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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은 쓸수록 작아진다
조안나 지음 / 지금이책 / 2020년 6월
평점 :

문학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하다가 저자 조안나는 출판사에 들어 갔다.
잘 팔리는 책이 무엇일까에 대한 해답을 얻지 못하고 퇴사한 후 프리랜서가 되었다.
읽기는 쓰기를 낳고, 다시 쓰기는 읽기를 낳아 꾸준히 책을 만들고 써 왔다.
어느 누구나 마찬가지로 책을 읽다보면 어떤 목적이 있어 쓰는 것이 아니라 남기고 싶은 것이 있어서이다.
저자 안에 슬픔을 비워내기 위해 힘들 때마다 걷고 무작정 썼던 글들이 죽도록 외로웠던 미국 생활을 견디게 해주었다고 한다.
저자는 타국에서 육아에 지쳐 책을 읽지 못하는 날엔 일기라도 한 줄 쓰고 자기를 위해 쉽게 잠들려 하지 않았던 시간들이 모여 이 책이 되었다.
저자는 인간은 왜 이렇게 슬픈 것일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 무조건 글을 써야 한다고 믿고 있다.
슬픈 일이나 얼울한 일들을 사람에게 말하지 못하는 것을 종이위에 그림을 그리듯 글로 쓰면 마음이 조금은 홀가분할 때가 있다.
저자는 문학이 뭔지를 따지기 전에 마음을 그려 본다고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
저자는 전과 다른 종류의 기쁨과 슬픔을 아이를 통해 느낀다고 한다.
저자가 읽고자 하는 책의 결도 다르고, 기존에 읽었던 책도 다르게 다가오고 쓰던 말들의 의미가 완전히 달라진 기분이 든다고 한다.
타인의 삶이 저자 속으로 깊숙이 들어와 불과 일 년 전의 저자를 기억조차 못하게 만든다고 한다.
책 대신 그림을 이야기하며 마주했던 벽이 자꾸 바라보다보니 친숙하게 느껴진다.
저자는 독서가 아니라 아닌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먼저 글의 소재를 찾아야 한다.
아이는 모든 일의 장애물이 아니라 오히려 창작의 동기가 될 수 있다는 걸 저자는 믿는다.
매일 아이와 새로 태어난다.
어떤 새로운 형태에 대한 탐구이지 결코 복제가 아니라 확신이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하게 든다.
저자가 출판사에서 일할 때는 정말 많은 종류의 글을 읽었다.
아침마다 저자 메일함에 가득 채웠던 여러 서점의 광고 메일과 아침편지 같은 출판사의 임프린트에서 나온 신간 보도자료와 각종 홍보 문구들, 전날까지 진행했던 편집원고의 저자 피드백, 유학 간 친구의 편지, 지난 블로그 포스트 덧글, 시시각각 올라오는 트위터 새 맨션들을 떠올려 본다.
저자는 그날의 업무 일지를 쓰는 걸로 하루의 글쓰기를 시작했다.
왠지 업무도 저자만의 문장으로 풀어놓으면 밥벌이 수단으로 보이지 않아 좋았다고 한다.
작가들에게 집필 가이드라인을 주듯 업무일지를 정리해두면 주간 회의할 때도 유용하게 재활용 할 수 있다.
작가란 모든 것에 손댈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아야 한다.
창작은 제한 아래선 견딜 수 없고, 처음부터 문학적이기를 포기한 저자에게 창작은 손댈 수 있는 모든 것으로부터 온다.

글쓰기 천재인 슈테판 츠바이크가 몽테뉴의 글을 빌려 저자 자신에게 질문 하나를 던진다. “어떻게 하면 나는 자유롭게 남아 있을 수 있을까?” 몽테뉴는 자신의 삶과 힘과 노력과 기술과 지혜를 몽땅 동원해서 이 질문에 열중했다.
자신을 지키는 가장 높은 기술은 무엇일까,,
저자는 언제나 글쓰기로 저자 자신을 지켜왔다.
일기를 쓸 기운조차 없어 아무것도 적지 목하고 잠든 날엔 필연적으로 무기력에 시달렸고, 저자가 읽고 싶은 글을 직접 쓰고 잔 다음 날엔 까다롭고 성가신 일들도 웃으며 처리했다.
다른 사람은 저자보고 털털하다고 앞에서 농담하고 뒤에서 무심하고 정 없다고 욕해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런 무신경함 덕분에 “공허한 삶이 아닌 자기만의 삶을 산다는 과제”를 어느 정도 수행할 수 있었다.
