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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로 세상을 1밀리미터라도 바꿀 수 있다면 - 공감과 연대의 글쓰기 수업
메리 파이퍼 지음, 김정희 옮김 / 티라미수 더북 / 2020년 6월
평점 :

저자 메리 파이퍼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임상심리학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 오자크에서 태어나 너브래카에서 자랐다.
캘리포니아대학교에서 인류학을 전공했고 네브래스카대학에서 임상병리학 박사를 받았다. 주로 한 사회의 문화가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전문적으로 다뤄왔으며, 같은 세대 독자들에게 ‘문화치료사’ 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저자는 생각하고 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행동하고 실천하는 삶을 지향한다.
미국심리학회(APA)로부터 대통령 표창을 두 차례 수상했지만, 관타나모 수용소를 비롯한 미군군사시설에서 이뤄진 심문에 연루된 미국심리학회 소속 심리학자들에게 항의하는 뜻으로 한 차례 수상은 반납했다.
환경오염과 기후변화, 빈부격차 문제에 관심이 많고, 정부 부처나 각종 매체에 글로써 적극적이고 소신 있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메리 파이퍼는 다소 늦은 나이인 마흔 네 살 때 글쓰기를 배우기 시작했다.
지금은 성공한 작가지만 그 역시 스스로를 ‘재능은 없으면서 꿈만 야무진 평범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좌절에 머무르지 않고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발견했으며, “글쓰기와 심리치료는 둘 다 사람들을 산 정상까지 데리고 갈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낸다”는 자신의 말마따나 심리치료 지식과 경험을 주제와 엮어내 ‘공감을 통한 변화’ 라는 개성 있는 글쓰기 스타일을 완성해 냈다.
글쓰기에 대한 한없는 사랑과 지침이 담긴 이 책을 읽다 보면 누구나 글을 쓰면서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다른 사람의 성장을 도우면서 세상을 조금이나마 바꿔나갈 수 있다는 긍정의 씨앗을 품게 될 것이다.
오랜 시간 인간은 대륙 저 멀리는커녕 바로 옆 산 너머의 일도 모르고 살았다.
그들은 자신이 보고, 듣고, 맛보고, 냄새 맡고, 만질 수 있는 것만 알았다.
과거의 인간들은 잘 여문 블루베리를 발견하면 따다가 저녁으로 먹었다.
어른들은 서로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았다.
이웃집 오두막이 불타면 새로 짓는 걸 도왔다.
아이들이 부모 없이 홀로 남겨지면 맡아 길렀다.
오늘날 우리 감각은 기술을 통해 증폭된다.
우리는 세계 도처에서 상세한 정보를 받는다.
매일 건물이 파괴되고, 아이들이 굶주리고, 마을 전체가 질병으로 죽어가는 모습을 본다.
우리 뇌와 부신 호르몬 시스템은 세계 각지의 사건에 전기적, 화학적 반응을 일으킨다.
우리는 지금 우리의 아름다운 민주주의가 눈앞에서 무너지는걸 목도하고 있다.
정부가 제네바협정을 무시하고, 고문이 수사기법으로 활용되는 것만 봐도 그렇다.(고문은 미국 역사상 단 한 번도 공식 정책이었던 적이 없다)
역사에서 흔히 보듯 권력은 지혜나 연민이 아니라 부의 크기에 따라 분배된다.
세상은 불량배와 폭력배가 지배한다.
날이 갈수록 십자군과 지하디스트가 충돌했던 중세의 위기에 휘말려 오도 가도 못 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계몽사상은 그 빛을 잃어가고 있고, 과학은 혹사당하는 동시에 무시의 대상이 되고 있다.
첨단기술은 공동의 지혜가 쇠락하는 동안 급속하게 발전하고 있다.
미국은 소비에는 강하지만 도통 음미할 줄은 모른다.
저자가 심리치료사로 활동해온 지난 30년에 비춰 볼 때 미국인이 지금보다 더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린 적은 없었다.
우리는 오늘날을 정보의 시대라고 부르지만 정작 지혜는 공급 부족에 시달린다.
인간의 생각을 담아내는 언어는 그저 마케팅 도구로 쓰이곤 한다.
스타일이 본질에 앞선다.
전쟁은 평화라 불리고, 파괴는 발전이라 불린다.
