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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목격자 - 한국전쟁 종군기자 마거리트 히긴스 전기
앙투아네트 메이 지음, 손희경 옮김 / 생각의힘 / 2019년 9월
평점 :
절판

난 625 때문에 이 책을 읽고 싶다.
우리아빠집안은 부잣집에 지주집안이었는데 625 때문에 고조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 친할아버지를 전부 다 잃었다.
아빠는 자신의 집이 항상 12대문의 기왓집이라고 하셨다.
위의 할아버지들은 북한군의 폭격으로 집과 할아버지 전부를 잃었다.
친할아버지는 젊었는데 지주라고 북한군이 와서 찾았는데 아빠집의 소작농들이 할아버지가 아궁이밑에 숨어있다는 걸 얘기해줬다.
그 사람들은 죽창을 들고 와서 할아버지를 위협했고 할아버지와 동네 공무원은 북한군에게 끌려 갔다.
인민군은 할아버지와 공무원을 산으로 끌고 갔고 할머니는 임신한 상태였는데 따라가셨다.
인민군은 할아버지와 공무원에게 땅을 파라고 했고 땅을 다 판 할아버지와 공무원을 죽창으로 찌르고 구덩이에 밀어 넣고 살아 있는데 그냥 파묻었다고 한다.
할머니는 그 장면을 보고 입을 닫고 아무것도 안 먹고 아빠를 남겨 둔채 돌아가셨다.
집안사람들이라면 첩자식들이 있는데 원손인 아빠의 재산을 빼앗으려고 미군트럭에 아빠를 태웠고 아빠는 부산고아원으로 가게 되셨다.
아빠는 원래 북한쪽에서 사셨는데말이다.
아빠는 고아원에 있을 때 엄청 어렸고 운동장 크기만한 마당을 쓸라고 하고 학교도 안 보내고 농장에서 일하셨다고 한다.
사과농장이라고 하셨다.
아빠는 자식이 없는 고아원원장님에게 잘 보여서 학교도 다니고 나중에는 박사도 하시고 대학교 부총장도 되셨다.
엄마집안같은 집안이 좋은 사람과 결혼도 하셨다.
하지만 아빠는 평생 웃는 걸 못 봤다.
항상 인상을 찡그리고 말도 잘 안하셨다.
아빠는 인민군이나 북한이나 김정일일가를 보시면 소름끼쳐 하신다.
친북적인 것도 소름끼쳐 하신다.
할머니 무덤도 첩자식들이 다른 사람들 무덤위에 같이 묻으면 그 자손이 끓긴다고 아빠의 어머니 무덤도 그렇게 해 놓았다.
아빠는 어른이 돼서 고향을 찾아 갔는데 일부는 이북으로 넘어가고 나머지땅들은 첩자식들이 전부 갈랐다.
아빠는 죽었다고 생각하구말이다.
아빠는 나한테 사자가 돼서 한을 풀어 달라고 하셨다.
엄마도 아빠의 얘기를 쓰겠다고 강의 짤리고 박사휴학하고 숭실대 문예창작학과에 다시 들어 가셨다.
남동생은 북한에 대해서 별로 반감이 없다.
난 민주주의나 공산주의책을 읽어서 일제보다 더 악마적인게 공산주의 사회주의라는 걸 알았다.
전쟁은 한 가족과 나라를 비극으로 몰고 가는 것 같다.
이 책은 한국전쟁을 미국사람의 시각으로 쓴 거라서 읽어 보고 싶었다.
마거리트가 한국전쟁에 대해서 뭐라고 했는지 너무너무 궁금해서 이 책을 빨리 펼쳤다.
마거리트는 1950년 4월 도쿄에 왔다.
극동아시아 특파원들은 도쿄 프레스클럽의 작은 방을 숙소로 배정받았다고 한다.
일본은 미국의 반대편이라고 한다.
마거리트에 대한 영화도 나왔다고 했다.
마거리트는 뻔뻔스러울 정도로 자신감이 넘치는 여성이었다.
마거리트는 예쁘고 단호하고 매혹적이라고 했다.
마거리트는 도쿄에 온 지 일주일도 지나지 않았을 때 마거리트는 한국이 5월 30일 총선을 치른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녀는 그 나라의 400년 역사이래 최초의 총선을 치른다고 했다.
우리나라를 미국인 여성기자가 3인칭 시점으로 얘기하는 것을 읽으니까 낯설고 새로웠다.
그녀는 알려진 게 없는 한국이라는 나라에 호기심이 생겼다.
그녀는 공산주의 바로 옆에 있는 한국에 가기로 했다.
그녀는 고요한 아침의 나라가 임의대로 분단되었던 독일처럼 기사거리가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19세기 말 이래 한국은 러시아, 중국, 일본 신흥 제국들 간의 세력다툼 판에서 졸 노릇을 했다.