대중 작가로 성공하기 위해선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보다 남들이 좋아할 만한 이야기를 쓰라고 충고하지만, 편집자로 일할 때를 제외하고 자기 책을 쓸 땐 언제나 ‘자기’가 먼저였다. 그래서 자기 글이 지나치게 사적이라고도 할 수 있고, 자기만 알고 있는 이야기라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고, 반대로 너무 가벼워서 책 좀 읽는 사람들에게 외면을 당할 수도 있다.
다행히 우리는 글을 쓰면서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걱정을 어느 정도 떨쳐버릴 수 있다.
분명 방금 전까지 한국에 가면 고양이를 어디에 맡길까, 저렇게 밤낮으로 저자를 찾는데 놓고 가면 우울증에 걸리진 않을까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지만, 글을 쓰면서 잊어버렸다.
만약 글을 쓰지 않는다면, 자신이 매일 하고 있는 일에 우직하게 집중하면 된다.
냉정과 열정사이의 쥰세이가 옛 연인인 아오이를 잊기 위해 쉬지 않고 유화 복원 작업을 하는 것처럼 톨스토이의 우화 <세 가지물음> 에 나오는 세 가지 물음은 다음과 같다.
가장 소중한 때는?
가장 소중한 사람은 ?
가장 소중한 사람에게 지금 할 일은?
바로 지금, 가장 소중한 고양이 두루에게 간식을 챙겨주고, 가장 소중한 남편을 위해 그가 가장 좋아하는 알리오올리오 스파게티를 해주고 가장 소중한 지금을 글로 남겨두는 것이다.
글을 차분히 쓸 수 있는 평상심은 언제나 최고의 자산이다.
두 번 강조해도 부족하다.
잔잔한 일상 이야기로 가득한 저자의 글과 큰 희로애락이 없는 프리랜서 편집자의 삶에도 극적인 사건이 몇 개 있었다.
학장시절엔 IMF로 인한 아버지의 실직, 원하던 대학입학 실패 정도이고 결혼 후엔 시댁 바로 아랫집에서 살았던 신혼생활, 미국으로의 이주 그리고 번개처럼 저자를 때려눕힌 출산(영어로 Labor 라고 한다.
분만이 아주 큰 ‘노동’이라는 점에서 이해가 되는 단어다)이란 이벤트가 있었다.
그것도, 차가운 병실에서 영어를 써가며 아이를 낳았던 경험은 아직도(심지어 저자가 꾸지도 않은 ) 꿈같다고 한다.
혹시나 미국에서 출산할 일이 있는 분들을 위해 저자가 친절히 저자의 경험을 글로 풀어 놓는다.
아이를 베어 품고 검사 받으러 다녔던 미국의 산부인과도 갈 때마다 어색하고 떨리는 곳이었다.
미국에서는 Hospital(병원)이라 하면 보통 우리나라의 상급종합병원을 의미하기 때문에 Clinic(클리닉) 이라고 하는 외래 위주의 일반병원을 많이들 찾고, 우리나라처럼 지정된 예약 날짜에 맞게 돌아가면서 만나는 시스템이다.
어떤 날에는 천천히 말하는 우아한 흑인 의사에게 진료를 받았고, 처음으로 아이의 심장 소리를 들은 날엔 하이톤으로 엄청 빨리 말하는 백인 의사를 만났고, 결정적인 내진을 하는 날엔 선하게 생긴 백인 남자 의사에게 검사를 받았다.
말이 짧은 저자에게 선택 사항은 많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은 무슨 말을 해도 “다 좋아요, 지극히 정상이에요”라고 답한다. (실제 임신 중에 저자는 모든 것이 정상이었다.)
항상 남편이 옆에 있어서 망정이지 혼자 무거운 몸을 이끌고 병원에 다녔으면 매번 눈물이 났을 것 같았다고 한다.
검진 전날에는 새롭게 나타난 증상과 의사에게 궁금한 점을 영작하고, 말하기 연습하고, 영어로 된 임신 관련 기사들을 읽느라 바빴다.
벼락치기로 한 공부는 시험이 끝남과 동시에 잊어버리듯 임신기간에 달달 외웠던 영어 문장들을 모조리 다 까먹었다. ㅋㅋ
임신 38주 정기 검진 때는 여러 문장들을 영어로 적었다.
의학 용어는 외우기도 어렵고 익숙지 않아 더 잘 까먹었지만 그래도 말하지 않으면 검사를 받지 못할 수도 있으니 필사적으로 외웠다.
