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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공화국 북조선 탈출 - 1급 설계원.보위부 비밀요원의 자유.인권.민주주의 향한 여정
한원채 지음 / 행복에너지 / 2019년 6월
평점 :

오늘 뉴스에서 탈북민 모자가 아사됐다는 기사를 봤다.
북한에서 굶지 않으려고 남한에 왔는데 그 끝은 아사다.
나도 로스쿨스터디를 할 때 탈북민남자아이를 봤다.
말투가 좀 이상해서 지방에서 올라왔냐고 하니까 탈북민이라고 했다.
북한에서 엄마가 의사이고 걔는 아파트도 좋은데 살았고 차도 SUV를 탔다.
이전 정권에서는 지원이 잘 돼서 잘 살고 있는 거라고 했다.
걔말로는 북한에 핸드폰으로 전화도 친적들한테 할 수 있고 돈도 보낼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항상 전화번호를 자주 바꿔서 연락을 계속 하기는 힘들었다.
탈북민들은 교회를 거의 다 다녔다.
하지만 인터넷상으로 돌아다니는 북한인권에 대한 얘기를 들으면 진짜인지 믿어지지 않는 얘기들이 많았다.
항상 진실은 무엇인지 바로 믿으면 안되고 책도 읽고 질문도 거듭거듭해서 검증을 해봐야 할 것 같다.
뉴스와 외국 뉴스, 유튜브는 차이가 나는 얘기들이 확실히 많다.
북한이 노예공화국이라고 하는데 왜 그런 공화국과 친해야 하는 건지 도저히 이해가 안된다.
사람들은 못 살고 권세 없고 자유 없고, 인간다운 생활이 마비된 그 곳이 바로 북한이다.
전 세계 사회주의 대진영이 송두리째 무너진 원인도 다 사회주의 체제 자체의 모순성과 열악성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으나 수많은 조선의 인민들은 체제와 정면으로 맞서기에는 너무나도 아름차고 힘겨우니 어쩔 수 없이 탈북을 하는 것으로써 당국과 맞서고 있다.
저자는 역사적으로 봉건 세습적 정권이 신물이 나고, 군국주의 군사독재에 불복하겠다는 반발심이 머리에 들어 탈북을 시도했다.
저자는 중국에 일시적으로 머물면서 온 가족이 마음의 기둥인 대한민국으로 망명하기 위한 굳은 마음을 안고 21세기를 맞이했다고 한다.
저자는 떠돌이 세상살이를 하다보니 참 말 기막힌 일도 있었다.
이름도 낯도 모르는 사람들한테 걸려서 1999년 8월 11일 오전 10시, 중국 길림성 연길시 장백향 파출소 공산원 들에게 체포되었다.
조선 사람이라는 이유로 호송되었으며 3개월간 갖은 악형과 강제 노동, 심문을 받다가 기적적으로 탈출하여 소생하게 되었다.
난 이 책을 읽으면서 분노에 분노가 지독하게 치솟았다.
어떻게 인간에게 그런 극형을 적용할 수 있고 자유가 좋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자유대신 인간이하의 대우를 할 수 있는건지 도저히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는다.
장백향 파출소 공안들에게 체포 되던 날, 다행히도 아내와 큰딸은 외출중이라 잡히지 않았고 저자와 막내 아들은 집에 있다가 그들에게 붙잡혀 온갖 고생을 다 당하게 되었다.
저자는 탈북하기 이전에 함경북도 청진화학섬유연합기업소 길주 펄프 공장에서 35년간 설계원으로 일했다.
아내 역시 30년간 철도국 병원에서 내과의사로 일했다.
저자와 아내는 물론 두 딸도 모두 대학을 졸업했고, 막내는 고등학교 학생이었다.
어느 모로 보나 단란한 인텔리 북한가정이다.
하지만 북쪽에선 소용이 없다.
저자의 딸이 차마 말과 글로 표현하기 어려운 비인간적인 대우 속에서도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던 감방 수기를 공개하는 것은 북조선 사회를 제대로 알리기 위해서이다.
죽어라 일을 해도 부가 없는 세상, 부를 창조한 사람이 그 부를 소유하지 못하고 부를 가로채는 자가 부의 향유자가 되는 사회, 사회악의 쓰레기통에서 사회 악취를 맡으며 사느니 차라리 그 속을 탈출하는 것이 낫다는 것이 태영호공사의 얘기다.