1905년 러일 전쟁의 결과 한국은 일본의 보호국이라는 허울에 5년 동안 있다가 일본의 합법으로 마지막 왕이 왕위에서 물러나고 한국은 일본의 일부가 되었다.
한국의 정치 상황을 무시하고 지리상의 분할은 전적으로 미국과 소련 간 적대의 결과였다.
북한은 김일성이 지배하는 러시아의 위성국가가 되고 농업이 생산이 기반인 남한은 미국의 후원 아래 민주주의로 힘겹게 나아갔다.
남한의 통치자는 이승만 대통령으로 하버드와 프린스턴을 나오고 75살의 감리교 목사였다.
한국에 대해서 미국은 아무것도 몰랐지만 마거리트가 인기녀라서 한국에 대한 관심을 미국이 가지기 시작한 것이다.
대박 감사한 여인이다.
신문의 해드라인은 "기자, 한국을 갈라놓은 국경으로 가다.
빨갱이들이 말과 포탄으로 싸우는 현장을 발견."이라고 했다.
그녀는 우리나라가 폴란드와 틀리게 선거를 질서정연하게 하는 것을 보고 낙관주의를 솟구치게 했다고 했다.
그녀는 일본에 다시 갔다가 한국전쟁을 취재하기 위해 다시 또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미군사고문단의 장교 60명이 맥아더 장군에게서 명령을 받아서 서울로 와 있었다.
미국인 피난자들은 비행기를 가득 메웠고 조종사는 마거리트와 다른 특파원들에게 한국에 남고 싶냐고 물었다.
마거리트는 세계적인 특종을 놓칠 수 없다고 생각했고 자신들이 남한에 온 최초의 특파원이었고 수도로 들어가기만을 바랐다.
서울을 향해 가는데 비가 부슬부슬 왔고 기관총 소리도 들렸다.
길은 반대 방향을 향해 움직이던 피난민으로 꽉 막혀 있었다고 한다.
갑자기 다가오는 미국인들을 보고 곧 구출될 거라고 믿는 피난민들이 환호를 했다고 한다.
이 책을 읽을수록 짠하다.
나의 나라의 얘기를 미국인 기자를 통해서 들으니까 3인칭 관점이다기 1인칭 관점이다가 더 특이하게 감정이입이 잘 되는 것 같다.
피난민들은 미국인 기자들에게 환호를 보냈고 그 시절 그들은 미재라면 뭐든지 믿었다고 한다.
전쟁에 내몰려서 누군가의 구원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그 마음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마거리트는 숙소를 잡고 다른 기자들과 다른 곳에 묵었는데 잠을 자려고 했을 때 대령이 와서 다리가 폭파된다고 도망쳐야 한다고 했다.
마거리트는 트럭이 그녀의 눈앞에서 날아가고 다리가 폭파돼서 사람들이 익사하는 것을 봤다고 한다.
난 한국전쟁에 대해서 이토록 생생하게 들어 본 적이 없다.
그녀는 한강을 건넜는데 수용인원이 차서 배가 가라앉았고 수영을 해서 건넜다고 한다.
그녀는 피난민 대열에 합류해 수원까지 걸어가고 있었고 그 행렬의 유일한 여성이었다.

그녀는 맥아더 장국 바로 옆에서 취재를 했다.
맥아더는 일본의 마지막 쇼군이었고 1945년이래 군사 독재자로 땅의 소유를 관할하고 새로운 헌법을 제정하고 그것을 시행했다.
마거리트가 가장 좋아하는 개혁은 일본 여성에게 투표권을 줘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일본 여성이 맥아더에게 절을 했을 때 맥아더는 이제는 그러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마거리트는 맥아더와 얘기를 하면서 그가 명석하고 인자하다고 했다.
기자로 볼 때 쓸 게 별로 없는 사람이라고 했다.
6월 30일 그녀는 수원으로 갔고 그 사이 미군이 파병되었다.
본격적으로 한국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마거리트는 전투현장으로 가고 싶었지만 불안하기도 했다.
러시아 폭격기가 수원 활주로에 총알을 쏟아 붓고 있었다.
들판의 차량이 화염에 휩싸였고 부산만에 가까워지자 조종사가 낙하산을 메고 헬멧을 쓰라고 했다.
난사당한 비행기의 잔해가 활주로에 치워지지 않아서 조종사가 급브레이크를 잡는 바람에 비행기가 수원 활주로에 쿵쿵 찧으며 멈췄다.
그녀는 덜덜 떨며 비행기에서 내렸고 다시는 탄약 수송기에 타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그녀를 맞이하는 시무룩한 대령은 바로 돌아가야 한다고 했고 문제가 많이 생길거라고 했다.
그녀는 문제가 없는 곳에는 가지 않는다고 했다.
그녀는 장교들보다는 최전선 병사들과 친하고 싶어했다.