살면서 고관절이나 자궁, 골반이란 말을 영어로 뱉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영어도 언어인지라 활동중독자인 저자는 영어로 읽고 쓰고 말하는 것이 즐거웠다.
아이가 배 속에서 커갈수록 태동은 줄어든다고 했는데 38주가 지나도 여름(태명)이는 더 많이 움직였다.
어찌나 크게 움직이는지 밤잠은 물론 낮잠도 제대로 못 잤다.
꿀렁꿀렁 배 표면에 드러나는 아이의 발바닥과 손은 귀엽다기보다 공포스러웠다.
다행히 양수가 부족하다거나 임신중독증증세는 없었기에에 집에서 순산을 위한 스트레칭을 하며 아이가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출산 예정일을 일주일 앞둔 마지막 정기 검진날, 처음 보는 의사의 공포의 내진을 했다.
이슬이 비친다거나 진진통이 오지도 않았는데 자궁이 3Cm나 열렸으니 오늘 분만병원에 가라고 하는 것 아닌가,
이놈의 미국은 정기검진을 하는 클리닉과 분만이 진행되는 병원도 달랐다.
분만 병원에 입원해서 세 번 내진을 받고 무통주사를 맞고 다음 날 새벽 2시에 아이를 낳았다.
무통주사를 맞은 탓에 아래 감각이 없어서 아주 힘들게 푸시 해서 낳았다.
아기를 낳고 나서도 과다출혈로 잠시 기절했던 저자는 병원에 있던 간호사들을 한방에서 만났다.
그렇게 기절한 산모에게 가져다준 것은 얼음 동동 뜬 오렌지주스와 막 냉장고에서 꺼낸 햄치즈샌드위치였다는 것이 우리 엄마를 경각하게 했다는 후문,
남들이 아기를 낳은 이야기는 군대 이야기만큼 지루했는데 이제 저자가 이렇게 밤새도록 말을 늘어놓을 수 있을 만큼 할 말이 많아졌다.
죽을 고비를 넘기며 겪은 출산은 누구의 글로도 간접 경험밖에 할 수 없는 사건이었다.
아이를 낳을 때도 제대로 씻고 우아함을 잃지 않고 싶었지만, 출산은 예측 가능한 일보다 즉흥적인 요소가 많아서 그렇게 많은 글을 읽었는데도 정작 결정적인 순간엔 모든 사전 지식이 무용했다.
오늘은 자신이 겪은 가장 극적인 사건을 적어본다.
감정보다 일어난 사건을 중심으로 사실대로 담담하게 적으면 된다.
글재주가 없는 사람도 술술 써내려갈 수 있을 것이다.
저자가 한국에 있는 4개월 동안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이렇게 글 쓸 시간과 몸과 얼굴을 마사지할 시간, 커피를 천천히 마실 시간을 확보했다.
임신 출산을 겪으며 몸이 건강하면 뭐든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자세를 자연스럽게 마음에 걸치게 되었다.
물론 아이가 정성스럽게 만든 밥을 뱉거나, 아무거나 입에 넣거나, 입고 있는 옷을 벗어재끼거나, 잠투정을 부릴 때는 심장 깊은 곳에서부터 분노가 치밀어 오르지만 아이가 한 번만 웃어주면 금방 잊어버리게 된다.
그래 잠시 자신을 아이에게 맡기고 불행보다 행복에 가까운 감정들을 더 자주 떠올리며 살자, 그렇게 살자고 최면을 건다.
옛날의 저자라면 절대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육아서도 읽는다.
육아서는 저자가 빨리 쓰고 직업의식이 확고한 편이라 꽤 좋은 수입원이 된다.
시간관념이 철처하고, 계획대로 일을 차례차례 진행하는 걸 즐기기 때문에 편집일도 계속할 수 있다.
하지만 ‘꼬박꼬박 들어오는 급여’가 주는 안정감은 느낄 수 없다.
남편의 수입이 없었다면 지금과 같은 생활을 유지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점에서 작가로서의 자부심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집세의 70%도 책임지지 못하는 인세 수입이 라니 한순간 자괴감으로 바뀐다.
작가로서 ‘전투적으로’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밥벌이로써의 글쓰기에서 작가가 책을 출간하는 단순한 목적이 명쾌하게 밝혀진다.
저자는 슬픔을 줄이기 위해서 글을 쓰는 것이다.
저자가 알려주는대로 객관적으로 하루의 일을 조금씩이라도 써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