태영호공사는 어느 날 탈북민 집에 갔다가 그 집에 놀러온 단아(옹골진) 하면서 괜찮은 여성을 만났다고 한다.
주변에서 하는 말을 들으니 북한에서 한국으로 내려와 서울 한복판에서 한의원까지 차려놓은 성공한 탈북민이라는 것이다.
정말 대단한 여성이다.
한국 정착을 어렵게 여겨 살고 있는 사람도 많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한국에서 한의대를 졸업하고 한의사가 된 그녀의 성공스토리는 탈북민들의 귀감이 되기에 충분했다.
그녀의 아버지 한원채와 어머니는 북한에서 인텔리 계급인 지식인으로서 북한 체계를 위해 수 십년 동안 양심적으로 살아온 분들이다. 4.27판문점 선언 이후, 이 땅에는 이상한 흐름이 감지되고 있다.
위정자들이 북한의 수천만 노예들의 운명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김씨 일가라는 노예주들과 사이좋게 지내려는 이상한 움직임 말이다.
이 글을 읽으면서 나는 경험하지 못했지만 마음이 너무 아팠다.
이 참혹하고 귀중한 기록은 세계의 인권운동가들과 자유를 바라는 언론인, 출판인들이 꼭 읽어야 한다.
그래야 19년전 저자가 쓴 자유의 필본이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고 폭정의 종식을 앞당길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이 여러 언어로 번역되어 세계인들에게 널리 읽혀졌으면 너무너무 좋겠다.
이 책에 나오는 내용들은 너무나 불의해서 정의의 편에선 의인들이 전 세계로 알렸으면 좋겠다.
자기 생각을 자기 입으로 말할 수 없는 세상, 이것이 오늘날 북조선이다.
왜, 왜, 왜, 왜, 자기입으로 말을 못해야 해,,,,,
왜!!!!!!!!!!!!!!!!!!!!!!!!!!!!!!!!!!
도대체 북녘 땅 국민들의 절규에는 귀 기울이지 않고 김정은만 바라보고 거짓평화만 외치고 있다.
저자는 1999년 초 2차에 걸쳐 북경 주재 한국대사관에 망명을 요청하는 전화를 걸었다.
박한남이라는 가명을 썼는데 대사관 승인을 얻지 못했다.
소원을 이루지 못해서 정신적인 문제도 왔다.
그러나 저자는 다시 힘을 내어 한국으로 갈 수 있는 길을 찾기 위하여 꾸준히 노력했다.

저자는 꼭 광명을 찾아 남한으로 갈 생각은 확고했다.
하지만 또 보위원에 체포되었다.
초롱에 갇힌 신세가 되었으니 연길에 있는 아내와 아이들은 얼마나 비애속에서 힘들겠는가 하는 생각을 하니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고 한다.
보위부에서 개인 정보를 물었다.
이름, 성별, 연령, 출생지, 거주지, 직장, 직위, 학력, 이력은 바로 적고 이름은 역시 가명을 썼다.
오래전에 해삼 2Kg을 가지고 나간 아내가 집에 오지 않았다.
저자는 다시 탈출해서 중국에 있는 친척집을 찾아 가다가 이틀을 굶어 목도 마르고 배도 곯아서 개울물을 먹었는데 대장염이 생겼다.
겨우 친척집은 찾았는데 아내는 거기에 없었다.
친척집에서 1년을 지내다가 건강이 나아져 아내가 집에 올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올 결심을 말했다.
다시 보위부에 끌려갔다.
보위지도원이 말없이 한참이나 묵묵히 있다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중국에서 있던 모든 일을 쓰게 했다.
보위부 지하 감방에 밀어 넣었다.
어마어마한 고문이 치러질 것이라는 것을 대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이게 사람에게 있을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다.
어두컴컴한 회형시 보위부 지하 감방 안에 맥없이 쓰러져 있었다.
경멸에 찬 보위원의 호령소리가 끝나기 바쁘게 주먹쥔 두 손목을 수쇠로 잠궜다.
어디론가 호송하려는 의도가 보였다고 한다.
흙묻은 구둣발로 엉덩이를 힘껏 찼다고 한다.
사람을 왜 차?
