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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쓰는 책 - 읽기만 하면 누구나 책을 쓸 수 있는
김경윤 지음 / 오도스(odos) / 2020년 11월
평점 :

저자 김윤경은 서른 살인 1994년에 첫 책인 <철학사냥1>을 썼다. 마흔네 살이 되던 2008년부터 지금까지 26권의 책을 썼다.
한 해 평균 두 권 정도 책을 쓴 셈이다.
책을 쓰면서 책을 썼다.
계속 책을 쓰다 보니 책 쓰기 책은 별로 없기에 책을 쓰고 싶은 사람에게 실제적인 도움을 주려고 이 책을 썼다.
몸으로는 평생 만 명 만나기도 힘들겠지만, 책으로는 수십만 명을 만날 수 있었다.
저자는 죽는 날까지 이 매력적인 일을 계속하려고 한다.
청소년과 말과 글을 나누기 위해 <자유청소년도서관>을 설립하고 지역 사람들과 같이 만나려고 인문학 놀이터 <참새방앗간>을 열었다.
평소에는 책을 읽고 쓰며, 거기서 얻은 자양분으로 인문학 강의를 한다.
참새방앗간이 있는 참새들에게 매일 ‘참새방앗간’ 편지를 발송하고, 읽고 쓴 글들을 ‘브런치’에 연재하고 있다.
유튜브에 ‘김경윤 인문학TV’ 채널을 만들어 인문학 동영상을 올리고, 백수들이 모인 회사, ‘병병컴퍼니’를 설립하여 어떤 활약을 할지 궁리 중이라고 한다.
저자는 집을 짓듯이 책을 쓰라고 한다.
평상시에 글도 책을 쓴다는 마음으로 써야 한다고 말한다.
거기에 해당되는 에피소드 하나를 저자가 소개해준다.
세 명의 벽돌공이 부지런히 벽돌을 쌓고 있었다.
지나가던 어떤 사람이 그 벽돌공에게 물었다.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첫 번째 벽돌공이 이렇게 대답했다.
“벽돌을 쌓고 있습니다.” 그 사람은 두 번째 벽돌공에게 물었다.
“무엇하고 있습니까?” 그러자 두 번째 벽돌공이 대답했다.
“나는 일당을 벌고 있소이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벽돌공에게 같은 질문을 던지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 말입니까? 나는 지금 최고의 성당을 짓고 있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세 명의 벽돌공은 똑같은 일을 하고 있었지만 전혀 다른 대답을 했다.
마음가짐이 달랐기 때문이다.
마지막 사람만이 벽돌을 쌓는 이유와 목표를 알고 있었다.
이 책의 부제는 자기 암시법이다.
‘리더’의 자리에 ‘저자’를 넣어보라고 말한다.
무릇 글을 쓰는 사람은 저자가 되고자 해야 한다.
책을 쓴다는 것은, 그 자체로도 자신의 성장에 엄청난 발전을 가져온다.
단편적인 생각들을 모아 유기적으로 구성하는 방법도 알게되고, 자신이 진짜로 알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은 무엇인지 깨달을 수도 있게 된다.
책을 쓴다는 것은 자신의 삶의 단단한 매듭들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매듭이 있는 삶은 쉽게 미끄러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 매듭이 발판이 되어 더 높은 경지에 오를 수 있게 된다.
저자는 책을 쓰는 과정이 즐겁기만 하다고 거짓말하지는 않는다.
글을 쓰는 것과 마찬가지로 책을 쓰는 것은 어렵고 힘든 일이다.
도중에 그만두고 싶을 때도 많고, 책을 쓰지 못하는 이유도 수없이 많이 만들 수 있다.
무덤에도 핑계가 있다는데, 삶이야 핑계거리가 얼마나 많겠는가.
하지만 모든 핑계를 뒤로한 채 쉬지 말고 책을 써야 한다.
저자는 책을 쓰는 사람들을 응원하고, 책을 쓰는 이유와 책을 쓰는 방법을 사람들과 나누기 위해 쓴 것이다.
이 책을 읽고 용기를 내서 책을 쓰는 사람 역시 반드시 성장할 수 있다고 한다.
저자에게는 책을 쓴다는 목표를 가지고 같은 길을 걸어가는 길동무이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은 저자와 학생과 선생이 아니라 친구로서 우정을 나누며 힘든 길을 같이 가는 것이다.
이런 얘기는 왠지 저자와 나를 이어주는 것 같다.
숭실대 교수님은 힘들 때마다 엄마한테 전화해서 기도를 해달라고 한다.
교수님 아들이 한양대로스쿨에 다니는데 인질로 잡혀 있는 기분이 든다고 엄마도 딸 잘 지키라고 했다.
