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답게 산다는 것 - 다산 정약용이 생각한 인간의 도리, 그리고 법과 정의에 관한 이야기
정약용 지음, 오세진 옮김 / 홍익 / 2019년 9월
평점 :
품절


정약용은 조선 몇 대 천재라고 한다.

정약용이 불공정에 대한 책을 썼다고 했던 걸 들은 것 같기는 하다.

그런데 이렇게 본격적으로 쓴지는 처음 알았다.

소설형식으로 되어 있어서 금방 이해가 되고 재미있다.

천일야화인지 그런 프로를 보면 인간의 프로그래밍화나 설계화가 되어 있다는 걸 많이 느끼게 된다.

정조가 법에 대해서 얘기한 것도 정말 놀랍다.

정치 지도자는 법에만 의존하면 안 되고 인정에만 치우쳐도 안된다고 하는데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어렵다.

정조는 사건 당사자들이 납득할 수 있고 억울한 백성들이 나올 수 있다고  한다.

정상을 참작하고 인정을 살피는 쪽으로 가면 자의적이고 독단적인 판결로 갈 수 있다고 어느 한 쪽으로 치우쳐서는 안된다고 한다.

그 시대에도 약육강식을 지양했다.

신분 사회인데도 잘 못하면 거기에 맞는 형벌을 내렸다.

흠흠신서, 목민심서, 경세유표를 고문으로 읽어 본적이 있는데 도저히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그 내용이 있어서 반갑다.

조선시대는 미개하고 뒤떨어져 있다고만 생각했는데 이 책을  보니까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인간은 고도의 지능을 가지고 독특한 삶의 영위하는 고등동물이라고 나온다.

조직사회를 이루고 언어와 도구를 사용한다고도 나오구말이다.

인간답게 산다는 건 이 책을 보면서 다시 한 번 더 생각하게 됐다.

자유의지와 선택을 하면서 존중을 받으면서 사는게 아닌지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 책은 강력한 살인 사건에서 인간을 어떻게 보호하고 공정하고 정의롭게 법으로 처리하는 건지 알려준다.

그 바램은 아직도  실현되지 않은 면이 많은 것 같다.

항상 역사속에서 배우라는 얘기가 있어서 진정으로 인간답게 사는 건 뭔지 조선의 천재 정용약에게 배우고 싶다.







정약용에 대한 책을 2권 읽고 완전히 반해서 다음주에 남양주에 있는 정약용 유적지와 실학박물관을 가기로 했다.

이 책도 그 한권에 들어간다.

 천재나 엘리트가 정말 좋다.

세계를 보는 눈이나 현상을 보는 마인드가 틀리기는 틀리다.

세기의 천재들은 고대나 과거시대에는 책이나 자료도 없는데 어떻게 공부하고 지식이 뛰어난지 항상 궁금하다.

종이가 없어서 아내의 치마폭에 글을 썼다고 했던 것 같다.

다산은 18년의 우울한 유배지에서 침식되지 않은 이유가 저술과 자연, 시때문이라고  한다.

나도 아플 때 책을 읽으니까 우울증에 안 걸렸다.

다산은 500권 가까이 책을  썼다.

나도 글을 쓰니까 기분 나쁘거나 우울한게 해소가  된다.

다산을 통해서 분노, 우울함을 책으로 승화를 시킬 수 있다는 걸 또 배웠다.

난  화가중에는 고흐, 모네가 좋아서 나중에 아를과 지베르니에 가고 싶다.

정약용의 자취를 느낄 수 있는 건 한국에 있어서 다행이다.

난 정약용이 참 좋고 우리나라에 이런 인물이 있다는 사실도 정말 좋다.












정약용은 학자이고 정치가이고 법률가였다.

멀티형천재다.

그는 다양한 지식으로 세상을  바꾸고 싶어했다.

그는 평생 학문에 정진했고 다산, 사암, 여유당, 채산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

그는 금수저로 태어났지만 지방의 수령과 암행어사가 되어 향촌을 돌어다니며 목격한 조선 민중의 피폐한 현실은 그를 크게 깨우치게 했다.

정치가들을 잘못 만나면 백성들은 지옥을 경험하게 된다.

다산을 정조임금의 이쁨을 받으면서 세상을 바꿀 개혁을 준비했지만 그의 능력과 개혁안은 현실에 쓰이지 못한다.

