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청년 이승만 1
김재헌 지음 / 생각의탄생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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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대통령하면 떠오르는 게 백발 할아버지, 초대 대통령, 3.15부정선거, 프란체스카 여사정도이다. 저자의 책표지에 이승만 대통령의 젊을 때 사진은 가슴 떨리게 잘생기셨다. 정치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을 당하시는 것을 보면서 진보라고 생각했던 나는 많은 것들이 혼란스러웠다. 아빠는 항상 이승만 대통령의 책을 읽으셨고 엄마대학동기분은 이승만 대통령의 위대함에 대해서 책을 쓰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이승만 대통령의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대한민국의 근간을 있게 한 미국동맹부터 기적에 가까운 일을 하셨는데도 우리에게는 너무 과소평가되어 있었다. 저자 김재헌은 베스트셀러작가이고 1961년 경북 영덕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일본 유학을 다녀오셔서 부유한 생활을 하다가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가정이 어려워졌다. 저자는 형편이 어려워도 책벌레가 돼서 꾸준히 책을 읽고 인문학, 철학, 신학을 공부하고 100여권의 책을 출판했다. 이 책은 조광복 목사의 죽음을 민주라는 작가가 취재를 하는 형식이다. 나는 조광복 목사님이 진짜 존재하시는 분인 줄 알고 검색을 했는데 없었다. 이 책은 픽션과 논픽션이 섞여 있고 주인공 이름이 민주, 광복인 것은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전광훈목사님과 태극기집회얘기부터 내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처럼 너무 사실이라서 픽션인지 모르고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은 읽으면 읽을수록 빠져드는 문체와 구성으로 정말 재미있고 나를 애국자로 만들어 줄 것 같은 행복감이 충만해지는 책이다. 이승만 대통령이 3.1운동과 관련성이 있는지, 조광복목사의 자살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를 풀어가면서 전개된다. 하지만 진정한 목사이고 기독교인이라면 절대로 자살하지 않는다. 생명은 하나님이 주관하는 것이고 자살은 하나님앞에 죄이기 때문이다. 이승만을 연구한 손세일 씨는 해방공간에서 이승만에게 밀리고 6.25전쟁에 실패한 좌익 진보들에겐 이승만은 철천지 원수라고 했다. 이 책을 통해서 이승만대통령에 대해서 깊이 알게 된 것 같다. 1948815일 정부수립과 1919413일 임시정부의 수립을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좌우익을 가른다. 기독자유우파로 살기로 선택한 나에게는 정말 중요한 정보이다. 건국의 아버지를 이승만 중심의 한성정부로 볼 것인가, 김구 중심의 임시정부로 볼 것인가가 좌우익을 결정 짓는다. 민주기자는 조광복목사의 죽음과 이승만 대통령이 3.1운동에 관련되어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하와이와 미국으로 출장을 갔다. 이승만 대통령은 조지워싱턴대와 하버드대를 거쳐 프린스턴대에서 한인 최초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은 하와이 한인사회의 전설적인 인물이다. 미국친구에서 워싱턴대나 프린스턴대가 어느 정도로 좋은 대학이냐고 물어보니까 워싱턴대는 우리나라의 성균관대정도이고 프린스턴대는 우리나라의 서울대라고 했다.