교수님 아들도 모솔이라고 한다.
교수님은 페미니즘에 대한 비평을 많이 쓰시지만 페미니즘 이론에 매몰되면 안 된다고 하셨다.
여성은 페미니즘이 우선이 아니라 따뜻함과 부드러움속에서 사랑이 더 많아야 한다고 하셨다.
저번에는 교수님이 내로남불인 줄 알고 감정이 안 좋았지만 지금은 교수님이 자주 연락하시고 나한테 '예쁜 아기'라고 하시면서 나의 의문점을 잘 들어주신다.
같은 여성으로서 자부심을 주시는 분이시기도 하다.
그 교수님은 우리나라가 너무 걱정이 된다고 해서 엄마는 내 미국친구한테 들은 얘기를 해주니까 교수님이 희망을 다시 가지셨다.
친구는 나의 미래에 대한 동영상을 보냈는데 정말 감동적이었다.
멋진 여성에 대한 모델을 제시한 것이다.
저자는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사는 최고의 방법은 책 쓰기라고 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특별하지 않은 보통 사람들이 자기 생각을 말하고 써야 한다.
아니 역으로 보통 사람들이 자기 생각을 당당하게 말하고 글로 쓸 수 있을 때 민주주의가 실현된다.
우리의 역사는 우리가 써야 한다.
지금은 누구나 말하고 글을 쓰는 시대이다.
이러한 시대정신의 밑바탕에는 민주주의가 자리 잡고 있다.
민주주의는 ‘국민이 권력의 주인이라는 사상’이다.
‘국민’이란 추상성이 높은 말이니 좀 더 구체적으로 그 자리에 ‘나’를 넣어본다.
나는 권력의 주인이다.
권력이란 말이 거창하다면 그 자리에 ‘나의 삶’을 넣어 봐도 된다.
한편 누구나 말하고 글을 쓰는 시대를 더욱 가속화한 것은 분명 인터넷 환경이다.
인터넷은 우리네 삶에 실핏줄처럼 퍼져 있다.
자기 몸에 피를 돌게 하는 것이 혈관이라면, 인터넷은 내 삶에 정보를 돌게 만드는 인공 혈관이다.
우리는 인터넷이 없으면 하루도 못 살 것처럼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 인공 혈관을 우리에 끓임 없이 정보를 제공해주는 인공 심장이다.
깜빡하고 스마트폰을 안 가지고 외출한 날이면 우리의 심장은 불안으로 두근거리고, 우리의 뇌는 피를 공급받지 못한 것처럼 어질어질하다.
우리는 우리 손에 심장을 하나 더 갖고 살아가는 셈이다.
그런데도 쓰기가 특정한 능력을 갖추고 있는 사람이 하는 행위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특히 작가는 전문적으로 글쓰기를 배운 사람이거나 심지어 천재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전문적인 지식조차도 쉽게 배울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아마추어도 이제 얼마든지 전문적인 글쓰기를 할 수 있다.
학위가 없을지라도 전문적인 지식을 언제든, 얼마든 배울 수 있다. 책으로도 배우고 인터넷을 통해서도 배울 수 있다.
이해타산을 따지지 않고 연구하는 아마추어의 정신이야말로 민주주의에서 필요한 정신이다.
그런 의미에서 돈이 되어야지만 글을 쓰는 일부 전문작가보다는 돈이 되든 안 되든 자신이 좋아하는 글을 기꺼이 쓰는 아마추어 작가에게서 좋은 글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자신의 진솔하게 써서 책을 낸 아마추어 작가가 부상하고 있다.
작가는 책으로 자신을 증명 한다.
물론 작가라고 하루 종일 글을 쓰지 않는다.
하지만 작가가 글을 쓸 때에는 하루 종일 글 생각을 한다.
글을 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글을 쓰기 위한 준비이다.
작가의 좋은 습관을 정확히 알 수 있는 것이 작업 유형이기 때문이다.
어떤 유형이 바람직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세밀히 분석하면 천개의 유형이 있을 것이고, 각기 장단점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난 교수님, 친구, 언니, 동생들에게 너얘기 내 글에 써도 되냐고 꼭 물어본다.
그럼 써도 되지만 잘 쓰라고 한다.
쓰지 말라고 하면 안 쓸텐데 자알 쓰라고 한다.

직장인형 작가는 가장 안정적인 직업 유형이다.
마치 직장에 출근하여 일을 하고 퇴근하듯 일정한 시간을 정해놓고 일정한 분량을 쓰는 작가유형이다.
백수형 작가는 스스로 백수를 자처하고 백수끼리 모여 공부하며 글 쓰는 '감이당’을 운영하는 고전평론가 고미숙이 대표적인 작가이다. 평소에는 놀듯이 공부하다가 책을 쓸 때에는 초인적으로 몰아 쓰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백수라고 쫄면 안된다.
