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자본주의의 역사
앨런 그린스펀.에이드리언 울드리지 지음, 김태훈 옮김, 장경덕 감수 / 세종(세종서적)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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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학을 공부하면서부터 지금까지 고민을 하고 있는 나만의 주제가 바로 자본주의이다.

공산주의라는 또 다른 경제체제도 있었지만 무참히 실패를 하고 이 세상의 체제에서 나가 떨어졌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정부가 개헌을 하면서 들여 오겠다고 해서 고민이다.

자본주의는 왜 양극화가 점점 세기가 더해질수록 심해지는지라고 고민했는데 그래도 차라리 자본주의가 훨씬 낫겠다.

어마어마한 부를 축적한 사람들은 과연 그 부를 제대로 쓰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는 것인지,,연예인은 희소성의 가치라는 것때문에 왜 엄청난 돈을 차지하는지,,사회복지정책이 자본주의 가속을 막을 수 있는지,,,길거리에서 폐지를 줍는 할아버지나 할머니를 보면 가슴이 찢어질 것 같은데 그들은 왜 그렇게 가난하게 살아야 하고 그들의 가난을 끓어 줄 수 있는 사회시스템이나 의식개선말고는 다른 어떤 방법이 필요한가,,돈이 정신이나 내적인 가치를 이길려고 하는지,,돈에 대해 어떤 자세를 위해야 하는지,,감당할 수 없는 돈은 어떻게 처리를 해야 하는지,,자본주의말고 세상을 더 잘살게 하는 경제체제는 이제 더 이상 나오지 않는 것인지,, 자본주의 체제안에서 살면서도 자본주의를 잘 모르고 자본주의에 휘둘리는 우리를 구원해 줄 수 있는 대책이나 지식이  없는지 항상 고민했는데 그래도 토지공개념보다는 낫겠다.



우리나라는 천민자본주의라고 하는 책들을 많이 읽었다.

좌파, 진보인사들의 책을 읽은 거다.

그래도 공산주의보다는 낫겠다는 생각이 이제는  든다.

 

자본주의 시스템을 고치지 않으면 나중에는 공산주의처럼 무너지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는데 무너지면 큰일나겠다는 생각이  든다.

미국은 세계 최고이다.

우리나라도 미국처럼 됐으면 좋겠는데 지금 입국제한에 걸리지 않나, 세계 10위인 우리나라가 중국이나 북한에 한 마디도 못하질 않나, 마스크가 없어서 주민등록증으로 사야 한다고 줄을 서질 않나, 동맹국인 일본에 중국과 같은 상황인데도 다른 기준을 적용하질 않나, 정부가 친중, 친북이니까 세계에서 왕따가 되고 있고 국격이 떨어지고 있다.

세계 최고인 미국을 벤치마킹해야 한다.

영국의 식민지로 세계 변방이었던 미국은 250년만에 세계 최고를 일군 이유를 알아서 우리나라에도 적용을 해서 자본주의의 번영을 이루어야 할 것 같다.

그런 번영뒤에 불평등, 독점, 사회적 갈등이라는 부작용이 분명히 있었을 것 같다.

슘페터의 창조적 파괴는 경영학과 다닐 때 교수님한테 배웠다.

그때는 뭔가 엄청난 에너지나 능력일 거라고 생각했었다.

미국은 앞으로도 계속 세계 최고일지 아니면 몰락할지 그게 가장 궁금했다.

이 책은 미국의 18세기부터 지금까지의 자본주의를 알려주는데 침체기에 대해서 공부해서 그 침체기를 어떻게 이겨냈는지 읽으면 우리나라도 어떻게 침체기를 빠져 나올지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저자 앨런 그린스펀은 1926년 뉴욕시 워싱턴 하이츠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줄리어드에서 클라리넷을 전공하고 연주자 생활을 했던 그는 뉴욕대에서 경제학 학사,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4년부터 1977년까지 포드 정부에서 경제자문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레이건 대통령 재임 시기인 1987년에 연방준비제도 이사회의장으로 임명되었고 2006년에 은퇴할 때까지 역임했다.

저자는 미국 경제가 작동하는 방식을 살아 있는 유기체처럼 최대한 생생하게 파악하려는 연구에 매진했다.

그 핵심에  혁신의 수수께끼를 품은 생산성 향상에 대한 문제를  깊이 파고 들었다.

저자는 혁신은 어디에서 이뤄지는지 알려 준다.

조지프 슘페터는 16세기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은 실크 스타킹을 가질 수 있었다.

자본주의는 가난한 여공도 그 스타킹을 신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했다.

인류 역사에서 자본주의 체제로 가장 큰 번영을 이룬 나라는 미국이다.

미국인들은 황무지에서 세계 최고의 부를 일구었다.

미국은 지구촌 총생산의 4분의 1  차지한다.

미국 자본주의 역사를 관통하는 진보의 동력은 창조적 파괴의 힘이다.

유럽의 국가들은 가진 것을 지키려는 나라라면 미국은 더 나은 삶을 위해 위험을 감수하는 모험가들의 나라였다.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는 13살 때 무일푼으로 스코틀랜드에서 미국으로 건너왔다.

