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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아프게 하지 않는다 - 상처만 주는 가짜 자존감 나를 지키는 진짜 자존감
전미경 지음 / 지와인 / 2019년 12월
평점 :

자존감책은 죽는 순간까지 손에 들고 있고 읽어야 하는 책이다.
자존감책을 찾기 시작한 때는 나의 존재감이 너무너무 깃털처럼 가볍다는 생각이 들때부터 였다.
아마 자존감책을 읽지 않았다면 긴긴 10년이 넘는 투병시절을 못 견뎠을 것 같다.
나는 시간이 멈춰 있는데 주변 사람들은 승승장구하고 잘 사는 것처럼 보이면 너무 우울하고 자존감이 떨어진다.
주변에 성공한 사람들이 많아서 비교하게 되고 나의 손이 빈 것 같으면 또 자존감이 내려간다.
신앙 때문에 최고이고 소중한 존재라고 기본적으로 생각하기는 하지만 세상이라는 자유민주주의, 자본주의안에 살고 있으니까 제반적인 걸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주변에 잘난 사람들이 많아서 비교하지 않고 나의 고유함과 능력에 집중하려고 하는데 사람들은 나를 놓고 꼭 비교를 하고 평가를 한다.
요즘엔 좋은 얘기보다는 독설이나 폄하하는 얘기를 좀 더 비중이 높게 하는 것 같은데 내 주변에 상대적으로 잘난 사람들과 꼭 대놓고 비교를 해서 그 당시의 상황에 굉장히 기분이 다운이 되고 기분이 나쁘다.
나는 기분이 나쁘지만 칭찬을 들은 상대방은 굉장히 업돼서 내 기분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중에 들어보면 그런 제스츄어는 또 나를 질투해서라고 한다.
나를 업시켜주는 건 오로지 자존감에 대한 책밖에 없다.
나의 긍정적인 면보다는 부정적인 면을 조금이라도 부각시키고 더 흠을 잡으려고 혈안이 된 사람이 있는 것 같다.
자존감책이 없었다면 우울증이나 나를 사랑하지 못했을 것 같다.
사람들의 얘기에 정말 신경 안 쓰고 내가 보는 내 자신으로 격려하고 잘 봐주고 싶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들은 실패를 안 할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는 않다.
실패는 자존감을 낮추는 요소가 아니다.
나도 실패하기가 무진장 싫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실패를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실패라는 부정적 경험을 그대로 쌓아두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언젠가 그 실패를 극복한 긍정적인 경험으로 자신의 내면을 채운다.
실패를 하더라도 자기 인생이 지하로 곤두박질치지 않는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알려주려고 노력한다.
실수도 실패도 해도 된다.
좌절하지 않고 그다음 과정으로 나아갈 수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하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들은 과거의 실수나 실패를 무작정 잊으려고 하는 게 아니라 긍정적으로 복기하려고 한다.
20대에 겪었던 어떤 실패를 30대, 40대, 50대가 되어가는 과정에서 재정의한다.
왜냐하면 점점 더 자존감이 높아지면서 자신의 과거를 객관화해서 이해하는 능력이 커지기 때문이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실수=실패=성공의 장애물이라는 공식 아래 실패를 멀리하고 실패를 하지 않기 위해 민감한 화재경보기를 작동시키고 산다.
실패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실패하게 되면 과도한 패배주의에 젖을 확률이 높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이 실패를 대하는 자세이다.
거듭되는 실패를 통해서 얻어진 능력에 대해 집중하게 되면 자존감이 높아진다.
실패는 자신 삶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 꼭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자신의 삶에 대한 향상심을 느끼기 위해서는 실패로 인해 무언가를 깨닫는 느낌이 꼭 필요하다.
문제를 틀리지 않으면 자기가 무엇을 모르는지 모르는 것과 똑같다.
자존감이 높아진다는 것은 실패 앞에 받는 충격의 정도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실패의 횟수가 많다는 것은 경험의 콘텐츠가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런 얘기는 정말 위로가 되는 얘기이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실패가 두려워 뭔가를 시작조차 안 해보는 경우가 많다.
어떤 일을 시작할 때 실패할 이유가 무수히 자동적으로 떠오른다.
그 일을 하게 되어도 실패를 안 하기 위한 방향으로만 일한다.
자존감 높은 사람이 실패를 안 하기 위해서가 아닌, 최상의 결과를 내기 위해서 일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에 저항하며 부정적인 에너지를 쓰는 것에 반해, 자존감 높은 사람은 도전하고 해결하는 긍정적인 에너지를 쓰면서 일한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빨리 지친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은 실패를 덜하려고 시도나 도전을 잘 안한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처럼 하면 경험의 콘텐츠가 빈약해진다.
높은 자존감을 얻으려면 비용을 치러야 한다.
어른이 된다는 건 인생에 공짜란 없다는 걸 깨닫는 것이다.
경제학의 진리도 이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것이다.
거저 주어진 것은 나중에라도 꼭 대가를 치르게 되어 있다.
높은 자존감을 갖게 되는 비용이 바로 실패이다.
실패를 겪으면 자존감이 떨어진다.
이때 자존감이 덜 훼손되는 방법이 있다.
어떤 선택이나 도전을 할 때 최대와 최소, 최고와 최하를 가정해보는 것이다.
최악의 결과에도 플러스가 되는 일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어떤 일을 실패와 성공이라는 하나의 축으로만 보지 말고 플러스와 마이너스라는 한 가지 축을 더해서 보면 1차원적인 사고에서 적어도 2차원적인 사고로 진화할 수 있다.