그리고 유쾌해야 한다.
정규직이 타임 푸어라면 백수는 타임 리치다.
청년 백수는 그야말로 타임 ‘슈퍼 리치’다.
모두가 바쁘다고 동동거릴 때 한없이 여유를 즐길 수 있는 몹시 ‘고귀한’ 존재다.
시간이 많다는 건 삶의 스텝을 세밀하게 클로즈업할 수 있다는 뜻이다.
삶을 즐기는 시간 부자로 살면서 공부하고, 유연한 태도로 글을 쓴다.
같이 놀고 공부하다 보니 책을 준비하는 시간이 줄어든다.
짧은 시간에 집중해서 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백수형 작업 방식은 단점도 그 만큼 많다.
작가의 몸이 만들어지지 않을 경우, 책을 쓰는 것은 한없이 늦춰진다.
연재형 작가 잡지나 신문에 연재한 글을 모아서 책을 내는 작가가 있다.
연재 매체의 성격에 따라 정해진 주제의 글이 강제로 청탁되어 자발성이 떨어지기도 한다.
최근에는 다양한 인터넷 매체에서 연재를 할 기회가 많아졌다.
자발적으로 연재를 하게 된다면 글쓰기의 근육이 강화되어 작가의 몸을 가질 수 있고, 청탁에 의한 연재라도 일정 기간 정기성이 보장되므로 강제로 글쓰기 근육을 키울 수 있다.
다음에서 운영하는 ‘브런치’에 작가로 등록하여 정기적으로 글을 연재할 수 있다.
연재는 강제성과 정기성을 띠고 있기 때문에 자칫 게을러질 수 있는 초보 작가들에게 좋은 작업 방식이 될 수 있다.
자기에게 맞는 방식을 찾아야 하는 이유는 어떤 유형이 되었든, 자신의 일상적인 태도와 생활 습관을 잘 고려하여 자신에게 맞는 유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딱히 맞는 유형이 없다면, 자신이 어떤 유형의 작가가 되고 싶은지 상상해본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작업 유형에 자신이 얼마나 잘 적응하고 습관화할 수 있는지를 판단하는 것이다.
글쓰기와 책 쓰기는 다르다.
“글쓰기 어렵지 않다. 단어가 모여 문장이 되고 문장이 모여 문단이 되고, 문단이 모여 글이 되고, 글이 모여 책이 된다. 그러나 글쓰기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과거에 저자는 작가가 되기 쉽다고 생각했다.
당시에는 각 단계로 넘어가는 데 수많은 관문이 있다는 것을 미처 몰랐다.
영어를 떠올려보면 저자의 말이 무슨 말인지 금세 알 수 있을 것이다.
수천 개의 영어 단어를 외운다고 해도, 책은커녕 문장 조차 못 쓰는 사람이 허다하다.
하물며 책이야 어떻겠는가.
글이 모이면 책이 되지 않느냐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글이 모이면 글더미가 될 뿐이다.
책은 글더미가 아니다.
벽돌만 모은다고 집이 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글과 책은 완전히 다른 세계이다.
속담에 ‘티끌모아 태산’ 이란 말이 있다.
반만 진실이다.
티끌이 모인다고 태산이 되지 않는다.
티끌이 태산이 되려면 단지 모으는 것만으로는 안된다.
단어는 의미의 최소 단위다.
'나비'에는 내 이름 한 글자가 들어가 있다,,
작가가 단어들의 집합소인 사전과 친해야 하는 이유는 굳이 강조할 필요가 없다.
작가는 단어를 풍성히 알고 단어의 의미에 예민한 사람이다.
단어가 모인다고 문장이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외국어의 단어를 많이 알았다 해도, 문법을 알지 못한다면 문장 하나도 못 쓰는 것을 상상해보면 단어와 문장의 차이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단어와 문장 사이에는 법칙이 끼어든다.
당연히 작가는 이러한 법칙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비문이라는 말은 문장이 아니라는 뜻이다.
문장을 만들지 못하면 작가가 될 수 없다.
단어가 모여 저절로 문장이 될 수 없듯이, 문장이 모인다고 저절로 문단이 되는 것은 아니다.
문장들이 문단이 되기 위해서는 일정한 형식과 조건이 갖추어야 한다.
문단이 되려면 통일성, 연결성, 완결성이란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통일성’이란 한 문단에는 하나의 이야기만 전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연결성’ 이란 문장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문장에도 순서가 있다.
논리적 순서이든, 묘사적 순서이든 순서에 따라 질서 있게 문장이 구성되어야 한다.