그런 점은 정말 안타깝다.

조선시대에는 당쟁이 심해서 정적들의 공격에 18년 유배를 떠나게 된다.

난 항상 국익이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너무 잘나서 질투나는 사람도 있기는 하지만 그 사람이 국익에 선한 영향을 준다면 그 사람을 밀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약용의 죄목은 서학을 믿어서라고 했다.

일본은 순교를 하기 힘들었던게 귀를 서서히 뚫는 고통을 줬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냥 불태워 죽이거나 목을 베는 것보다 서서히 귀를 뚫는 고문은 사람들이 이기지 못해서 순교자들이 많이 나오지 못한다고 했다.

유배를 가게 되면 심신이 피폐해지고 의욕을 잃기 마련이지만 다산은 더 학문에 매진했다.

유배 생활 동안 정치, 법률, 의술, 교욕, 과학기술, 지리, 법, 문학, 예술 등 광범위한 분야를 넘나들며  관련서들을 썼다.

대단,,,,,,

우리나라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라는 얘기에 공감한다.

<<경세유표>>는 조선의 정치 제도에 대한 개혁을 제안하는 책이고

<<목민심서>>는 지방 관리들의 폭정과 그것을 바로 잡을 수 있는 지침에 관한 내용이다.

다산은 조선의 미래를 위한 정치 개혁 방안을 제시했지만 청렴하고 정의로운 공직 사회를 만들고 싶엇지만 정조의 죽음과 급속도로 진행된 지지자들의 몰락과 함께 다산의 설 자리는 없었다.

다산이 마음껏 정치를  펼쳤다면 우리나라가 더 발전했을 거라는 얘기는 고등학교 국사시간때부터 들었다.

조선의 천재가 쓴 법률에 대한 얘기를 읽는 재미가 있는 책이다.

호조에서 북한산성에 파견한 창고지기 서필홍은 양주 의정리에 사는 김태명이 환곡을 미납하자 독촉하기 위해 집으로 찾아갔다가 그가 집에 없자 마당 한쪽에 송아지를 끌고 나왔다.

서필홍이 한참을 가다가 김태명과 마주쳤고 두 사람은 말다툼을 벌이다가 몸싸움을 했다.

한참을 싸우다가 김태명이 송아지를 빼앗아 돌아갔다.

김태명은 집으로 돌아가다가 머슴 함봉련을 만났다.

분이 안 풀린 김태명은 머슴에게 서필홍을 때려주라고 했다.

머슴은 서필홍에게 달려가서 손으로 밀쳐 밭고랑 아래로 넘어뜨렸다.

서필홍은 비틀거리면서 집으로 갔지만 피를 토하고 아내에게 자신을 죽인 사람은 김태명이니 복수를 해다라고 했다.

아내는 즉시 관아를 달려가 고발했다.

시신 검시 보고서를 보면 가슴 한곳이 검붉은 빛이고 딱딱하며 코와 입이 굳은 피로 인해 막혔다.

그밖에 다친 곳은  없으나 실제 사인은 폭행당해 죽은 것이다.

주범은 함봉련이고 증인은 김태명이다.

마을 이장과 가까운 이웃들은 모두 함봉련이 서필홍을 밭에 밀어 죽였다고 했다고 했다.

사건의 정황이 석연치 않아 무조건 함봉련을 주범으로 볼 수 없어 미뤄지다가 12년이 지나도 판단을 내리지 못했다.

형조참의 정약용이 임금께 올리는 보고서를 보면 최종 판결을 내리려면 공인된 증거들이 서로 합치해야 하는데 이것들이 어긋나면 반드시 문제가 생긴다고 했다.

정약용이 봤을 때는 함봉련에게 원통한 점이 많다고 했다.

어떤 사건에 최종 판결을 내리려면 세가지 근거가 있어야 한다.

피살자 가족의 진술, 시신에 대한 검시, 마지막으로는 공인된 증거가 있어야 한다.

이 세 가지가 합치하면 그 사건은 의문의 여지가 없지만 세 가지가 서로 어긋나면 그 사건은 아직 규명된 것이 아니다.

그런데 함봉련 사건에서 검시 보고와 피살자 가족의 진술이 서로 부합하는데도 증거로 채탁하지 않았고 김태명이 하는 진술만 믿고 이웃들이 하는 이야기를 참고하여 실제 사인을 단정하고 주범을 확정했다.

