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는 어떻게 생각을 시작하는가 - 이응준 작가수첩
이응준 지음 / 파람북 / 2019년 7월
평점 :
품절


엄마가 아빠께서 학교에서 쫓겨나시면서 박사과정장학금이 중단되시니까 박사과정을 중퇴하셨다.

그러면서 강의도 잘리셨다.

나랑 집에 있는데 엄마가 우울해하셔서 엄마대학원후배가 자격증 따는 강의를 공짜로 들으라고 해서 나랑 자격증을 5개를 같이 땄다.

그리고 내가 서평을 하고 책을 엄마를 드리니까 책을 읽을 때 정말 행복해하셨다.

그러면서 엄마 어릴 때 꿈이 작가였다고 하셨다.

그래서 그런지 엄마는 가끔 글쓰기 대회나 글쓰기 모임에 나가시는데도 만족을 못하셨다.

엄마는 돈 벌고 우리를 키워야 하니까 전공도 신학, 사회복지학, 행정학, 철학과를 학사, 석사, 박사과정까지 하시는데 엄마는 과가 전부 틀리다.

장학금을 많이 주는데를 찾아 가셔야 했으니까말이다.

얼마전에 책을 읽는데 일본의 시바다 도요시인가 하는 작가 분이 90살 넘어서 작가가 되셨다고 했나 그책을 보시더니 작가의 꿈을 다시 꾸고 싶다고 하셨다.

내가 서평을 하면서 엄마도 그렇고 나도 계속 꿈을 꾸고 도전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엄마는 이번에 문예창작학과에 지원하셨는데 숭실대에 합격하셨다.

책을 읽으면 감동을 받고 그 감동은 내면에서 자신의 삶과 다시 편집을 하면서 가치있는 가치관을 이끌어 낸다.

난 엄마의 작가라는 꿈을 지원하기 위해서 이 책을 읽고 싶다.

엄마는 딸은 공부하면 안되고 남의 집에 가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많은 집안에서 태어 나셨다.

엄마집안은 부자인데도 남자는 서울대 법대까지 가서 판사, 건설부 장관까지 돼도 여자는 공부하면 안된다고 했다고 한다.

정말 불합리하다.

엄마는 공부하고 책을 읽는다고 혼나셨다고 한다.

엄마는 끝까지 해내셨지만 아직도 꿈이 고프신가보다.

내가 딸이니까 엄마꿈을 지지해야 하고 엄마는 글을 쓸 때는 아무도 자신의 영역을 건드리지 않고 어릴 때부터 목이 아프니까 말을 잘 못하지만 글은 쓸 수가 있으셨다고 한다.

지금은 목도 고치긴 했지만말이다.

글을 쓰면 엄마는 상상을 할 수가 있고 꿈을 꿀 수가 있고 스펙을 쌓는데도 도움이 되셨다고 한다.

나도 힘들 때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만 도움이 되고 위로가  됐다.

작가는 어떻게 생각을 시작하는지 알아서 엄마께 얘기해 드리고 싶다.



코스모스, 쌍떡잎식물, 초롱꽃, 목 국화과의 한해살이 풀, 코스모스란 그리스어의 ‘KOSMOS’에서 유래했는데 질서라는 뜻이다.

한방에서는 뿌리를 제외한 식물체전체를 추영이라는 약재로 쓰며, 눈이 충혈 되고 아픈 증세와 종기에 처방한다.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어떤 슬픔에 홀로 깊이 젖게 되는 것은 저자는 믿는다고 한다.

그리고 그 슬픔이 안개 걷히듯 이내 증발하고 나면, 그 슬픔은  다시 악마 같은 인간으로 되돌아간다.

​뭔 소리지,,,,

난 작가의 감성이라는 것은 없어서 ​무슨 소리인지 이해하기가 힘든 것 같다.

과학은 진정한 종교성을 지니고 있다.

지금처럼 과학책이 심오한 경전 일 수는 없었을 것이다.

과학을 가지고 뭘 또 해보려고 했을 테니까.

과학자들은 다 사제요. 시인은 어느 강물에서건 깊이 가라앉고 싶어 하는 이 세계의 사금파리, 그 부스르기다.

그렇다면 우리는, 엉뚱한 곳을 향해 머리 조아리며 시공간을 더럽히지 말고 사막의 모래에게 경배하라고 한다.

새로운 문제, 마른 장작 같은 문체, 그러나 읽는 사람이 불을 붙이면, 활활 타오르는 문체,  깨끗이 재가 되는 문체, 블랙리스트는 별로 안 무섭다.