마지막 ‘완결성’ 이란 자신이 쓰고자 하는 이야기가 잘 끝나야 한다는 말이다.
얼굴을 묘사하는 데 입을 빼먹고 묘사했다면 완결된 문단이 아니다. 퇴고는 오래 많이 해도 괜찮다.
보통 작가들은 적어도 세 번 이상은 자신의 초고를 고친다.
시간이 된다면 다섯 번 정도 고치는 작가도 있다.
세 번에서 다섯 번 정도 초고를 고쳐서 탈고한다.
처음 쓴 원고에서 집필을 완전히 마치는 탈고까지 원고를 만지고 수정하는 작업을 퇴고라고 한다.
이 퇴고의 과정이 책 쓰기의 나머지 반이 된다.
기본 용어 초고(草稿): 초벌로 쓴 원고(原稿)
퇴고(蓷敲): 초고를 고치고 고쳐 씀
탈고(脫稿): 원고를 완성함
투고(投稿): 완성된 원고를 출판사(포함 언론기관)에 의뢰함 ≑(寄稿) 퇴고
저자는 퇴고와 관련한 글로 이태준의 ⌈문장강화⌋에 나오는 다음 구절이 가장 인상 깊게 남아 있다.
러시아 작가 고리키는 친구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고 한다.
“그렇게 자꾸 고치고 줄이다간 어떤 사람이 태어났다. 사랑했다. 결혼했다. 죽었다. 네 마디밖에 안 남지 않겠나?”
아주 적절한 비유라는 생각이 든다.
퇴고 과정에서는 불필요하게 쓴 단어를 버리고 긴 문장을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지나치게 짧은 문장을 적당하게 조절하는 것도 중요하다.
어떤 경우에는 아름다운 우리 형용사 하나를 고르기 위해 하루를 보낼 수도 있다.
퇴고는 원고의 완성을 의미한다.
이 과정이 지나면 남이 자기 글을 읽는다.
퇴고에 대해서 기억할게 있다.
많이 할수록 좋다. 오래 할수록 좋다. 간격을 두고 할수록 좋다.
글 단위의 퇴고는 글의 구성과 흐름, 맞춤법과 띄어쓰기 등을 살피면 되지만, 책 쓰기의 경우에는 몇 가지가 더해진다.
글 단위의 퇴고는 글의 구성과 흐름, 맞춤법과 띄어쓰기 등을 살피면 되지만, 책 쓰기의 경우에는 몇 가지가 더해진다.
다음과 같은 사항을 고려하면서 퇴고를 한다.
1)책 전체 단위의 퇴고
-책 전체의 구성과 흐름은 괜찮은가?
-전체적으로 적절한 비중을 다루고 있는가?
-제목은 적절한가?
2) 부나 장 단위의 퇴고
-큰 덩어리인 부(部)나 작은 덩어리인 장(章)은 적절히 나눠져 있는가?
-덩어리를 구성하는 부분은 균형을 갖추고 있는가?
-보충하거나 삭제할 부분은 없는가?
3)글 단위의 퇴고
-글의 주제들은 드러나 있는가?
-주제를 뒷받침하는 문장들은 잘 구성되어 있는가?
-문장의 어휘나 맞춤법, 띄어쓰기는 적절한가?
책은 한 편의 오케스트라 연주곡과 같다.
작가는 연주곡을 지휘하는 지휘자다.
곡이 청중 앞에서 연주되기 전 곡을 단원들과 함께 끓임없이 연습하고 연습한다.
작가가 퇴고하는 과정도 이와 같다.
부와 부, 장과 장, 글과 글 사이의 흐름을 정교하게 조정하면서 강조할 부분은 강조하고, 힘을 빼야 하는 부분은 뺀다.
모든 글을 피날레처럼 써서는 안 된다.
너무나 많은 정보를 주어서 정신을 혼란하게 하거나, 너무 밋밋하게 글이 전개되어 지루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강약 중 강약, 리듬과 박자에 맞추어 글을 진단하고 뺄 건 빼고 넣을 건 넣고 고칠건 고치는 것이 퇴고의 과정이다.
어쩌면 퇴고의 과정이 초고 쓰기의 과정보다 더 오래 걸리고 더 힘들지도 모른다.
저자는 퇴고를 하면 할수록 글은 더욱 좋아지고 마지막 순간까지 퇴고해야 한다고 한다.
난 한 번 쓰고 읽어 보지도 않고 바로 올리니까 오타, 맞춤법이 틀린 것도 많고 숫자같은 것도 나중에 보면 틀려 있다.
그냥 의식의 흐름에 따라 막 쓰는거다.
그런데 그렇게 쓰면 안된다는 걸 알았지만 저자가 얘기한 것처럼 꼭 따라하지는 못할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