자유만을 원한다고 하는데 그게 무슨 죄지?
정치보위부 취급 대상 죄인들은 재판도 없이 임의의 시간에 정치범 수용소로 실려가 거기서 영원히 인간 세상과 격리되어 소, 말과 같은 노예로 노동을 하다가 인생을 종말한다.
글만 읽어도 너무너무 슬프다.
자루를 다 잘라버린 숟가락으로 밥 아닌 밥을 떠서 입안에 넣었다고 한다.
밥이 짐승들 사료용 강냉이였다고 한다.
그것도 양은 충분히 주지 않는다.
북조선은 이 우주에서 제일 빈국이다.
내가 아프리카도 CNN을 통해서 보면 좋은데가 많았다.
평양은 광고용이다.
안전부 감방에서 주는 짐승 사료같은 매식을 조금씩이라도 먹으려고 애썼다고 한다.
그러나 처음 며칠은 매번 끼니를 다 먹을 수 없었다.
조금 먹었는데 배가 아프고 설사를 심하게 했다.
온몸이 불편했다고 한다.
감방 안의 모든 수인들은 적은 양의 거친 강냉이밥을 먹으며 배고픈 설움을 안고 끓임 없이 폐인으로 변질돼어 가는 것이 오늘날의 북조선이다.
절호의 기회만 있으면 탈출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직 탈출만이 살길이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죽음의 순간까지 감방에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저자는 하나님께 도와 달라고 기도할 때 감방에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환상을 경험하기도 했다.
안전원들이 텔레비전을 보고 있을 때가 탈출기회라고 생각하고 저자는 집결소 정문에 가서 빗장을 밀어 버리고 출입문을 연 다음 캄캄한 마을 속을 달렸다고 한다.
성공한 탈출의 기쁨으로 하여 눈물이 끓임 없이 흘렀다고 한다.
저자를 구원하신 것은 고마우신 하나님이라고 생각했다.
여러 달 동안 감방의 철장 속에서 강제 노동의 힘겨운 시련 속에서 지친 몸으로 위기를 무사히 모면한 저자는 열차를 타려고 했지만 탈출한 죄인이라 결국 열차 지붕으로 탔다.
열차 지붕?
열차 위를 말하는 건가?
도대체 뭐지?
도대체 사람으로서 이런 경험도 해야 하는 건가?
저자는 청진역이 가까워지니 또 근심이 생겼다고 한다.
청진 역 구내를 빠져 나갈 방도가 없는 것이다.
열차는 송평역 구내에 들어가기 전에 서서히 정차한다.
지붕위에서 들은 이야기다.
구내에 들어가기 전에 뛰어 내리면 된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열차에서 그냥 내리는 것도 아니고 열차지붕에서 뛰어 내린다니,,,,,
저자는 결국 뛰어 내려서 산기슭 잡관목을 헤치고 나와 눈에 익힌 지형물을 따라 두만강에 몸을 숨겼다.
저자를 죽음에서 구해준 하나님께 또 감사했다고 한다.
저자는 자유와 인권을 찾아 대한민국으로 가리라고 다짐을 했다고 한다.
저자는 자유와 삶을 찾고 인권과 민주주의를 찾아 한국으로 가리라고 했다.
6.25동란때 저자의 아버지가 월남한 그 길이 자유와 민주주의 길이었고 새 삶을 창조하는 행복의 길이었다.
한원채 씨와 그 가족을 한국으로 망명시키고자 한 한국인 사업가 이 모 사장이 상담에 나섰다.
한씨 가족은 다섯 명이다.
하지만 안전을 고려해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었다.
가족중의 누군가 한명이라도 반드시 한국에 도착하기 위해서이다.
대부분의 탈북자가 그러하듯이 한 씨의 가족도 불법 입국자로 중국 공안과 북한 국가보위부로부터 쫓기는 몸이었다.
어떤 상황에서 망명을 요구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모든 사연을 이사장에게 말했다.
이사장은 한씨가 내민 이력서를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한씨는 조선인민군 후 방총국 직속 길주 펄프연합기업소 설계실 설계원으로 과학기술발명권3개, 신기술등록증3개, 창의 고 인증 35개를 가지고 있었다.
국가훈장 2급, 3급을 수여 받은 영광도 있는 등 국가에 충성심 기여도가 큰 인물이었다.