그것이 예술인들은 심각하게 괴롭힐 수는 있어도, 결코 그들의 의지와 희망을 끝까지 꺾거나 예술은 말살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 정치와 체제가 가해오는 시련과 역경 속에서 오히려 더 강해지고 빛났던 사례는 전 세계 예술사에 차고 넘친다.

블랙리스트는 예술인들을 심각하게 괴롭히는 정도가 아니다.

예술인들을 예술적으로타락시킨다.

게다가 벌거벗은 임금님의 옷처럼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

물증이 없다.

혁명 후의 우리 사회의 문학하는 젊은 사람들을 보면, 술을 예전보다 훨씬 안 먹습니다.”

술을 좋아하는 저자로서는 술을 마신다는 것은 사랑을 마신다는 것과 마찬가지 의미였다.

누가 무어라고 해도, 또 혁명의 시대일수록 문학 하는 젊은이들이 술을 더 마시기를 권장한다. 작가가 말하는 것이다.

그래도 난 술은 절대로 안 마신다.

문학하는 젊은이들이 술을 마시면서 문학과 세상을 논하는 아름다운 풍경이 보이지 않는 나라는 결코 건전한 나라라고 볼 수 없다라고 한다.

그리고 또한 명심할 것은 우리의 시대를 환멸로 채워선 안된다는 것, 사라지고 상처받은 마음에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해주고 싶다는 것, 저자는 아직 저자의 일은 시작도 안했다고 한다.

문장 앞에서 무자비해지는 것을 상상 못 하듯이 소심한 저자의 인생과 그런 저자를 보는  저자의 벗처럼 글과 책이 얼마나 무서운 물건인지 모르는 사람은 혁명 같은 것을 논할 자격이 없다.글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지 모르는 사람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것 중에 가장 무서운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다.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없다는 절망이 저자에게 작가이기를 꿈꾸게 했다.

​저자는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는 시대다라고 말하고, 그렇게 되길 바란다고 한다.

이 무자비한 희망 앞에서 저자의 마음은 왜소하고 매일매일 다른 곳으로 가버리는 꿈만 꾸고 있다.

아무나 작가일 수는 없다는 절망이 그립다는 소리가 아니다라고 한다.

인문학자나 예술가가 경제학을 어느 정도는 공부해야 하는 이유는, 경제에 관해 논하기 위함이 아니라 이 사회와 국가와 세계와 역사와 인간과 예술에 대해, 헛소리를 쏟아 낼까봐 두려워서 이다.

어떠한 불행 속에서도 시를 쓴다는 것은 인간으로서 그냥 멋있는 일이다.

시에 대해 아는 것은 많지 않다 하더라도, 저자는  시가 없었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방황했을 거라고 한다.

시는 저자에게 자유라는 교전 수칙을 준다.

문학을 공부하고 행하며 얻은 것들로써 이 세계의 비밀 앞에서 바보가 되지 않을 수 있었으며, 무엇보다 이방인이 될 수 있었다.

존경 받으려는 시인은 사기꾼에 불과하다.

시인은 사랑받는 존재다.

고전을 읽거나 듣거나 보는 것의 기본적인 이유는 지식이나 감동이나 교양 이전에 그러는 사람에게 심리적 안정과 명상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당대에 유행하는 것들이 어떤 쓰레기인지, 무시당했던 것들이 어떤 보석인지, 무지와 편파 속에서 사라져가는 것들을 잘 알 수 없다.

물론 문학이란 철학과 예술의 공학적 유기체이긴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몸과 마음의 병으로 쓰는 것이라고 말할 수밖에는 없다.

새로운 시를 씀으로 계속해서 시 창작을 하게 된다면, 그것이 문학적 운명의 과도기가 될 수도 있고, 새로운 시를 쓸 수가 없기에 더 이상의 시 창작은 없게 된다면 그것이 문학적 결정기가 될 수도 있을 테니까, 저자에게 홀로 산다는 것은 사람들과 함께 안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 하는게 아니라 시를 쓰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값을 따지면, 한 푼도 안 되는 시가  저자에게는 잘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하다.

남들에게는, 새로운 시가 필요해서 다시 시를 쓰기로 마음을 정한 것이 문학적 운명의 과도기 혹은 결정기 따위가 아니라, 저자에게는 인간의 혁명이다.

새로운 시들은, 어둠 속에서 어둠보다 강한 어둠이 되어 빛을 회복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슬픈 것이 아름답다는 미학의 황금률을 전복하는, 저자는 굳이 슬픔을 벗어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슬픔을 다른 것으로 교체해 버릴 것이다.

아름다움이 슬픔의 결과가 되는 게 아니라 슬픔과 아름다움이 그 무엇의 과정이 되도록 만들어가야 한다.

