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전에 한 번쯤은 심리학에 미쳐라 - 서른 이후 세상은 심리전이 난무하는 난장판이다
웨이슈잉 지음, 정유희 옮김 / 센시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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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절한 생존경쟁이 난무하는 서른이후의 삶에 대비하기 위해 심리학의 무기를 갖춰야 한다고 하는데 정말 그런 것 같다.

 한 번 본 책이나 한 번 본 영화는 절대로 2번이상 본 적이 거의 없다.

성경책말고는말이다.

요즘 이엠바운즈의 기도전집이라는 책도 정말 고전중에 명작같다.

어제 오늘 계속 눈물이 나는게 스탠리의 도시락을 보고 그런 현상이 나타난다.

스탠리의 도시락은 인도영화인데 난 잔인하거나 폭력적이고 야한 영화는 절대로 안 봐서 거의 애들영화만  본다.

액션영화도 좋아하는데 폭력적인게 좀 걸린다.

인도영화는 이번에 처음 보는데 난 영화를 보고 이렇게 많이 울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너무 잘생기고 얘기도 잘하고 글도 잘 쓰고 노래도 잘하고 춤도 잘 추는 스탠리는 도시락을 못 싸온다.

얼굴에 멍도 있고 가장 빨리 학교에 와서 처음에는 왜 그럴까라는 생각을 했다.

아동학대를 당하는 건가라는 생각을 했다.

선생님이 스탠리에게 왜 그런거냐고 물어보니까 스탠리는 자기가 시장에서 여러 명과 싸워서 그렇다고 밝게 얘기를 했다.

스탠리는 점심시간에 도시락이 없으니까 수돗물을 마시거나 학교주변을 배회하는데 짝이 그 모습을 보고 가장 부잣집아이가 자기 도시락을 같이 먹자고  한다.

반아이들이 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선생님이 그 도시락을 뺏어 먹으려고  했다.

우리나라의 촌지를 받으려고 기를 쓰는 선생님이 생각났다.

그 선생님은 나중에 자신이 그 도시락을 뺏어 먹지 못하니까 스탠리에게 도시락을 못 싸오면 학교도 오지 말라고  한다.

스탠리는 학교에 오지 못하고 아이들은 그 선생님에게 원망의 눈빛을 보낸다.

학교에서 아이들이 대표로 나가는 뮤지컬을 하는데 거기에 나갈 사람은 스탠리밖에 없다고 아이들이 스탠리를 찾아가서 뮤지컬에 나가보라고  한다.

스탠리는 학교대표로 뮤지컬을 하게 되고 스탠리를 지지하는 선생님이 엄청 칭찬한다.

스탠리는 교장선생님이 차로 집가까이 데려다 주는데 집이 아니라 어떤 식당으로 들어갔다.

가게에 들어가니까 삼촌이라는 사람이 스탠리의 쌍싸대기를 때리고 일을 하라고  했다.

그 어린 애가 식당일을 하고 식당 구석에서 요리사랑 같이  잤다.

아빠엄마는 델리에 간 것도 아니고 오토바이사고로 전부 돌아가셨다.

그래서 스탠리는 도시락을 못 싸왔던 거다.

요리사는 식당에서 남은 음식을 도시락에 싸서 냉장고에 밤에 넣어두면 스탠리는 그걸 가지고 아침일찍 차비가 없으니까 걸어서 학교에  간다.

도시락을 아이들과 선생님에게 나눠 주면서 엄마가 요리를 잘한다고 밝게 얘기하는데 그걸 생각하면 지금도 계속 눈물이  난다.

나는 겪어보지도 않은 일인데 스탠리의 모습을 보면 왜 자꾸 눈물이 나는건지 모르겠다.

영화장르가 코미디라고 하는데 너무 슬프게 느껴지고 스탠리가 너무 마음이 아프고 스탠리의 자라는 과정이나 미래가 걱정이 돼서 더 마음이 아픈 것 같다.

내가 삶의 경쟁에서 심리전에 승리를 하고 나면 스탠리처럼 도시락을 못 싸오고 아동노동자들이 없는 그런 세상으로 만드는데 일조를 했으면 좋겠다.

경쟁과 성공에서 이긴다는 건 나만 잘 사는게 아니라 사회나 세상이 덜 힘들게 하는데 도움을 줘야 하는 것 같다.

난 스탠리에게 완전히 빠져서 살았는데 오케에 구글이가 엄마랑 내가 하는 얘기를 듣고 스탠리가 큰 모습을 찾아 왔는데 어릴 때의 그 예쁜 모습이 아니었다.

나도 외모를 보는건지 스탠리의 큰 모습을 보고 큰 슬픔이 많이 사라졌다.

걔는 진짜 스탠리가 아니라 연기자라는 걸 다시 깨달았다.

구글이때문에말이다.


