠수록 세상은 좋아지고 아름다워지며 기도가 강해질수록 세상 세력은 약해진다.
하나님 나라 운동은 우리의 기도에 달려 있다.
기도는 하나님 나라를 위한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한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변함없는 통로이기 때문이다.
내게 구하라 내가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끝까지 이르리로다(시2:8)
이 책은 내가 필요한 것을 얻을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