그 옛날에 우리나라에도 이런 엘리트가 있다는 것은 거의 하나님이 하시지 않으면 안되는 기적과 같은 일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선에서 대한제국은 이씨왕조와 조선사대부들의 부패와 폐쇄적인 사고방식으로 국가재정상태와 군사력은 형편없었다. 조선시대 이씨왕조는 중국사대주의 기반으로 백성들을 착취하며 500년간 조선을 통치했다. 이승만은 새로운 나라는 민국이 되어야 하고 기독교 정신으로 세워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승만의 그런 생각을 눈치 챈 조정은 그를 구속하고 종신형을 내렸다. 수많은 상소가 올라오자 못이기는 체 감형을 했지만 6년의 감옥 생활을 했다. 난 이런 일도 있었는지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알았다. 이승만이 독립협회를 윤치호와 같이 활동했는데 노선은 같았지만 방법론에서 부딪혔다. 보수는 분열되서 항상 문제라는 얘기가 있는데 과거도 그랬던 것 같다. 이승만에게는 혁명가적인 기질이 있고 윤치호에게 계몽적 기질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승만도 독립운동을 했구만 좌파들은 친일파라고 떠들고 다니는 사람들도 있다. 정말 이런 책으로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이다. 이승만은 프란체스카 여사와 50대 넘어서 결혼을 한 줄 알았는데 조선에도 아내와 아들이 있었다. 대박이다. 아내와 아들, 부모님을 조선에 두고 선교사들과 미국 고관들의 도움으로 도미를 했던 것이다. 이 책은 읽을 때 계속 울컥울컥 올라오는 부분들이 정말 많다. 제물포항에서 도미를 하는 이승만은 환송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은 배를 타고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를 부강하게 할 방편을 가지러 가는 것이고 그 방편을 확실하게 가져오지 못하면 자결을 할거라는 심정으로 간다고 하면서 자신을 위해서 기도해 달라고 했다. 이승만은 언더우드 선교사의 조언과 추천서를 가지고 미국배에 올랐다. 같은 민족도 아닌데 선교사가 이승만에게 추천서를 써준 이유는 예수그리스도 때문이다. 이승만대통령이 태평양을 건너면서 쓰신 하나님에 대한 기도문은 눈물이 난다. 우리나라에 이렇게 나라와 국민을 사랑하는 지도자가 있었구나라는 생각에 하나님께 감사하다. 왜 이정도로 이승만 대통령에 대해서 전혀 몰랐을까라는 생각을 해봤다. 전교조선생님들은 이승만 대통령님을 부정선거를 한 대통령으로 부각시켜 놓았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놀라울 정도로 존경스러운 분이다. 민주 기자는 하와이에서 미스터 최를 만나서 이승만 대통령의 행적을 따라 돌아다녔다가 위싱턴으로 갔다. 하와이에서 이승만대통령이 하와이 교민들을 위한 일들을 정말 많이 했다는 것을 또 처음 알았다. 이승만도 상투를 틀고 있었는데 에비슨 박사가 상투를 잘라주었다. 다트머스 대학을 졸업하고 조선에 선교사로 온 헐버트 박사는 이승만에게 꺼져가는 등불같은 조선이지만 언젠가 다시 동방의 빛을 발하는 귀한 나라가 될거라고 하고 이승만에게 희망을 잃지 말고 학문에 매진하고 더욱 깊은 신앙 속으로 들어가라고 했다. 그 얘기는 왠지 나한테 얘기하는 것 같은 울림이 있었다.

이승만은 하와이에 들렀다가 샌프란시스코로 향했다. 샌프란시스코의 안내자를 따라 라파엘에 사는 피시 부부를 방문했고 그들의 배려로 신학교 교장인 매킨토시 박사를 만났다. 며칠 후 승만일행은 로스앤젤레스로 갔다. 남가주대학에 다니는 신흥우 씨가 마중을 나와 주었다. 승만이 가는 곳마다 하나님은 사람들을 예비해두셨다. 이승만은 미국을 방문하고나서 미국에서 공부를 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조지 워싱턴 대학에 입학하려는 이유는 조지 워싱턴 대통령을 존경해서이다. 이승만이 루스벨트 대통령도 대학생때 만났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조선은 정말 망할 수밖에 없는 나라였는데 이승만뿐만 아니라 많은 애국자들이 미국에 가서 물밑작전을 했다는 것도 너무 놀랍고 감사했다. 민주기자는 워싱턴으로 가서 이승만 대통령의 발자취를 찾았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해 주었던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이승만 대통령한테 강도당한 것 같다고 했다. 70년 동안 미국의 국방비로 다른 나라의 안보를 100% 책임진 사례는 없다. 외교는 최소의 투입으로 최대의 실리를 얻는 것이다. 그 당시 일본제국의 팽창을 막아낼 아시아의 국가는 없었다. 이박사가 청원외교활동을 잘했고 당시 방송, 신문이 이승만의 사진과 학력을 집중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한국의 자치능력을 의심하던 국제사회의 우려를 불식시키고 한국 자치의 당위성을 설명하는 근거가 되었다. 이승만 문서는 대한민국 국가지정기록물 제 3호로 지정돼 있다. 나중에 꼭 찾아봐야겠다. 이승만은 학교에 다닐 때 조선의 백성이 미국책을 읽을 수 있도록 번역도 하고 논리학, 영어, 미국사, 프랑스어, 철학, 천문학, 경제학, 사회학, 서양사, 고대어학을 열심히 수강했다. 이승만의 아들 태산은 조선의 감옥에서도 데리고 자고 미국에 데리고 왔는데 디프테리아를 앓다가 10살쯤에 죽었다. 승만은 워싱턴대를 졸업하고 하버드대에서 석사과정을 마치고 프린스턴 대에서 국제정치학박사과정을 공부했다. 초엘리트코스만 밟은 것 같다. 승만은 프린스턴 시절 영적, 정신적으로 성장하고 경제적으로도 많이 자립했다. 승만은 공부를 마치고 하와이에 가서 독립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민주기자는 한국으로 돌아왔고 이인수박사가 얘기한 한국은 좌우이념 대립이 1919년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생각했다. 노령임시정부는 레닌의 거액공작금을 받아 자유 민주세력인 이승만 대통령을 처음엔 인정하는 척 하다가 축출해버리고 임시정부 전체를 장악하려고 했다. 해방을 맞기 26년전에 이승만은 이미 공인하는 민족지도자였다. 이승만이 3.1운동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2.8독립선언에 영향을 미쳤고 3.1운동 후 수립된 한성정부. 상하이대한임시정부에서 집정간총재, 국무총리로 추대되었다. 해방 후 대한민국 건국 과정에서 3.1운동 정신과 한성정부의 법통 계승을 위한 이승만의 노력이었다. 하와이에 있던 이승만이 선택된 이유는 당시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과의 친분이다.