 




저자 웨이슈잉은 심리와 자기계발 분야의 독보적인 콘텐츠 기획자이자 전문 작가이다.  저자는 하버드 새벽 4시 반을  써서 중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나도 하버드가 들어가면 자동으로 끌려서 바로 읽는다.  스스로를 낮게 여기는 심리를 열등감이다. 열등감이 심한 사람은 자신을 평가하는 기준을 타인에 두고 타인과 비교하면서 자신의 모습을 만들어간다. 미국의 사회학자 쿨리는 이렇게 형성된 사회적 자아를 가리켜 거울 속에 비친 자아라고 한다. 사회와 관계, 타인이라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자아로 받아들이기때문이다.  서른이면 위인전을 읽고 꿈을 키울 나이는 아니다.  자신과 비교할 수 없으리만큼 뛰어난 누군가의 장점을 망치 삼아 스스로를 담금질하는 일은 더 이상 생산적이지 않다. 도태되어 진훍탕에 뒹굴게 되는 서른 이후의 세상에서는 그렇게 소모적인 일에 마냥 에너지를 쏟을 수 없다. 자신안에서 어떤 전쟁이 벌어지고 있든 자신은 매일같이 한걸음씩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겪는 괴로움을 운운하기에 세상은 너무 거칠고 또 빠르게 변화한다. 지금보다 더 나아지려는 상승욕구를 품는 것은 당연하지만 타인의 시선, 자신이 넘볼 수 없는 타인의 잘난 부분에만 매달리면 자신의 장점과 고유의 특징을 모두  깎아먹는다.  이런 심리적 부작용은 끊임없이 더 나은 지점을 바라보게 만들고 닿을 수 없는 곳에 닿기 위해 에너지를 낭비하게 만들어 삶의 만족도를 떨어뜨린다. 아들러는 열등감이 심한 사람은 이를 보상받으려 노력하는 과정에서 삶의 방식을 형성해나간다. 만약 열등감을 긍정적으로 보상받지 못하면 그 사람의 결점은 콤플렉스로 발전한다. 열등감이 심한 사람은 반작용으로 우월감도 심해서 자신보다 약한 사람에게는 갑질이나 허세를 부린다. 거울 속에서 허깨비가 아닌 장점과 약점을 모두 끌어안은 자신을 볼 수 있어야만 꽤 괜찮은 서른을 맞이할 수 있다.  누구든 갖지 못한 것을 원하는 마음은 조금씩 있다. 열등감이 우리를 더 높은 것으로 데려다주기도 한다.  어떤 사람처럼 되고 싶다는 염원에 성실한 노력이 더해져 긍정적인 결실을 맞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방향설정이다. 자신이 가진 것을 더 키워내는 방향이 아니라 자신에게만 있는 무언가를 덜어내고 쪼그라들게 만드는 방향은 어떤 성장도 불러오지 못한다. 더  높이 뛰어오르기 위해서는 딛고 선 발판이 단단해야 한다. 사람의 인생에서 이 발판은 바로 자신이다.  

어떤 회사나 조직에서도 홀로 고고히 빛나는 나르시시스트를 원하지 않는다.

서른 무렵에 필요한 것은 포용력과 공감 능력이다.

자부심은 자기 신뢰를 바탕으로 스스로를 당당히 여기는 마음이고 과대평가는 자신의 모습을 실제 이상으로 부풀려 타인에게 과시하거나 스스로 그렇게 믿고 싶어 하는 이상 심리이다.

자신을 담담히 사랑하고 가벼이 존중해야 인생이 한결 홀가분해진다.

공부머리가 뛰어난 사람이라도 공감 능력이나 협상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면 세상물정은 하나도 모르는 벽창호소리를 듣는다.

그런 사람은 세상이 자신을 몰라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세상을 너무 모르는 것이다.

세상은 어제의 나에 연연하며 거기서 한발자국도 더 나아가지 못하는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작은 보폭일지언정 꾸준히 걸음을 옮기고 자신의 궤적에 의미를 더하는 사람을 세상은 신기하게 알아본다.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학벌나르르시즘, 지능 나르시시즘, 외모 나르르시즘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사람과 거리를 두어야 한다. 

협상 경험이 풍부한 사람은 상대방에게 유리한 얘기를 초반에 미리 꺼낸다.

그 사람이 마음을 놓고 틈을 보이면 협상이 끝날 무렵에 가장 꺼내기 힘든 까다로운 얘기를 슬며시 던진다.

처음부터 선뜻 받아들이기 힘든 조건을 거론했다면 단번에 거절했을 것이다.

하지만 적당히 유리한 조건을 미리 접하고 나면 나중에 제기하는 까다로운 조건에도 그리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게 된다.

목에 핏대를 세우고 치열하게 주도받는 격렬한 토론도 때로는 필요하다.

하지만 서른 정도 나이라면 그 횟수를 줄여나가야 한다.

나이가 들수록 힘겨운 줄다리를 하고 나면 후유증이 크다.

그래서 강한 부딪힘이 반복되는 상대는 되도록 피하게 된다.

서른이 되기 전에 사람의 마음을 좀 더 자연스럽게 움직이고 얻어내는 법을 익혀야 한다.

변화를 이끌어내는 방식에서 본론을 먼저 노출해서는 안된다.

처음부터 상대가 받아들이기 힘든 초강수를 두어서는 안 된다.

이것이 베버의 법칙이다.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다른 사람이 따르게 하려면 그를 존중하고 스스로 새로운 관점에 녹아들도록 이끌어야 한다.