전쟁을 취재하는 일이 개인적인 개혁 운동이 된 것 같았다.
남자의 일을 하려고 노력한 모든 여성을 마거리트가 대표한 것처럼 된 것이다.
그녀는 세계에서 가장 저명한 트리뷴의 기자로 일하게 된 추기부터 그 어떤 남자에게도 뒤지지 않는 능력이 있다는것을 입증했다.
멋지다.
전선에 닿지 못하면 여성이라는 그녀의 성별이 장애물이 되는 것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 시대도 요즘처럼 루머가 많았던 것 같다.
빨갱이들이 내려온다고 하고 북쪽에서 탱크들이 발견되었고 포위되었다는 얘기들말이다.
60명의 병사와 마거리트는 포위되지 않았고 전원이 130킬로미터쯤 떨어진 대전으로 가기로 했다.
한국의 장맛비가 배리는 밤 11시에 대전으로 떠났고 키스 비치라는 사람이 운전한 지붕 없는 지프는 새벽 6시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들이 떠나고 사흘 후에 수원이 함락됐다.
내가 지금 평화롭게 살고 있는 이 곳에서 전쟁이 일어났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고 난 뭘 느껴야 하고 뭘 생각해야 하는 건지 계속 떠오른다.
트리뷴은 서울의 함락을 마거리트가 직접 목격한 데 기뻐하며 1면에 기자의 사진을 좋고 탈출한 기자의 눈으로 본 서울의 함락이라는 헤드라인까지 박은 4단 짜리 박스 기사를 실어 대서특필했다.
마거리트같은 여성이 있어서 우리나라의 전쟁을 미국에 알리게 된 것 같다.
그녀는 원고를 송고하기 위해서 한국에서 일본으로 비행기로 계속 왔다갔다했다.
평택 근처에 있던 특파원들이 주변을 돌아보니 시커멓게 탄 탄약 트럭들에서 아직도 연기가 나고 있었고 기총소사에 맞아 훼손된 난민들의 시체도 있었다.
죽음의 냄새는 배수로와 논 양쪽에서 피어올랐다.
마거리트는 벼룩에 물리기도 하고 헐렁한 바지와 셔츠를 입고 특 대 사이즈 작업모를 써서 금발 머리를 감췄다.
진흙, 무좀 온갖 고충을 다 겪었다.
전선중에 있으니까말이다.
마산 전투를 대비해 마거리트가 해병대에 합류했을 때 에드워드 크레이그 준장은 간이침대를 설치하라고 했지만 마거리트는 바닥이 편하다고 했다.
마거리트는 더러운 바지와 셔츠를 몇 주씩 입었고 캔에 든 음식을 먹었고 한국의 갈색 먼지를 들이마셨다.
가끔씩 그녀는 도쿄로 날아가 욕조에 몸을 담그고 손툽 손질을 받고 머리를 감고 드레스를 입었다.
마거리트가 쓴 상륙 기사는 트리뷴의 1면에 실렸다,
중무장한 미합중국 해병대는 역사상 기술적으로 가장 어려운 육해군 공동 상륙작전에서 오늘 해 질 녘 인천항 중심부의 3미터 높이 방파제를 넘어 급습했으며 1시간 안에 이 도시의 요충지 언덕 세 개를 장악했다.
함포와 비행기가 치명적이고 꾸준하게 포격을 퍼부었는데도 살아 남은 북한군들은 해변 가까이에서 소형 화기와 박격포로 우리를 괴롭혔다.
심지어 그들은 내륙 쪽으로 방파제 뒤편에 흐르던 도량을 기어오르려는 우리를 향해 수류탄을 던지기도 했다.
해협은 귀를 찢는 전함의 로켓포 소리로 떠나갈 듯 울렸다.
커다란 총포가 하늘을 향해 발사되자 머리 위에서 선회하고 있던 비행기들이 낮게 급강하해 방파제 안쪽 깊은 곳에 숨은 적군의 화기를 샅샅이 뒤졌다.
마거리트는 많은 편견 속에서도 한국이라는 풍경의 일부가 되었다.
한국은 그때 당시 전부 갈색이었는데 그 갈색속에 금빛 조각같은 그녀의 머리가 보였다고 한다.
거의 1년이 다 되도록 전쟁이 마거리트의 인생이었다.
벼룩 퇴치가루약, 칫솔, 타자기, 립스틱, 타월만 지닌 채 전쟁의 온갖 고난을 다 겪었다.
그녀는 총에 맞을 까봐 걱정해서는 결코 기사를 따낼 수 없다고 했다.
195년 해외 취재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퓰리처상을 받았다.
그런 영예를 얻은 최초의 여성이라고 한다.
그녀가 없었다면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잊혀졌을지 모른다.
그녀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여성이라서 세계에 우리나라에 대한 관심을 끌어 들인 것이다.
그런 사람이 필요한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