서필홍이 죽기전에 원망한 사람은 서태명이었고 원수로 여기고 복수해달라고 말한 사람도 김태명이었다.













서필홍이 독촉한 것은 김태명의 곡식이었고 독촉을 이유로 빼앗은 송아지도 김태명의 것이었다.

주범을 바꿀때는 시신이 남긴 상처의 흔적에 달린 것이다.

서필홍을 짓찧은 것은 김태명의 무릎이고 밀친 것은 함봉련의 손바닥이다.

무풀이 닿은 곳이 피살자의 가슴이고 손바닥이 닿은 것은 피살자의 등이다.

등에는 아무런 상처가 없고 가슴에는 검붉은 상처 자국이 세 치나 남아  있다.

김태명은 짓찧고 함봉련은 밀쳤는데 실제 사인을 짓찧음 당함이라고 하지 않고 떠밀림이라고 했다.

유족의 진술과 이웃의 진술에서 때렸다는 말은 없고 몸의 어디에도 몸둥이에 맞은 흔적이 없는데도 맞아 죽음이라고 적혀있다.

허술하게 사건을 처리했다.

사건의 경위서에는 폭행을 당했다고 적혀 있는데  서필홍이 떠밀렸다고 하면 등에 상처 자국이 없는 것은  문제가 되고 짓찧음을 당했다고 하면 김태명이 죗값을  치르게 되기 때문에 이렇게 모호한 표현으로 서류를 작성한 것이 분명하다.

이 사건에 김태명이 증인으로 되어 있는데 김태명은 주범으로 고발된 자이다.

그러므로 김태명은 증인이 될 수 없다.

증언을 했던 이웃들은 모두 김태명의 인척이고 마을 이장 역시 김태명을 지지하고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화합하여  이 사건을 왜곡했다.

정황과 법리에 비춰볼 때 제대로 수사된 것이 아니었다.

사건이 10년이 넘었고 조사해야 할 사람이 죽었을 수도 있어서 경기 감영에서 재조사를 했다.

흠흠심서에 실린 이 내용을 보면 정약용의 조사 방법과 사법 행정 능력이  얼마나 뛰어난지 알 수 있다.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당연한 것이지만 당시의 수사와 감찰 수준을 보면 정약용의 논리와 법의식은 당대 벼슬아치 중에서 아주 높은 수준임을 알 수 있다.

지방 수령들은 이런 수준을 갖추지 못했고 그로 인해 살인 사건을 제멋대로 판결하는 바람에 무고한 백성들이 죽거나 유배를 가는 일이 많았다.

정약용이 이 사건을 맡았을 때 형조의 지배적인 견해는 철안이었다.

증인의 증언과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가 모두 확정된 것이라서 번복하기 힘들다고 했다.

정약용은 이에 이의를 제기했다.

조선시대에는 권력과 돈이 있는 사람은 증언을 조작하고 증인들을 돈으로 사서 자신에게 유리하게 판결을 받는 일이 많았다.

이와는 반대로 권세와 돈이 없는 사람은 억울한 누명을 쓰고 살인범으로 몰려 죽임을 당하는 경우도 흔했다.

과학적 수사 기법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인데다 유전무죄, 무전유죄현상이 극심했다.

다산은 이 사건을 다각도로 분석하고 의심스러운 부분을 세밀하게 조사하여 허술한 부분이 많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조사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은 조사관들이 문책을 받을 수 있고 다산이 원망을 들을 수 있어서 조심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다산은 망설이지 않고 잘못된 점을 찾아내어 판결의 오류를 잡아 냈다.

함봉련을 주범으로 지명했지만 다산은 그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사형을 면하게 도왔다.

돈과 권력이 없는 약자를 보호하고 법질서를 세우려는 정조와 다산의 의지를 알 수 있는 사건이었다.

이 책은 다산의 그런 점을 부각해서 엮은 책이다.

지금도 정의와 공의가 잘 지켜지지 않아서 나라가 두쪽이 났는데 과거는 더 심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다산같은 천재만 있으면 억울함을 당하는 사람들은 급격히 줄어드는 것이다.

아무튼 이 책은 읽을수록 사건들이 과거의 일이지만 요즘에도 해당될법한 사건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인간의 악마성도 엿볼 수 있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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