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은 미래진행형 - 더 나은 내일을 위한 철학
김윤희 외 지음 / 다온북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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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에 어떤 기자가 쓴 페미니즘책은 별로였다.

이 책은 철학자들의 생각으로 페미니즘에 대해서 얘기한 거니까 읽을만하다.

철학은 밥을 먹여 주지는 않지만 인간을 인간답게 하고 여성을 여성답게 할 것 같다.

미투운동은 잘 일어난 것 같다.

하지만 여성 남성을 서로 적으로 만드는 건 이제 그만하고 성평등과 성화합을 좀 말했으면 좋겠다.

밀이 여성참정권을 말했던 게 밀의 아내가 굉장히 지적이고 밀의 책들을 전부 편집해주고 아이디어를 줬다.

프랑켄슈타인도  남성이 쓴 줄 알았는데 메리 셀리라고 엄마가 메리 울스턴 크래프드라고 페미니즘책에서 봤던 여성이 썼다.

페미니즘책을 읽다보니까 뛰어난 여성들이 의외로 많다.

그래서 자부심도 생기고 그 책들을 읽다보니까 나도 능력을 키워서 남자도 내가 선택해야 겠다.







저자들이 외대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분들이다.

여성의 억압과 소외를 이야기할 때 여성은 시대와 사회에 갇힌 존재들이다.

사상도 시대의 산물이고 시대나 사회를 벗어날 수 없다.

철학의 세계도 여성의 눈이 아니라 남성의 눈으로 대변해져서 그 세계는 반쪽의 세계이다.

이 책은 과거 철학자들의 그시점도 반영을 하면서 여성주의를 재조명하려고 한다.

철학자들이 페미니즘의 시각에서 각자의 시대에 갇혔다고 하더라도 이들의  저작이 고전으로서 시공을 초월하여 계속 읽히고 있다는 것은 이들의 철학이 시대에 갇혀 있지 않은 것이다.

철학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면서 깨우침을 얻는 학문이다.

자신이 아는 지식에 만족하고 거기에 갇혀 있어서는 안 된다.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이 생각하여 자신의 사상에 폭과 깊이를 더해야 한다.

정말 공감하는 얘기이다.

난 압도적인 지식의 우위를 선점하고 기존 지식에 갇히지 않고 계속 한 차원 높게 올라가고 싶다.

우리가 사는 공동체는 남녀로 구성된다.

역사와 이론 영역의 성평등에 관련한 논의는 시대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전통의 틀을 벗어나기는 어렵다.

요즘에 여성 혐오에 맞서는 미투 운동이 일어났다.

차이에 대한 혐오와 분노는 사유하지 않음에서 발현되는 비정상이다.

이 책에서 나오는 여성 철학자는 한나 아렌트가 유일하다.

여성화가에 대한 책도 읽었는데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아, 프리다 칼로에 대한 얘기를 읽으면서 여성으로서의 자부심도 생기고 그녀들의 너무 힘들었던 삶에 마음이 아팠다.

한나 아렌트는 항상 소수의 자리에 섰다.

한나 아렌트는 로스쿨 문제를 풀 때 나왔다.

아르테미시아도 로스쿨 문제를 풀 때 나왔다.

소수는 수적으로 작은 쪽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비대칭적인 권력 구조에서 열세에 놓여있는 쪽을 의미하는 것이다.

아렌트는 다른 철학자들과는 다른 의미에서 시대에 갇혀 있다.

그녀가 살던 때는 여성과 유대인에게 차별적이었다.

개인을 강조하던 아렌트와는 달리 당대는 그녀를 개인이 아닌 여성, 유대인, 유대계 여성으로 가두었다.

철학자의 사상을 분석할 때 그 철학자의 삶을 배제하고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렌트는 독일 쾨니히스베르크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부모님은 사회 민주주의의에 동화된 사람들이었다.

사회 민주주의가 아니라 사회주의 공산주의자였겠지,

프리다 칼로 부모도 사회주의자이고 왜 이렇게 사회주의자 부모가 많냐,,, 

아렌트는 일곱 살에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떠나보냈고 열세 살에 어머니가 재혼하며 새아버지의 자녀와 어머니를 공유했다.