세계 정유산업의 90%를 쥐고 흔든 존 록펠러는 약장수의 아들이었다.

농부의 아들 헨리 포드는 대중에게 차를 판다는 혁명적인 아이디어를 떠올랐다.

끔찍한 도축장에서 얻은 대량 생산 라인의 아이디어 덕분에 인류의 생산성은 비약적으로 높아졌다.

미국은 그늘의 실패를 용인한다.

헨리 포드와 스티브 잡스의 공통점은 파산한 적이 있다는 사실이다.

창조적 파괴의 비용은 혜택보다 두드러진다.

실크 스타킹 양산의 수혜자보다 그 때문에 일자리를 잃은 이들이 더 잘 보이기 마련이다.

청조적 파괴는 거센 정치적 반발에 부딪힌다.

정치인들은 일자리와 공장을 보존하려 창조적 파괴를  억누른다.

금융위기 때 보았듯이 파괴만 하고 창조는 하지 않는 나쁜 혁신도 많다.

창조적 파괴는 흔히 불신과 증오, 도덕적 분노의 홍수에 직면한다.

진보의 핵심 기제를 되살릴 처방을 제시한다.

개척정신을 잃어가는 미국은 성채사회와 비슷해지고 있다.

국민은 남북전쟁 이후 가장 분열되어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낳은 남미식 포퓰리스트에 가깝다.









이 책은 생산성, 창조적 파괴, 정치라는 세 가지 주제에 초점을 맞춰 미국의 자본주의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생산성은 주어진 투입물을 가지고 산출량을 더 많이 늘리는 능력을 말한다.

창조적 파괴는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과정을  말한다.

정치는 창조적 파괴의 여파에 대응한다.

생산성은 경제적 성공의 궁극적 척도다.

생산성의 수준은 그 사회의 평균적인 생활수준을 좌우하며 선진국과 개도국을 가른다.

창조적 파괴는 경제 발전의 주된  원동력으로 사업과 생활을 뒤집어엎지만 그 과정에서 생산성을 높이는 지속적 돌풍이다.

드문 예외를 제외하고 시간당 생산량을 높이는 유일한 방법은 가장 많은 이익을 낼 수 있는 영역에 사회적 자원을 할당하는 것이다.

대공황에 대해서 좀 알아보면 경제위기에 대한 대처법도 알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1916~1919년까지 미국의 국가 부채는 12억 달러에서 250억 달러로 급증했다.

그중 거의 절반은 연합국에게 빌려준 재원을  마련하는 데 소요되었다.

연합국은 독일에게 최대한 많은 배상금을 받아내려 애쓰는 와중에도 차관을 제대로 갚지 못했다.

1929~1932년까지 모든 연합국이 채무 이행을 거부했다.

미국은 그 대응으로 보호주의를 채택했다.

공황은 금본위제와 연계된 고정 환율이 뒷받침하는 안정된 세계 질서가 와해된 결과였다.

전쟁이 적응하고 지속 가능한 새로운 체제를 구축하지 못한 결과이다.

전쟁 이전에 세계경제 질서의 중심은 런던이었으며 영란은행이 금본위제를 통해 질서를 잡았다.

런던 금융시장이 불안정해지자 프랑스와 러시아의 중앙은행은 영란은행에 자금을 빌려줘서 위기를 막아냈다.

영란은행이 대단히 많은 자금을 융통하고 전문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시장을 안심시키기에 충분했다.

1창 세계대전은 영향력의 중심이 유럽에서 미국으로 옮겨가는 과정을 앞당겼다.

유럽의 강대국들이 전쟁에서 미국보다 많은 피를 흘리고 물자를 소모하는 바람에 변화의 속도가 한층 빨라졌다.

전쟁 이전에 유럽의 네 산업국인 영국, 독일, 프랑스, 벨기에는 미국보다 훨씬 많은 산출량을 기록했다.

1920년대 말에는 미국이 유럽을 크게 앞섰다.

전쟁 이전에 미국은 자본 순수입국으로 191422억 달러의 외자를 수입했다.

전쟁 후에는 순수출국으로 변신해 191964억 달러의 자본을 수출했다.

미국은 전 세계에 존재하는 금의  상당 부분을 축적해 세계적 리더십을 다졌다.





루스벨트는 새로운 행정부에 까다로운 임무를 수행할 역량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행히 재무부 장관인 오그덴 밀스가 이끌고 연준 의장인 유진 메이어가 포함된 이전 정권의 팀이 후머 임기 마지막 해에 혼란을 일으키지 않고 은행 영업을 재개하기 위한 묘안을 마련했다.

재정 건전성을 기준으로 은행을 3등급으로 나누고 철저하게 심사한 다음 단계별로 영업을 재개하는 것이었다.

A등급은행이 가장 먼저 문을 열었다,

B등급 은행은 연준으로부터 대출을 받아 유동성을 확보한 다음 뒤이어 문을 열었다.

C등급 은행은 필요하다면 주식을 발행하는 조건으로 자본 투입을 비롯한 특별 지원을 받거나 사업을 정리해야 했다.