이것은 이제까지의 저자의 문학과 문학론에 대한 전복이다.

새로운 시들은 회복해서 혁명하는 한 사람의 이야기가 될 것이다.

 우리 각자가 원하는 것은 이미 우리 각자 안에 다 들어 있다.

혁명의 수칙은 한 장작이고 일시적이지 않은 것은 혁명이 아니다.

혁명을 이루고 나서는 혁명을 바로 버리거나 떠나야 한다.

혁명을 보관하지 말아야 한다.

저자는 글을 쓰는 것을 혁명으로 비유한다.

세상과 인간은 지옥같은 여름이고, 혁명은 상하기 쉬운 생선이다.

두려움이 없는 사람은 추한 사람이다.

사랑하면 그 사랑 때문에 두려워할 줄 알게 된다.

사랑은 두려움을 먹고 마시며 자라난다.

사람은 두려움을 배우며 사람이 된다.

두려워할 줄 아는 사람만이 진실로 용감한 사람이 된다.

두려움이 없는 사회는 역겹고 추한 사회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골리앗을 물리치는 다윗의 이야기는 항상 마음을 풍요롭게 자극한다.

 그 이야기는 안에서는 승려의 신비한 주술 같은 것이 깃들어 있다.

신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믿음과 인간의 용기를 실존이자 실증으로 체험하게 한다.

골리앗 앞에 홀로 마주 설 때가 있기 때문이다.

강하고 늠름한 적들보다 저자를 게으르지 않게 만들고 저자에게 더 명쾌한 힘을 준다.

그냥 변화가 아니다.

변화의 변화, 저 쓰레기들은 저자의 하나님이다.

저자​를 절망에서 구원해 준다.

기쁨이 아닌 게 없다.

저자는 항상 ​하나님께  감사한다.

심보가 못된 권력자와 무식한 권력자 둘 중에 누가 죄를 세게 많이 저지를까,

아마도 우리에게 이것은 논쟁거리가 될 수 없을 것이다.

우리의 최고의 권력자들은 다 무식하기 때문이다.

배운 놈이 더 한다는 소리가 있지만, 무식하다는 것은 정말 무서운 일이고 그 중 가장 무서운 일은 어설프게 유식한 것이다.

무식한 최고 권력자가 어설프게 유식한 것들에게 둘러싸여 있었으니 죄의 도가니가 들끓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심보가 된다.

강함은 몸이 약하다는 것이 나약한 것은 아니다.

강함이란 일종의 태도다.

위엄 있는 폐기다.

진정한 목적을 정하고 일을 하는 것은 그 일을 성공시키기 위함이 아니라 이 허무의 망망대해 같은 인생을 방황하지 않기 위해서다.

자기 일에 매진한다면 실패한들 우리는  이미 삶의 목적을 이룬 사람이다.

 꼭 많은 것을 얻는 게 목적을 이루고 성공이라기보다는 끝까지 이루어 질 때까지 포기하지 않는 게 목표를 이룬 것이다.

약하게 보는 자에게는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약해 보이는 자의 기습이다.

그는 약해 보이는 자이지 약한 자가 아니다.

역사와 권력, 역사는 권력가가 만드는게 아니다.

역사는 언어를 만드는 자가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것이 진짜 권력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할 말이 많은데 요즘 현실이 두려워서 참아야 한다.

언론의 자유가 많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성경에 있는 말씀을 인용해 보면 종을 어렸을 때부터 곱게 양육하면 그가 나중에 자식인 체하리라. 도둑과 짝하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미워하는 자라, 그는 저주를 들어도 진술하지 아니하느리라. 잠언 2924절 말씀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이는 몸은 멀쩡한데  영혼이 죽어버린 사람, 눈으로도 눈물로도 아무 말도 건넬 수 없는 사람이다.

지금에 와서 생각하건데, 저자의  삶에 남은 것은 그저 두 가지 무지개다리 건너편에서 저자를 기다리는 토토와   저자의 서재에서 잠들어 있는 또 다른 토토 가장 선량한 사자를 닮은 작은 시추 두 마리 이것이 전부라는 결론, 앞으로 저자에게 무엇이 더 남을 수 있을까,,,

다만 두려운 것은 저자 곁에 있는 토토마저 수년이 흐르면 여기 홀로 저자만 남긴채 떠날 것이다.

아수라인 세상을 바라보며 나쁘지 않은 인생리라고 조저는 자신에게 속삭인다

항상 생각하는 거지만 작가들의 생각틀은 나와는 다른 생각틀을 가졌다는 생각만 강렬해진다.

지독한 감성이 나에게는 없는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