주요 경력을 보면 철도 운수학교를 다녔고, 함흥 화학공업대학 기계공학과를 마치고 기계공학사 자격증을 받았다.
저자는 스펙이 대단한 사람이었다.
철도 운수 학교는 간첩 양성 기관이다.
이 학교에 입학하려면 성적이 우수할 뿐아니라 판단도 명석하다고 평가를 받아야 한다.
북한에서는 한씨에 대한 추적이 은밀히 시작 됐다.
두 번째 탈출이기 때문이다.
거액의 현상금을 붙여 놓고 가족까지 잡아오라고 했다.
생포하지 못하면 목을 잘라 가져 오라고 했다.
한 씨는 세 번째 북송이 되면 사형이다.
2000년 9월 15일 한씨 가족은 중국 탈출을 서둘렀다.
한씨부부는 연길시를 떠나 대련으로 이동했다.
둘째 딸은 부모보다 먼저 이동했다.
두 번째 탈출한 한씨는 구류장에서 경험을 적나라하게 쓰고 북한의 비인도적 인권 무시, 부패 타락한 사회를 백일하에 드러내고 싶은 강한의지로 장문의 원고를 대련으로 이동하기 직전에 탈고했다.
원본은 송곳으로 구멍을 뚫어 제본했다.
그리고 복사본 중에서 1부를 연길시 신풍교회 에 맡겼다.
한씨의 체험에는 김모 담임목사가 부재했기 때문에 남 모 전도사에게 전달 되었다.
이것이 한 씨의 치명적인 실수가 되었다.
이 교회는 한국에서는 탈북자를 보호하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북한과 내통하고 있어 북한의 교회라는 소문이 있었다.
2000년 9월 15일 예정대로 대련행 열차를 탄 한 씨 부부는 6시경 대련 역에 내려 장녀와 아들이 사는 아파트에 가서 가족 다섯 명이 오랜만에 재회했다고 한다.
거기서 망명할 준비를 해야 했다고 한다.
그런데 다음날 오전 갑자기 9명의 중국공안과 4명 변방대원이 들이 닥쳤다고 한다.
한 씨의 두 딸과 아들, 탈북자 원일우등 네 명은 한 씨와 전혀 관계없다고 우기면서 조선족이라고 해명했다.
이틀 동안 조사를 받는 와중에 한 씨의 아들과 원일우는 7층 외벽에 설치되 있던 수도관을 타고 지상으로 내려 도주했다.
열차 지붕을 타고 수도관을 타고 정말 처참하다.
두 딸은 석방 되었지만 한 씨 부부는 체포된 당일 호송되어 돌아 올 수 없었다.
한 씨부부는 심양의 북한 영사관으로 이송되어 상당히 심한 고문을 받은 후 수면제 주사를 맞고, 북한 영사관 외교번호가 달린 차로 단둥으로 이동해 북한 신의주로 보내졌다.
부부의 신변은 거기에서 평양으로 보내졌다는 여러 목격자의 증언을 통해 전해졌다.
한씨는 북한의 고문에 이기지 못해 자백하게 된 것이다.
페이스북에서 북한의 고문에 대한 이야기를 읽었는데 도저히 미어지지가 않았다.
한씨 가족의 구원에 관여한 이 사장, 박 모부장, 강 모비서를 체포하면 한화 5000만원과 벤츠 한 대에 해당하는 현상금이 걸렸다는 소식 전해졌다.
한 씨는 사흘 만에 죽었고 부인 신씨는 지나친 고문을 견디다 발광을 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아,,,,마음이 너무 무겁다.
한채원씨와 그 가족이 북한의 공안 관계자 국가보위부 요원에 의해 박해와 억압 고문을 당한 것은 인도주의와 인권에 간과할 수 없는 상황이다.
국가범죄로 규탄되어야 하는 성격의 문제이다.
조속히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것과 동시에 유엔 인권위원회에 문제 제기를 해야 한다.
그후 한 씨의 세 자녀는 많은 사람의 헌신으로 무사히 한국에 도착했고, 한 씨가 목숨을 걸고 쓴 원고는 우여곡절 끝에 2001년 4월 일본어로 번역되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죽음을 인정하고 싶지 않고, 어머니의 생존을 바라는 자녀들의 간절한 마음을 존중하여 출판을 보류하다가, 2002년 5월 일본에서 ’탈북자‘ 란 제목으로 먼저 출판하게 됐다.