루스벨트는 취임 이전에 은행 개혁을 위한 후버의 정책에 연대하지 않으려 했다.

취임하자마자 긴급은행법을 통과시켜 달라고 의회를 설득했다.

이 법은 루스벨트에게 은행 예금을 100% 보증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루스벨트는 5천 달러까지 개인 예금을 보증하는 연방예급보험공사를 만들었다.

자본주의의 두드러진 속성이었던 예금 인출 사태는 드문 일이 되었다.

루스벨트는 의회가 쥐고 있던 무역정책에 대한 핵심 통제권을 백악관으로 가져왔다.

그에  따라 무역과 관련해 여러 계파의 의원이 서로에게 중요한 산업을 보호해주며 결탁해온 의회의 권한이 줄어들었다.

루스벨트는 자본주의의 잘못된 배선을 고치려고 노력하면서  100일 동안 사람들을 일자리로 되돌리는 데 몰두했다.

그는 25만 명의 청년을  고용해 삼림 관리홍수 통제, 미화 사업에 투입하는 공공근로단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연방 정부의 실업 지원자금을 주 정부로 할당하는 연방긴급구호청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낙후된 지역의 경제 개발을 촉진하기위해 테네시 계곡 개발 공사를 설립하는 등 과감한 지역 개발 사업을 벌였다.

루스벨트는 미국 의회가 제정한 가장 중요하고 파급력 강한 법으로 칭한 국가산업재건법과 함께 취임 100일을 마무리했다.

이 법은 연방 정부가 지정한 산업에서  최대 노동시간과 최저임금을 규제할 수 있도록 했으며 더욱 급진적으로는 노동자에게 노조 결성권과 파업권을 부여했다.

이 법에 따라 국가재건청과 공공사업청이 설립되었다.










국가재건청은 전체 산업에서 생산을 규제하고 정부의 지시에 따라 가격과 임금을 올리는 등 정부가 뒷받침하는 카르텔화의 방대한 절차를 진행했다.

반독점법을 유예시켰을 뿐 아니라 근본적으로 국가 산업을 정부가 지시하는  트러스트의 네트워크로 조직했다.

미국의 전통으로부터 놀랄 만큼 거리가 먼 것이었다.

공공사업청은 야심 찬 공공 건설 사업을 추진했다.

루스벨트는 616일 의회에서 넘어온 최종 법안에 서명하였다.

농촌 지역을 위해 국가산업재건법과 같은 역할을 한 것은 농업조정법이었다.

이 법의 목적은 과잉 생산을 방지하고 농산물 가격을 안정시키는 것이었다.

농기계기 일손에 대한 수요를 줄이고 도시 일자리가 더 높은 임금을 제공하면서 수십 년 동안 많은 사람이 농촌을 떠났다.

1930년대는 이런 변화에 두 가지 복잡한 요소가 더해졌다.

우선 농촌 노동자는 도시에 일자리가 없어서 농촌에 머물러야 했다.

또한 스무트-홀리 관세법 때문에 미국산 농산물에 대한 유럽의 수요가 줄었다.

그 결과 종종 도시보다 농촌이 더 심한 빈곤에 시달렸다.

루스벨트는 생산을 제한하고 가격을 끌어올려서 문제를 해결하려 시도했다.

이런 작용은 불가피하게 우파 진영분 아니라 좌파 진영에서도 반작용을 불렀다.

사회주의 진영의 만년 후보인 노먼 토머스는 뉴딜을 기침약으로 폐렴을 치료하려는 시도라고 폄하했다.

사회 고발 소설가인 업턴 싱클레어는 사유재산을 몰수하고 이윤 추구를 금지한다는 공약을 내걸고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에 출마했다.

또 다른 캘리포니아 사람으로 이전에는 무명의 의사이던 프랜시스 타운센드는 모든 사람에게 60세부터 은퇴 자금으로 200달러를 지급하는 계획을 제안해 전국적 인물이 되었다.

전시 호황은 1950년와 1960년에 이어질  황금기의 토대를 놓았다.

정부는 나중에 민간 부분이 인수랑 새 공장과 산업 설비에 돈을  쏟아부어 국가적 자산을 갱신했다.

1940~1945년까지 공작기계  보유 대수가 두 배로 늘었다.

대량샌산에 대한 미국의 중독 증세는 노조의 권력 때문에 더욱 문제가 되었다.

1935년에 제정된 와그너법이 부여한 노조의 권력은 전쟁에 따른 요구로 수그러들었다가 전후 호황기에 다시 강화되었다.

노조는 대량생산 체제에 대한 장악력을 활용해 비교적 높은 급여와 넉넉한 복리후생을 누렸다.

이런 특권은 갈수록 강화되었다.

노조의 장악력은 전사적 품질관리 같은 새롭고 명민한 아이디어에 저항하는 데도 활용되었다.

이런 문제들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데 수십 년이 걸렸다.

그러나 전후 호황기를 이야기할 때 미국의 번영을 일구는 거대한 체제에 몇 가지 설계 결함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 책은 미국의 자본주의가 형성되는 과정을  엄청나게 자세히 알려준다.

미국은 소득주도가 아니라 생산성에 집중을 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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