환경파괴는 부차적인 문제로 다뤄지거나 그 의미를 희석한다.
불분명한 언어 사용의 예로 2004년 봄 의회 청문회에서 미 정보국장 조지 테닛이 했던 말을 즐겨 인용한다.
그는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정부의 부정확한 정보에 대한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그 자료는 유례없이 정책결정과 부합하지 않습니다.”
무슨 말인지 해석이 필요하다.
때로는 언어 자체가 무기로 돌변하기도 한다.
위스콘신주의 제임스 센스브래너의원은 필요한 서류를 갖추지 못한 채 급히 조국을 떠나 망명을 신청하는 사람들을 단속해야 한다며 이렇게 외쳤다.
“테러리스트들이 미국의 망명 시스템을 갖고 장난치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망명 신청자들이 정말로 테러리스트와 관련 있는지 확인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언급하지 않았다.
그리고 분명히 말하건대 그는 저자가 아는 망명 신청자들, 그러니까 중국 군부대로부터 달아난 티베트 승려, 정부의 탄압을 피해 도망친 인권운동가, 민주주의를 두려워하는 지도자들 때문에 조국을 등진 미국의 위대한 친구들을 알지 못한다.
‘다른 사람들’을 대상화하고 비인격화하고 비인간화하는 도구로 사용될 때, 언어는 무기가 된다.
‘우리와 다르다’는 꼬리표가 달리면 그들에게는 더 이상 문명화된 행동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불법체류자를 뜻하는 ‘illegal alien’이 좋은 예다.
‘불법’ 이라는 의미의 ‘illegal’이나 ‘이질적인’또는 ‘외국인 체류자’라는 의미의 ‘alien’단어 모두 지칭하는 사람을 우리와 분리시킨다.
게다가 미국은 불법체류자를 상당히 형편없이 다룬다.
하지만 세상에는 불법인 사람도, 이질적인 사람도 없다.
이것이 진실이다.
공정사법연대의 캐이 데일리는 미사일같은 말로 사람들을 문자 그대로 폭격했다.
그는 자기가 ‘좌파’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 이렇게 썼다.
“당신은 그들을 압니다. 당신은 그들을 봤습니다. 임신중절을 지지하는 미치광이, 과격한 페미니스트, 국가에 대한 맹세와 십계명을 공격하며 소송을 제기하는 무신론자, 환경운동가, 무턱대고 환경보호를 주장하는 극단주의 동물권 운동가, 국제연합을 숭배하는 세계정부주의자, 공격적인 동성애자, 반군사적인 히피 평화주의자.....”진보주의에게도 상대를 비인간화하는 나름의 방법이 있다.
그들은 ‘근본주의자,’ ‘촌뜨기,’‘보수 우파’같은 말을 쓰면서 상대의 관점에 대해 뉘앙스의 차이, 개인적 차이, 또는 공감의 여지를 전혀 허용하지 않는다.
그리고 무슨 말만 하면 극우라고 해서 말을 못하겠다고 한다.

말이든 총이든, 저자는 무기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저자가 원하는 건 너무나 붐비는, 이 기진 맥진한 지구의 구조대원이 되는 것이다.
다른 장소에 살면서 진실을 말하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작가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로마의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는 시인 오비디스를 추방했다.
스탈린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와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을 포함해 수많은 작가를 고문하고 감옥에 가뒀으며, 시인 오시프 만델스탐을 숙청했다.
독일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는 독일의 유대인들을 구하고자 쓴 글이 빌미가 돼 목숨을 잃었다.
세상을 바꾸겠다는 목표를 갖고 펜을 들었다면 자신은 이제 글과 이슈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공동체의 일원이다.
누군가는 부모들에게 예방접종에 대해 교육하고자하는 소아과 의사일 수도 있고, 더 설득력 있는 설교문을 쓰고 싶어 하는 목사일 수도 작가로서 자신의 목표에는 누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속 깊은 뜻이 있을지도 모른다.
글쓰기는 심리치료와 닮은 점이 많다.
우선, 둘 다 좁은 방에 오래 머무르는 것을 비롯해 상당한 절제력이 필요하다.
둘 다 지적인 질문을 던지고 감정적인 진실을 이끌어내어야 하며 복잡한 문제를 풀어내야 한다.