아버지의 부재와 어머니에 대한 불완전한 공유는 아렌트를 성장기에 외롭게 만들었다.

그 시간에 사색의 시간과 공간을 만들어 주었다.

이런 사색은 아렌트가 정치사상가가 되는데 영향을 미첬다.

1924년 독일 마르부르크대학교에 입학하며 그의 삶에 새로운 만남과  학문의 길이 시작되었다.





열여덟 살의 아렌트는 이곳에서 서른다섯 살의 하이데거를 만났다.

두 아들의 아버지였던 하이데거는 <존재와 시간>의 집필을 마무리하는 중이었다..

이 둘은 평생 편지를 주고 받았다.

젠탈르스키도 그렇고 프리다 칼로도 그렇고 아렌트랑 비슷한 연애구조를 가졌다.

스승과 제자로 만나서 연인으로 학문적 동료로 변화하며 주고받은 편지는 세상의 편견과 선입관을 대신해 실제 둘의 관계를 보여 준다.

아렌트와 하이데거는 연인이자 스승과 제자의 관계였지만 아렌트의 박사과정은 하이데거가 아닌 카를 야스퍼스의 지도 아래 진행되었다.

야스퍼스도 책에서 읽었던 사람이다.

1928년 아렌트는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상을 바탕으로 학위 논문을 완성했다.

연인기를 지나 맞이한 두 번째 시기에 이 둘은 역사의 한가운데에 놓이게 된다.

하이데거는 독일 프라이부르크대학교 총장에 임명된 후 총장 취임사를 통해 나치즘을 지지했다.

1920년대부터 나치당원이었던 아내 앨프리데의 영향을 받아 그 역시 나치즘당원이 되었다.

아렌트는 독일에서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교수 자격취득을 금지당햇으며 시오니스트 조직에서 반유대 표현을 수집하고 정리한 일을 계기로 체포되었다.

아렌트는 프랑스로 망명했다.

하이데거는 나치당원으로 승승장구하며 나치의 선전 인물이 되고 아렌트는 유대인으로서 박해의 대상이자 저항의 존재가 되었다.

그러니까 남자도 다 소용없다.

자기자신 혼자만 중요한 거다.

아렌트와 하이데거는 멀어지고 이 시기에 아렌트는 망명 중인 독일 출신의 시인이자 전 공산주의자인 하인리히 블뤼허를 만나 결혼한다.

아렌트가 하이데거를 나중에 또 다시 만나는데 그때는 하이데거가 나치 전력때문에 강의가 전면 금지된다.

아렌트는 하이데거의 구명을 지지해줬다.

왜 해주냐,,

하이데거는 아렌트의 용서로 반유대주의 혐의에서 벗어났다.

하이데거와 연인이었고 하이데거를 용서했다는 이유로 여성사상가로서 비판 받고 폄훼됐다.

하이데거와 관게로 인해 아렌트를 여성으로 읽으며 그녀를 성별에 가두려 했지만 그녀는 자신의 성별과 민족에 머무르지 않았다.

오직 개인으로서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고 선택하는 사람으로 살려고 했다.

그녀를 유대인으로 보지만 아렌트 자신은 자신을 독일인으로  봤다.

아렌트는 타인에 의해 정체성이 규정되고 스스로는 끊임없이 혼란스러워해야 하는 생을 살았다.

유대계 여성이라는 집단 정체성으로만 그를 바라보는 시각과 그를 독일인으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과 인정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방황해야 했다.

그녀는 고향도 마음대로 가질 수 없었고 그녀를 독일인으로 인정하는 것이 일종의 배신처럼 여겨졌으며 그렇다고 해서 독일인 내부에서 독일인으로 제대로 인정받은 것도 아니었다.

타인에 의해 인정받아야만 집단에 속하거나 벗어날 수 있던 시대를 지나오며 그는 집단이 아닌 자신 개인에 집중하는 것을 택했다.

아렌트는 스스로를 철학자라 인식하지 않았으며 자신을 정치이론가로 규정했다.