자기중심이 아닌 상대방을 중심에 둔 관점으로 접근해야 설득의 힘이 커진다.












소실대탐은 되로 주고 말로 받기로 기본적인 교환의 방식이다.

자기 이익의 일부를 내놓고 상대측 이익의 일부를 얻는 것이다.

자신에게 있는 것 중에서 일부를 흔쾌히 내어주어야 더 큰 것을 얻을 수 있다.

미끼를 던진 후 잠시 물러나면 가장 효과적인 승부처가 눈에 들어오게 된다.

부탁해야 할 때는 먼저 상대를  존중하는 것이 성패를 좌우한다.

살리에리 증후군은 영화 아마데우스에 나오는 모짜르트를 질투하는 2인자 살리에리에서 나온 극단적인 심리를 설명하는 심리학  용어이다.

영화 속 살리에리가 경쟁자는 최악의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악마 같은 존재가 될 수 있지만 가장 생생하고 맞춤한  정보를 주는 동료이자 선생님이 될 수도 있다.

우리의 생각에 달린 것이다.

어른이 된 우리는 자기 손에 무엇이 있는지 자기 마음은 무엇을 원하는지 지금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에 시선을 고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어렵기 찾아오는 기회들을 온전히 축복으로 맞바꿀 수 있다.

인생에서 경험하는 모든 성공과 실패는 본질상 과거의 일이다.

현재와 미래에는 직접적인 의미가 없다.

성공을 경험한 사람과 실패를 겪은 사람의 출발선이 크게 달라보일지 모르지만 과거를 덜어내고 보면 모두 동일한 출발선에 서 있다.

미래의 어느 순간 자신은 타인을 앞설 수도 있고 그의 뒤를 쫓을 수도 있다.

그 결과는 이 순간과 저 순간 사이의 시간에 달려 있다.

이 시간 동안 성공은 자신에게 짐이 되어 앞을 향해 달려가는 데 거추장스러운 방해물이 될 수 있다.

혹은 실패가 탄력 있는 발 받침대 역할을 하여 추진력을 제공할 수도 있다.

과거의 성공은 결코 미래의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다.

서른 즈음 세상 일이 꼭 내 생각대로 자신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는 않는다는 걸 잘 알게 된다.

생각과 말에도 여지를 남겨놓아야 한다.

그래야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생겼을 때 여유롭게 대처할  수가 있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여지를 남긴다는 것은 말과 행동속에 앞으로 나아가거나 뒤로 물러설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한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도 적당히 움직일 수  있는 여지를 주어야 한다.

누군가에 대해 성급히 판단하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

저 사람은 끝났다.

저 사람은 미래가 없다는 식으로 다른 사람의 앞날에 함부로 예단하는 말은 삼가야 한다.

관계 속에서 넉넉하게 여지를 확보해놓으면 자신이 한 말때문에 스스로 궁지에 몰릴 일은 없다.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종종 모욕의 순간을 경험한다.

이때 초점을 맞춰야 하는 것은 타인의 품위가 아니라 나 자신의 품위이다.

나도 타인의 품위에 흠집을 내고 끌어내려야겠다는 마음먹는 순간 나의 품위를 지키는 것조차 쉽지 않다.

태연한 태도로 상대방이 나의 인격과 품위를 망가뜨릴 수 없음을 표현한다.

그 사람의 오만함을 그저 내가 더 분발하는데 보탬이 될 작은 밑거름으로 사용해야 한다.

그것이 자존심을 지키는 현명한 방법이다.

링컨도 시키고에 일때문에 갔는데 거기에 있는 변호사들이 링컨을 무시하고 모욕을 줬다.

링컨은 모욕을 당하고도 기죽지 않고 더 분발해서 미국의 대통령이 되었다.

한때 그를 무시하고 무례하게 굴었던 사람들은 여전히 변호사로 남아 있었다.










나아갈 줄만 알고 물러날 줄 모르는 사람은 무모하다.

상황에 따라 나아가고 물러설 줄 알아야 하며 물러섬을 단순한 실패나 낙오로 여기지 말고 새로운 나아감을 준비하는 단계로 여겨야 한다.

그런 사람은 성공과 실패에 연연하지 않는다.

인생의 여러 굴곡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그 위에 올라서서 인생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심리학은 해결책을 제시해주지는 않지만 최소한 원인을 밝혀 준다.

자신의 마음이 이런지, 저 사람의 마음이 왜 저런지, 그럴 수밖에 없는 마음의 행로를 보여준다.

마음이 어떻게 이런 모양새를 갖추게 되었는지 사연을 조금 알면 나를 다스릴 수 있고 타인을 이해할 수 있다.

적대적인 관계를 방치하지 않고 보다 나은 방향으로 관계를 설계할 수 있다.

일터에서도 스트레스를 최소화하고 업무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심리학을 몰랐을 때는 상처가 되었을 삶의 여러가지 것들을 넉넉하게 품는 여유가 생긴다.

그래서 심리학을 알면 자신이 원하는 판 안에서 삶을 그려나갈 수 있다.

험난한 세상에 심리학은 정말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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