민주기자가 이승만을 추적해 들어가는데 주변에 여자들이 별로 없다. 남로당 당수인 박헌영은 부인들이 여러 명이고 관계했던 여자들이 수 명이었다고 하는데 이승만은 그런 얘기가 전혀 없다. 그는 초혼 후 6년 간 감옥살이를 했고 출옥하자 5년 이상 미국에 유학, 독신생활을 한다, 하지만 아들이 죽은 후인 1912년에 박씨의 부탁으로 이혼을 한 후, 1934년 프란체스카 돈너 여사와 재혼할 때까지 20여 년간 하와이에서 독신으로 살았다. 책표지를 보니까 워낙 핸섬하셔서 좋아하는 여성들도 많았을 것 같다. 거기다가 엄청난 엘리트이니까말이다. 하지만 이승만은 공부와 여러 사역으로 정말 바빴다고 한다. 이승만은 제네바에서 프란체스카를 그녀의 어머니와 만났고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했다. 프란체스카는 오스트리아사람으로 불어, 독일어, 영어를 잘했다. 난 지금까지 프란체스카 여사가 호주사람인 줄 알았더니 아니었다. 이승만은 공산주의의 부당함을 얘기했는데 공산주의는 재산을 나눠 가지자고 한다. 부지런한 사람이 게으른 사람을 먹여 살리고 점점 게으른 사람이 늘어 날 거라고 파악했다. 자본가를 없애자고 했는데 자본가가 없으면 상업과 공업이 발달할 수 없을 거라고 비판했다. 지식계급도 없애고 종교도 혁파하고 정부도 없애고 군사도 없애고 국가사상도 없애자고 하는 것이 공산주의다. 요즘 정부를 보는 듯하다. 교회를 없애면 인류 덕의상 손해가 크게 된다. 김원봉은 이회영, 박용만, 신채호 등 베이징파와 마찬가지로 이승만과 임시정부를 비판했다. 김원봉은 독립노선이 다르다는 이유로 이승만을 암살하려고 했다. 김원봉은 임시정부가 광복군과 창설하자 중국 정부에 임시정부를 승인하지 말라고 훼방을 놓고 자신이 임시정부에 가담하려 하면서도 중국 정부에 임시정부를 승인하지 말라고 요청하는 이중 플레이를 했다. 이런 나쁜 인간을 존경한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니 화가 난다. 이승만은 코리아 완충지대론을 펼쳤다. 이 이론은 일본이 아세아 패권을 장악한 후 미국에 도전할거니까 대한민국이 독립을 지원하고 보호하라는 것이다. 미국은 처음에는 안 들었지만 진주만 기습 공격을 겪고 이승만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이승만은 맥아더 장군과도 친분이 있었다. 그 당시 미국도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과 측근들도 좌익은 아니라도 좌경화 되어 있었다. 이승만은 좌우합작 노선을 받아들여 정부 수립을 하자는 얘기에 공산주의자와는 타협할 수 없다고 했다. 공산주의자들은 짐승들의 성정으로 사물을 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들은 유물론자로 인권이라고는 전혀 없다. 제헌을 진행하는 과정에 박헌영과 남로당 제주도당 군사부 총책이자 제주인민유격대사령관 김달삼이 350여 명의 무장폭도들을 조직해 3.1절 기념식을 기화로 무장혁명을 시도했다. 그 사건이 제주 4.3사건이다. 5.10제헌국회의원선거 저지와 대한민국 건국과 정부수립을 방해하는 반역이었다. 여수 좌익들은 반공인사를 총살하고 여순경 국막래의 음부저격총살, 여순경 정현자는 나체로 옷 벗기고 길거기 일주 돈 후 타살, 모래 구덩이에 파고 죽창으로 타살, 껍질을 벗기고 꼬챙이로 찌르고 살가죽을 벗겼다.