남이 뭐라고 하든 자기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냐가 중요하겠지,,








개인의 삶이 개인의 것이 될 수 없는 시대를 겪어내며 자신의 사상을 세상에 내놓았지만 여전히 유대인 여성으로 존재해야 했고 그러한 이름으로 시대에 갇힌 삶을 살았다.

개인의 시대인 근대에서조차 여성은 여전히 개인이 될 수 없었다.

한 사회나 조직 내에서 소수자 혹은 유일한 존재로 남아 있는 한 여성은 개인이 될 수 없다.

사회 내의 유일하거나 몇 안 되는 여성일 경우 그의 개인적인 삶과 말, 글은 모두 여성 전체를 대변하거나 대표하는 것이 된다.

유일한 여성 철학자는 철학자 개인이 아니라 여성으로 일한다.

하지만 아렌트는 자신을 집단으로 분류하여 가두려는 시도를 평생에 걸쳐 단호히 거절해왔다.

철학은 남성적인 것이라고 가두려해도 그녀는 개인으로 살고자 분투했다.

여성이라고 해서 개인이 원하는 일을 하지 못할 이유도 없고 아렌트는 여성의 대표가 아니라 개인 자체로 존재하고 싶다고 표현했다.

이런 아렌트를 성별과 민족으로 제한한다면 오독이 난무할 수밖에 없다.

유일한 여성 철학자가 아니라 여러 명의 철학자 중 한 사람이 될 때 비로소 그의 사상이 개인의 것으로 읽힐 수 있다.

다른 남성 철학자의 경우 삶과 사상을 분리하여 분석하고 다루어지는 반면 여성의 경우 반드시 삶과 함께 해제된다.

사상은 살아온 삶과 시대의 영향에서 분리될 수 없지만 성별을 이유로 그 비중을 달리 보거나 다른 기준으로 다뤄서도 안 된다.

아렌트는 유대인 가정이라는 인식이 강하지 않았다.

20대 초반까지 유대인 디아스포라와 차별 문제를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이런 시각은 자신의 스승인 야스퍼스에게 쓴 편지를 통해서도 드러났다.

그런 전쟁과 나치즘을 경험하면서 시각의 변화를 가져왔다.

아렌트는 독일 나치즘이 하는 짓을 보면서 방관자로 살 수 없었다.

그녀는 유대인 혐오 표현을 모아 정리하는 것은 나치의 골포 프로파간다 활동에 반하는 것이기에 신변의 위협에 시달렸고 체포돼서 독일 국경을 넘어 망명한다.

청년 알리야에서 활동하며 반유대주의 역사 자료를 계속 수집하다가 미국으로 망명했다.

전쟁과 망명의 경험, 그리고 반유대주의 역사에 대한 탐구 과정은 아렌트에게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확인시켜 주었다.

전후 처리 과정에서 여전히 유대인이라는 정체성만을 강조하는  유대인 커뮤니티와 달리 아렌트는 유대인을 넘어 개인으로서의 사상을 발전시켰다.

아렌트를 처음 만난 건 악의 평범성이라는 단어와 함께였다.

아렌트는 아이히만의 진술을 말하기 무능력이 생각의 무능력이고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할 줄 모르는 것과 깊게 연관되어 있다고 판단했다.

아렌트는 아이히만을 괴물 같은 악마라기보다 타인에게 공감하지 못하는 무능력자로 평가했다.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출간 이후  아이히만이 지적인 사람이었지만 심오한 의미를 가지고 인종 학살을 자행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며 악의 평범성을 설명한다.

아이히만에게는 악마성이 없으며 남들이 무슨 일을 겪는지 상상하길 꺼려하는 단순한 심리가 있을 뿐이라고 한다.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것, 이런 공감 능력이 아렌트 사상의 핵심이다.

공감 능력의 부재가 살인의 책임을 면해주지는 않는다.

독일인이 특별히 악마성이 있는 게 아니라 문제되는 것은 다른 모든 사람의 처지에서 생각하지 못하는 무능력이다.

아렌트의 책은 아이히만을 절대 악으로 묘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고 이 책은 유대인과 이스라엘 정부로부터 금서로 분류된다.