북한에서 자유를 누리고 사는 자는 김씨 일가 밖에 없다.
인간을 먼저 생각하는 하나님은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자유를 누리게 했는데, 북쪽의 사람들은 자유를 찾아 떠나는 길이 너무나 험난하다. 거기서의 모든 사람들은 노예와 다름없다.
사람들은 차라리 목숨을 버릴지언정 자유를 원한다.
최근에 들려오는 소식에 의하면 외교관으로 가는 사람에게는 전자 팔찌를 채운다고 한다.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성범죄자가 차는 전자 팔찌로 감시를 하는 것이다.
한씨의 자녀들은 2001년에 자유대한민국에 입국하여 지금까지 어느 순간도 부모님을 떠올려 보지 않은 날이 없다고 한다.
아버지는 수기를 다 쓰고 펜을 놓으며 차녀에게 유언처럼 말씀했다. 저 어둠의 세계인 북조선의 현실을 알리고 북녘주민 모두가 자유를 찾고, 노예에서 해방되어 사람답게 살 수 있게 해야 한다.
한씨가 대한민국에 못가더라도 이 글만은 반드시 출판되어 북조선 사람들이 김일성 부자의 잔인한 독재체제에서 얼마나 굶어 죽고, 병들어 죽고, 얼어 죽고, 신음하며 살고 있으며 자유를 갈망하고 있는지 알려야 한다.
한씨부모님을 잡아가면서 저 사람들 속에 자식이 있느냐고 물었고, 부모님은 저기에는 우리 자식이 없다.
부부만 왔다고 끝까지 우기셔서 간신히 자식들 목숨을 살릴 수 있었다.
차녀는 부모님의 목숨을 바쳐 자식을 구해준 부모님의 은혜를 평생 잊을 수 없어 가슴에 묻고 산다.
한국에 온 후에도 살아있는 것이 죄가 되는 것 같아 몇 번이고 자살기도를 했다.
그때마다 떠오르는 것은 부모님이 목숨 바쳐 구해준 자식이 자살하는 것은 큰 불효이며, 혼자 편하겠다고 죽는게 더 큰 죄가 될 것 같았다고 한다.
차녀는 겨우 마음을 가다듬어 의사였던 어머니의 뒤를 이어 의료인이 되어 더 많은 생명을 구해야 겠다는 결심을 했다.
대한민국에서의 적응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한국에서의 모든 일은 차녀 스스로의 꿈을 이루는 길이다.
그 누구의 관섭과 통제, 감시가 없이 자유롭게 마음껏 날개를 펴고 날 수 있는 천국 같은 사회였다고 한다.
한국은 노력한 만큼 삶의 질이 높아지는 기회의 땅이었다.
목숨을 바쳐 자식을 구해준 부모님의 기대에 꼭 보답해야 한다는 생각이 차녀로 하여금 한순간도 헛되이 살게 내버려 두지 않았다.
어려운 일이 많았지만 그때마다 여러 의인을 만나 도움을 받았고, 이를 악물고 공부를 해 한의대를 졸업했다.
대학에 다니는 동안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을 했다.
재학 중에 두 딸이 태어났고, 졸업 후 아들이 태어났다.
지금은 같은 한의사인 남편과 함께 각자 한의원을 운영하며 새로운 도전을 꿈꾸고 있다.
차녀가 살아 온 삶이 너무 눈물겹고 멋지다.
이 책을 읽는데 가슴 턱턱 막혔다.
내가 태어날 때부터 그냥 누렸던 자유를 북한 주민들은 목숨을 바쳐야지 얻을 수 있다는 게 충격이다.
홍콩도 지금 시위를 하는데 중국의 체제를 홍콩이 이겨냈으면 좋겠다.
이 책을 읽고 느낀 점은 눈이 낫고 체력이 더 좋아지면 공부를 미친 듯이 하고 싶고 나중에 북한주민의 인권을 위해서 일하고 싶다.
천국인 우리나라를 지옥을 만들 수 없게 연대를 해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공산주의, 사회주의를 지독하게, 열렬히 증오하고 미워하고 반대한다.
민주주의만 진정으로 사랑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