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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페미니즘
웨인 A. 그루뎀 지음, 조계광 옮김 / CH북스(크리스천다이제스트) / 2020년 3월
평점 :

페미니즘은 항상 관심이 많고 요즘은 페미니즘에 공산주의가 깊이 개입했다고 하는데 복음주의적인 페미니즘을 알고 싶어서 있었는데 반전이 있는 책이다.
저자 웨인 A. 그루뎀은 하버드 대학교에서 학사,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에서 교역학 석사,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신약학을 전공하면서 "고린도전서에 나타난 예언의 은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침례교목사이며 트리니티 복음주의 신학교에서 성서학과 조직신학 학과의 학과장겸 교수로 일했으며 현재 피닉스 신학대학원 교수로 있다.
난 저자가 여성일거라고 생각하고 봤는데 저자는 남성이다.
상호보완주의와 퍙등주의의 논쟁 가운데 성경의 권위라는 근본적인 문제가 걸려 있다.
성경을 근거로 평등주의를 주장할 수 있다면 아무것이나 다 주장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웨인 그루뎀의 점증적인 논증은 상당한 무게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쉽게 무시하기 어렵다.
평등주의는 성경적인 정통주의에서 벗어나 새로운 길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평등주의 이념은 우리 시대의 가장 심각한 신학적 도전에 해당한다.
신학적 자유주의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온전한 진정성을 소유하고 있고 우리의 삶 속에서 유일무이한 절대적 권위를 지닌다는 것을 부인하는 사상 체계이다.
복음주의 페미니즘은 결혼생활이나 교회에서의 지도자적 위치가 남자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운동을 각각 가리킨다.
복음주의 페미니즘은 남자는 단지 남편이라는 이유만으로 결혼 생활에서 지도자적 위치를 독차지할 수 없다.
지도자적 역할은 남녀가 각자의 은사와 욕구에 따라 동등하게 공유해야 한다.
교회에서도 지도자적 위치는 남자들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남성은 물론 여성도 목회자나 장로를 비롯해 교회의 모든 직분을 맡을 수 있다.
복음주의 페미니즘은 자유주의 개신교 교단들이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오늘날의 복음주의 페미니스트들은 신학적 자유주의자들이 여성 성직 안수를 옹호하고 결혼과 관련된 남성의지도자적 역할을 거부하기 위해 대부분을 채택했다.
저명한 복음주의 페미니스트 저술가들 가운데는 성경의 권위를 부인하거나 훼손하는 입장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많고 평등주의를 선호하는 지도자들 가운데도 그런 사람들이 펴낸 책들을 지지하거나 성경의 권위를 부인하는사람들을 공개적으로 논박하는 사람들이 많다.
최근 경향의 복음주의 페미니스트는 남성의 독툭성과 솬련된 것은 무엇이든 거부할 뿐 아니더라는 하나님을 하늘에 계신 우리 어머니로 일컫는 것에 찬성하기까지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건 좀 아닌 것 같다.
이 모든 경향을 관통하는 한 가지 공통점은 성경이 사람들의 삶 속에서 효과적인 권위를 지닌다는 것을 부인하는 것이다.
이것이 곧 신학적 자유주의의 기본 원리이다.
저자는 30년 동안 교수로 일하면서 성경을 신뢰하던 보수적인 기독교 대학교가 자유주의로 기울러 성경을 부인하는 내용을 가르치고 자유주의 목회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진리를 전하기보다 문화적인 풍조를 좇아 사람들의 인기를 끌만한 것을 전하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그렇게 한 이유는 문화적인 압력에 굴복해서이다.
각 세대마다 그 문화 안에는 성경의 가르침과 반대되는 대중적인 견해들이 존재하기 마련이고 그런 와중에서 어떤 식으로든 타협이 이루어지지 쉽다.
20세기 초에는 하나님의 부성과 인간의 형제애를 강조하며 사람들은 근본적으로 선하기 때문에 죗값을 치러줄 구원자가 필요하지 않고 지옥과 같은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던 자유주의 신학 사상에 굴복하기가 쉬었다.
20세기 전반에 걸쳐서는 과확적인 세계관에 굴복해 참된 기적은 자연의 법칙에 어긋나기 때문에 절대로 일어날 수 없다는 주장,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을 비롯한 성경의 기적들은 실제로 일어난 사실이 아니기 때문에 그다지 중요하지 않고 성경의 도덕적인 가르침만 받아들이면 된다는 논리에 굴복하기 쉬웠다.
많은 교회들이 그런 주장에 미혹되어 문화적 풍조를 좇아 자유주의로 기울었다.
오늘날 과학계에 종사하는 학자들은 현시대의 지배적인 견해에 굴복해 모든 생명체가 무작위적인 돌연변이를 거쳐 생명이 없는 물질로부터 진화했을 뿐 하나님의 직접적인 설계나 창조와는 무관하다고 주장하기가 쉽다.
진화론은 생명의 기원을 설명하는 근거로 내세우는 사람들은 단지 문화적 풍조를 좇아 자유주의로 치달을 뿐이다.
"네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나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옹호하려는 생각이 사라지면 그런 현상들이 일어난다.
관용을 강조하는 문화적 압력에 굴복해 모든 종교는 제각기 동일한 하나님에게 이르는 다른 길을 제시한다라고 주장하기는 매우 쉽다.
그렇게 되면 어떻게 죄의 용서가 이루어지는지를 알려주는 복음의 독특한 메세지가 상실되고 교회들이 문화를 좇아 자유주의로 기우는 결과가 나타난다.
저자는 평등주의를 옹호하면서도 자유주의를 조금도 용납하지 않고 성경의 무오성을 굳게 믿는다.
복음주의 페미니스트들의 입장은 창세기1~3장의 권위와 진정성을 부인한다.