유대인의 입장에서 대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비판을 받게 된다.









아렌트의 <전체주의의 기원>에 있어서 전제주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대중이다.

아무리 뛰어난 지도자라 하더라도 대중이 없이는 어떠한 권력도 만들어 내지 못한다.

아렌트가 말하는 대중은 그냥 다수의 사람이 모여 만들어지는 존재가 아니다.

대중은 분노를 표출하기 위해서 하나의  유기체처럼 움직이는 인간 집단이다.

정치적 의사 표출을 위해 집단적 행위를 하는 사람들을 대중이라고 할 수 있다.

대중은 거창한 이성적 사고를 거쳐서 이를 행위로 옮기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정치적 의사 표현보다는 집단적 감정 표출이다.

대중의 탄생은 잉여 인간의 등장으로부터 비롯된다.

세상은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으며 자신의 노동력은 언제든지 대체될 수 있다.

개성과 다양성이 사라지고 삶이 획일화되면서 인간은 스스로를 쓸모없는 존재인 잉여 인간으로 느낀다.

잉여 인간들은 분노를 표출할 대상을 찾으며 집단적으로 행동하고 자신들을 구원해 줄 구원자 혹은 지도자를 바란다.

분노에 찬 대중인 폭민들의 집단성, 폭력성, 획일성 등은 이를 교묘하게 이용할 수 있는 지도자의 출현으로 새로운 형태를 띠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전체주의의 등장이다.

나도 요즘에 정치에 관심이  있었는데 정치가는 나를 구원해 줄 수 없다.

나를 구원하는 건 나의 실력과 하나님뿐이라는 걸 또 한 번 느꼈다.

전체주의에서 지도자는 자신의 권력을 유지 및 재생산하기 위해 끓임없이 대중들을 창조한다.

대중들을 창조한다는 것은 그들의 분노를 이용하고 분노표출의 대상을 설정해 준다는 것이다.

전체주의의 가장 큰 문제는 대중의 획일화가 인간성을 파괴할뿐만 아니라 비합리적이라는 것이다.

대중 속에 있는 개인은 대중밖에 있는 대상과 상호 교감할 수 없다.

개인과 대상 사이에 집단이라는 장애물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집단은 개인과 대상 간의 교류를 희석시킨다.

대중이라는 존재는 다수에 속해 있다는 감정, 세상에 대한 분노, 자신들이 옳다는 맹목적인 믿음을 이용하여 개인의 눈을 가린다.

이 때문에 타자의 상황, 감정 등은 대중 속의 개인에게 도달하지 못하며 그의 인간적 반응, 합리적 판단을 이끌어 낼 수 없다.

이 구조 속에서는 타자에 대한 대중의 반응만이 남는다.

대중의 반응은 곧 전체주의의 움직임이고 인간성과 합리성이 결핍된 채 지도자의 입맛에 따라가고 있다는 비합리적이고 맹목적인 모습을 보여주거나 분노에 사로잡힌 비인간적인 모습을 보인다.

아렌트는 전체주의의 전형으로 파시즘과 공산주의가 있는데 사상적으로는 반대라고 한다.

지도자가 가진 무소불위의 군력은 대중의 지지에 의존한다.

이들은 대중의 지지를 이어가기 위해 지속적으로 공통의 적을 상기시켜 그들의 분노를 자극한다.

히틀러의 경우는 분노의 대상을 유대인으로 설정하고 공산주의는 부르주아였다.

잉여인간을 만들기 위해 히틀러는 개개인의 다양성을 없애고 집단적인 문화와 상호 감시 체제를 만들었다.

이들은 대중의 지지를 근거로 악행을 저지르고 히틀러는 유대인 학살을 자행하여 수백만을 살해했고 소련은 부르주아나 사상이 다르다는 이유로 인간을 가두고 살해했다.

이런 악행은 대중의 지지 속에서 이루어졌다.

요즘의 적폐청산과 막말프레임같은거네,,

전체주의는 지금도 되살아나고 있다.

지역주의도 극명하게 되살아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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