지혜로운 심리치료사는 내담자가 더 명확하게 생각하고, 더 깊이 느끼며, 더 책임감 있게 행동하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지혜로운 작가도 자주 그런 역할을 한다.
심리치료사는 내담자가 그를 존경할 때에만 성공에 이를 수 있다.
보통 사람들은 자신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들어 주는 사람에게 호의를 갖는다.
내담자는 심리치료사의 존중을 얻어내기 위해 비위를 맞추거나 심지어 합리적일 필요도 없다.
그저 자신의 상태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기만 하면 된다.
상대에 대한 경멸은 언제나 되돌아오기 마련이다.
경멸은 방어적인 태도와 두려움을 불러 일으키는데, 이는 변화의 과정에서 악영향을 미친다. 작가들에게 독자의 대한 관심은 조금만 남겨두고 창의적인 과정에 집중하라고 충고했다.
독자에 대해 지나치게 많이 생각하면 남의 눈을 의식하게 된다.
작가는 어떤 식의 검열도 없이 자유롭게 생각을 펼칠 수 있어야 한다.
세상을 하나로 잇는 작가는 독자가 더 나은 미래를 상상할 수 있게 돕는다.
작가가 글을 쓰는 동안 새로운 사유의 영역을 발견해내지 못하면 독자에게도 새로운 풍경을 보여줄 수 없다.
세상에서 제일 오래된 이야기 두 가지는 누군가가 마을을 떠나 여행길에 오르는 이야기와 누군가가 마을을 방문하는 이야기일 것이다.
저자는 독자에게 저자가 본 곳으로 같이 가자고 한다.
같이 새로운 영역을 탐험하자고 한다.
저자가 처음 왔지만 정말 멋진 곳이라고 알려준다.
음악가들이 쉽게 흥얼거릴 수 있는 것이라고 표현하는 흥미로운 소재를 갖고도 그걸 뇌리에 꽂힐 만큼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빚어내는 재주가 그들에겐 없었다.
글쓰기는 집짓기와 비슷하다.
가장 중요한 단계는 기초공사다.
탄탄한 기초공사는 시간을 가장 많이 잡아먹지만, 제대로만 해놓으면 집을 완성시키는 일이 간단해진다.
글을 쓰려면 대담해져야 한다.
다양한 분야의 정보를 통합해서 쓴 글은 생동감이 넘친다.
아무리 짧은 글이라도 그 안에서 문학, 과학, 신학, 인용문, 집안 이야기 등을 조합할 수 있다. 저자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와 똑같은 문제를 경험했던 수천, 수백 년 전 먼 과거 사람들의 삶을 보여주는 전략을 즐겨 구사한다.
정확한 디테일을 살리려면 두루뭉술한 일반적인 용어를 좀 더 구체적인 용어로 바꾸어 쓰는게 좋다.
에세이는 저자가 얻은 깨달음을 세상 사람들과 나누기 위해 보내는 초대장이다.
저자가 공유하고자 하는 것은 삶의 아주 작은 단편과 경험이지만 거기에는 저자 자신의 영혼으로 엮어낸 이야기가 담겨 있다.
저자는 이야기 속 한정된 순간을 넘어서서, 독자와 저자 자신의 마음을 활짝 열어젖혀 우주를 완전히 새로운 시선으로 보도록 할 수 있다.
메디슨이라는 작가의 에세이는 재치 있으면서도 가슴 찌릿하다.
주방에 타일을 붙인 소소한 일상을 ‘자녀들의 생활에 대한 통제력 상실’이라는 모든 부모와 보편적 문제와 연결했다.
작가는 주말에 남편과 주방에 타일을 붙였다고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럴듯해 보인다.
톱질을 하고 타일을 쪼개고 접착제를 바르는 동안, 이런 작업을 부모들에게 적용하면 꽤 괜찮은 치료 효과를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것 하나도 자신의 손으로 직접 했다는 뿌듯함은 자존감을 높여 주기도 하며, 정신이 건강해 질 수도 있다는 게 중요하다.
자신들도 얼마든지 무언가를 아직은 할 수가 있음을 느낄 때 정신의 건강은 최고의 수준으로 업되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얘기는 자신이 뭔가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글을 써야 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