바울이 틀렸다고 주장한다.
고대의 모든 사본에 나타나는 구절들이 성경의 일부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 아닌 성경 이후에 이루어진 발전이 궁극적인 권위를 지닌다고 주장한다.
구속적인 흐름의 해석학을 내세워 신약 성경의 윤리적인 명령을 모두 의문시한다.
개개인의 입장이 어떤 구절을 우선시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고 주장한다.
논쟁적인 구절이라는 이유를 내세워 남자와 여자의 역할을 다룬 가장 적절한 성경 구절들을 무시한다.
여성들이 목회자와 장로들의 권위 아래에서 얼마든지 성경을 가르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교회가 아니다라는 말로 신약 성경의 명령을 외면한다.
성경보다 교회의 전통을 더 우위에 둔다.
성경보다 주관적인 소명 의식을 더 우위에 둔다.
성경보다 현대의 예언을 더 우위에 둔다.
성경보다 독특한 상황을 더 우위에 둔다.
성경의 가르침을 농담으로 여겨 왜곡한다.
페미니즘에 공산주의나 사회주의 좌편향이 투입됐다고 해서 복음주의 페미니즘을 받아들여야 하나라고 생각했는데 안될 것 같다.

복음주의 페미니스트는 창세기 1~3장의 권위나 진정성을 부인한다.
그루두어스는 콜로라도 덴버 지역 출신의 프리랜서 저술가이자 편집자이고 복음주의 페미니스트 단체의 이사회 임원이다.
그루두어스는 성경의 용어가 가부장적이고 히브리어가 남성중심적인 언어라고 했다.
그루두어스의 그런 주장은 자유주의로 나아가는 과정이다.
사도바울이 교회에서 여성은 잠잠하라고 한 이유가 복음주의자 페미니스트들은 교회에 와서 소란스럽고 무례한 여성이 있어서라고 했다.
남편보다 지적 수준이 떨어지고 무식한 여성들이 회심을 하고 메시지를 전할 때 이상한 질문을 하는 것을 바울이 막았다는 얘기도 있다.
하지만 사도바울이 그런 여성에게 전하는 메시지였다면 그들에세 일체 잠잠하라고 명령하지 않고 질서 있게 행동하라고 당부했을 것이다.
일부 여성의 잘못때문에 모든 여성을 책망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무질서한 여성들은 잠잠하라고 말했어야 정당하다.
바울의 가르침을 설명할 때 그가 제시한 이유는 배제하고 그가 제시하지 않은 이유를 주장하는 것은 위험하다.
바울은 무질서가 아닌 순종의 원리를 언급했다.
소란스러운 여성들과는 무관하고 예언을 분별하는 일과 연관된다.
복음주의 페미니스들도 동성애는 반대한다.
그건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들도 동성애는 성경과 양립할 수 없는 행위로 결정했다.
종교 담당 기자 에드워드 플로우맨은 미국 침례고회가 동성애가 성경의 가르침과 양립할 수 없다는 강력한 정책을 고수하고 있지만 자유주의자드에 의해 장악된 교단 집행부는 침례교회가 자율적이고 특정한 신조가 없으며 성경을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해석할 수 있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는 이유를 내세워 그런 정책을 소속 교회들에게 적용하려는 노력을 가로 막고 있다.
정책을 만드는 사람들도 문제다.
동성애를 인정하는 것이 자유주의로 향하는 마지막 단계라고 한다.
저자는 평등주의를 분석하면 할수록 그것은 복음주의자들을 자유주의자로 인도하는 새로운 과정이라고 한다.
복음주의 페미니즘의 최초 주창자는 자유주의 교단들이었다.
평등주의를 주장하는 복음주의 페미니즘의 지지자들이 지금 사용하고 있는 논증 가운데는 과거에 자유주의 교단들이 여성의 성직 안수를 주장하면서 이미 사용했던 것들이 많다.
평등주의 운동을 이끄는 지도자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성경의 권위를 훼손하는 입장을 주장하거나 그 귄위를 훼손하는 책들을 선전하고 권장해 신자들을 자유주의로 기울게 만드는 데 기여하고 있다.
복움주의 페미니즘들이 나아가는 방향을 보면 성경에 나오는 남성성들을 제거하고 있다.
이 모든 형상에서 발견되는 공통점은 성경의 권위를 훼손하려는 끈질긴 시도다.
저자는 평등주의자들이 모두 자유주의자이거나 자유주의로 기울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평등주의 지지자들이 구사하는 논리가 성경의 권위를 거듭 훼손함으로써 교회를 조금씩 자유주의로 기울게 만들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평등주의자들이 자유주의로 나아간 속도를 그대로 멈춘 사람들도 있지만 젊은 평등주의자들은 더 나아간 사람들도 있다.
하나님을 어머니로 부르는 사람들 같은 경우이다.
다음 세대는 더 나아갈지 모른다.
왜냐하면 그것이 복음주의 페미니즘을 채택한 사람들이 나아갈 수 없는 방향이기 때문이다.
복음주의 페미니즘을 채택한 사람들은 교회 안에서 성경의 권위를 가차 없이 훼손하게 될 해석 방법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복음주의 페미니즘은 난 채택하면 안 되겠다.
성경의 가르침에 순종하는 길이 참된 축복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고 그 길을 충실하게 걸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복음주의 페미니즘으로 돌아서서 한 걸음씩 자유주의의 길로 나아가 성경의 권위를 갈수록 더 많이 부인하게 되는 건 거부해야 한다.
복움주의적 페미니즘은 안되고 다른 성경적 페미니즘은 있을지 또 궁금해진다.
이 책을 읽으면 더 의문이 생기고 더 많은 성경의 가르침을 찾고 갈구하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