서장의 눈알을 뽑고 전신주에 매달아 총살하거나 그 시체에 휘발유를 뿌려 불을 질렀다. 공산주의자들의 행태는 이렇다. 요즘도 좌파들은 성추행, 성희롱. 성폭행이 장난이 아니다. 옛날부터 그랬던거네. 백선엽은 지리산에 숨은 빨치산부터 처단하는 것이 근원적인 문제 해결이라고 생각했다. 승만은 건국과 동시에 한미방위조약을 맺어 미군을 주둔시키고 한국군을 무장시켜 달라고 요청했다. 미국대통령 트루먼은 미국은 한국을 버리지 않으니까 경제걱정만 하라고 했다. 그러면서 주한미군을 전부 철수했다, 그 결정이 스탈린과 김일성에게 빌미를 주어 미군철수 1년도 안 돼 전면남침을 감행한 것이다. 지금도 주한미군철수는 절대로 안되는 일인 것이다. 조선시대 이씨왕들같으면 3.8선이 무너졌을때 국민을 버리고 도망갔을 것이다. 이승만은 대한민국 국군 작전통제권을 맥아더 장군에게 이양을 했다. 그 중요한 국군 작전통제권이 이 대목에서 등장한다. 이것도 지금 우리나라가 가지면 안된다, 이승만은 국민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미국에 도움을 요청하고 기도를 했다. 이승만은 남한 병사들과 최후를 마치겠다고 한 진정한 지도자이다. 백선엽은 11연대 병사들을 지휘했다. 백선엽은 한 발짝도 후퇴할 곳이 없고 물러서면 바다뿐이라고 했다. 후퇴하면 나라가 망하니까 자신이 앞장 서겠다고 했다. 자신이 후퇴를 하면 쏘라고 했다.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위대한 장군이 있었다니. 초저개발의 신생 국가인 대한민국에 승만이 영어에 능통하고 서양 학문과 관습에 대한 고도의 이해를 가진 대통령이 아니라면 미국의 신속한 지원을 받아내지 못했을 것이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이라는 엄청난 결과는 부국강병 중 부국이 되기 위한 기초작업이 평화를 담보할 수 있는 강군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줬다. 민주 기자는 조광복 목사의 미스터리를 밝히겠다고 했는데 사모님이 알츠하이머이고 어떤 환영을 봐서 물속으로 들어 가는 걸 목사님이 말리려고 하다가 같이 돌아가신 것 같다고 했다. 인하대학은 하와이 동포들의 성금, 이승만 박사가 운영하던 중앙한인기독학교의 매각대금이 기초가 되어 설립되었다고 한다. 대한항공이 출연해 지은 학교가 아니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인하대학교를 동양의 MIT를 꿈꾸며 세웠던 것이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진영싸움이 존재하고 있고 대륙세력 중국의 종국이 되느냐 해양세력 미국의 종국이 되느냐의 문제가 또 남아있다. 이 책을 읽고 내가 가장 존경해야 할 인물은 이승만 대통령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하나님과 말씀을 근간으로 대한민국을 이승만 대통령이 세운 것이다. 이승만 대통령의 부정적인 면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 부정적인 면보다 나라 건국을 위해서 일하고 국민을 사랑한 면이 더 크고 대단하다. 난 이승만 대통령의 뜻을 받들어 우리나라가 기독자유우파의 근간이 더 굳건해지는데 법제화하고 국민들이 가장 잘 살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알려주는 글을 쓰는 변호사, 작가가 돼서 하나님께 쓰임 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광화문광장에 이승만 대통령 동상, 맥아더 장군 동상, 백선엽장군 동상은 꼭 세워져야 한다. 난 이 책을 읽고 이승만 대통령이 건국을 위해서 하신 일과 사상을 알게 되면서 대한민국을 극도로 사랑하고 자부심을 가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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