어떤 실패를 부정적인 경험으로 의미화할 것인지 긍정적인 경험으로 의미화할 것인지 이분법으로 생각하지 말고 자신이 어떤 일을 보다 다각도에서 볼 수 있다는 점을 깨닫는 것만으로도 자존감은 높아진다.

자존감은 기질의 차원이 아니라 성격의 차원이다.
사회적 자아와 관계가 있고 남이 만들어준 나가 아니라 내가 만든 나에 집중하는 힘이 자존감이다.
인간이 자립한다는 것은 스스로 삶의 목족을 찾아가는 능력을 갖는다는 것이다.
인생은 답이 없는 문제를 끓임없이 풀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자기만의 시그니처는 자기만의 콘텐츠가 풍부한 속에서 탄생한다.
자기만의 콘텐츠는 자존감의 넓이를 결정하고 자기만의 시그니처는 자존감의 깊이를 만든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의 특징은 자기 콘텐츠가 빈약하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실행력이 높다.
나이키의 광고 전략은 자기 삶을 주도적으로 사는 이들에 대한 부러움을 자극하는 것이다.
나이키의 광고 슬로건은 그냥 해이다.
심리서들은 행동력을 강조하는 측면이 약하다.
실행이야말로 궁극적으로 자존의 힘이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실행의 힘이 약하다.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사회는 당연히 바꿔나가야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라도 자기 삶에서 실행력을 높여가야 한다.
실행력이 높아지면 자기 조절력이 커진다.
실행력이 높아지면 실행을 위해 자신의 에너지를 모으는 법을 자연스럽게 익히게 된다.
그 에너지를 모으는 방법이 바로 자기 조절력이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이 타인과 환경과 우연에 의해 자신의 팔자가 정해진다고 생각한다면 자존감이 높은 사람들은 작은 일이라도 자기 자신이 실행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한다.
그것이 자존감을 계속해서 유지하는 일이 된다.
자존감은 자존감은 성공했을 때보다 실패했을 때 극복을 하려는 정신적 의지의 산물이다.
자존감은 지능, 직업과 관련은 없지만 지성과는 깊은 관련이 있다.
지성이란 새로운 상황에 부딪혔을 때 맹목적이거나 본능적인 방법이 아니라 지적인 사고에 근거하여 그 상황에 적응하고 과제를 해결하는 성질이다.
자존감은 일류대학과 전문직의 산물이 아니라 지성의 산물이다.
비교와 경쟁으로 확인되는 자만심이 곧 자존감이라고 생각하면 그 가짜 자존감을 유지하기 위해서 외적으로 매우 노력해야 한다.
겉으로 볼 때는 자신감이 넘치고 당당해 보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을 해도 세상에는 자기보다 잘난 사람이 어디선가 튀어나올 수 밖에 없다.
그런 사람을 만나게 되면 열등감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게 된다.
인생이 행복하지 않고 항상 긴장 상태에 있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기본적으로 겸손하다.
그리고 오로지 자기 자신에게만 집중한다.
포기하지 않고 계속 도전하는 능력을 말하는 그릿이라는 개념도 자신감과 다르다.
자신감은 어떤 일을 할 때 잘해낼 수 있다는 단타적이고 좁은 의미의 개념이다.
자기 가치와 자기 능력이라는 자존감의 두 가지 요소중에서 자신감은 자기 능력이라는 요소를 일부 충족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자신가이 있다고 해서 자신은 사랑받고 존중받을 만한 사람이다라는 자기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인생에서 남과의 비교를 통해 의미를 갖는 일을 최대한 적게 가져야 한다.
경쟁이 치열한 시대여서 열정이라는 말에 대한 거부감을 느끼는 이들이 있다.
하루하루를 버티는 것만 해도 쉽지 않고 매일 쌓이는 피로를 애써 이기는 것도 힘든 시대에 어떻게 열정을 가질 수 있냐고 반문한다.
열정이란 대단한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소중히 여기고 집중하는 능력이다.
아무리 힘든 상황이 닥치고 모욕을 받고 부당한 대우를 받더라도 자신이 무엇인가를 소중하게 여기고 집중할 수 있으면 그 상황을 이겨낼 수 있는 바탕이 된다.
그 집중하는 대상이 자기 자신인 것이 자존감이다.
자존감을 갖는 다는 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일상을 소중하게 여기고 잘 가꾸는 이들을 보면 그들이 대단한 성공을 거둔 사람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존감이 높다는 것을 느낄 때가 많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들은 심리적 독립성이 높다.
나와 남의 거리를 조절할 줄 알며 나와 다른 타인도 그 자체로 오롯이 존재하는 의미 있는 존재임을 안다.
에리히 프럼의 사랑의 기술에는 사랑을 하려면 먼저 혼자 서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 책에서 혼자라는 의미는 자율적인 인간이 되라는 것이다.
에리히 프롬을 대학에 들어가서 처음 읽은 책이다.
사랑에 대한 기술을 알려 주나보다하고 읽었는데 거의 철학서였다.
난 정말 그 책대로 사랑을 안하고 있는 것이다.
나도 혼자 있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
자존감은 감정 상태가 아니라 생각하는 능력이다.
진짜 자존감은 곧 지성의 힘이다.
행복해지려면 나만의 가치로 내 삶을 방어해야 하기 때문이다.
교회오빠가 나에게 자존감이 뭐냐고 해서 자아존중감이고 십자가를 관통한 것이라고 했는데 지성이라니 또 새로운 개념을 알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